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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자본주의 생존 인사이트 - 경제의 언어 그리고 부의 시크릿
최승수 지음 / 바른북스 / 2026년 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자본주의라는 말을 처음 제대로 들은 건 아마 고등학교 사회 시간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칠판에 분필로 무언가를 적었고, 나는 그것을 시험을 위해 외웠다. 자본주의. 생산수단의 사유화. 시장경제. 그리고 시험이 끝나면 깔끔하게 잊었다. 그때는 그것이 내 삶과 이렇게 깊이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회에 나온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첫 월급을 받던 날의 설렘은 아직도 기억한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이제 진짜 어른이 됐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 설렘은 생각보다 빨리 식었다. 월세, 통신비, 교통비, 식비를 하나씩 빼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열심히 일했는데 왜 항상 빠듯한 걸까. 처음에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씀씀이를 줄여야 하나, 아르바이트를 더 해야 하나, 아니면 더 좋은 직장을 찾아야 하나. 문제가 나에게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와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깨달았다.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것을. 열심히 사는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 불안의 이름을 몰랐을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자본주의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나만의 인사이트를 구해보고자 노력했다.
자본주의는 규칙이 있는 게임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게임이라면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이 게임판 위에 올려졌고, 규칙을 배운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직장에 가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나름 괜찮은 직장에 들어간 지금도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규칙이 다른 것이었다. 이 시대의 진짜 규칙은 교과서에 없었다. 빚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금리가 오를 때 내 삶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물가가 오른다는 말이 단순히 물건값이 비싸진다는 의미를 넘어 나의 미래 구매력이 조용히 녹아내리고 있다는 뜻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경제라는 거대한 바다에 수영을 배우지 못한 채 던져진 것이다. 처음으로 경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솔직히 두려웠다. 어렵고 지루한 이론들, 낯선 숫자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전문 용어들. 그것들이 나와 무관한 세계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하나씩 배워가면서 알게 됐다. 경제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매달 카드값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왜 전세 보증금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 왜 남들처럼 살려다 보면 항상 돈이 부족한지 그 모든 것이 경제였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가장 힘든 것은 돈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가장 힘든 건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 그리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막막함이었다. 스마트폰을 열면 누군가는 해외여행을 다니고, 누군가는 멋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새 차를 샀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왔다. 그 풍경들을 보며 나는 조용히 비교했다. 나는 왜 저렇게 못 살까. 나는 능력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노력이 부족한 걸까. 그런데 그것이 함정이었다. 보이는 것과 실제는 달랐다. 화려해 보이는 소비 뒤에는 카드 할부가 있고, 멋진 차 뒤에는 할부금이 있고, 여유로워 보이는 삶 뒤에는 보이지 않는 빚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자본주의는 보여주기를 부추기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보여주기에 끌려다니면, 우리는 평생 남의 기준 위에서 자신을 소진하게 된다. 내가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어본 날이 있었다. 나는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아니면 내가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가 괜찮았다고 느낄 수 있는 삶? 두 가지는 생각보다 많이 달랐다. 경제적 목표를 다시 세웠다. 거창하지 않았다.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되는 것. 아플 때 병원비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는 것. 나이 들어서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목표를 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남과 비교하는 불안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경제를 배운다는 것은 결국 세상을 읽는 눈을 기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금리가 오른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예전의 나는 그냥 지나쳤다. 이제는 멈추게 된다. 이게 나의 대출이자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집을 사려고 했다면 지금이 적절한 시점인가. 환율이 요동치면 수입 물가가 오르고, 그게 다시 내 장바구니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거창한 전문 지식이 아니라 삶과 연결된 감각이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하게 깨달은 것은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복리는 단지 투자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내가 내리는 작은 결정들이 10년 후, 20년 후의 나를 만든다는 진실이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서 느슨해지기 쉽지만, 20대에 시작하는 100만 원과 30대에 시작하는 100만 원은 결코 같은 무게가 아니다. 그 사실을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는 후회와 함께,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가 함께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시스템의 규칙 안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다. 규칙을 모르면 당한다. 빚의 구조를 모르면 빚의 노예가 되고, 사기의 패턴을 모르면 정교하게 설계된 함정에 빠진다. 세금의 구조를 모르면 낼 필요 없는 세금을 내고, 보험의 본질을 모르면 필요 없는 보험에 가입한다. 하지만 규칙을 안다고 해서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잃지는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크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크게 잃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내 기반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라고 믿는다. 불안한 시대라고 한다. 맞다. 물가는 오르고 기회는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고,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날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제 그 불안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시대의 구조가 만들어낸 불안이라는 것을. 그 구조를 이해하면,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하는지는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