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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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 혼모노를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책장을 덮고도 무언가가 손끝에 남아 있는 느낌, 마치 방금 만진 것이 날카롭고 차가운 금속이었는데, 손을 거두고 나서야 비로소 그 온도를 실감하는 것처럼. 성해나라는 이름 석 자가 내 독서 목록에 조용히 각인된 것은 그날이었다. 신작 인비인. 차갑고, 예리하고, 그러면서도 묘하게 아름다운 책이다. 인비인는 '인간 아닌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 스스로 해설에서 밝히듯, 그것은 괴수일 수도, AI일 수도, 귀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남는 질문은 정작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신이 인간이라고 믿어온 것들은 과연 인간이었냐고.

표제작 인비인에서 노인이 건네는 두툼한 서류봉투 속에는, 하얼빈에서 벌어진 생체실험의 기억이 담겨 있다. '가타마리' 덩어리라는 이름이 붙은 존재.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으나 인간의 형상을 갖추지 못한 그것을. 나는 처음에 이 소설이 역사적 공포를 소재로 한 고발 서사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성해나는 그보다 훨씬 더 불편한 곳을 찌른다. 정작 소름 돋는 것은 가타마리가 아니었다. 고문 틀에 매달린 사람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고 쓰면서도, 결국 그 자리를 지켰던 청년 노인. 세월이 지나 자신의 죄를 '영화화해 달라'며 찾아오는 그의 모습. 진정한 반성이나 뉘우침 없이 오직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으로 뭉쳐진 그 존재가...어쩌면 가장 기이한 인비인이 아닐까.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짓을 하고, 그럼에도 스스로를 인간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상 밑판에 새겨진 문장, 어린 마사히로가 읽지 못한 그 문장.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에서 '역사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 테지. 흠은 파내고 구실은 잘 덮으며...

윤회(당한)자들의 주인공은 나와 닮아 있었다. 한때 잘나갔던, 지금은 아무것도 찍지 못하는 감독. 그는 처음에 그 이상한 모임을 비웃는다. 속으로 냉소하면서,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확히 어느 순간인지 집어낼 수 없는 그 어딘가에서, 그는 모임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감정선의 이행이 처음에는 너무 빠르다고 느꼈다. 세뇌가 이렇게 허술하게 이루어지나? 그러나 책장을 덮고 생각해 보니, 소설의 핵심이었다. 우리가 무언가에 세뇌당할 때, 우리는 그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리울지도 모르잖아요'라는 로봇의 속삭임처럼, 세뇌는 언제나 다정한 목소리로 온다. '괜찮아요, 샤오잉'이라는 위로처럼,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 같은 존재의 형태로 온다. 마지막에 단검을 꽂으며 미소 짓는 장면에서, 나는 그제야 처음 페이지의 잔상과 마지막 장면이 하나로 겹치는 것을 느꼈다. 소름이 돋았다. 저자는 미리 말해주지 않는다. 발견의 쾌감과 공포를 동시에 선물한다.

<아미고>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현재에 가까운 이야기다. AI 로봇 야키마 H1이 도입된 촬영 현장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스턴트맨은 서서히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간다. 처음에는 로봇이 형편없었다. 스파링에서 나가떨어지는 야키마 H1을 일으켜 세웠을 때, 로봇이 속삭인다. '저 얼굴들을 잘 기억해둬요. 그리울지도 모르잖아요.' 예언처럼 실현되는 과정이 이 소설의 뼈대다. 인간들은 점점 차갑고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오히려 인간을 학습한 로봇이 따뜻해진다. 주객이 전도된 이 역설이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주인공이 욕조 속에서 중얼거리는 한 마디... “정말 괜찮을까“는 로봇에게 묻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그 모호함이 오래 남았다.

책은 언제나 경계선 위에 있다. 인간과 비인간, 믿음과 세뇌, 욕망과 죄악의 경계. 혼모노에서도 그랬지만 인비인에서 그 경계는 더욱 흐릿하고, 그렇기에 더욱 무섭다. 가타마리를 바라보며 '저것이 인간인가' 묻는 동시에, 그 질문을 던지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세뇌당하는 주인공을 비웃다가, 나 역시 언젠가 '괜찮아요'라는 다정한 말에 스며들지 않았던가 돌아보게 된다. 비 오는 날 아주 옅은 조명 아래서 읽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읽는 동안 나는 그 세계 안에 있고, 덮고 나서도 그 세계는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시원한 무엇인가가 생각날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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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랑받는 1등의 언어
유미라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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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말을 잘한다는 것이 타고난 능력이라고 믿어왔다. 어떤 사람은 무대 위에서도 물 흐르듯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어떤 사람은 단 한 마디로 방 안의 공기를 바꾼다. 그 차이가 재능이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겼기에, 나는 오랫동안 '나는 말하기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살았다. 그러나 유미라 작가의 <결국, 사랑받는 1등의 언어>를 읽으며 그 믿음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책은 말을 잘하는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책의 첫 장부터 저자는 묻는다. 우리가 말하기에 대해 품고 있는 오해들은 무엇인가? 말을 잘하는 것은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다, 내성적인 성격은 말하기에 불리하다, 아나운서처럼 세련되게 말하는 것이 정답이다. 저자는 이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반박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다. 7년간 뉴스 앵커로서, 그리고 수 백 명의 수강생을 만나온 스피치 컨설턴트로서 체득한 살아있는 언어로 이야기 한다.


책을 읽으며 내가 처음으로 멈춰 생각하게 된 문장은 "수백만 원짜리 스피치 강의보다 강력한 것은 '일상의 한마디'다"' 말하기 능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종종 학원을 등록하고, 강의를 찾아보고, 책을 사 읽는다. 그러나 저자는 말의 근육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매일의 반복된 일상 속에서 단련된다고 말한다. 뉴스 앵커도 데스크 뒤에서 매일 기본기를 연습한다는 사실은, 화려한 무대 뒤에 얼마나 많은 지루하고 성실한 반복이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 는 얼마나 자주 '언젠가 제대로 배워야지'라는 막연한 다짐만을 반복했던가. 결국 말하기도, 모든 능력과 마찬가지로, 지금 이 순간의 작은 실천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1일 1챌린지'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습관의 제안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저자가 제시하는 '말하기 MBTI' 개념도 인상 깊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다른 상황 에서 다른 약점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은 발음이 문제이고, 어떤 사람은 심리적 긴장이 문제다. 어떤 사람은 비즈니스 상 황에서 작아지고, 어떤 사람은 친밀한 관계에서 오히려 무뚝뚝해진다. 자신의 블랙홀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은, 지피지기의 원리를 말하기에 적용한 것이다. 나를 알지 못하면, 어떤 기술도 나에게 맞게 작동하지 않는다.


책이 다른 스피치 책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비즈니스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를 모두 다루되, 그 둘이 서로 다른 온도 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는 것이다. 면접과 발표, 회의와 협상의 언어는 명확하고 단단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뉴스 헤드라인 보고법‘이라 부른다. 결론부터 말하고, 핵심을 압축하며, 데이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식. "결론이 뭐야?"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말하기 전에 이미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는 아나운서가 뉴스 오프닝을 준비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특히 협상에 관한 대목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협상은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예술입니다." 우리는 흔히 협상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고수는 상대가 지지 않았다고 느끼면서도 내가 원하 는 방향으로 결론을 이끌어낸다. 저자가 소개하는 '쿠션 언어'는 그 도구다. 날카로운 반대 의견을 부드럽게 감싸 승낙으로 전환하는 이 기술은, 단순한 화술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에서 비롯된다. 반면, 가족과 친구, 연인과의 언어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다. 여기서 저자는 '긍정의 언어 채우기'와 '부정의 언어 줄이기'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관계의 언어를 설명한다. 인정, 칭찬, 축하, 감사, 관심이라는 다섯 가지 긍정의 언어와, 사과, 분노, 서운함, 이해, 조율이라는 다섯 가지 갈등의 언어. 이 분류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 삶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주 이 언어들을 잘못 사용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저자는 말하기의 디테일을 제시한다. 발음과 발성, 복식호흡,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맞춤법과 호칭, 그리고 TPO에 맞는 이미지까지. 이 부분은 실용적인 노하우의 집합이지만, 그 바탕에는 하나의 철학이 흐르고 있다. 품격 있는 말하기는 단단한 문장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말그릇'이라는 개념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 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해왔느냐에 달려 있다. 독서와 필사, 글쓰기 연습으로 단어장을 채우는 일이 결국 말하기의 깊이를 결정한다. 비속어와 은어 대신 품격 있는 언어 습관을 기르는 것, 올바른 호칭과 높임말을 사용하는 것이 모든 것이 단지 예의 바름의 차원이 아니라,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가에 대한 선택이다. 특히 공감에 대한 저자 의 시각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은 상대의 마음속 날씨를 함께 견뎌주고, 그 하늘에 뜬 무지개를 함께 감상해 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위로를 '해결'로 오해한다. 상대가 힘들다고 하면, 조언을 건네고 방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섣부른 해결책보다 "그랬구나"라는 한마디가 100배 강력하다고.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판단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그저 옆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어디서든 사랑받는 사람들의 가장 근본적인 언어임을 책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전달한다.


'앞으로 말을 잘해야지'라는 다짐이 생겼다. 오히려 내가 지금껏 사용해온 언어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받았을 누군가의 표정, 진심을 전하지 못해 어색하게 흘러간 수많은 대화들, 용기 내어 사과하지 못한 순간들이다.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하는 것은 결국 이것이다. 말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태도는 결국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드러낸다. 화려한 언변보다 상대가 편안해지는 언어, 논리적인 설득보다 진심이 닿는 한마디, 완벽한 발음보다 따 뜻한 온도가 결국 사람을 곁에 머물게 한다. "말을 조금 바꿨을 뿐인데, 내게 다가오는 세상의 온도가 달라졌다." 말은 곧 나다.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조금 더 다정하고 단단한 언어로 이 세상과 마주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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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쌤의 28시간에 끝내는 토익스피킹 All in One - 2026 최신 기출 전면 개정판
황인기.시원스쿨 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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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어를 배운 세월이 무색하게도, 나는 늘 '읽는 영어'의 사람이었다. 시험지 앞에서는 제법 영리해 보였지만, 입을 열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혀가 굳어버렸다. 그 침묵이 부끄러워 토익 스피킹 시험 준비를 결심했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공부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책을 처음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28시간이라는 숫자였다.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수십 년을 영어와 씨름해 온 사람도 입이 트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커리큘럼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책은 방대한 영어의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욕심 대신, '시험장에서 필요한 것'만을 정밀하게 겨냥하고 있었다. 28주 완성, 2주 완성, 1주 완성이라는 세 가지 학습 플랜 중 내 사정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있었고, 나는 그 선택지 앞에서 처음으로 막연하지 않은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공부를 시작하고 가장 낯선 것은 발음이었다. 나는 p와 f, l과 r의 차이를 머리로는 알았지만 귀와 혀로는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책은 이 발음들을 따로 모아 집중 연습할 수 있도록 안내했고, QR코드를 통해 원어민의 실제 발음을 언제든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틀어놓고 듣기만 했다. 그다음 날에는 따라 했고, 그 다음에는 녹음 기능을 써서 나의 발음을 직접 들어봤다. 그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강렬했다. 내 귀로 듣는 내 목소리는 어색하고 부정확했고, 그 불일치가 오히려 나를 더 집요하게 만들었다. 잘못된 발음을 귀로 확인하고, 고치고, 다시 녹음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발음은 서서히 제 자리를 찾아갔다.

사진 묘사 문제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사진을 보고 있어도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제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책이 알려준 방법은 단순했지만 효과적이었다. 먼저 장소를 파악하고, 묘사 순서를 정하고, 키워드를 미리 떠올린 다음, 네다섯 문장을 일정한 리듬으로 말한다. 말의 내용보다 말의 흐름을 먼저 잡는 것이다. 이 방식에 익숙해지자 사진 앞에서 느끼던 막막함이 절반쯤 사라졌다. 특히 사람의 인상착의를 묘사하는 표현이 따로 정리된 부분이 도움이 됐다. 'wearing a blue shirt'나 'holding a briefcase' 같은 문장이 자동반사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작은 자신감을 느꼈다.


억양과 강세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제대로 의식하게 됐다. 끊어 읽기 표시가 본문 곳곳에 삽입되어 있었고, 어디서 멈추고 어디에 힘을 주어야 하는지를 시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음성 파일을 들으며 따라 읽는 훈련은 처음에는 어색하고 느렸지만, 반복할수록 입이 영어의 리듬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영어는 결국 음악처럼 리듬이 있는 언어라는 것을, 눈으로 공부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을, 귀와 입으로 공부하면서 처음 체감했다.

의견 제시 유형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부분이었다. 단순히 사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입장을 즉석에서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장에서 긴장한 상태로 아무 말이나 쏟아내다가 시간이 끝나버리는 상황이 훤히 그려졌다. 책은 여기서 '답변의 완성도'를 강조했다. 길게 말하는 것보다 짜임새 있게 말하는 것이 고득점으로 이어진다는 원칙 아래, 효율적인 답변 구성 방식과 함께 회사, 교육 등 주제별로 자주 쓰이는 필수 표현이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이 표를 외우는 대신, 반복해서 입으로 소리 내어 읽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표현들이 문장 속으로 자연스럽게 끼어들기 시작했다.


강남 현장 강의에서만 들을 수 있다는 팁들이 책 곳곳에 녹아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독특한 매력이었다. 준비 시간과 답변 시간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 어떤 실수가 감점으로 이어지는지, 시험장 특유의 긴장감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에 대한 조언은 단순한 언어 공부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다.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없는 처지에서도 그 경험을 나눠받는 느낌이었다. 실전 모의고사 회차를 쌓아가면서 나는 달라지는 나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모의고사가 끝나고 나면 무엇을 말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는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시간 배분이 자연스러워졌고, 생각을 문장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부록에 담긴 고난도 빈출 어휘와 유형별 필수 표현 모음은 시험 직전에 한 번 더 훑어보는 '최후의 정리'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돌이켜보면 시험만을 위한 훈련이 아니었다. 내 목소리로 영어를 소리 내어 내뱉는 경험, 녹음한 내 발음을 귀로 확인하는 경험, 제한 시간 안에 생각을 정리하여 말하는 경험, 이 모든 것이 쌓여 오랫동안 굳어 있던 말문을 조금씩 열어주었다. 영어는 읽는 것만으로는 절대 말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이 책과 함께한 시간을 통해 비로소 몸으로 알았다. 좋은 교재를 만나는 것은 좋은 스승을 만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들 한다. 말문이 트이는 시간, 그것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았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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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귀 뚫기
집영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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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영어를 "공부"했다. 단어장을 외우고, 문법책을 정독하고, 토의 문제집을 풀었다. 시험 점수는 어느 정도 나 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점수가 오를수록 영어가 더 두려워졌다. 외국인이 말을 걸어오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분명히 알아야 할 단어인데,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전혀 다른 무언가였다. 나는 그때마다 "나는 영어 귀가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단정 지었다. 그 자기 단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나는 꽤 오랫동안 몰랐다. <영 어 귀 뚫기>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공부하지 말고 그냥 켜 놓기만 하라"는 말은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그것이 정말로 가능한 일인가? 45세가 되어서도 귀가 열릴 수 있는가?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언어를 분석의 대상 으로만 대해왔다는 사실을. 언어는 원래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는 것 이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비유는 아이의 언어 습득이었다. 아이는 태어나서 1년 동안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단지 듣는다. 부모의 목소리, TV 소리, 일상의 소음 속에 담긴 언어를 온몸으로 흡수한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엄마", "맘마", "아빠"가 튀어나온다. 그 아이에게 누군가 문법을 가르쳤는가? 단어 시험을 보게 했는가? 아니다. 그저 충분히 들었을 뿐이다.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이 당연한 진실을 잊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학교 교육이 우리에게서 그 본능을 빼앗아 갔을지도 모른 다. 영어 수업 시간, 우리는 항상 해석을 요구받았다. 문장이 들리면 즉시 한국어로 바꾸어야 했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었다. 이 습관은 뿌리 깊게 박혔고, 우리는 영어를 들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번역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 번 역기가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로 원어민이 말하면, 우리의 뇌는 패닉 상태에 빠진다. 저자가 말하는 귀 뚫기의 핵심은 바로 이 번역 충동을 내려놓는 것이다. 들리는 대로, 끊기지 않게, 그냥 쭉 듣는 것. 이것이 모국어를 배울 때 우리가 했던 일이고, 이것이 언어 습득의 본질이다. 우리는 단지 그 방법을 너무 오래 쓰지 않았을 뿐이다.


책에는 "누적 듣기 7000시간"이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그 숫자가 벽처럼 느껴졌다. 7000시간. 하루 3시간씩 들으면 약 6년이 넘는 시간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국어를 배우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가 한국어를 듣고 말하는 데 투자한 시간은 7000시간을 훨씬 넘을 것이다. 언어란 원래 그만큼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을 단 몇 달의 집중 학습으로 대체하려 했던 것이 애초에 무리였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 은 숫자 자체가 아니다. 집용이 강조하는 것은 열정과 호기심이다. 관심 있는 콘텐츠를 고르고, 목소리가 귀에 편안한 채 널을 찾고, 일상의 자투리 시간마다 켜 두는 것. 이것은 고행이 아니다. 오히려 즐거운 루틴이다.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설거지하면서 듣고, 출퇴근길에 넷플릭스를 귀로만 흘려들으면서, 우리는 이미 하루에 수많은 들을 수 있는 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이 관점이 나를 바꾸었다. 영어 공부를 위해 특별한 시간을 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이미 존재하는 시 간을 채우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공부하지 마, 그냥 켜 놓기만 해" 라는 말은 게으름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습 득의 본질을 꿰뚫는 통잘이었다.


"넷플릭스 자막을 끄는 순간, 당신의 진짜 영어가 시작됩니다." 나에게 작은 충격이었다. 나는 항상 자막에 의존했다. 자막이 없으면 불안했다. 혹시 중요한 내용을 놓칠까봐, 이해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 바로 귀 뚫기를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자막이 있으면 뇌는 편한 길을 선택한다. 눈으로 읽고 이해한다. 귀는 보조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 상태에서 수천 시간을 보내도 귀는 열리지 않는다. 반면 자막 없이 들으면, 뇌는 불편함 속에서 소리 자체에 집중하기 시작 한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두고, 아는 것들이 귀에 걸리기 시작한다. 그 걸리는 순간들이 축적될수록 들리는 범위가 넓어진다. 물론 쉽지 않다. 처음에는 소음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있다. 그것을 견디는 것이 핵심이다. 언어 습득에는 침묵 의 기간(silent period) 이 존재한다. 아이가 1년을 말 없이 듣기만 하듯이, 우리도 충분히 듣기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낭비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 쌓이고 있는 순간이다.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방법이 아니라 허락이었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 모르는 채로 들어도 된다는 허락. 공부처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 그리고 45세든, 50세,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는 허락. 책의 말처럼, 사람마다 좋아하는 콘텐츠가 다르고, 매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다르고, 집중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러므로 나만의 루 틴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아침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미국 팟캐스트를 틀기로 했다. 산책할 때는 영국 드라마의 오디오를 흘려 듣기로 했다. 자막 없이, 해석하려 하지 않고, 그냥 소리의 리듬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집용이 약속했다. 열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임한다면, 반드시 귀 뚫기라는 보답이 온다고. 그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알기 때문이다. 내 귀가 고장난 것이 아니라, 단지 충분히 사용하지 않았을 뿐 이라는 것. 두 번째 인생이 들리기 시작할 그날을, 나는 오늘부터 조용히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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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가르침, 단독자로 살아라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정영훈 엮음, 김경수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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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 책의 문장들을 읽었을 때, 나는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불편함은 낯선 것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도 익숙한 자신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쳐서였다. 니체는 묻는다. 당신은 타인의 보폭에 맞춰 걷고 있지 않은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선뜻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많은 선택들은 내가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이 옳다고 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 했던 것은 배움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부모님의 기대 때문이었다. 어떤 직업을 선 망했던 것은 그 일이 나를 불태울 것 같아서가 아니라, 주변이 안정적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특정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던 것도, 관계가 깨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지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나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의 좌표를 찾아왔다. 니체는 이런 태도를 낙타의 단계라고 부른다. 사회가 지워주는 짐을 묵묵히 짊어지고, "그래야 한다"는 명령에 복종하며 사막을 걷는 낙타. 그 낙타의 모습이 바로 나였다. 물론 순종이 무조건 나쁜 것 은 아니다. 규칙을 배우고 공동체의 요구에 응하는 과정은 삶의 기초를 닦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낙타의 단계에 머물면서도 그것이 내 자신의 선택이라 착각할 때다. 짐을 지고 있는데 그것이 짐인지도 모르는 상태. 그것이 진정한 위기다. 니체가 충격적인 이유는 “더 열심히 하라"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도덕, 집단, 칭찬, 양심)이 실은 탁월한 개인을 옭아매기 위한 구조일 수 있다고 폭로한다. 이 폭로는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사유의 시작이다. 안락한 수면에서 깨어나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나는 얼 마나 오랫동안 타인의 칭찬을 연료로 삼아 살아왔는가. 누군가 나를 인정해 줄 때 앞으로 나아가고, 아무도 봐주지 않을 때는 멈주는 삶. 그것은 자율적인 삶이 아니라 타인이 스위치를 쥐고 있는 삶이다. 니체의 언어를 빌리자면,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를 먹고 사는 의존자였던 것이다.


니체 철학에서 내가 가장 깊이 공명한 것은 고독과 파괴다. 우리 시대는 고독을 병으로 취급한다. 혼자 있는 사람은 외로 운 사람이고, 무리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부적응자처럼 여겨진다. SNS는 끊임없는 연결을 강요하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 게 그 소음 속에 자아를 잃어버린다. 하지만 니체는 말한다. 고독은 도망이 아니라 귀환이다.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일이다. 나는 고독이 두려웠다. 혼자 있으면 잡념이 밀려오고, 그 잡념 속에는 직면하기 싫은 질문들이 있었다. '나는 지금 진짜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이 선택은 정말 내 것인가?' 소음으로 그 질문들을 덮는 것이 훨씬 쉬웠다. 유튜브를 틀고, 음악을 켜고, 누군가와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눴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스스로를 채우지 못했기에 외부의 소음으로 마음의 공백을 메우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독을 진짜로 직면한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도 나를 보아주지 않는 어떤 새벽, 혼자 오래 앉아 있었을 때. 처음에는 불안했다. 그러나 그 불안이 가라앉고 나면, 아주 선명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 내가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 내가 지금까지 회피해온 것들, 그것들이 고요 속에서만 목소리를 낸 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니체가 말한 "침묵할 때 진짜 내 목소리가 들린다"는 문장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파괴에 관한 사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파괴를 부정적인 것으로 본다. 무너지는 것, 잃어버리는 것,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낡은 자아를 붙들고, 과거의 성공에 기대어, 변화를 최대한 미루며 산다. 그러나 니체는 말한다. 낡은 껍질을 깨지 않으면 새로운 자아는 태어날 수 없다고. 파괴는 창조의 전제 조건이다. 나는 한때 내가 구축해 온 어떤 이미지와 역할 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그것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무너짐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그 낡은 껍질 속에서 안전하다는 착각을 유지하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고통이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결핍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니체가 말하는 파괴적 성장이란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살면서 실제로 겪는 그 쓰라린 과정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사자는 낙타와 다르다. 낙타가 "당신은 해야 한다"는 명령에 복종한다면, 사자는 "나는 원한다"고 선언하며 기존의 가치에 맞선다. 이 전환이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익숙한 순종의 패턴은 뿌리가 깊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 하는 순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인식이 곧 변화의 첫 번째 근육이다.


니체 철학의 정점은 위버멘쉬나 영원회귀의 개념보다, 나에게는 아모르파티(Amor Fati)였다. 운명을 사랑하라. 이것은 체념이 아니다. 주어진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능동적인 태도다. 내게 주어진 조건(결핍, 상처, 실패, 한계)을 원망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바로 그것을 재료 삼아 나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아모르파 티가 요구하는 삶의 태도다. 나는 오랫동안 내 삶의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을 환경의 탓으로 돌렸다. 더 나은 조건이었다면, 다른 시작점이었다면,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이라는 가정들이 나를 현재로부터 도피하게 만들었다. 니체는 이 도피를 정확히 꿰뚫는다. "환경을 탓하는 자는 영원히 제자리를 맴돈다." 불편한 문장이다. 그러나 진실은 종종 불편한 형태로 도착한다. 아모르파티를 삶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고통이 닥쳤을 때 그것을 사랑하라는 말은, 고통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것은 고통을 즐기라는 게 아니다. 그것을 없애려 발버둥치는 데 에너지를 쓰는 대신, 그 고통을 통과함으로써 더 단단해지라는 것이다. 고통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원동력이다.


나는 하나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오늘 하루가 영원히 반복된다면, 나는 그것을 긍정할 수 있는가?" 이것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실존적인 물음이다. 만약 지금 이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고 할 때 그것을 기꺼이 원할 수 없다면, 지금 당장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는 신호다. 니체는 위로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를 흔든다. 그러나 그 흔들림 이 진짜 시작이다. 타인의 허락 없이, 집단의 승인 없이, 내 안의 명령 하나만으로 걸어가는 삶. 그것이 니체가 말하는 단독 자의 삶이며, 나는 지금 그 길의 아주 초입에 서 있다. 두렵지만, 이 두려움마저 껴안고 걷는 것, 그것이 바로 아모르파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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