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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 혼모노를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책장을 덮고도 무언가가 손끝에 남아 있는 느낌, 마치 방금 만진 것이 날카롭고 차가운 금속이었는데, 손을 거두고 나서야 비로소 그 온도를 실감하는 것처럼. 성해나라는 이름 석 자가 내 독서 목록에 조용히 각인된 것은 그날이었다. 신작 인비인. 차갑고, 예리하고, 그러면서도 묘하게 아름다운 책이다. 인비인는 '인간 아닌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 스스로 해설에서 밝히듯, 그것은 괴수일 수도, AI일 수도, 귀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남는 질문은 정작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신이 인간이라고 믿어온 것들은 과연 인간이었냐고.표제작 인비인에서 노인이 건네는 두툼한 서류봉투 속에는, 하얼빈에서 벌어진 생체실험의 기억이 담겨 있다. '가타마리' 덩어리라는 이름이 붙은 존재.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으나 인간의 형상을 갖추지 못한 그것을. 나는 처음에 이 소설이 역사적 공포를 소재로 한 고발 서사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성해나는 그보다 훨씬 더 불편한 곳을 찌른다. 정작 소름 돋는 것은 가타마리가 아니었다. 고문 틀에 매달린 사람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고 쓰면서도, 결국 그 자리를 지켰던 청년 노인. 세월이 지나 자신의 죄를 '영화화해 달라'며 찾아오는 그의 모습. 진정한 반성이나 뉘우침 없이 오직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으로 뭉쳐진 그 존재가...어쩌면 가장 기이한 인비인이 아닐까.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짓을 하고, 그럼에도 스스로를 인간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상 밑판에 새겨진 문장, 어린 마사히로가 읽지 못한 그 문장.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에서 '역사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 테지. 흠은 파내고 구실은 잘 덮으며...윤회(당한)자들의 주인공은 나와 닮아 있었다. 한때 잘나갔던, 지금은 아무것도 찍지 못하는 감독. 그는 처음에 그 이상한 모임을 비웃는다. 속으로 냉소하면서,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확히 어느 순간인지 집어낼 수 없는 그 어딘가에서, 그는 모임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감정선의 이행이 처음에는 너무 빠르다고 느꼈다. 세뇌가 이렇게 허술하게 이루어지나? 그러나 책장을 덮고 생각해 보니, 소설의 핵심이었다. 우리가 무언가에 세뇌당할 때, 우리는 그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리울지도 모르잖아요'라는 로봇의 속삭임처럼, 세뇌는 언제나 다정한 목소리로 온다. '괜찮아요, 샤오잉'이라는 위로처럼,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 같은 존재의 형태로 온다. 마지막에 단검을 꽂으며 미소 짓는 장면에서, 나는 그제야 처음 페이지의 잔상과 마지막 장면이 하나로 겹치는 것을 느꼈다. 소름이 돋았다. 저자는 미리 말해주지 않는다. 발견의 쾌감과 공포를 동시에 선물한다.<아미고>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현재에 가까운 이야기다. AI 로봇 야키마 H1이 도입된 촬영 현장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스턴트맨은 서서히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간다. 처음에는 로봇이 형편없었다. 스파링에서 나가떨어지는 야키마 H1을 일으켜 세웠을 때, 로봇이 속삭인다. '저 얼굴들을 잘 기억해둬요. 그리울지도 모르잖아요.' 예언처럼 실현되는 과정이 이 소설의 뼈대다. 인간들은 점점 차갑고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오히려 인간을 학습한 로봇이 따뜻해진다. 주객이 전도된 이 역설이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주인공이 욕조 속에서 중얼거리는 한 마디... “정말 괜찮을까“는 로봇에게 묻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그 모호함이 오래 남았다.책은 언제나 경계선 위에 있다. 인간과 비인간, 믿음과 세뇌, 욕망과 죄악의 경계. 혼모노에서도 그랬지만 인비인에서 그 경계는 더욱 흐릿하고, 그렇기에 더욱 무섭다. 가타마리를 바라보며 '저것이 인간인가' 묻는 동시에, 그 질문을 던지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세뇌당하는 주인공을 비웃다가, 나 역시 언젠가 '괜찮아요'라는 다정한 말에 스며들지 않았던가 돌아보게 된다. 비 오는 날 아주 옅은 조명 아래서 읽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읽는 동안 나는 그 세계 안에 있고, 덮고 나서도 그 세계는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시원한 무엇인가가 생각날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