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속도 - 처음은 느리지만 점점 쉬워지는 공부의 구조
김선형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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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챗GPT나 클로드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요약을 만들어내고, 문제를 풀어주고, 심지어 에세이 초안까지 써주는 시대다. 이런 환경에서 "굳이 내가 공부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검색 한 번이면, 아니 질문 한 줄이면 원하는 답이 나오는데 왜 오랜 시간을 들여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나는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 질문은 "공부가 필요한가"가 아니라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공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다. 책이 말하는 공부의 본질, 시작의 마찰을 줄이고, 집중에 빠르게 들어가고, 반복으로 관성을 만들고, 기억으로 연결하고, 오답으로 방향을 수정하고, 리듬으로 지속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잘하는 일은 정보를 빠르게 재구성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강조하듯, 진짜 공부는 "책을 덮었을 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요약을 읽는 것과, 내가 직접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을 다시 꺼낼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기억의 누수'라는 개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다시 읽는 공부보다 덮고 떠올리는 공부가 오래간다는 것,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것. 이것은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 능력이다. 인공지능은 정보에 접근하는 속도를 극단적으로 높여주었지만, 그 정보가 내 머릿속에서 살아있는 지식으로 자리 잡는 과정, 즉 이해하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과정은 여전히 각자가 스스로 해내야 하는 몫이다. 만약 이 과정을 생략한 채 인공지능이 만든 결과물만 소비한다면, 나는 지식을 빌려 쓰는 사람이 될 뿐 지식을 가진 사람은 되지 못한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답변에는 때때로 오류가 섞여 있다. 이 오류를 알아채는 능력, 즉 '이 답이 맞는지 틀린지 판단하는 힘'은 결국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서 나온다. 책에서 다루는 오답의 원인을 개념 부족, 조건을 놓친 실수, 단순한 실수로 나누어 보는 방식은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정보를 검증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초 개념이 부족한 사람은 인공지능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길러온 사람은 그 답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더 나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결국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능력 자체가 기존에 쌓아온 공부의 결과물인 셈이다.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 인공지능은 만능 해결사가 아니라, 검증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위험한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책이 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 부분은 '시작 마찰'에 관한 이야기였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많은 정보를 제공해도, 책상에 앉는 것, 오늘 할 일을 한 줄로 정하는 것, 스마트폰을 멀리 두는 것, 집중이 깨졌을 때 돌아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다. 인공지능은 시작의 문턱을 낮춰주는 도구는 될 수 있어도, 그 문턱을 넘어서는 행동 자체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오히려 인공지능 시대에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생기는 새로운 종류의 마찰도 있다. 무엇을 먼저 봐야 할지, 어떤 정보를 믿어야 할지 판단하는 데 드는 에너지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한 줄 계획'과 '작게 시작하기'의 원리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 오히려 더 필요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앞으로의 공부를 이렇게 그려보게 되었다. 인공지능을 정보 검색과 요약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되, 그것을 이해하고 내 언어로 다시 설명할 수 있는 단계까지는 반드시 스스로 거치는 것. 오답을 마주했을 때 그 원인을 분석하는 습관을 인공지능이 준 정답에도 똑같이 적용하는 것. 그리고 시작의 마찰을 줄이는 나만의 신호와 루틴을 만들어, 도구가 아무리 발전해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공부 리듬을 지키는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공부의 많은 부분을 더 빠르고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대신해 줄 수 없는 마지막 한 걸음, 즉 이해하고 기억하고 판단하는 힘은 여전히 나의 몫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인공지능 시대의 공부란, 도구에게 맡길 일과 스스로 해내야 할 일을 정확히 구분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구분을 잘 해내는 사람만이, 인공지능을 진짜 도구로 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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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영어 필사 - 세네카, 흔들림 없는 삶의 태도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노윤기 옮김 / 베이직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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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밤하늘은 별보다 빛나는 것들이 많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빛, SNS 피드를 넘기는 손가락의 속도, 끝없이 업데이트되는 뉴스 기사들, LLM 생성형 인공지능이 세상을 재편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 다 나는 자꾸만 불안해진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첨 많아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따라다니던 어느 날, 나는 다시 필사책을 펼쳤다. 책장 어딘가에 빛바랜 2000년 전 로마 철학자의 목소리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져본다. 필사는 이상한 마법이다. 화면을 스크롤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룬 경험이다. 손가락이 펜을 쥐고, 팔이 종이 위를 천천히 움직이고, 눈과 손과 뇌가 동시에 작동한다. 영어 문장을 필사할 때 나는 단순히 단어를 옮겨 적는 게 아 니다. 각각의 문자가 내 손가락 끝으로 흘러 내려오고, 그 과정 속에서 의미가 천천히 스며든다. 책의 한 구절이 잊혀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진실하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문장을 필사할 때, 기계가 만든 글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2000년 전의 세네카가 나의 손가락 끝을 발려서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는 불안해하지 말라고, 타인의 시선이나 외부 상황이 아니라 내 내면에 집중하라고 속삭였다. 세상이 빠르고 냉정해질수록, 나는 더욱 느리고 따뜻한 것들을 필요로 한다.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매 순간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 질문에 세네카는 아미 답을 주고 있었다. 그가 살던 시대에도 정보는 넘쳤다. 권력의 게임이 있었고, 경쟁이 있었고, 불안정한 삶이 있었다. 네로 황제의 광기 속에서 그는 묻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까?" 대신 그는 물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나일 수 있을 까?" 필사를 하면서 서서히 생각해 본다. 기계는 규칙을 따르지만, 인간은 의미를 창조한다. 기계는 빠르지만, 인간은 깊다. 기계는 정보를 쏟아내지만, 인간은 지혜를 마음에 새긴다. 세네카의 글을 손으로 쓰며 나는 기계가 할 수 없는 가장 인간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현대인의 뇌는 늘 켜져 있다. 푸시 알림, 메션저 메시지, 업무 메일. 쉼 없는 자극 속에서 우리는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매일 밤 10분, 세네카의 글귀 앞에 앉는다. 필사책을 펼쳐놓고, 펜을 들고, QR 코드로 원어 민의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손을 움직인다. 그 10분의 고요함 속에서 내 마음은 마침내 휴식을 얻는다. 이것은 명상이자 기도이고, 자기 성찰이자 자기계발이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쓰기가 심장까지 도달할 때, 나는 느낀다. 이것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세네카는 말했다. "인간은 잘 죽는 법을 알지 못하는 한 잘 살 수 없다." 요즘 시대의 우리는 웰빙(well-being)만 생각한다.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하지만 세네카는 다르게 가르친다. 웰다잉(well-dying)을 준비 하라고. 죽음을 명상하고, 삶의 본질을 묻고, 내면의 기준을 세우라는 것이다. AI 시대에 불안해하던 나는 이제 깨닫는다. 기계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기계는 나를 될 수 없다. 기계는 텍스트를 생성하지만, 나는 의미를 체험한 다. 기계는 답을 주지만, 나는 질문을 던지며 내 자신을 알아간다. 매일 밤, 세네카의 글귀 위에 내 글씨를 포개며, 나는 천천히 내 삶을 되찾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그것만으로도 넉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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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적 인간 - 잘 알지 못해도 괜찮은 국내 미술관 여행
문하연 지음 / 동아엠앤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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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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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일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가 미술관을 찾는 진정한 이유를 밝혀준다. 우리는 그동안 미술관을 너무 어렵게 생각했다. 도스트의 설명을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 명화 앞에서 반드시 감동해야 한다는 의무감, 미술사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부담감.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미술관의 문턱 앞에 멈추게 했다. 그러나 저자는 조용하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말한다. 미술을 잘 알지 못해도 괜찮다.

부소갤러리의 에피소드는 특별하다. 저자와 80대의 아버지가 아마추어 화가의 그림 앞에 서 있다..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가 그림을 보며 말한다. "이 그림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감동이란 학문적 이해에서 오 는 게 아니라, 자신의 추억과 맞닿아 있을 때 생긴다는 사실. 아버지는 그 그림 속에서 자신의 가난했던 과거를 본 것이다. 까만 선으로만 표현된 단순한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인생 전체가 녹아든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 이컷 이 예술의 진정한 힘이다. 저자는 이 에피소드 이후로 전국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에서 원주 뮤지엄 산을 아버지와 함께 방문한 후 아버지가 소천하신다. 책은 결국 아버지 와 함께 미술관을 다녀오는 여정을 기록한 일종의 '예술을 통한 화해의 기록'이 되었다.

책은 미술 작품 자체보다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박수근이 노상에서 물건을 살 때 여러 상인들에게 나눠서 샀던 일화, 아중섭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화, 경재 청선과 이병연의 우정 같은 이야기들아 미술 감 상을 더 깊고 따뜻하게 만든다. 우리는 역사 속 인물들을 관념적으로만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들도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의 작품은 멀리 떨어진 거장의 작업이 아니라 옆 사람의 절절한 고백처럼 느껴진다. 경재 정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이병연이 그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면, 그의 그림은 단순한 경치 그림이 아니라 오래된 우정에 대한 헌사가 된다.

책은 마음이 지친 우리들을 위한 위로의 기록이다. 부소갤러리, 박수근미술관, 구하우스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 전국의 미술관을 다니며 저자는 각 장소에서 만난 그림, 사람, 그리고 자신의 내밀한 감정들을 나눈다. 미술 관은 더 이상 높은 벽이 아니다. 고급 문화를 소비하는 엘리트 공간도, 난해한 이론으로 무장해야 하는 장소도 아니다. 저자의 책을 읽고 미술관을 찾는 우리는 그저 자신의 일상과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면 된다. 그림이 어떤 기법으로 그려졌고, 어느 화파에 속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앞에서 우리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추억이 떠올랐는지, 마음의 어느 부분이 건드려졌는지가 중요하다.


책을 읽고 이 가을 미술관 투어를 계획해본다. 반드시 거장의 대작 앞에 서기 위함이 아니라, 내 마음이 고단할 때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기 위해서. 누군가의 작품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 혹시 '올바른 감상'이 아닐까 봐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미술관에서 나는 거창한 교양인이 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 순간을 온전히 즐거는 사람이 되면 된다. 저자가 건네는 말처럼, 우리의 부대낌은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실패는 단순한 실패 가 아니라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목표까지 가지 못했다면 목표를 수정하면 된다. 이 가을 미술관의 조용한 갤러리에서 우리는 그렇게 자신을 다시 만나고, 조금씩 위로받을 것이다. 감상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미술적 안간이 되어, 그림 앞에서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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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옛 절터 - 한국의 폐사지를 돌아보다
신정일 지음 / 디오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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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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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빛이 투명해진다. 이 계절에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도 함께 투명해진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어디로 가실 건가요?"라고 물어온다면, 이제 주저없이 대답할 것 같다."폐사지로 가려고 합니다"라고 신정일의 <사라진 옛 절터>를 읽고 난 후, 내 가을 여행의 목록에는 핸드폰 배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겼다. 그것은 질문이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땅 위에서 "여기 누가 서 있었을까?"라는 물음표. 오늘날 우리는 '남는 것'에만 집중한 다. SNS에 올릴 만한 사진, 손에 쥐었다고 느낄 수 있는 소유물, 기록될 만한 성과, 그러나 저자가 40여 년간 걸어온 길의 끝에 있는 것들은 모두 그 반대편에 있다. 탑 하나, 주춧돌 몇 개, 그리고 때론 지명 하나와 전설 한 줄.

처음 폐사지에 대해 생각했을 때, 나는 그곳을 단순한 '잔해'로만 이해했다. 역사가 남긴 쓸모없는 조각들이 있는 장소쯤으로, 하지만 신정일의 글을 읽으며 깨달았다. 폐사지는 사라진 것을 보는 곳이 아니라, 남은 것의 의미 를 묻는 곳이라는 것이다. 양양 진전사지에서는 "눈시울을 붉히며 지난 역사를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폐사지는 사라진 건물이 아니라, 그 자리에 무릎 꿇고 기도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공기처럼 흩어져 있는 장소랴는 것을. 절을 잃었을 때, 그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나라가 기울어지고 시대가 변할 때, 그 절터에 남은 돌탑은 누구를 위해 서 있었을까. 완주 봉림사지의 석등과 오층석탑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약탈된 사실을 마주할 때, 그것은 한 나라가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그 무력함 속에서도 돌탑을 남겨두려 했던 누군가의 저항이 얼마나 약했는지를 보여준다. 신정일이 기록하는 것은 역사의 상처이며, 동시에 그 상처를 견딘 사람들의 존재이다.

감동했던 대목을 자주 떠올린다. 화순 운주사지에서 한 어린아이가 투박한 석불을 보고 백성들 같다"고 말한 장면이다. "아빠, 이 부처가 백성들 같다.".. 운주사의 석탑과 석불은 하나같이 굶주리고 빼앗긴 민중의 얼굴을 닮 았다. 위엄을 드러내기보다 투박하고 소박하며, 삶의 고단함을 품은 사람들의 모습에 더 가깝다. 전문가가 보면 조각 양식'과 "시대적 특징'을 먼저 살핀다. 하지만 아이의 눈은 다르다. 아이는 그 돌에 깃든 사람을 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정일이 40여 년을 걸어가며 배운 것 아닐까. 많이 아는 사람보다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더 깊은 것을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폐사지는 우리에게 이 가르침을 준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땅 위에서, 우리는 상상 하고 묻고 기억해야 한다. 그라고 그 행위 자체가 역사를 살리는 것이다.

책을 덮고 올해 가을의 일정을 다시 짰다. 경주 감은사지에 가고 싶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던 문무왕의 마음을 생각하며 그 터를 밟고 싶다. 익산 미륵사지도 가야겠다. 백제가 꿈꿨다던 미륵의 세계가 정말로 그곳에 남 아 있는지, 돌 위에 그어진 선들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직접 보고 싶다. 혹은 아주 작은 절터도 좋을 것 같다. 유명하지 않아서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 이름도 희미한 절이 폐사된 자리에 서서, 나는 오래 바라볼 것이 다. 그 자리의 공기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발 아래 흙 속에 어떤 이야기들이 깊이 묻혀 있는지 궁금해 진다.

역사는 교과서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역사는 발 아래 있다. 폐사지를 방문할 때마다, 우리는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초대장을 받는 것이다. 절은 사라졌다. 스님도, 목탁소리도, 예불하는 사람들의 향도 사라졌 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그곳에 무릎 꿇고 가족의 평안을 빌었던 이름 없는 여인의 마음. 나라의 안녕을 기도했던 누군가의 간절함. 돌을 다듬으며 미래 세대를 위해 무언가를 남기려 했던 사람들의 손길이다. 이 가을, 폐사지로 가는 길 위에서 나는 그 마음들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천 년의 시간을 빛으로 환히 투명하게 변환시키는 가을햇빛 아래에서 감성에 젖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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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읽는 스페인
백인필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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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의 그림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예술을 통해 읽은 스페인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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