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불안을 잠재우는 노자의 말 - 2500년을 건너온 인생 수업
노무라 소이치다로 지음, 류휘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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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도 남의 삶을 훔쳐봤다. 스크롤을 내리는 손가락은 멈출 줄 몰랐고, 피드 속 누군가의 여행 사진, 누군가의 승진 소식, 누군가의 반짝이는 일상이 내 화면을 채웠다. 보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나는 기어이 보고야 만다. 그리고 어김없이, 조용 한 패배감 하나를 가슴 어딘가에 슬쩍 집어넣는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분명 어제와 똑같은 나인데, 타인의 삶을 한 번 들 여다봤을 뿐인데, 갑자기 내 삶이 초라해진다. 당근 하나로 이 기묘한 심리를 꿰뚫어 본 노자의 통찰이 새삼 날카롭게 다 가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당근은 길다"고 하면 그냥 넘어간다. 그런데 "당근은 감자보다 길다"고 하는 순간,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비교가 있어야 비로소 개념이 선명해진다. 길고 짧음도, 좋고 나쁨도, 성공과 실패도 모두 비교라는 렌즈를 끼는 순간 생겨나는 환상이다. 렌즈를 벗으면? 당근은 그냥 당근이다. 나는 그냥 나다. 하루에도 수십 번 그 렌즈를 자발적으로 끼운다. SNS를 열 때마다, 동창 모임에서 근황을 나눌 때마다, 부모님의 전화 한 통에 "그 집 아이는 벌써 결혼 했다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비교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디폴트값이 되어버렸다. 비교를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비교를 안 하려고 애써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열심히 사는 것을 미덕으로 배웠다. 쉬는 것은 나태한 일이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암묵적인 공식 속에 서 자랐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후가 찾아오면, 이상하게 불안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 유튜브를 보 면서도 '이게 맞나' 싶은 죄책감이 든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초조함이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쉬면서도 쉬지 못하는 상 태, 그것이 진짜 소진이었다. <화장실 사고>..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화장실은 내가 직접 가야 한다. 대신 가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내 몸을 쉬게 해줄 수 있는 사람도, 결국 나밖에 없다. 누군가가 쉬라고 허락해줄 때까지 기다릴 필 요 없다. 사회가 인정해주는 종류의 피로가 쌓여야만 쉬어도 된다는 법도 없다. 오랫동안 '쉬어도 된다는 허가'를 외부에서 찾아왔다. 아프거나, 너무 지치거나, 주변이 먼저 걱정해줄 때에야 비로소 쉬는 것이 정당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노자는 말한다. 그 허가는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에 억지로 나 를 끼워 맞추지 않는 것이다. '나팔바지 사고'가 일깨워주듯, 지금 유행하는 기준도 10년 후면 촌스러운 것이 될지 모른다. 그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넣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약하다는 것의 용기, 자기혐오는 조용히 찾아온다.

노자에게 물은 최고의 덕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막히면 돌아가며, 다투지 않고,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을 적시고 바위마저 뚫는다. 이 물의 이미지가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아도 된다. 돌아가도 된 다. 낮은 곳에 있어도 된다. 우리는 항상 위로 올라가려 한다. 더 높은 곳, 더 빠른 길, 더 인정받는 자리. 그런데 물은 늘 낮은 곳을 찾아 흐른다. 그리고 그 낮은 곳에서, 가장 넓고 깊은 바다가 된다. 요즘 조금씩 연습하고 있다. 스크롤을 멈추는 연습. 비교하는 습관을 알아채는 연습.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하루도, 그 자체로 충분했다고 말해주는 연습이다. 노자의 말처럼, 지금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바람개비는 목표가 없다. 그저 바람이 부는 대로 돌아갈 뿐 이다. 그런데 그 돌아가는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도덕경>... 2,500년 전의 언어가 지금도 살아있는 이유는, 그것이 시대의 유행을 쫓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자는 빠름을 설파하지 않았다. 더 많이 가지라고 하지 않았다. 이겨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말했다. 자연스럽게 있으라고. 흐름을 거스르지 말라고. 비워야 채워진다고. 이 처방이 수천 년을 건너 지금 나에게 닿는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위안이 된다. 세 상이 이렇게 복잡하게 변해도, 인간이 느끼는 불안의 뿌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뿌리에 닿는 지혜 역시 시대를 초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과와 속도의 언어에 둘러싸인 나날들 속에서, 노자의 말은 한 박자 느리고, 한 온도 낮다. 그래서 오히려 오래 담는다. 읽고 나서도 며칠째 마음 한켠에서 가만히 울리는 문장들처럼 가슴 속에 살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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