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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왜 이런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 인생의 굴레마다 찾아온 뜻밖의 해답
우인 지음 / 서울문화사 / 2026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가위 연휴의 마지막 밤, 거실 소파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늦잠도 자고, 오랜만에 가족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명절 음식 냄새가 옷에 배도록 부엌을 들락거렸습니다. 그런데 연휴 마지막 날 저녁이 되니 이상하게 마음이 벌써 회사 책상 앞에 가 있었습니다. 밀린 메일함이 떠오르고, 다음 주 회의 안건이 스쳐 가고, 아직 오지도 않은 월요일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 몸은 아직 명절 연휴 한가운데 있는데, 마음은 이미 일상으로 되돌아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책에서 읽은 도거掉擧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끌어다 걱정하는 들뜬 마음. 부처님은 이것을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라고 하셨다는데, 저는 그것이 수행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명절 마지막 밤 소파에 누운 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걱정한다고 월요일 업무가 미리 끝나는 것도 아닌데, 저는 그 시간 동안 애꿎은 연휴의 마지막 밤을 월요일에 빼앗기고 있었던 셈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쉬어야 다음 순간을 준비할 수 있다는 말이, 그날 밤 유난히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출근한 첫날, 예상대로 하루는 퍽퍽했습니다. 밀린 업무 사이로 동료와 사소한 의견 차이가 있었고, 저는 회의 내내 제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 대화를 곱씹으며 왜 그렇게까지 날을 세웠을까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책에서 말한 아집我執이라는 단어가 그제야 실감 나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직접 확인하지도 않은 것을 마치 유일한 진실처럼 붙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부처님이 두 청년에게 던진 질문처럼, 저 역시 제가 믿는 것을 제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그렇게 확신했던 것들 중 상당수는, 누군가에게 들었거나 그저 익숙해서 옳다고 믿어온 것들이었습니다. 확신이 강할수록 오히려 마음은 더 좁아진다는 것을, 그날 회의실 안에서 뒤늦게 배웠습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휴대폰을 열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명절 사진을 넘겨 보았습니다. 누구는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누구는 새 차를 뽑았고, 누구는 부모님께 큰 선물을 안겨드렸다고 했습니다. 화면을 넘길수록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가라앉았습니다. 나는 이번 연휴에 무엇을 했나 돌아보니 딱히 내세울 것 없이 평범했던 며칠이었는데, 그 평범함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저는 지금 물속에 비친 달을 건지려는 원숭이처럼 굴고 있었습니다. 남의 하이라이트 장면만 보면서 제 삶 전체를 그것과 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대가 올려둔 것은 그의 삶의 극히 일부일 뿐인데, 저는 그 일부와 제 하루 전체를 저울질하고 있었습니다.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 결핍은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그제야 몸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내 손에 쥔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남의 손을 바라보는 순간 부족함이 태어난다는 것을요.
퇴근 후에는 오랜만에 부서 회식 자리가 있었습니다. 다들 웃고 떠드는 사이, 한 동료가 은근히 선을 넘는 부탁을 계속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웃으며 다 받아주었을 텐데,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선을 그어보았습니다. 방편方便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나를 무너뜨리면서까지 남에게 맞추는 것이 자비가 아니라, 나와 상대 모두를 지키는 질서를 세우는 것이 진짜 지혜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울타리가 있어야 꽃이 핀다는 문장처럼, 저도 처음으로 관계에 작은 울타리 하나를 세워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선을 그은 뒤에 그 동료와의 사이가 더 멀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서로를 더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느낀 것은, 연휴가 끝났다고 해서 삶이 갑자기 더 힘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명절 동안 잠시 느슨해졌던 마음이 다시 예전의 습관대로 돌아가려 했을 뿐이었습니다. 미리 걱정하고, 내 생각만 옳다고 믿고, 남과 비교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나를 잃어버리는 그 오래된 패턴들이요.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그 패턴에 이름을 붙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도거, 아집, 원후취월, 방편이라는 낯선 한자어들이 실은 제가 매일 겪는 감정에 붙은 오래된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그 감정들이 더 이상 저만의 결함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수천 년 전 사람들도 똑같이 흔들렸고, 그 흔들림을 이렇게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언어로 남겨두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연휴 끝의 일상은 여전히 퍽퍽합니다. 밀린 일은 그대로고, 관계는 여전히 신경 쓰이고, 통장 잔고는 늘 아쉽습니다. 다만 이제는 흔들릴 때마다 그 흔들림에 이름을 붙여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도거인지, 아집인지, 아니면 그저 원숭이가 물속의 달을 움켜쥐려는 헛된 몸짓인지. 이름을 붙이는 순간, 마음은 저를 완전히 삼키지 못하고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여지를 내어줍니다. 어쩌면 잘 산다는 것은 다시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알아차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이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이번 한가위는 저에게 쉼과 동시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작은 지혜 하나를 쥐여준 시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