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라는 역설 - 역동과 통제, 첨단과 소외가 공존하는 복합 중국 읽기
박민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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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강한 나라가 왜 저토록 두려워하는가." 오늘날 중국을 관찰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품는 의문이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핵을 보유한 군사 강국, 인공지능과 전기차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 굴기(崛起)의 나라가 동시에 국민을 촘촘한 감시망으로 통제하고, 간첩을 신고하라는 캠페인을 SNS에 올리며, 모든 영역을 안보의 언어로 재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중국이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역설이다. 책을 읽으며 역설을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시진핑 시대 중국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경제의 시대'에서 '안보의 시대'로의 전환이다. 2014년 시진핑이 제시한 '총체적 국가 안보관'은 정치·군사·경제·문화·사이버·식량·생태까지 모든 것을 안보 문제로 규정한다. 2024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업무 보고에서 리창 총리가 '안보'를 29번, '위험'을 24번 언급한 것은 이 전환이 얼마나 깊이 체제 언어 속에 각인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집착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2010년 무렵으로 돌아가야 한다. 두 자릿수 성장이 끝나고 권력 귀족의 부패가 심화되는 가운데, 2008~2009년 티베트와 신장의 시위, 2011년 아랍의 봄과 카다피의 최후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깊은 충격을 남겼다. 서방이 비정부기구와 민간 기업을 통해 체제를 전복하려 한다는 '화평연변(和平演變)' 에 대한 공포가 엘리트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시진핑은 바로 이 위기감 위에서 집권했고, 공산당의 영구 집권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선제적 통제 체제를 구축해왔다. 그 결과가 중국을 거대한 군산 복합체로 변형시키는 작업이다. 2022년 제20차 당대회에서 중앙정치국 위원 24명 중 13명이 군수 산업 관련 인물로 채워졌다. 국가 전체 자원을 동원해 핵심 과학기술 혁신을 이루는 '신형거국체제(新型擧國體制)'가 가동되고, 군과 민간의 기술을 통합하는 '군민 융합(軍民融合)' 전략이 속도를 낸다.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구조 속에서 민간 경제의 활력은 사그라들고, 개인의 자유는 안보라는 이름 아래 유예된다. 역설은 여기서 시작된다. 공산당을 지키기 위해 만든 총동원 체제가 인민의 삶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2026년 1월, 중국군 2인자였던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심각한 기율 및 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는 발표가 나왔다. 시진핑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가장 든든한 기둥이 제거된 이 사건은, 독재 권력이 필연적으로 낳는 가장 비극적인 역설을 보여준다. 절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가장 충성스러운 자를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시진핑의 숙청은 이미 10년을 훌쩍 넘긴 '끝없는 드라마'다. 로켓군 수뇌부에서 시작된 부패 조사는 리상푸 국방부장을 거쳐 장유샤로 이어졌고, 2022년 당대회에서 선출된 205명의 중앙위원 중 군인 44명 가운데 29명이 2026년 초까지 낙마했다. 중앙군사위 7명의 구성원 중 시진핑과 서열 7위를 제외한 5명이 모두 제거됐다. 이 숫자는 단순한 반부패가 아닌 정치적 숙청의 규모를 말해준다. 스탠퍼드대 우커광 선임연구원이 지적하는 '독재자의 딜레마'가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최고지도자는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끝없이 숙청을 단행하지만, 숙청이 거듭될수록 진실을 직언하는 이들이 사라지고,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지며, 통치 위기가 점차 심화된다. 지금 중국의 관료 시스템은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공포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시진핑 옆에 앉은 관리들이 "바짝 긴장한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고 묘사한 장면은 이 공포 문화의 단면이다. 55년 전 린뱌오 사건이 마오쩌둥의 절대 권력을 확인했지만 동시에 체제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확산되는 계기가 됐던 것처럼, 장유샤 사건 역시 역사에 그 이중적 의미를 새길 것이다.

2025년 초 딥시크(DeepSeek)가 일으킨 충격은 중국 인공지능 기술의 약진이 단순한 과장이 아님을 세계에 증명했다. 중국의 AI 연구자 수는 41만 명으로 인도와 미국의 합산을 넘어서고, 전기차·배터리·태양광·로봇 분야에서 중국은 이미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24년 기준 가동 중인 산업용 로봇 200만 대, 인간형 로봇의 세계 출하량 중 90%를 차지하는 나라. 이것이 기술 굴기 중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 빛나는 성취의 이면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첨단 기술과 국유 기업이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 질주하는 동안, 민간 경제는 침체에 빠져 있다. 부동산 급락, 청년 실업률(공식 통계 20%, 현장의 체감 50~60%), 소비 디플레이션, 농민공과 중소기업의 고사(枯死). 상하이의 한 교수는 "최고지도자에게 이런 상황이 제대로 보고되지도 않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칼부림 사건을 벌인 직업학교 졸업생의 유서 속 절규 즉 "나는 죽어도 다시는 착취당하고 싶지 않다" 는 화려한 기술 통계 뒤에 가려진 중국 서민의 목소리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잉 생산의 덫이다. 중국처럼 거대한 경제가 전통 산업부터 최첨단 산업까지 모두 장악하는 '전 방위 선진국'을 목표로 삼을 때, 생산 능력은 필연적으로 내수 수요를 초과한다. 중국의 과잉 생산이 세계 시장으로 쏟아지면서 한국·독일·일본 등 제조업 국가들이 압박을 받고, 보호무역과 시장 쟁탈전이 격화되고 있다. 기술 대약진은 진정한 강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계 경제 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또 다른 역설의 씨앗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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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중국이라는 역설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는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중국이라는 역설은 강대국 경쟁의 시대에 힘과 공포, 기술과 인간, 안보와 자유 사이의 선택이 얼마나 근본적인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 거울 앞에서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의 선택을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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