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을 위한 부동산 절세의 모든 것 - 주택 생애주기별 세금 완전정복
김성욱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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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세금을 남의 이야기로 여겼다. 월급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소득세, 물건을 살 때 영수증에 찍히는 부가 가치세. 세금은 언제나 내가 의식하기 전에 이미 처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내 집 마련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 했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부동산 세금은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이다. 집 한 채를 사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취득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임대소득세, 건강보험료, 양도소득세, 증여세, 상속세. 하나의 주택이 이렇게 많은 세금과 연결되 어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충격이었다. 집을 사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세금 여정의 출발점이라는 것, 그리고 그 여정은 집을 처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끝나지 않는다는 것. 부동산 세금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이것은 단순한 재테크 지식이 아니라 현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성인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생존 지식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집주인을 위한 부동산 절세의 모든 것>을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같은 집이라도 언제 사고, 언제 팔고, 얼마나 보유했느냐에 따라 세금의 크기가 극적으로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1세대 1주택자라면 양도소득세가 비과세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요건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 2년 이상 보유해야 하고, 조정대상지역에서는 거주 요건까지 충족해야 한다. 이사나 상속 등의 이유로 일시적 2주택이 된 경우에도 비과세 특례가 있지만, 신규 주택 취득일로부터 3년 이내에 종전 주택을 팔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 기한을 단 하루라도 놓치면, 수천만 원의 양도소득세가 고스란히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부동산 세금은 타이밍의 예술이다. 내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세법이 정해놓은 기준점들을 미리 숙지하고 있어야만 불필요한 세금 폭탄을 피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공부한 사람은 합법적으로 세금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곳곳에 존재한다. 비과세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보유 기간을 조정하거나, 증여와 상속의 타이밍을 계획적으로 설 계하거나, 다주택자라면 어떤 집을 먼저 팔아야 유리한지를 전략적으로 판단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절세의 핵심이다.

2026년 현재,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종료되고 보유세 강화 논의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이 타이밍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정책 발표 이후에 부랴부랴 대응하는 것은 이미 늦다. 세제 변화의 흐름을 미리 읽고, 내 자산 구조 에 맞는 시나리오를 사전에 설계해두는 사람만이 세금으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절세는 요행이나 편법이 아니 다. 철저한 준비와 시점 관리, 그것이 전부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살 때 취득세를 걱정하고, 팔 때 양도소득세를 걱정한다. 하지만 보유하는 동안의 세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감각한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재산세는 매년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부과된다.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시세가 오르면 자연스럽게 재산세 부담도 늘어난다. 2017년 이후 수도권 아파트 공시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재산세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보유 비용이 되었다. 여기에 종합부동산세까지 더해지면, 다주택자의 경우 연 간 보유세 부담이 수백만 원에서 심하면 수억 원에 달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보유세 4총사라는 개념이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만이 아니라, 주택 임대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와 건강보험료까지 주택 보유와 직결된다. 특히 건강보험료는 많은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는 직장가입자로서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되지만, 퇴직 이후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보유 부동산의 가액이 보험료 산정에 직접 반영되어 예상 밖의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보유세의 무게는 단순히 세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집을 보유하는 전략 자체를 바꾸는 힘이다. 시세 차익만을 기대하며 여러 채를 쌓아두는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주택을 보유하고, 어떤 주택을 정리할 것인가. 그 판단에는 취득 원가와 예상 시세 차익만이 아니라, 보유 기간 동안 누적되는 세금 부담까지 포함한 총비용 계산이 필요하다. 부동산 투자의 수익률은 매도 시점의 가격 차이가 아니라, 세후 실질 수익으로 평가해 야 한다. 이것이 내가 부동산 세금 공부를 통해 얻은 가장 실용적인 통찰이다.

부동산 세법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장 상황이 급변할 때마다 수시로 개정된다. 규제 지역이 지정되고 해제되고, 중과세율이 도입되었다가 유예되고,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 추진되었다가 사실상 폐지되기도 한다. 이 변화의 속도를 일반인이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세금의 기본 원리, 즉 취득• 보유-처분의 생애주기 구조 속에서 각 단계마다 어떤 세금이 발생하는지를 이해하면, 세법이 아무리 바뀌어도 그 변화의 방향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세대 1주택 비과세의 틀은 계속 유지되어 왔다. 다만 조건이 강화되거나 완화되는 식으로 조정될 뿐이다. 종합부동산세의 공제 금액이나 세율은 바뀌지만, 인별 합산 과세라는 원칙은 지속된다. 부부 공동명의와 단 독명의 중 어느 쪽이 유리한지를 판단하는 논리 구조도 바뀌지 않는다. 결국 세법 공부는 조문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조문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아가, 세금은 단지 피해야 할 비용이 아니라 자산 관리의 나침반이 될 수 있 다. 어떤 지역의 주택이 세금 면에서 유리한지, 어떤 취득 방식이 장기적으로 절세에 도움이 되는지, 생애최초 주택 구입 감면이나 출산•양육 관련 취득세 감면 같은 혜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이런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 람은 같은 자산을 보유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더 많은 부를 손에 쥘 수 있다.

집은 가족의 안정과 미래 자산이 동시에 담겨 있는 공간이다. 그 집을 둘러싼 세금의 세계는 복잡하고 때로는 가혹하게 느 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복잡함을 이해하고 준비한 사람에게는, 세금은 위협이 아니라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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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만 바꿨을 뿐인데 (10만 부 기념 개정판)
김민성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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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오랫동안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어휘가 풍부하면 말을 잘하는 것이고, 논리가 명확하면 설득을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살면서 이상한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분명히 옳은 말을 했는데 관계가 틀어지는 일, 아무 근거도 없이 부드럽게 건넨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여는 일. 내용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그 차이를 만들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김민성의 <말투만 바꿨을 뿐인데>는 그 어렴풋한 감각에 이름을 붙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말의 내용보다 말투가 먼저라고 단언한다.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가 관계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다소 과장된 주장처럼 들렸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서 그 주장이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일상의 구체적인 장면들을 통해 꼼꼼히 검증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에서 먼저 눈에 띈 것은 말투를 '배려'의 언어로 정의하는 시각이었다. 저자는 직선으로 내리꽂듯 말하지 말고 곡선으로 부드럽게 말하라고 조언한다. 직접 조언하는 대신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이 스스로 생각하게 두는 것이 진짜 배려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종종 배려를 선의(善意)와 혼동한다. 좋은 의도로 한 말이 왜 상처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배려는 의도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에서 측정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면, 그것은 배려가 아니다. 이 관점에서 책이 제시하는 여러 조언들이 새롭게 읽힌다. '그런데' 대신 '그리고'를 쓰라는 제안은 단순한 단어 교체가 아니다. '그런데'가 앞의 말을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그리고'는 앞의 말을 이어받아 확장하는 흐름을 만든다. 같은 내용이라도 흐름이 달라지면 상대가 느끼는 감정이 달라진다. '때문에'와 '덕분에'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때문에'는 원인을 지목하지만, 동시에 책임을 추궁하는 뉘앙스를 품는다. '덕분에'는 같은 원인을 지목하면서도 그것을 긍정의 언어로 감싼다. 이 작은 차이가 상대방이 방어적이 될 것인지 열린 태도를 유지할 것인지를 가른다.

책에서 유독 오래 생각하게 만든 대목이 있다. 자랑하지 말고 과정을 공유하라는 조언이었다. 결과를 드러내면 질투를 사고, 과정을 나누면 응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일종의 처세술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조언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결과를 자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구에서 말하는 것이고, 과정을 공유하는 사람은 상대방과 연결되려는 마음에서 말하는 것이다. 말의 출발점이 자기 자신인지 상대방인지에 따라 말투 전체가 달라진다. 저자가 말하는 '배려'란 결국 말의 출발점을 나에서 상대방으로 옮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책의 절반 이상이 설득과 대화의 기술을 다루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자존감과 말투의 관계였다. 저자는 타인에게 건네는 말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자신을 만든다고 말한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아직 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는 긴장을 내포하지만, '이미 했다'는 말은 목표를 완수한 자신의 모습을 현재에 불러온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다소 자기암시적인 주장처럼 들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가 자신에게 건네는 말의 습관이 얼마나 무심하고 잔인한지 떠오른다. 스스로에게 '못할 것 같다', '나는 안 된다'고 중얼거리는 습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자신을 작게 만들어왔는지를.

책이 자기계발서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 심리에 대한 꽤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사람은 옳은 말보다 친절한 말에 움직인다는 관찰, 논리보다 감정이 먼저라는 사실,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 따로 있다는 인식. 이것들은 오랫동안 수사학과 심리학이 다뤄온 문제들인데, 저자는 그것을 이론이 아니라 일상어로 풀어낸다. '손실 회피 성향'이라는 심리학 용어를 설명하는 대신, '지금 안 사면 더 비싸게 사야 한다'는 말이 왜 효과적인지를 직접 보여주는 방식이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감각이 함께했다. 그것은 좋은 불편함이었다. 내가 얼마나 자주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말해왔는지, 얼마나 많은 말들이 배려가 아니라 습관에서 나왔는지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평가하지 말고 공감하라'는 조언 앞에서 오래 멈췄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을 때 나는 얼마나 빨리 해결책을 꺼내들었는가. 상대방이 원한 것은 답이 아니라 함께 고민해주는 태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투는 결국 관계를 대하는 태도의 표현이다. 어떤 말투를 쓰느냐는 상대방을 어떻게 보느냐에서 비롯된다. 상대를 설득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사람과, 이해하고 싶은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말을 꺼낸다. 그러므로 말투를 바꾸려는 시도는 단순히 언어 습관을 교정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을 대하는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말의 진정한 힘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한동안 자신의 말버릇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말투 하나를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사람의 하루를, 한 번의 관계를 바꾸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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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으로 인생의 중심을 잡는 법
전수진 지음 / 북라이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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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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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화려한 조명 아래, 중력을 거스르듯 가볍게 허공을 가르는 무용수들의 몸짓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우아한 미학의 결정체처럼 보입니다. 관객석에 앉아 그 아름다움을 관조할 때, 우리는 대개 무대와 객석 사이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아늑한 환상에 젖어들곤 합니다. 그러나 무대 뒤편, 혹은 그들이 디디고 선 바닥으로 아주 가까이 다가간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우연한 기회에 발레를 대중에게 쉽게 설명해 주는 클래스에 참석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곳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무용수들의 진실은 잔인할 만큼 치열했습니다. 관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뚝뚝 떨어지는 굵은 땀방울, 가슴이 터질 듯 몰아쉬는 거친 숨소리, 그리고 근육의 떨림까지. 그 우아한 한 번의 도약을 위해 몸 안의 모든 에너지를 깡그리 연소시키는 모습을 보며, 저는 춤을 춘다는 행위가 얼마나 경외스러운 체력적 소모와 인내를 요구하는지 비로소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순간’ 혹은 ‘성공’이라는 무대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타인의 삶은 멀리서 보기에 그저 평온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매일의 일상을 버텨내기 위해 흘리는 보이지 않는 눈물과 땀이 존재합니다. 여기,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전직 기자 출신의 저자가 어깨 통증을 고치려 우연히 발레를 시작했다가, 그 엄격하고도 아름다운 세계에 매료되어 써 내려간 고백록, <발끝으로 인생의 중심을 잡는 법>입니다. 책은 흔들리는 삶의 한복판에서 몸을 통해 마음을 구원받고, 마침내 나만의 중심을 찾아가는 우리 모두의 서사입니다.


발레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무용수들이 허공으로 높이 뛰어오르는 ‘점프’ 동작을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하지만 발레에서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바닥을 제대로 누르는 법’입니다. 저자 역시 처음에는 공중으로 더 높이, 더 멋지게 날아오르고 싶다는 조급한 욕심에 사로잡혔다고 고백합니다. 시선은 이미 허공을 향해 있고, 마음은 저 멀리 앞서 나가 있었기에 발끝은 늘 불안하게 흔들렸습니다. 그때 등을 가리키던 선생님의 한마디는 비단 저자뿐만 아니라,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우적대던 수많은 이들의 정신을 번쩍 깨우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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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그냥 누르는 것만으론 안 돼요. 될 거라는 믿음으로 눌러야 해요.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못 믿는데 누가 나를 믿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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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이야기가 발레라는 춤의 영역을 넘어 우리네 인생을 관통하는 거대한 진리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바닥을 견고하게 누르는 힘이 없다면, 그 어떤 화려한 도약도 공중분해 되고 말 뿐입니다. 바닥을 아는 자만이 성공이라는 어질어질한 높이를 오롯이 감당해 낼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차갑고 딱딱한 바닥으로 우리를 내동댕이칩니다. 사업의 실패, 진로에 대한 불신, 건강의 적신호, 혹은 소중한 존재를 떠나보낸 상실감 등 인생의 바닥을 치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저자 역시 삶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욕심을 부리다 톱니바퀴가 어긋나 바닥을 쳤고, 인생은 야속하게도 그 바닥 아래에 더 깊은 지하가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 절망의 순간에 만난 것이 발레였습니다. 괴롭고 무거운 마음을 안고 들어선 연습실에서, 저자는 내전근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견디며 바닥을 디뎠습니다. "나를 잊어버리라"는 선생님의 말처럼, 하기 싫어하고 칭얼거리는 유약한 자아를 버리고 오직 발바닥에 닿는 감각에만 집중했을 때, 뼈아픈 불신으로 가득했던 마음 위로 묘한 자신감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탓하다가도, 어느새 꼿꼿이 세워진 몸이 무너져 내리던 마음을 구원해 주는 기적을 경험한 것입니다. 바닥은 도망쳐야 할 절망의 공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얼마나 단단하게 대지를 딛고 서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가장 정직한 출발점입니다. 조금은 괴로워해도 괜찮습니다. 그 바닥을 온전히 느끼고 내 편으로 삼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다시 날아오를 에너지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발레 연습실의 사방은 커다란 거울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얼핏 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발린이’들에게 이 거울은 세상에서 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타이즈와 레오타드를 입고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은 이상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구부정한 등, 통제되지 않는 팔다리, 웅크려든 어깨 등 감추고 싶었던 나의 모든 단점과 불완전함이 거울을 통해 날것 그대로 폭로됩니다. 그래서 발레를 한다는 것은 ‘거울 속 엉망진창인 나 자신을 온전히 견뎌내는 과정’입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다른 사람의 동작을 흉내 내는 동안에는 결코 중심을 잡을 수 없습니다. 남들의 발만 쳐다보며 허둥대던 시선을 거두어, 비로소 정면의 거울을 똑바로 바라보고 나의 일그러진 자세를 직시할 때, 진짜 변화는 시작됩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 채 다 안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따라서 나의 부족함을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앎의 시작이며, 창피함을 무릅쓰고 거울 앞에 서는 것이 성장의 첫걸음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저지릅니다. 어떤 이들은 그 실수가 두려워 아예 무대 위로 올라가기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외면한 채 숨어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책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실패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실패’라고 말입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실패하고, 일단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한 걸음을 내딛어야만 우리는 비로소 낙담의 골짜기를 지나 ‘성장’이라는 좁은 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발레의 심화 과정에 도달한 무용수들이 결국 다시 기초 클래스로 돌아와 끊임없이 기본 동작을 연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초 레벨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삶이 흔들리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이고 꼿꼿한 삶의 자세를 다시 점검하는 일입니다. 틀린 것을 기꺼이 인정하고 잘 고쳐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이라는 긴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재능이 됩니다.


발레의 핵심 역량 중 하나는 코어를 중심으로 몸을 한없이 위로 끌어올리는 ‘풀업(Pull-up)’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중력은 끊임없이 몸을 아래로 끌어내리려 하지만, 무용수는 온 힘을 다해 척추를 위로 곧게 세워야 합니다.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바닥을 가장 강하게 누르는 동시에, 몸은 하늘을 향해 한없이 올라가야 한다니 말입니다. 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비로소 ‘중심’이 탄생합니다. 하지만 중심이란 참으로 얄궂은 존재입니다.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겨우 찾아 세우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데, 단 한순간의 방심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흔드는 무수한 요인들이 존재합니다. 세상에 대한 지나친 기대, 타인과의 치열한 경쟁,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원망 같은 감정들입니다. 특히 미움이라는 감정은 마음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데 가장 뛰어난 선수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쥐고 있어야 할 삶의 제어권을 남에게 쥐여주게 됩니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사정없이 흔들거리는 가련한 내 몸과 갈기갈기 해진 마음뿐입니다. 그럴 때 발레는 온전히 나만의 중심을 잡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음악이 흐르고 바(Bar)를 잡는 순간, 혹은 센터 무대에 서는 순간, 밖에서 일어났던 모든 소란과 고통은 소거됩니다. 오직 나의 호흡, 나의 근육, 나의 시선 처리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소설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마치 ‘가슴에 손을 넣어 마음을 꺼낸 뒤, 따뜻한 물로 깨끗하게 씻어주는 시간’과도 같습니다. 타인을 의식하는 마음도,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도 모두 내려놓은 채 오직 나의 내면에 집중하는 에고로부터의 해방. 그 자취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됩니다. 비록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내 마음과 몸이 스스로 찾아낸 그 작은 중심 덕분에 우리는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 단단함을 배우게 됩니다.


취미라는 것, 사실 없어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충분히 바쁘고 고단한 세상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몸을 혹사시키는 일은 미련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의 어둠이 너무 짙어 내 앞길을 가릴 때, 우리에게는 그 어둠을 몰아낼 한 줄기 빛,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나만의 작은 도피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책을 읽고 나면, 가만히 스스로의 발끝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흔들렸는지, 두려운 마음에 마주해야 할 거울을 외면하고 도망치려 했는지를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의 무게로 인해 무릎이 꺾이고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는 나에게 발레의 가장 기본 동작인 ‘쁠리에(Plie, 무릎을 구부리는 동작)’를 권하고 싶습니다. 무릎을 굽히는 것은 주저앉기 위함이 아닙니다. 바닥을 더 단단하게 딛고,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에너지를 축축히 모으는 아름다운 준비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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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워 - 기후 위기 시대, 자원과 에너지를 향한 거대한 생존 전쟁
아서 스넬 지음, 노승영 옮김 / 리더스북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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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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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전쟁은 향료와 은을 둘러싼 것이었고, 20세기의 패권 경쟁은 영토 확장과 석유 자원을 축으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21세기 세계 권력의 문법은 무엇인가? 전직 영국 외교관 아서 스넬(Arthur Snell)은 그 답을 기후변화에서 찾는다. 그의 신작 <뉴 워>는 기후위기가 환경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근본적인 지정학적 변수로 작동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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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지정학은 지리라는 물리적 조건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주장해 왔다. 산맥, 강, 해협, 평원 등 이런 요소들이 국가의 방어력과 팽창 가능성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스넬의 통찰은 바로 이 지리가 지금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알프스 등반 중 낙석을 간신히 피했던 개인적 경험이 그에게 이 사실을 직관적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녹아내리는 빙하가 암벽을 불안정하게 만들듯, 기후변화는 수천 년 동안 고정된 것처럼 보였던 세계 권력의 지형도를 뒤흔들고 있다. 그가 '집 안의 습기'에 비유한 것처럼, 기후변화의 지정학적 효과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구조 전체를 서서히 바꾸어 놓는다. 사헬 지대의 가뭄이 쿠데타를 낳고, 과테말라의 작황 실패가 미국 국경의 정치적 위기로 이어지고, 북극 해빙(海氷)이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 계산을 바꾼다. 이 모든 연결고리의 출발점에 기후변화가 있다. 스넬은 이를 '흙, 공기, 불, 물'이라는 고대 4원소의 틀로 체계화하면서, 기후지정학이라는 새로운 분석 언어를 제시한다.


저자가 던지는 충격적인 주장 중 하나는, 기후변화가 오히려 일부 국가에는 기회가 된다는 역설이다. 지구 온난화로 시베리아의 동토가 녹으면 러시아는 역사상 처음으로 광대한 농경지를 손에 넣는다. 캐나다 역시 기온 상승으로 북부 지역이 거주 가능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인구와 자원 양쪽에서 이득을 볼 가능성이 크다. 스넬은 이 아이러니를 냉정하게 직시한다. 트럼프가 그린란드 편입을 거론하는 것도, 북극 항로를 둘러싼 강대국의 각축도 모두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반면 전통적 강대국들은 기후 취약성이라는 새로운 아킬레스건을 갖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중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석유 수요의 장기적 감소로 경제 모델이 흔들리는 동시에, 극단적인 열파(熱波)가 국토의 거주 가능성 자체를 위협한다. 관광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여름 기온 앞에서 그 전략은 근본적 한계를 갖는다. 예멘, 이라크, 시리아 등 인근 취약 국가들의 불안정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이는 유럽으로 향하는 이주 압력을 높여 우파 포퓰리즘의 연료가 된다. 중국의 상황은 복합적이다. 한편으로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압도적 우위를 선점해 에너지 전환 시대의 최대 수혜자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베이징 인근 지역은 이른바 '습구온도(wet-bulb temperature)'가 인간의 생리적 한계에 근접할 것으로 예측되며, 농업 생산성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에 따른 인구 이동 압력이 역사적으로 중국 영토였던 러시아 극동 지역을 향할 가능성은 향후 양국 관계의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로스앤젤레스의 산불, 플로리다의 허리케인, 텍사스의 폭염, 기후 난민이 반드시 가난한 나라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전조들이다.


기후지정학의 또 다른 핵심 축은 에너지 전환이 촉발하는 자원 전쟁이다. 화석연료 패권이 저물면서, 재생에너지 기술에 필수적인 리튬, 코발트, 희토류 등 '임계 광물(critical minerals)'이 21세기의 새로운 석유가 되고 있다. 이 광물들의 매장지—아프리카 사헬, 남미 리튬 삼각지대, 중앙아시아 스텝—가 강대국 각축의 새로운 무대로 부상한다. 그린란드에 대한 트럼프의 집착도, 사헬에서 러시아 용병 바그너 그룹이 프랑스 세력을 밀어내는 것도 모두 이 자원 지정학의 표현이다. 스넬이 '새로운 제국주의'라 부르는 이 구도는 과거의 식민지 시대와 닮으면서도 다르다. 과거의 제국은 군사력으로 영토를 점령했지만, 오늘날의 강대국들은 경제적 종속 관계, 안보 협력 협정, 광물 채굴권을 통해 영향력을 투사한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그 전형이라면, 미국과 유럽도 같은 게임을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다. 차이는 중국이 재생에너지 공급망에서 이미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양광 패널, 전기차 배터리, 풍력 터빈의 핵심 부품 생산에서 중국의 우위는 현재 미국이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이다. 한편 저자는 이 경쟁이 단순한 미중 이분법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러시아는 기후 혜택국이면서도 중국의 경제적 속국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오만 같은 중간국들은 자원 보유국이자 에너지 전환 시대의 새로운 행위자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브라질은 광활한 농경지와 바이오매스 자원으로, 모로코는 사하라 사막의 태양광 잠재력으로 새로운 지역 강국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다.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가 기후변화라는 지각변동 앞에 다극화의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스넬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들의 대응 능력이다. 푸틴이나 시진핑 같은 권위주의 지도자들은 장기적 전략을 집행하는 데 선거 주기라는 제약이 없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은 식료품 가격 상승 같은 단기적 충격에도 선거에서 처벌을 받는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장기적이고 고통스러운 전환을 민주적 공론장에서 동의를 구하며 추진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이것이 포퓰리즘 우파가 기후 문제를 정치화하는 방식과 맞물린다. 사헬의 가뭄이 이주민을 만들고, 이주민이 유럽 국경에 도달하고, 그것이 우파 포퓰리스트의 지지율을 높이는 연쇄 반응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스넬은 이 구조적 취약성을 경고하면서도, 민주주의가 권위주의보다 근본적으로 열등하다는 결론은 거부한다.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극적인 위기에 대응해 온 경험이 있다. 문제는 현재의 24시간 정보 순환 속 민주주의가 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사례는 이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스넬은 영국이 기후변화의 지정학적 함의를 아직 충분히 내면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30년간 수자원 저수지를 새로 짓지 않은 것, 외교부의 인력과 예산을 지속적으로 삭감해 온 것, 브렉시트 이후 글로벌 존재감이 약화된 것, 이 모두가 기후지정학 시대에 국가 역량이 오히려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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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순수한 비관론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스넬은 외교관 특유의 실용주의로, 위기가 협력을 강제한다는 역설적 희망을 이야기한다. 국경을 초월하는 강을 공유하는 국가들은 물 분쟁을 피하기 위해 협력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북아프리카의 태양광 에너지를 유럽으로 연결하는 송전망 구상은 갈등보다 상호 의존의 논리를 강화한다. 재생에너지의 급격한 비용 하락은 에너지 전환을 경제적으로 불가피한 방향으로 만들고 있으며, 이 흐름은 강대국의 정치적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된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국가는 이제 거의 없다. 대응의 속도와 방식이 다를 뿐, 모든 국가가 기후 문제를 국가 전략의 핵심 변수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스넬이 자신의 뉴스레터를 '절망은 아니다(Not All Doom)'라고 이름 붙인 것은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위기의 구조를 정확히 인식한 위에서 가능한 것들을 찾는 태도의 표현이다.


저자는 기후변화를 환경운동의 언어가 아닌 권력정치의 언어로 이야기 한다. 탈서구화, 에너지 전환, 자원 전쟁이라는 세 가지 흐름이 기후변화라는 공통 원인에서 발원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혼란의 심층 구조를 드러낸다. 21세기의 전쟁은 이제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수행된다. 반드시 군사적 충돌의 형태를 띠지 않더라도, 광물 채굴권 경쟁, 이주민 흐름의 정치화, 재생에너지 공급망 장악, 북극 항로 선점, 이 모든 것이 기후지정학의 전장이다. 이 전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가와 지도자는 21세기의 패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이해의 출발점은, 지리가 바뀌고 있다는 단순하지만 혁명적인 인식이다. 지구가 달아오를수록, 권력의 지형도도 함께 녹아내리고 새로운 형태로 굳어진다.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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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뇌 - 노화에 맞서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헤더 샌디슨 지음, 진영인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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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은 현대 의학이 직면한 가장 무거운 과제 중 하나다.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이 병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미국에서만 650만 명 이상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수십 년에 걸친 연구와 막대한 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치료법은 여전히 요원하다. 신경과학자이자 치매 전문의인 헤더 샌디슨(Heather Sandison) 박사가 저술한 <회복하는 뇌>는 이 난제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저자는 알츠하이머를 불가역적인 선고로 받아들이는 대신, 생활습관의 총체적 변화를 통해 인지 기능을 회복하고 심지어 질병의 진행을 되돌릴 수 있다는 대담한 주장을 펼친다.

저자가 가장 먼저 도전하는 것은 알츠하이머 연구를 수십 년간 지배해 온 '아밀로이드 가설(amyloid hypothesis)'이다. 이 가설은 뇌 속에 축적된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와 타우 단백질 엉킴이 알츠하이머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제거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라는 방향을 제시해 왔다. 실제로 지금까지 수많은 제약회사들이 이 가설에 기반한 신약 개발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임상 결과는 처참한 실패의 연속이었다. 샌디슨 박사는 이 실패의 원인이 가설 자체의 근본적 결함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 결정적 증거로, 인지 기능이 정상인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아밀로이드 플라크와 타우 단백질 엉킴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든다. 심지어 이러한 물질이 전혀 없는 사람은 전체의 2퍼센트에 불과하다는 데이터는 이 두 요소가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 혹은 '동반 현상'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반증은 알츠하이머가 단일 원인에 의한 단순한 질환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하는 다인성 질환임을 암시한다. 이 시각은 신경과학계에서 점진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다중 원인론(multifactorial etiology)'과 맥을 같이한다. 샌디슨 박사는 알츠하이머의 위험 요인으로 환경 독소, 영양 불균형, 만성 스트레스, 수면 장애, 감염, 호르몬 불균형 등을 지목하며,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신경 퇴행을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접근은 단 하나의 마법 같은 약을 기다리는 대신 삶 전체를 치료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책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절망 대신 행동을 촉구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전 세계 치매 사례의 약 40퍼센트가 조절 가능한 위험 요인들로 설명된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청력 손실, 고혈압, 흡연, 사회적 고립, 신체 비활동, 과도한 음주, 비만, 우울증, 당뇨, 대기 오염, 두부 외상, 교육 수준 저하 등 12가지 수정 가능 위험 요인을 적극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치매 발병을 예방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샌디슨 박사가 제시하는 뇌 건강의 핵심 도구는 여덟 가지다: 영양소가 풍부한 고지방·저탄수화물 식단, 규칙적인 운동, 뇌를 자극하는 활동, 지지적 일상 루틴, 독소가 없는 청결한 환경, 회복적 수면, 사회적 연결, 그리고 자기 돌봄. 이 중 식단과 운동에 관한 논의는 특히 인상적이다. 케톤식(ketogenic diet)은 뇌의 주요 에너지원을 포도당에서 케톤으로 전환함으로써 인지 기능을 개선한다고 설명되는데, 저자는 6주간의 케톤식 후 손자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던 환자가 기억력을 회복한 사례를 제시하며 이를 뒷받침한다. 운동은 뇌로 가는 혈류를 증가시키고, 기억과 학습의 중추인 해마(hippocampus)의 부피를 늘리며, 신경 성장 인자(BDNF) 분비를 촉진하는 것으로 소개된다. 환경 개선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독소 노출을 줄이고 이완과 재생을 촉진하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은, 뇌가 회복과 해독의 기회를 갖는 데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수면 중 뇌는 글림프계(glymphatic system)를 통해 노폐물을 청소하는데, 수면 무호흡증 같은 수면 장애가 이 과정을 방해함으로써 알츠하이머 위험을 높인다는 최신 뇌과학 연구와도 일치한다. 이처럼 개별 개입의 효과뿐 아니라 이들 간의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며, 가능한 많은 도구를 동시에 활용할 것을 권장한다.

저자의 논지는 설득력 있고 희망적이지만, 몇 가지 중요한 맥락을 고민해 필요가 있다. 먼저, '알츠하이머의 역전(reversing)'이라는 표현은 매우 강력한 주장이다. 저자 자신도 인정하듯, 이 분야의 연구는 아직 발전 중이며, 복합 생활습관 개입을 동시에 평가하는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은 여전히 부족하다. 데일 브레드슨(Dale Bredesen) 교수가 개척한 리코드(ReCODE) 프로토콜처럼 생활습관 기반 접근법에 대한 연구가 확대되고 있지만, 이를 표준 치료로 확립하기 위한 대규모 근거는 아직 축적 단계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밀로이드 가설 중심의 단일 약물 개발 전략이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상황에서, 복합적 생활습관 개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특히 예방 차원에서 건강한 중장년층이나 경도인지장애(MCI) 단계의 환자들에게 이 접근법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자가 설립한 마라마(Marama) 거주형 기억 케어 시설에서 일부 거주자들이 인지 기능 개선을 경험했다는 임상 보고는, 비록 소규모이나 무시하기 어려운 증거다.

저자는 알츠하이머를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닌, 우리의 선택과 노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환으로 재정의한다. 유전자는 운명이 아니며, 매일의 작은 선택들이 수십 년 후의 뇌 건강을 결정한다는 메시지는 강렬하면서도 실용적이다. 식탁에서의 선택, 신발 끈을 묶고 나서는 한 걸음,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 충분한 잠, 이 모든 것이 뇌를 보호하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책은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자신의 뇌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희망과 함께 구체적인 실천 지도를 제공한다. 그 희망이 맹목적 낙관이 아닌, 비판적 성찰과 꾸준한 실천으로 뒷받침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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