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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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원전 6세기, 에게해 연안의 작은 도시 밀레토스에서 한 젊은 철학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었다. 탈레스는 세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통찰이었고, 많은 이들이 그 말을 진리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는 달랐다. 그는 스승을 존경하면서도 스승이 틀렸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냈다. 세상의 근원은 물이 아니라 무한하고 규정할 수 없는 어떤 것, 즉 '아페이론'이라고 주장했다. 지구는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중심에서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 균형을 잡고 있다고도 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이 왜 대단한 일인지 쉽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지적 풍토를 생각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고대 세계 어디서나, 제자는 스승의 말을 받들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이프세 딕시트(Ipse dixit)', 즉 "그분께서 말씀하셨다"는 관용구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지적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상징했다. 공자의 가르침도, 붓다의 말씀도, 조로아스터의 계시도 모두 계승되고 심화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의심받지는 않았다. 지식은 쌓이되 흔들리지 않는 방향으로 전승되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태도는 그런 맥락에서 혁명적이었다. 그는 스승을 버리지도, 맹목적으로 따르지도 않았다. 탈레스의 지적 유산을 충분히 흡수한 뒤, 그것을 발판 삼아 더 멀리 나아갔다. 이 단순해 보이는 태도 속에 과학적 사유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

흔히 과학을 지식의 체계로 이해한다. 물리 법칙, 화학 공식, 생물학적 분류 같은 것들이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의 본질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아느냐, 그리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과학적 인간을 규정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생명의 기원이 바다에 있다고 생각했다. 최초의 생명은 바다에서 탄생했으며, 지구의 환경이 변해감에 따라 생물들이 육지로 올라와 적응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어떤 생물이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는지를 진지하게 물었다. 이는 다윈이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전개한 진화론의 핵심 직관을 기원전 6세기에 이미 품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의 생각은 체계적인 증거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신화와 종교에 기대지 않고, 자연 현상 자체로부터 자연을 설명하려 했다. 이것이 과학적 태도의 핵심이다. 또한 그는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상상을 했다. 우주의 다른 곳에도 세계가 있을 수 있으며, 우리의 세계는 그 무수한 세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실체를 가정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현상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통찰, 이것이 이후 인류가 원자를 발견하고, 전자기장을 정립하고,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방식과 정확히 동일한 방법론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를 가정할 수 있다는 사유의 도약이야말로 과학을 신화로부터 분리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과학하는 인간은 모른다고 말할 줄 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름을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모름을 인식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수정한다. 진리는 단번에 도달하는 목적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가까워지는 수평선과 같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열어놓은 길은 바로 이 점진적 근사의 과정이었다.


과학은 진공 속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스승을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천재여서만이 아니었다. 밀레토스의 아고라, 즉 시민들이 모여 자유롭게 논쟁하고 서로의 의견을 비판하던 공공의 공간이 그 배경에 있었다. 민주주의적 토론의 문화가 지적 탐구의 방식에 스며들었던 것이다. 동등한 시민들이 권위에 기대지 않고 이성을 통해 서로를 설득하고 논박하는 관행, 이것이 과학적 비판 정신의 사회적 토대였다. 이 연결은 역사적 우연이 아니다. 과학과 민주주의는 같은 인식론적 전제 위에 서 있다. 어떤 권위도 그 자체로 진리일 수 없으며, 주장은 근거로 뒷받침되어야 하고, 누구나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왕이 말했다고, 신이 계시했다고, 스승이 가르쳤다고 해서 그것이 곧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사실은 증거와 논리에 의해 검증된다. 이 원리가 정치 영역에서는 민주주의로, 지식의 영역에서는 과학으로 꽃을 피웠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도 이 연결은 여전히 유효하다. 권위주의적 사회에서 과학이 위축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비판을 억압하고 의심을 죄악시하며 복종을 미덕으로 삼는 문화는 과학적 진보와 공존하기 어렵다. 반대로 열린 토론과 건강한 비판 문화가 살아있는 곳에서 지식은 성장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행동이 단지 한 철학자의 개인적 용기가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의 문화적 산물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과학적 태도가 개인의 덕목인 동시에 사회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학하는 인간은 냉소적이고 비판적이기만 한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것이 과학적 태도인가? 그렇지 않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를 비판했지만, 그를 경멸하지 않았다. 스승의 업적을 충분히 이해하고 흡수했기에 그 한계를 볼 수 있었다. 비판은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 상대를 알아야 더 잘 비판할 수 있고, 더 잘 비판해야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것이 맹목적 거부와 과학적 비판의 차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이 태도는 힘을 발휘한다. 타인의 주장을 들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나는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다. 두 태도 모두 이성의 포기다. 과학적 인간은 그 중간 어딘가에 서서, 이해하려 노력하고,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틀린 것이 있다면 용기 있게 말하되, 상대의 인격과 노력을 존중한다. 심지어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이 균형이 나타난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아도 아침의 바다 앞에서 경이를 느낄 수 있다. 나무에 영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무에 물을 주고 대화를 걸며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과학적 세계관이 세계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 깊게 느끼게 해줄 수 있다. 세계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수록, 그 복잡함과 정교함 앞에서 경외감은 오히려 커진다.


아낙시만드로스로부터 약 26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세계에 살고 있다. 양자역학, 유전공학, 인공지능, 우주론. 그러나 이 모든 성취의 근저에는 그가 처음 실천한 단순한 태도가 있다. 선인의 지식을 충분히 배우고, 그 한계를 냉정하게 파악하며, 더 나은 설명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과학적 태도는 단지 과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무엇이 사실인지 가려내야 하는 일반 시민에게도, 기후 위기나 팬데믹 같은 집단적 문제 앞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공동체에게도, 이 태도는 생존의 조건이다. 권위에 기대지도, 음모론에 흔들리지도 않으면서, 증거를 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 틀렸다는 것을 알면 수정하는 것. 그리고 불확실성 앞에서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설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냥 스승이 틀렸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행위가 2600년의 과학적 전통을 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이론이나 천재적 직관이 없어도, 매일의 작은 지적 용기들이 쌓여 세계는 조금씩 더 잘 이해된다. 오늘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 권위 있는 주장 앞에서도 '왜?'라고 묻는 것, 그것이 아낙시만드로스가 밀레토스의 아고라에서 시작한 일의 오늘날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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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다시 날아오르기
빌헬름 슈미트 지음, 강민경 옮김 / FIKA(피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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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릴 때 그네를 타면서 무서움과 짜릿함이 공존하는 그 감각을 기억하는가. 발끝이 하늘을 향할 때의 해방감, 그리고 다시 땅 쪽으로 내려오며 배 속이 간지러워지던 그 순간. 우리는 그것이 좋아서 계속 발을 굴렀다. 올라가기 위해, 그리고 다시 내려오기 위해서다. 철학자 빌헬름 슈미트는 바로 그 그네의 움직임 속에서 삶의 본질을 발견한다. 오르고 내리고, 나아가고 돌아오는 그 진자 운동. 그것이 곧 삶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내려오는 것을 잊어버렸다. 아니, 잊은 게 아니라 거부하기 시작했다. 오직 위만을 향하고 싶어 했다. 성공, 행복, 건강, 쾌락. 이 모든 것을 손에 넣고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그네 위에 집을 지을 수는 없다. 그것은 그네의 본성에 반한다.

성공을 손에 쥐었을 때 우리는 흔히 착각한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서 이 자리에 오른 것이라고. 그 착각은 달콤하지만 위험하다. 슈미트의 말처럼, 성공은 우리를 부주의하고 오만하게 만든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오만함이 우리를 약하게 한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그네의 운동 법칙이고, 삶의 문법이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려오는 것 자체가 아니다. 내려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채로 정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정상에 도달했을 때 그 자리에 못을 박으려는 사람, 그리고 결국 그 못이 빠지면서 추락하는 사람. 그 충격은 스스로 내려온 사람의 것보다 훨씬 크다. 삶의 굴곡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정직한 용기다. "삶은 원래 그러하다"는 말은 냉소가 아니라, 현실을 눈 뜨고 마주하겠다는 선언이다. 그 선언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 의미에서 삶을 살아낼 수 있다.

'금욕적 쾌락주의'는 처음 들으면 모순처럼 들린다. 즐기되 절제하라는 말인가? 하지만 슈미트가 말하는 금욕은 억압이 아니다. 그것은 연습이다. 그리스어 '아스케시스(askesis)'는 본래 훈련, 연습을 뜻한다.커피 한 잔. 매일 다섯 잔씩 들이켜는 사람과, 사흘을 참은 뒤 천천히 음미하며 한 잔을 마시는 사람. 누가 더 깊은 기쁨을 얻을까. 당연히 후자다.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더 선명하게 느끼기 위해 잠시 물러서는 것. 그것이 금욕적 쾌락주의의 핵심이다. 이미 가진 것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을 사지 않는 경험은, 내 손 안에 이미 쥐어진 것들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 '충분하다'는 감각, 라틴어로 'sufficere'. 그것은 세상이 나에게 주어야 하는 최소한이 아니라, 내가 세상으로부터 발견해내는 풍요다. 그 풍요를 발견하는 능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연습으로 길러진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뉴스, 알림, 피드, 메시지. FOMO, 즉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일상을 지배한다. 빠르게, 더 많이, 동시에. 하지만 슈미트는 이것이 오히려 우리를 공허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하루에 수십 개의 숏폼 영상을 보고 나면 무언가를 본 것 같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반면 두 시간짜리 영화 한 편에 온전히 집중하고 나면, 그 장면들이 오래도록 마음 속에 남는다.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고 모였기 때문이다. 그는 'JOMO', 즉 '놓치는 것의 기쁨'을 제안한다. 선택하지 않는 자유, 비워두는 용기. 하나에 깊이 잠겨드는 것. 그것이 진짜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기쁨은 양이 아니라 밀도에서 온다.

슈미트는 의미와 에너지가 함께 순환한다고 말한다. 삶의 의미를 느낄 때 에너지가 솟고, 에너지가 있을 때 의미가 보인다. 이 순환은 연결 속에서 태어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처럼, 서로 다른 두 극이 연결될 때 비로소 전류가 흐른다. 연결이 끊어지면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 하나의 극만으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기쁨만 있어서도, 슬픔만 있어서도 안 된다. 오르는 것과 내려오는 것 사이, 그 왕복 운동 속에서야 비로소 삶은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므로 의미 없음을 느낄 때의 처방은 거창한 성찰이 아닐 수도 있다. 그냥 잠깐 밖에 나가서 햇볕을 쬐거나, 숲을 걷거나, 오래된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것. 그 작은 연결들이 에너지를 되살리고, 에너지가 돌아오면 의미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슈미트가 아내, 딸과 함께 공원을 걷다 그네를 발견했을 때, 세 사람 모두 달려가 그네에 올랐다. 어른이 되었다고 그네를 잊지는 않았던 것이다. 발을 굴러 흔들리는 그 15분은, 철학자에게 삶의 본질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거창한 자기계발이나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잠깐 일상 밖으로 그네를 타고 날아올랐다가 다시 돌아오는 경험.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그 운동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삶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내 뜻대로 되는 부분이 극히 적다. 계획은 무너지고, 예상은 빗나가고,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밀려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삶이 조금 더 가벼워진다. 그러니 오늘, 근처 공원의 그네 앞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올라가고,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는 그 단순한 움직임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삶의 기술을 다시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네를 타는 것은 어린 시절로의 도피가 아니다. 삶의 진동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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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의 심리학 - 투자 실패와 상실을 회복하는 마음의 기술
김형준 지음 / 드림셀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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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렇듯, 두려움이 시작이었다. 정확히는 '나만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주식 앱을 깔고, 코인 시세를 들여다보고, 삼삼오오 투자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있으면 손해라는 감각이 몸속에서 자라났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FOMO(Fear Of Missing Out)', 즉 기회를 놓치는 것에 대한 공포라고 부른다. 합리적 판단보다 감정이 앞서는 순간이다.

사실 준비가 돼서 시작하는 투자자는 드물다. 대개는 밀려서 들어간다. SNS에서 수익 인증 글을 보고, 동료가 얼마를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조급함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그렇게 시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처음부터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 기대가 아닌 불안이 동기였기 때문이다. 불안은 좋은 판단의 적이다. 더구나 지금은 시장의 변동성이 유례없이 크다. 미국과 이란의 긴장, 유가 상승, 인플레이션 우려가 뒤엉킨 이 시점에 코스피는 사흘 만에 20% 가까이 출렁였다. 종합주가지수 6,000을 논하던 것이 불과 몇 달 전인데, 이제 손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상승장의 환호가 채 가시기도 전에 하락의 공포가 시장을 덮은 것이다. 처음 투자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이 진폭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감각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이 같은 금액이라도 잃을 때의 고통을 벌 때의 기쁨보다 두 배 이상 크게 느낀다는 것을 밝혀냈다. '손실 회피 편향'이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하락장에서 투자자들은 냉정한 분석 대신 공포로 매도 버튼을 누르는 이른바 '패닉 셀링'을 저지른다. 반대로 반등장에서는 저점에 닻을 내린 채 너무 싸다는 확신으로 무리하게 뛰어드는 '닻 내림 효과'가 작동한다. 그런데 손실이 진짜 아픈 이유는 숫자 때문만이 아니다. 돈을 잃었다는 사실은 곧바로 자기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내가 어리석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왜 그 타이밍에 팔지 못했을까,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손실은 자책의 재료가 되고, 자책은 수치심으로, 수치심은 또 다른 충동적 선택으로 이어진다. 원금을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집착이 더 큰 손실을 부르는 악순환. 투자 실패는 그렇게 한 사람의 내면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임상심리전문가이자 자살예방 교육 전문가인 김형준은 책 '손실의 심리학'에서 자신의 투자 실패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 역시 출근길에 한강을 지나며 극단적인 생각이 스쳤다고 고백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무너진 마음을 다뤄온 전문가조차 손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것이 이 주제의 핵심이다. 투자 손실은 의지나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도 피하기 어려운 심리적 현실이라는 것이다.


흔히 손실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조언은 '냉정하게 분석하라', '감정을 배제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에 가깝다. 감정은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다룰 수 있을 뿐이다. 오히려 손실 이후의 분노, 수치심, 죄책감, 우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회복의 첫 번째 단계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말로 표현하는 순간, 그 감정의 무게는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여기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투자 실패를 숨긴다. 성공담은 SNS를 가득 채우지만 실패의 이야기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누군가 벌었다면 누군가는 잃었다. 시장은 그렇게 작동한다. 자신의 경험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꺼내놓는 것, 그것이 수치심의 껍데기를 벗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감정은 혼자 품고 있을 때 가장 커진다. 찰리 멍거는 투자에 필요한 것은 지능이 아니라 기질이라고 했다. 시장이 널뛰는 순간, 뇌에서 쏟아지는 도파민과 코르티솔의 신호를 견뎌내는 단단한 기질. 그 기질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내가 지금 공포 때문에 파는 건지, 합리적 판단으로 파는 건지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오래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구분은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


돈을 잃는 것은 사건이다. 그러나 마음을 잃는 것은 삶의 붕괴다. 투자 실패 이후 찾아오는 가장 큰 위기는 손실 자체가 아니라, 그 손실이 삶 전체의 실패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수익률 화면에 시선이 고정된 채,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시세를 확인하고, 오랜 친구와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감각하지 못하는 상태. 그것이야말로 더 큰 손실이다. 돈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효용이 없다. 돈의 가치는 그것으로 무엇을 교환하느냐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좋아하는 일, 의미 있는 경험. 이것들이 결국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투자에 집착하는 동안 우리가 포기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이것들이라면, 그 손실은 계좌의 숫자보다 훨씬 크다. 우선순위가 전도된 삶, 그것이 진짜 손실의 얼굴이다. 투자에서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흔히 포트폴리오 분산이나 손절 기준을 떠올린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리스크 관리는 잃어도 삶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만 투자하는 것, 그리고 투자 결과가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되지 않도록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주식 계좌의 수익률이 내 삶의 성적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투자 실패 이후의 회복은 원금 회복이 아니다.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 손실의 늪에서 빠져나와 나를 아끼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오는 것,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작은 기쁨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진짜 회복이다. 역설적이게도, 투자는 그렇게 일상을 되찾은 이후에 다시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 완벽한 삶이란 없다. 완벽한 투자는 더더욱 없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 과거의 실패를 반복해서 곱씹으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그것이 불행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실수와 실패를 돌아보고 반성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 것. 지금의 나, 이 순간의 삶에 다시 집중하는 것. 그 태도가 결국 투자에서도, 삶에서도 더 나은 결과를 만든다.


시장이 출렁이는 지금, 느끼는 불안과 공포와 후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뇌가 손실 앞에서 그렇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탓하지 마라. 다만 그 감정에 온전히 지배당하지도 마라. 잠시 화면을 내려놓고, 오늘 저녁 식탁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삶은 여전히 상장 유지 중이며,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돈을 잃는 것은 사건이다. 마음을 잃는 것은 파국이다. 그러나 파국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삶에 다시 투자할 용기가 남아 있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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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 육아 번역기
임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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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몰랐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사실은 두 개의 세계가 서로를 번역해가는 일이라는 것을. 남편은 영국 사람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느 쪽도 아니면서 동시에 두 쪽 모두다. 아직 한국말과 영어를 뒤섞어 옹알거리는 첫째 아리아를 보고 있으면, 이 아이의 몸 안에 두 개의 언어가, 두 개의 감수성이, 두 개의 세계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육아는 생각보다 훨씬 더 철학적인 일이다. '밥을 몇 시에 먹이느냐'가 아니라, '이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이냐'는 질문 앞에서 저자와 남편은 종종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간극을 번역하는 일이, 육아의 절반쯤 된다는 것도.

아이가 과자를 더 달라고 울면 저자는 빠르게 해결하려 한다. '안 돼'라는 말을 반듯하게 세우고, 그래도 울면 목소리에 단호함을 담는다. 결론을 향해 최단 거리로 달려가는 것, 그것이 저자가 알고 있는 방식이었다. 남편은 달랐다. 아이의 눈높이로 앉아 다정하게 과자를 두 개 건네며 말한다. '이거 먹고 조금 있다가 또 줄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한다. 저게 될 리가 없는데. 그런데 된다. 아이는 잠시 투정을 부리다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어느새 과자를 더 달라는 생각 자체를 잊어버린다. 나중에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어.' 그 말이 아이에게 한 말인지, 저자에게 한 말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였을 것이다. 한국에서 살아온 저자에게 '기다림'은 미덕이기보다 불안에 가까웠다. 빠를수록 좋고, 남보다 앞서야 안심이 되는 사회에서, 기다리는 것은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조금씩 다른 속도를 배우고 있다. 서두르지 않아도 아이는 자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는 배운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그 느린 속도가, 아이에게는 더 깊은 언어로 새겨질 수 있다는 것을.

아이 머리에 붉은 혈관종이 생겼을 때, 저자는 그것을 '흠'으로 보았다. 왜 우리 아이에게 이런 게 생겼을까, 속으로 자책했고, 밖에 나갈 때면 모자를 씌웠다. 카페에서 낯선 사람들이 아이를 보다가 혈관종을 발견하고 '다쳤어요?'라고 묻는 말들이 쌓일수록, 마음 한쪽이 점점 작아졌다. 영국에 갔을 때, 아무도 묻지 않았다. 단 한 사람도. 버스에서도, 공원에서도, 식당에서도, 사람들은 아이에게 웃어주었지만, 아이의 머리에 있는 붉은 자국에 대해서는 눈길을 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낯설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당연한 것임을 깨달았다. 타인의 몸을 평가하지 않는 것, 다름을 지적하지 않는 것, 그것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그냥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방식이었다. 남편도 그런 사람이다. 결혼한 이후로 그는 한 번도 외모에 대해 평가하거나 지적한 적이 없다. 출산 후 달라진 몸의 선, 배 위에 남은 수술 흔적, 그는 그것을 바라보며 그저 다정하게 입을 맞춰주었다. 처음에는 그 다정함이 믿기지 않았다. 이 사람이 진심인가, 싶었다. 그러나 살면서 알게 되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은 오랫동안 내 몸에 들이밀었던 빡빡한 기준을 조금씩 느슨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누군가의 다름을 처음으로 마주치는 곳은 가정일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어떤 눈으로 보는지를, 아이들은 말 없이 배운다. 평가하지 않는 눈, 그것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언어일지도 모른다.

남편은 종종 말한다. '완벽하면 재미없어.' 처음엔 그 말이 위로처럼 들렸다. 오래 생각하고 나서야, 그것이 위로가 아니라 철학임을 알았다. 우리는 아이를 완벽하게 키우려 한다. 제때 먹이고, 제때 재우고, 실수 없이 훈육하고, 상처 없이 자라게 하려 한다. 그러나 아이는 완벽한 환경에서 자라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부모와 함께 자란다. 엄마가 화를 내는 날도 있고, 아빠가 놓치는 것도 있고, 서로 다른 방식 때문에 두 사람이 조용히 갈등하는 날도 있다.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실수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아빠가 화내지 않고 기다리는 것,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함께 방향을 찾아가는 것, 이런 장면들이 아이의 안에 쌓여, 언젠가 아이 자신의 언어가 될 것이다. 생일 카드에 남편이 썼다. '논란 더 많이 만드세요.' 그 문장이 왜 그렇게 뭉클했는지, 처음엔 설명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것은 눈치 보지 말고,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 나답게 살라는 말이었다. 완벽한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재미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아이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남과 달라도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네가 더 흥미로운 사람이 된다고.

아이들이 잠든 밤, 어두운 거실에 혼자 앉아 있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불빛이 켜지는 기분이 든다. 불완전하고, 어설프고, 매일 조금씩 실패하면서도, 이 가족과 함께 이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히 풍요롭다는 것을, 두 세계 사이에서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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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탄생
박수현 지음 / SISO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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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음식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필요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먹는 행위는 단순한 생존의 문제를 훌쩍 뛰어넘어 권력과 신분, 문명과 야만, 종교와 과학, 그리고 미학의 문제와 끊임없이 얽혀왔다. 미식이란 그 긴 얽힘 속에서 서서히 발효된 결과물이다.

프랑스 땅에 처음 문명의 씨앗을 뿌린 것은 로마인들이었다. 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의 군대가 갈리아를 정복하면서 두 개의 식탁 문화가 충돌했다. 한편에는 밀로 빵을 굽고, 포도를 발효시켜 와인을 만들고, 올리브를 압착해 기름을 얻는 로마인들이 있었다. 다른 한편에는 사냥한 짐승을 구워 먹고, 보리로 맥주를 빚고, 버터와 돼지기름으로 요리하는 켈트족 갈리아인들이 있었다. 로마인들의 눈에 갈리아인의 식탁은 야만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 판단은 미각의 우열이 아니라 문명관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로마인에게 '문명'이란 자연을 인간의 손으로 질서 있게 가꾸어낸 것, 즉 경작된 땅과 그 땅에서 얻은 작물로 만든 음식을 의미했다. 빵을 먹는다는 것은 곧 문명인이라는 뜻이었고, 숲에서 사냥하여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야만의 표식이었다. 이 구분은 사실 편견에 가까웠다. 갈리아인들은 이미 뛰어난 농업 기술을 보유했고, 육가공 기술은 오히려 로마인들이 배워갈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기준을 쥔 쪽이 타자의 식문화를 열등하게 규정했다. 먹는 것의 우열이란 처음부터 권력의 문제였다.

​갈리아 시대의 연회는 축제이상의 의미였다. 분열된 72개 민족과 수백 개의 부족으로 이루어진 갈리아 사회에서, 음식을 얼마나 풍성하게 내어놓는가는 곧 지도자의 역량과 신뢰를 증명하는 일이었다. 부족장은 다른 부족의 지지를 얻기 위해 넘치도록 차린 식탁을 제공했고, 함께 먹는 행위는 동맹과 결속의 언어였다. 대식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갈리아의 문화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많이 먹는 것은 동물적 우월함의 표시이자 공동체의 단합을 과시하는 방식이었다. 로마의 연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함께 산다'는 뜻의 '콘비비움'으로 표현된 로마의 식탁 문화는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식탁에 초대받는다는 것은 사회에 속한다는 의미였고, 배제된다는 것은 공동체 바깥으로 밀려난다는 뜻이었다. 이 사상은 이후 가톨릭의 파문 제도에까지 이어져, '함께 먹지 못하는 벌'로 상징화되었다. 먹는 행위는 언제나 포함과 배제의 경계를 그어왔다. 중세에 이르면 이 구분은 한층 정교해졌다. 하늘에 가까울수록 가치 있다는 '존재의 대사슬' 이론은 음식에도 적용되어, 땅속에서 자라는 마늘이나 감자는 최하층의 음식이었고, 높이 나는 새나 사냥으로 얻은 고기는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체액 이론은 이를 의학적으로 포장했다. 귀족의 위장과 평민의 위장은 태생부터 다르다고 했으며, 신분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난다고 가르쳤다. 과학과 종교가 손잡고 계급적 식탁을 정당화한 것이다. 성직자들은 농민의 배고픔조차 신이 내린 운명이라 설교했다. 먹는 것의 불평등은 이렇게 자연스러운 질서로 둔갑했다.

중세 교회는 1년의 절반 가까이를 금식일로 지정했다. 육식을 금하고 생선만 허용하는 이 규정은 역설적으로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을 심화시켰다. 사람들은 금식의 규율을 피하기 위해 온갖 궤변을 동원했다. 물에 사는 오리는 어류와 가깝다는 논리로 오리를 먹었고, 비버의 꼬리는 물고기로 분류하여 먹었다. 수도사들이 사슴을 우물에 던져 넣고 어류로 우기는 일도 있었다. 금지가 욕망을 자극하고, 욕망이 창의력을 낳은 셈이다. 이러한 역설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르네상스는 고대 로마의 음식 문화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1세기경에 쓰인 요리책의 필사본이 발굴되면서 사람들은 기독교적 금욕의 틀 바깥에서 음식을 즐기는 방식을 새롭게 배웠다. 죄의식 없이 먹는 기쁨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르네상스 식탁의 정신이었다. 이 변화의 물결은 1533년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이 프랑스 왕실로 시집오면서 프랑스에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요리사와 제과사, 식기와 조리 도구, 그리고 식탁 예절을 프랑스 궁정에 이식했다. 두 개의 날이 달린 포크, 굽이 달린 유리잔, 개인 도자기 접시와 같은 세련된 식기들이 프랑스 귀족들의 식탁을 바꾸어놓았다. 채소를 포타주에 넣어 끓이는 대신 독립된 요리로 내어놓는 방식, 소르베와 마멀레이드, 무스와 같은 새로운 디저트 문화도 함께 들어왔다. 프랑스 요리는 이때부터 서서히 자신만의 정체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

갈리아의 숲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베르사유의 연회장을 거쳐, 파리의 레스토랑에 이르러 하나의 완성된 형태를 갖춘다. 19세기 파리의 레스토랑은 누구든 돈을 내고 앉아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선택해 먹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오트 퀴진이 부르주아의 식탁으로, 그리고 점차 더 넓은 계층으로 내려오면서, 미식은 비로소 특권이 아닌 문화가 되어갔다. 그러나 돌아보면 미식의 탄생은 결코 순수하게 맛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려는 욕망, 신분을 드러내고 싶은 허영, 권력을 식탁 위에서 확인하고 싶은 충동,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저항하며 같은 빵을 나누어 먹겠다는 평등의 열망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오늘 식탁 앞에 앉아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그 오랜 투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먹는다는 것은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삶의 방식에 대한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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