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 육아 번역기
임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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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몰랐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사실은 두 개의 세계가 서로를 번역해가는 일이라는 것을. 남편은 영국 사람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느 쪽도 아니면서 동시에 두 쪽 모두다. 아직 한국말과 영어를 뒤섞어 옹알거리는 첫째 아리아를 보고 있으면, 이 아이의 몸 안에 두 개의 언어가, 두 개의 감수성이, 두 개의 세계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육아는 생각보다 훨씬 더 철학적인 일이다. '밥을 몇 시에 먹이느냐'가 아니라, '이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이냐'는 질문 앞에서 저자와 남편은 종종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간극을 번역하는 일이, 육아의 절반쯤 된다는 것도.

아이가 과자를 더 달라고 울면 저자는 빠르게 해결하려 한다. '안 돼'라는 말을 반듯하게 세우고, 그래도 울면 목소리에 단호함을 담는다. 결론을 향해 최단 거리로 달려가는 것, 그것이 저자가 알고 있는 방식이었다. 남편은 달랐다. 아이의 눈높이로 앉아 다정하게 과자를 두 개 건네며 말한다. '이거 먹고 조금 있다가 또 줄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한다. 저게 될 리가 없는데. 그런데 된다. 아이는 잠시 투정을 부리다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어느새 과자를 더 달라는 생각 자체를 잊어버린다. 나중에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어.' 그 말이 아이에게 한 말인지, 저자에게 한 말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였을 것이다. 한국에서 살아온 저자에게 '기다림'은 미덕이기보다 불안에 가까웠다. 빠를수록 좋고, 남보다 앞서야 안심이 되는 사회에서, 기다리는 것은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조금씩 다른 속도를 배우고 있다. 서두르지 않아도 아이는 자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는 배운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그 느린 속도가, 아이에게는 더 깊은 언어로 새겨질 수 있다는 것을.

아이 머리에 붉은 혈관종이 생겼을 때, 저자는 그것을 '흠'으로 보았다. 왜 우리 아이에게 이런 게 생겼을까, 속으로 자책했고, 밖에 나갈 때면 모자를 씌웠다. 카페에서 낯선 사람들이 아이를 보다가 혈관종을 발견하고 '다쳤어요?'라고 묻는 말들이 쌓일수록, 마음 한쪽이 점점 작아졌다. 영국에 갔을 때, 아무도 묻지 않았다. 단 한 사람도. 버스에서도, 공원에서도, 식당에서도, 사람들은 아이에게 웃어주었지만, 아이의 머리에 있는 붉은 자국에 대해서는 눈길을 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낯설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당연한 것임을 깨달았다. 타인의 몸을 평가하지 않는 것, 다름을 지적하지 않는 것, 그것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그냥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방식이었다. 남편도 그런 사람이다. 결혼한 이후로 그는 한 번도 외모에 대해 평가하거나 지적한 적이 없다. 출산 후 달라진 몸의 선, 배 위에 남은 수술 흔적, 그는 그것을 바라보며 그저 다정하게 입을 맞춰주었다. 처음에는 그 다정함이 믿기지 않았다. 이 사람이 진심인가, 싶었다. 그러나 살면서 알게 되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은 오랫동안 내 몸에 들이밀었던 빡빡한 기준을 조금씩 느슨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누군가의 다름을 처음으로 마주치는 곳은 가정일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어떤 눈으로 보는지를, 아이들은 말 없이 배운다. 평가하지 않는 눈, 그것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언어일지도 모른다.

남편은 종종 말한다. '완벽하면 재미없어.' 처음엔 그 말이 위로처럼 들렸다. 오래 생각하고 나서야, 그것이 위로가 아니라 철학임을 알았다. 우리는 아이를 완벽하게 키우려 한다. 제때 먹이고, 제때 재우고, 실수 없이 훈육하고, 상처 없이 자라게 하려 한다. 그러나 아이는 완벽한 환경에서 자라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부모와 함께 자란다. 엄마가 화를 내는 날도 있고, 아빠가 놓치는 것도 있고, 서로 다른 방식 때문에 두 사람이 조용히 갈등하는 날도 있다.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실수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아빠가 화내지 않고 기다리는 것,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함께 방향을 찾아가는 것, 이런 장면들이 아이의 안에 쌓여, 언젠가 아이 자신의 언어가 될 것이다. 생일 카드에 남편이 썼다. '논란 더 많이 만드세요.' 그 문장이 왜 그렇게 뭉클했는지, 처음엔 설명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것은 눈치 보지 말고,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 나답게 살라는 말이었다. 완벽한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재미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아이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남과 달라도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네가 더 흥미로운 사람이 된다고.

아이들이 잠든 밤, 어두운 거실에 혼자 앉아 있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불빛이 켜지는 기분이 든다. 불완전하고, 어설프고, 매일 조금씩 실패하면서도, 이 가족과 함께 이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히 풍요롭다는 것을, 두 세계 사이에서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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