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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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원전 6세기, 에게해 연안의 작은 도시 밀레토스에서 한 젊은 철학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었다. 탈레스는 세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통찰이었고, 많은 이들이 그 말을 진리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는 달랐다. 그는 스승을 존경하면서도 스승이 틀렸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냈다. 세상의 근원은 물이 아니라 무한하고 규정할 수 없는 어떤 것, 즉 '아페이론'이라고 주장했다. 지구는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중심에서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 균형을 잡고 있다고도 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이 왜 대단한 일인지 쉽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지적 풍토를 생각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고대 세계 어디서나, 제자는 스승의 말을 받들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이프세 딕시트(Ipse dixit)', 즉 "그분께서 말씀하셨다"는 관용구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지적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상징했다. 공자의 가르침도, 붓다의 말씀도, 조로아스터의 계시도 모두 계승되고 심화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의심받지는 않았다. 지식은 쌓이되 흔들리지 않는 방향으로 전승되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태도는 그런 맥락에서 혁명적이었다. 그는 스승을 버리지도, 맹목적으로 따르지도 않았다. 탈레스의 지적 유산을 충분히 흡수한 뒤, 그것을 발판 삼아 더 멀리 나아갔다. 이 단순해 보이는 태도 속에 과학적 사유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

흔히 과학을 지식의 체계로 이해한다. 물리 법칙, 화학 공식, 생물학적 분류 같은 것들이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의 본질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아느냐, 그리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과학적 인간을 규정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생명의 기원이 바다에 있다고 생각했다. 최초의 생명은 바다에서 탄생했으며, 지구의 환경이 변해감에 따라 생물들이 육지로 올라와 적응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어떤 생물이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는지를 진지하게 물었다. 이는 다윈이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전개한 진화론의 핵심 직관을 기원전 6세기에 이미 품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의 생각은 체계적인 증거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신화와 종교에 기대지 않고, 자연 현상 자체로부터 자연을 설명하려 했다. 이것이 과학적 태도의 핵심이다. 또한 그는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상상을 했다. 우주의 다른 곳에도 세계가 있을 수 있으며, 우리의 세계는 그 무수한 세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실체를 가정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현상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통찰, 이것이 이후 인류가 원자를 발견하고, 전자기장을 정립하고,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방식과 정확히 동일한 방법론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를 가정할 수 있다는 사유의 도약이야말로 과학을 신화로부터 분리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과학하는 인간은 모른다고 말할 줄 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름을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모름을 인식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수정한다. 진리는 단번에 도달하는 목적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가까워지는 수평선과 같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열어놓은 길은 바로 이 점진적 근사의 과정이었다.


과학은 진공 속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스승을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천재여서만이 아니었다. 밀레토스의 아고라, 즉 시민들이 모여 자유롭게 논쟁하고 서로의 의견을 비판하던 공공의 공간이 그 배경에 있었다. 민주주의적 토론의 문화가 지적 탐구의 방식에 스며들었던 것이다. 동등한 시민들이 권위에 기대지 않고 이성을 통해 서로를 설득하고 논박하는 관행, 이것이 과학적 비판 정신의 사회적 토대였다. 이 연결은 역사적 우연이 아니다. 과학과 민주주의는 같은 인식론적 전제 위에 서 있다. 어떤 권위도 그 자체로 진리일 수 없으며, 주장은 근거로 뒷받침되어야 하고, 누구나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왕이 말했다고, 신이 계시했다고, 스승이 가르쳤다고 해서 그것이 곧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사실은 증거와 논리에 의해 검증된다. 이 원리가 정치 영역에서는 민주주의로, 지식의 영역에서는 과학으로 꽃을 피웠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도 이 연결은 여전히 유효하다. 권위주의적 사회에서 과학이 위축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비판을 억압하고 의심을 죄악시하며 복종을 미덕으로 삼는 문화는 과학적 진보와 공존하기 어렵다. 반대로 열린 토론과 건강한 비판 문화가 살아있는 곳에서 지식은 성장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행동이 단지 한 철학자의 개인적 용기가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의 문화적 산물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과학적 태도가 개인의 덕목인 동시에 사회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학하는 인간은 냉소적이고 비판적이기만 한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것이 과학적 태도인가? 그렇지 않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를 비판했지만, 그를 경멸하지 않았다. 스승의 업적을 충분히 이해하고 흡수했기에 그 한계를 볼 수 있었다. 비판은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 상대를 알아야 더 잘 비판할 수 있고, 더 잘 비판해야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것이 맹목적 거부와 과학적 비판의 차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이 태도는 힘을 발휘한다. 타인의 주장을 들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나는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다. 두 태도 모두 이성의 포기다. 과학적 인간은 그 중간 어딘가에 서서, 이해하려 노력하고,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틀린 것이 있다면 용기 있게 말하되, 상대의 인격과 노력을 존중한다. 심지어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이 균형이 나타난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아도 아침의 바다 앞에서 경이를 느낄 수 있다. 나무에 영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무에 물을 주고 대화를 걸며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과학적 세계관이 세계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 깊게 느끼게 해줄 수 있다. 세계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수록, 그 복잡함과 정교함 앞에서 경외감은 오히려 커진다.


아낙시만드로스로부터 약 26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세계에 살고 있다. 양자역학, 유전공학, 인공지능, 우주론. 그러나 이 모든 성취의 근저에는 그가 처음 실천한 단순한 태도가 있다. 선인의 지식을 충분히 배우고, 그 한계를 냉정하게 파악하며, 더 나은 설명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과학적 태도는 단지 과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무엇이 사실인지 가려내야 하는 일반 시민에게도, 기후 위기나 팬데믹 같은 집단적 문제 앞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공동체에게도, 이 태도는 생존의 조건이다. 권위에 기대지도, 음모론에 흔들리지도 않으면서, 증거를 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 틀렸다는 것을 알면 수정하는 것. 그리고 불확실성 앞에서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설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냥 스승이 틀렸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행위가 2600년의 과학적 전통을 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거창한 이론이나 천재적 직관이 없어도, 매일의 작은 지적 용기들이 쌓여 세계는 조금씩 더 잘 이해된다. 오늘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 권위 있는 주장 앞에서도 '왜?'라고 묻는 것, 그것이 아낙시만드로스가 밀레토스의 아고라에서 시작한 일의 오늘날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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