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이 왜 대단한 일인지 쉽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지적 풍토를 생각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고대 세계 어디서나, 제자는 스승의 말을 받들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이프세 딕시트(Ipse dixit)', 즉 "그분께서 말씀하셨다"는 관용구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지적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상징했다. 공자의 가르침도, 붓다의 말씀도, 조로아스터의 계시도 모두 계승되고 심화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의심받지는 않았다. 지식은 쌓이되 흔들리지 않는 방향으로 전승되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태도는 그런 맥락에서 혁명적이었다. 그는 스승을 버리지도, 맹목적으로 따르지도 않았다. 탈레스의 지적 유산을 충분히 흡수한 뒤, 그것을 발판 삼아 더 멀리 나아갔다. 이 단순해 보이는 태도 속에 과학적 사유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
흔히 과학을 지식의 체계로 이해한다. 물리 법칙, 화학 공식, 생물학적 분류 같은 것들이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의 본질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아느냐, 그리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과학적 인간을 규정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생명의 기원이 바다에 있다고 생각했다. 최초의 생명은 바다에서 탄생했으며, 지구의 환경이 변해감에 따라 생물들이 육지로 올라와 적응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어떤 생물이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는지를 진지하게 물었다. 이는 다윈이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전개한 진화론의 핵심 직관을 기원전 6세기에 이미 품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의 생각은 체계적인 증거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신화와 종교에 기대지 않고, 자연 현상 자체로부터 자연을 설명하려 했다. 이것이 과학적 태도의 핵심이다. 또한 그는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상상을 했다. 우주의 다른 곳에도 세계가 있을 수 있으며, 우리의 세계는 그 무수한 세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실체를 가정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현상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통찰, 이것이 이후 인류가 원자를 발견하고, 전자기장을 정립하고,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방식과 정확히 동일한 방법론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를 가정할 수 있다는 사유의 도약이야말로 과학을 신화로부터 분리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과학하는 인간은 모른다고 말할 줄 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름을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모름을 인식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수정한다. 진리는 단번에 도달하는 목적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가까워지는 수평선과 같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열어놓은 길은 바로 이 점진적 근사의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