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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대하는 태도
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6년 4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장을 덮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늦가을 햇살이 기울어지고 있었고, 나는 그 빛이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것을 그냥 바라보았다. 소노아야코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죽음은 임무다." 처음엔 그 말이 차갑게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 이 지날수록, 그 말은 오히려 따뜻한 무게로 가슴 한가운데 내려앉았다. 나는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써온 쪽이었다. 누군가 곁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면 괜스레 화제를 돌렸고, 유언이나 장례 이야기가 나오면 마치 불길한 주문이라도 듣는 것처럼 귀를 닫았다. 죽음은 언제나 나와는 아직 먼 이야기, 미래의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날 낯선 사건처럼 여겨왔던 것이다. 그런 내게 소노아야코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을 걸어왔다.
교향곡에는 보통 네 개의 악장이 있다. 1악장은 활기차고 웅장하게 시작되고, 2악장은 느리고 서정적인 감정을 담는다. 3악장은 유쾌하거나 춤추는 듯한 리듬으로 이어지다가, 4악장에서 모든 것이 수렴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소노 아야코는 인생을 이 교향곡의 구조에 빗댔다. 태어나고, 사랑하고, 성숙하고, 그리고 죽는다. 1악장에서 4악장까지. 이 비유가 내 마음을 흔든 것은, 그것이 수사만의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노는 4악장을 '비극의 클라이맥스'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앞선 세 악장이 있기에 비로소 완성되는 악장, 인생이라는 작품을 마무리 짓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악장 없이는 교향곡이 완성되지 않듯, 죽음 없이는 인생도 완성되지 않는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멈추었다. 그 동안 나는 삶을 연장하는 것에만 골몰했지, 삶을 완성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더 오래'를 꿈꿨을 뿐, '더 잘'을 묻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죽음을 직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끝을 알아야만 비로소 전체를 그릴 수 있는데, 나는 그 끝에 눈을 감은 채 앞만 보며 달려왔던 것이다.
소노 아야코는 가톨릭 신자다. 그녀의 죽음관에는 신앙이 깊이 깔려 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말이 종교적 위안에 그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은 신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 임무' 로서 껴안는 자세였다. 책 속의 한 구절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다. "운명을 인정하지 않으면, 죽음은 괴롭다." 얼마나 담담한 말인가. 그리고 얼 마나 깊은 말인가. 우리는 대부분 죽음이 찾아왔을 때 '왜 나인가'를 묻는다. 왜 이렇게 일찍, 왜 이런 방식으로, 왜 하필 지 금. 그 물음은 때로 절규가 되고, 원망이 되고, 분노가 된다. 소노는 말한다. 그 물음을 내려놓는 것, 주어진 것을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죽음을 평온하게 맞이하는 유일한 길이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체념처럼 들렸다. 그러나 다시 읽으며 깨달았다. 운명을 인정하는 것은 포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용감한 선택이다. 저항할 수 없는 것에 저항 하며 소진되는 대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를 묻는 것. 죽음 앞에서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인정함 으로써 삶을 더욱 온전히 살겠다는 결단이다.
소노 아야코는 노년의 쇠퇴를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몸이 불편해지고, 기억이 흐릿해지고, 가진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되는 과정이 오히려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은총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말이 역설처럼 들렸지만, 생각할수록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붙들고 산다. 재산, 명예, 관계, 젊음, 건강. 그것들이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마다 우리는 불안해하고, 더 꼭 쥐려 한다. 그런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4악장에서 그것들은 하나씩 손에서 빠져나간 다. 소노는 그것을 상실이 아닌 해방으로 본다. 나는 내 방 한 켠에 오랫동안 쌓아둔 물건들을 떠올렸다. 언젠가 쓸 것 같아 서, 버리기 아까워서, 추억이 담겨 있어서, 그렇게 쌓인 것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붙들고 있는 과거이고, 내가 놓지 못하는 나 자신의 어떤 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무게를 하나씩 가볍게 내려놓는 연습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마지막에 진정으로 남는 것은 재산도, 업적도, 이름도 아니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이 말은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사랑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노가 그 말을 꺼내는 맥락은 달랐다. 그것은 죽음을 실제로 대면한 사람이, 삶의 벼랑 끝에서 뒤돌아보며 발견한 진실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동반 자살 시도를 어린 시절에 목격했고, 아프리카 내전의 한가운데에서 수많은 죽음을 직접 목도했다. 그 경험들이 녹아든 말이었기에, 그 무게가 달랐다. 죽음의 문턱에서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은 대부분 비슷하다는 연구가 있다. 더 일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더 사랑하지 못한 것. 더 많이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나누지 못한 것. 소노의 말은 그 연구를 문학의 언어로 다시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바쁜가. 나는 지금 무엇을 쌓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처음으로 내 죽음을 조금 다르게 떠올려보았다. 두려움이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이전과는 조금 다른 색을 갖게 되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어쩌면 삶을 충분히 살지 못할까 봐가 아닐까. 후회를 안고 마지막 악장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진짜 두려움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책을 덮는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살아 있는 동안 전하지 못한 말을 조금이라 도 더 전하고 싶었다. 그것이, 4악장이 오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연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