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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스쿨 - 은퇴 후 더 행복해지는 사람들의 비밀
최영일 지음 / 다른상상 / 2026년 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달력을 바라보다가 문득 손이 멈췄다. 무심코 넘기던 날짜들이 어느 순간부터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숫자들이 날짜가 아니라, 내 직장생활의 카운트다운처럼 느껴졌다. 은퇴. 그 단어가 갑자기 실체를 갖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오래도록 은퇴를 '나중 일'로 미뤄두었다. 오늘 처리해야 할 보고서, 이번 달 마감해야 할 프로젝트, 다음 주 잡힌 회의들. 늘 눈앞의 일들이 먼저였다. 은퇴 준비는 언제나 '조금 더 나중에'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치 언젠가는 꼭 읽겠다며 책상 한쪽에 쌓아두는 책처럼, 나의 은퇴 설계는 오랫동안 먼지를 뒤집어쓴 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은 그 먼지 쌓인 책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은퇴를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찾아온 감정은 설렘이 아니었다. 그것은 묵직하고 낯선 불안이었다. 은퇴 후 아침에 눈 을 뜨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오전 아홉 시, 한때 내가 책상 앞에 앉아 하루를 시작하던 그 시간에,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 불안은 정직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수십 년을 조직 안에서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그 울타리 밖으로 나오는 일은, 직장을 잃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을 내려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은퇴 이후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생각보다 오래 머뭇거렸다. 그러나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진지하게 이 시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막연한 공포는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불안을 마주하고, 그것을 준비의 출발점으로 삼을 때 비로소 무언가가 바뀐다. 나는 그 사실을 이제야, 조금 늦었지 만,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다.은퇴 준비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돈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모아야 하는가, 연금은 충분한가, 퇴직금은 어떻게 굴려야 하는가. 숫자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물론 재정적 준비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은퇴 후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길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지금, 은퇴 이후에도 20년, 30년의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 긴 시간을 버텨낼 돈의 흐름을 설계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마음가짐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 간 이런 생각을 했다. 돈 걱정이 해결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은퇴 후의 삶이 행복해지는가? 주변을 돌아보면, 넉넉한 자산을 가지고도 은퇴 후 무기력과 공허감 속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반면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않 아도 하루하루를 활기차고 의미 있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나는 그것이 결국 '하루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돈은 생존의 조건이지만, 행복의 조건은 아니다.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지만, 돈 만으로는 살아갈 이유를 만들 수 없다. 그렇다면 나에게 하루를 채워줄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재정 계획보다 더 깊고 어려운 숙제로 나에게 다가왔다.은퇴 후 가장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덮친다는 것이 있다. 바로 고독이다. 매일 부대끼던 동료들, 당연하게 채워 지던 인간관계의 밀도, 조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얻던 소속감. 그것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예상보다 훨씬 깊은 외로움의 구렁 속으로 빠져든다고 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혼자를 잘 견디는 사람인가? 사실 나는 그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입버룻처럼 말해왔다.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히 나 자신으로 있고 싶다고. 그런데 막상 그 시간이 정말로 주어진다면, 나는 과연 그 고요함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까. 아니면 그 고요함이 외로움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나를 압도해버리지는 않을까. 고독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선물로 받아들이는 사람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그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자신을 채우는 시간으로 쓸 줄 아는가의 여부다.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걷고, 생각하고, 오래 미뤄두었던 무언가를 천천히 배워가는 시간. 그 시간을 온 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은퇴 후의 고독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충분 히 그런 사람은 아닐지 모르지만, 지금부터 천천히 훈련해 나갈 수는 있다. 고독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고독을 즐기는 사람으로.라틴어 격언 중에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현재를 쾌락적으로 소비하라는 의미로 읽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을 진지하게 살아라'는 촉구다. 미래를 막연히 기다리거나, 과거를 붙들고 아쉬워하는 대신,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이다. 은퇴 준비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해야지, 좀 더 나중에 시작하면 되겠지. 그렇게 미루다 보면 어느새 '나중'은 없어진다. 준비 없이 맞이한 은퇴가 얼마나 가혹할 수 있는지는, 이미 그 길을 걸어간 수많은 선배들이 몸으로 증명해주었다. 나는 지금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완벽한 계획이 아니어도 좋다. 처음부터 모든 답을 알 필요도 없다. 다만 한 걸음씩, 내 인생 의 후반전을 내가 직접 설계해 나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믿는다. 책은 은퇴를 준비하는 나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