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토의 책 중에서 내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실험은 의외로 단순한 것이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성의 외모가 달라진다는 연구. 불황기에는 좀 더 성숙하고 현실감 있는 상(像)을 갈망하고, 호황기에는 화려하고 이상화된 상을 추구한다는 것.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조차, 경제 상황이라는 외부 조건에 따라 유연하게 재정의된다. 이 실험이 보여주는 더 깊은 진실은 이것이다. 욕망은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욕망은 항상 맥락 속에, 사회 속에, 시대 속에 존재한다. 코스피 6000이라는 숫자가 만들어낸 호황의 분위기는, 사람들의 욕망을 특정 방향으로 틀어쥔다. 더 빠르게, 더 크게, 더 많이. 이른바 '빠른 부의 실현'에 대한 욕망이 팽창하는 시대다. 그러나 나이토의 다른 실험( 행복에는 돈보다 인간관계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 이 조용히 반박한다. 자산이 불어나는 속도와,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속도는 같은 곡선을 그리지 않는다. 코스피가 2000에서 6000으로 세 배가 됐다고 해서, 인간의 행복이 세 배가 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인간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 인간의 욕망이 원래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채워지는 순간, 새로운 욕망의 단계로 진화한다. 6000을 넘어선 사람들은 이미 7000을 보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시장을 움직이는 힘이기도 하고, 동시에 개인을 소진시키는 구조이기도 하다.
나이토의 심리 실험들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욕망을 억압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욕망의 구조를 이해하라. 그래야 욕망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활용할 수 있다. 도박 중독자가 도박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도박 상태 자체'에 집착한다는 실험은, 무언가를 원한다고 생각할 때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것을 요청한다. 주식을 원하는가, 아니면 수익을 원하는가? 수익을 원하는가, 아니면 그 수익이 가져다줄 자유를 원하는가? 자유를 원하는가, 아니면 자유로운 상태에서 누릴 관계와 시간을 원하는가? 욕망을 한 꺼풀씩 벗겨내면, 결국 그 핵심에는 언제나 인간적인 무언가가 남는다. 코스피 6000 시대를 현명하게 산다는 것은, 남보다 빨리 정보를 얻는 것도, 더 정교한 알고리즘을 쓰는 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능력이다. 내가 지금 두려움으로 행동하는가, 탐욕으로 행동하는가? 이 선택은 어느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가? 이 욕망은 지금 내 진짜 삶의 방향과 일치하는가? 자기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인간의 심리를 역으로 활용하면, 적어도 중요한 결정 앞에서 '나는 지금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한 번쯤 던지게 된다. 불편하지만 정직한 그 질문이, 실험실 밖 현실에서는 '부의 삽질'을 '부의 성취'로 바꾸는 가장 근본적인 도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