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소한 갈등
민현기 지음 / Book Insight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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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갈등을 싫어한다. 불편하고, 피곤하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것. 그러나 돌이켜보면 갈등 없는 관계란 실은 관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런 마찰 없이 매끄럽게만 흘러가는 만남은 진짜 만남이라기보다 예의상 주고받는 인사에 가깝다. 진심이 오가는 곳엔 언제나 어긋남이 있고, 그 어긋남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간다. 갈등을 바람에 비유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불어오는 것이다. 어떤 바람은 부드럽게 등을 밀어주지만, 어떤 바람은 거세게 흔들어댄다. 중요한 것은 바람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돛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없앨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끊임없이 실패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관리할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그것을 다룰 여지가 생긴다. 생각해보면 갈등은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말투 하나, 표정 하나, 무심코 던진 한마디. 그 자체로는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켜켜이 쌓여 어느새 거대한 벽이 된다. 누군가는 이를 과장이라 할지 모르지만, 관계 속에서 작은 상처들이 모여 큰 균열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문제는 그 균열이 서서히 진행된다는 점이다. 오늘 당장 관계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물감이 번지듯 조금씩 스며들다가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갈등 앞에서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우리의 뇌는 위협을 감지하면 생존 모드로 전환되고, 그 순간 논리와 이해는 뒷전이 된다. 상대의 말보다 그 말이 내게 어떻게 들렸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그 감정에 휩싸여 우리는 방어하고 공격한다. 하지만 감정은 파도와 같아서, 아무리 높이 솟아올라도 결국엔 잠잠해진다. 문제는 우리가 그 파도를 계속 일으킨다는 것이다. 똑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그때 했어야 할 말을 되새기며 감정을 재생산한다. 그렇게 90초면 충분히 가라앉을 감정을 몇 시간, 며칠, 때로는 몇 년씩 붙들고 산다. 감정을 없앨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것이다. 다만 그 감정이 나를 지배하게 두지 않는 연습은 할 수 있다. 숨을 고르고, 잠시 멈추고,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이름을 붙여보는 것. 그 작은 거리두기만으로도 감정의 포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속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착각한다. 늦게 오는 친구를 보며 성의 없다고 판단하고, 말을 아끼는 동료를 보며 비협조적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그 행동 뒤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맥락이 있다. 친구에게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수 있고, 동료는 과거의 상처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일 수 있다. 갈등을 제대로 보려면 렌즈를 바꿔야 한다. 표면에 드러난 현상이 아니라 그 안의 맥락을, 행동이 아니라 욕구를 봐야 한다.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닌지, 그 사람이 정말 몰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이런 질문들이 우리를 판단에서 이해로 이끈다. 존중이란 결국 '다시 보는 것'이다. 한 번 보고 결론 내리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살피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것이야말로 갈등을 관계 회복의 기회로 바꾸는 열쇠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고. 하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하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해야 한다.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고 참으면 배려처럼 보이지만, 실은 회피에 가깝다. 상대가 알아주길 기대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다. 그렇게 쌓인 감정은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터져나온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상대는 당황한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라고. 갈등을 줄이려면 먼저 말해야 한다. 내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놓는 것, 그것이 상대의 진심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된다. 물론 어떻게 말하느냐도 중요하다. 판단하듯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궁금해서 묻는 것,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전하는 것. 이런 작은 차이가 대화를 공격이 아닌 소통으로 만든다.

갈등을 한자로 쓰면 칡 갈(葛)에 등나무 등(藤)이다. 두 덩굴이 서로 엉켜있는 모습. 이 표현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갈등은 뿌리부터 다른 두 나무의 전쟁이 아니라, 함께 자라다 보니 어느새 엉켜버린 덩굴이다.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하나씩 풀어가면 결국 각자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엉킨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없는 척하거나 외면한다고 풀리지 않는다. 그것이 불편하더라도 마주 보고, 어디서부터 엉켰는지 살피고, 천천히 풀어가야 한다. 때로는 함께 풀어야 하고, 때로는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다. 정답은 없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 것, 그것이 관계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갈등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신호이자,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다.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자. 대신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우자. 덩굴은 아무리 엉켜도, 풀고자 하면 풀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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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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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옷, 누가 입겠지."

옷장을 정리하며 우리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조금 작아진 청바지, 유행이 지난 니트, 한 번도 입지 않은 셔츠를 비닐봉지에 담아 아파트 단지 한쪽에 놓인 의류 수거함으로 향한다. 초록색 철제 함에 옷을 밀어 넣는 순간, 우리의 책임은 거기서 끝난다. 혹은 끝났다고 믿는다. 한국은 연간 30만 톤의 중고의류를 수출하는 세계 4위 수출국이다. 그런데 공식 통계상 우리나라에서 수거되는 폐의류는 연간 10만 톤에 불과하다. 이 기묘한 불균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거함에 넣은 옷보다 더 많은 옷이 국경을 넘어간다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이 옷들을 모으고, 분류하고, 선적하여 먼 나라로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취재진이 추적기를 옷에 달기로 결심한 것은 바로 이 불투명함 때문이었다. 슬로베니아의 탐사보도 언론이 플라스틱병과 전자제품에 추적기를 부착해 쓰레기의 여정을 따라간 사례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작동하는 적절한 추적 장비를 찾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위성 GPS는 너무 크거나 비쌌고, 저렴한 기기는 국경을 넘으면 작동하지 않았다. 해답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졌다.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태그였다. 이 작은 장치는 GPS 없이도 주변 120미터 내 갤럭시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교신해 위치를 알려준다. 동남아시아에서 갤럭시 점유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활용 가능한 방법이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스마트태그 98개와 GPS 추적기 55개, 총 153개의 장치를 확보했다.

다음 과제는 옷을 구하는 일이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배우 김석훈과 박진희, 방송인 줄리안, 크라잉넛의 한경록, 그리고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저자 이소연이 기꺼이 자신의 옷을 내놓았다. 기자들의 옷과 신발, 한 단체가 버리려던 의류까지 더해져 153벌의 실험 대상이 모였다. 가장 까다로운 작업은 추적기를 옷에 부착하는 일이었다. 접착제는 천과 신발 재질에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선택한 방법은 바느질이었다. 올따개로 소매의 올을 뜯어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추적기를 넣은 뒤 다시 꿰매는 방식이다. 무더운 여름날, 30시간이 넘는 작업 끝에 모든 옷에 추적기를 달았다. 미싱 기술을 가진 취재진의 배우자까지 동원된 대역사였다.

2024년 8월, 전국 각지의 의류 수거함에 추적기 달린 옷 153벌을 투입했다. 도심과 시골,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안배했다. 이제 남은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수출업체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옷이 국외에 도착하는 데 최소 한 달 반 이상 걸린다고 했다. 과연 이 작은 장치들이 먼 이국땅에서 신호를 보내올까? 4개월 후,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53벌 중 47벌(30.7%)이 국외에서 발견되었다. 김석훈이 기부한 검은색 바지는 말레이시아 조호르주의 파시르 구당 항구 컨테이너 창고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서울 마포구에서 출발해 4,500km를 이동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아동용 운동화였다. 한국에서 17,340km 떨어진 볼리비아 파타카마야, 해발 3,800m 고산지대의 작은 마을 공터에서 발견되었다. 옷들이 가장 많이 도착한 곳은 말레이시아(11벌)와 인도(11벌)였다. 말레이시아로 간 옷 중 8개는 항구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수출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로 간 헌 옷의 90%는 주변국으로 재수출된다. 가장 많이 가는 곳은 중고의류 수입을 규제하는 인도네시아다. 말레이시아를 경유하는 것이 규제를 우회하는 방법인 것이다. 인도로 간 11벌 중 9벌은 '헌 옷의 수도'라 불리는 파니파트시로 향했다. 이 도시는 세계에서 하루 250톤의 옷이 유입되어 재활용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필리핀으로 간 옷들은 지도상 좌표조차 불분명한 시골이나 창고에서 신호를 보냈다. 타이로 간 신발과 바지는 캄보디아 국경의 롱끌르아 시장에서, 페루로 간 베레모는 볼리비아 국경 근처 산골 마을로 이동했다. 흥미로운 점은 옷들이 도착한 국가 대부분이 중고의류 수입을 금지하거나 제한한다는 사실이다. 인도네시아는 2015년부터, 필리핀은 1960년대부터 헌 옷 수입을 금지했다. 페루와 볼리비아도 수입을 제한한다. 그럼에도 한국의 옷들은 편법과 불법을 통해 이 규제를 뚫고 들어가고 있었다. 선진국의 중고의류가 개발도상국으로 흘러가는 전 지구적 흐름과 정확히 일치하는 패턴이었다.

타이 아라냐쁘라시의 쓰레기 매립지. 옷과 신발, 생활 폐기물이 오랫동안 뒤섞여 쌓인 쓰레기 산이다. 땅을 빈틈없이 메운 구더기와 하늘을 가득 메운 까마귀 떼, 수도 없이 날아다니는 파리. 이곳에서 한국에서 보낸 신발을 찾던 중, 한 어린아이와 조우했다. 매립지를 관리하는 노동자의 자녀로 보이는 이 아이는 서너 살쯤 되어 보였다. 외국인이 신기한지 호기심 섞인 눈망울로 바라보더니 이쪽으로 걸어왔다. 바닥에 구더기가 가득한 터라 까치발을 들고 조심스레 걷던 나와 달리, 아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발보다 큰 신발을 신어 종종 신발이 벗겨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땅을 디디며 걸음을 이어갔다. 혹여 구더기를 맨발로 밟을까 마음을 졸였지만, 정작 아이는 덤덤했다. 이 아이에게 쓰레기 매립지는 익숙한 공간이었다.

나는 아이를 향한 시선을 쉬이 거두지 못했다. 아이의 눈망울에는 알록달록한 자연이 아니라 구더기와 파리가 가득 메운 공간이, 거친 들개와 까마귀 떼가, 하늘로 치솟은 쓰레기 산이 어렸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아이에게 '세상'은 '쓰레기 산'이 전부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국에서 3,500km 떨어진 이곳. 내가 평소에 입고 신다가 쉽게 버린 의류와 신발이 이 쓰레기 산을 더 높이 쌓고 있었다. 파니파트 표백 공장의 네 아이들, 타이 매립지의 이 아이. 어른이 된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가?

우리는 옷을 너무 쉽게 산다. 그리고 너무 쉽게 버린다. '재활용되겠지' '누군가 입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현실이 아니었다. 153개의 추적기가 보여준 진실은 명확했다. 우리가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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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어인 문장의 힘 - 하루 10분 필사, 당신의 미래가 바뀐다
케이크 팀 지음 / 케이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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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필사라는 행위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낡은 수첩에 또박또박 글씨를 옮겨 적던 모습이다. 책을 보시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반드시 손수 베껴 쓰셨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당시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복사기도 있고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으면 되는데 왜 굳이 시간을 들여 옮겨 적으시나 싶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나 역시 펜을 들고 타인의 문장을 따라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필사는 언어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유독 필사책이라는 장르가 큰 인기를 끌었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다양한 형태의 필사 전 책들이 자리를 차지했고, SNS에는 예쁜 글씨로 옮겨 쓴 문장들이 줄을 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았던 책들은 대부분 사철제본 방식으로 만들어진 리커버 에디션이었다. 사철제본이란, 책의 각 장을 실로 꿰매어 묶는 전통적인 제본 방식을 말한다. 이 방식으로 만들어진 책은 180도로 완전히 펼쳐지기 때문에 필사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책장 사이의 골이 깊지 않아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고, 펜을 움직이는 동선이 자연스럽다. 리커버 에디션이란 기존에 출간되었던 책을 새로운 디자인과 구성으로 재출간한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표지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내지 구성이나 종이 질감, 여백의 배치까지 세심하게 다시 설계한다. 특히 필사책의 경우, 손글씨를 쓰기 좋은 용지와 적절한 줄 간격, 그리고 필사 공간의 배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리커버 과정에서 이런 요소들이 면밀히 고려된다. 원문과 번역, 그리고 내가 직접 쓰는 공간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 읽는 행위와 쓰는 행위가 하나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책의 구성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인 패턴이 보인다. 먼저 유명 인물이나 작가의 명언이 제시되고, 원문이 영어라면 함께 수록된다. 그리고 나서 직접 그 문장을 따라 쓸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펼쳐진다. 여기에 더해, 해당 문장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성할 수 있는 '나의 말' 영역까지 포함되어 있다. 스스로가 문장의 의미를 내면화하고 자기 삶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도록 유도한다.

필사의 힘은 반복에서 나온다. 같은 문장을 매일 아침 펜으로 옮겨 적다 보면, 처음에는 그저 예쁜 말처럼 느껴졌던 구절이 어느 순간 내 안으로 스며든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다"라는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평범한 자기계발서의 클리셰처럼 들렸다. 하지만 열흘, 스무날 연속으로 그 문장을 손으로 써 내려가다 보니 달라졌다. 손끝에서 시작된 진동이 팔을 타고 가슴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문장이 단순히 눈으로 받아들여지는 정보가 아니라, 몸의 일부가 되는 경험이었다. 필사책이 제공하는 또 하나의 가치는 일상 속 정박지 역할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수많은 정보를 소비하지만,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은 부족하다. 아침마다 10분씩 책을 펼치고 문장을 쓰는 시간은, 그 자체로 하루를 정리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의식이 된다. 사실 필사라는 행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책을 보급하는 유일한 방법은 손으로 베껴 쓰는 것이었다. 수도원의 필경사들은 평생을 바쳐 성경을 필사했고, 동양에서도 경전과 서적을 옮겨 적는 일은 수양의 한 과정으로 여겨졌다. 디지털 시대에 다시 필사가 주목받는 이유는 역설적이다. 우리가 정보 과잉의 시대를 살면서 오히려 느림과 집중의 가치를 재발견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캡처하고 저장하는 것은 쉽지만, 그 문장이 내 안에 남지 않는다. 반면 손으로 직접 쓴 문장은 기억 속에 각인된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감동받고 다짐하지만, 실제로 삶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필사책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제공한다. 하루 10분, 한 문장을 쓰는 것. 이 작은 행동이 쌓여 습관이 되고, 습관이 삶의 태도를 바꾼다. "나는 미루지 않는다. 지금 한다"는 문장을 매일 아침 쓰다 보면, 실제로 미루던 일들을 처리하게 된다. 문장이 선언이 되고, 선언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철제본으로 만들어진 필사책을 손에 쥐고 있으면, 책 자체가 주는 물성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실로 꿰맨 부분이 보이는데, 그 정교한 수작업의 흔적이 책에 대한 애정을 더한다. 무선제본이나 떡제본처럼 접착제로 붙인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풀이 떨어져 페이지가 분리되지만, 사철제본은 내구성이 뛰어나다. 오랜 시간 사용해도 튼튼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평생 곁에 두고 반복해서 펼칠 수 있다. 필사책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기록물이다.

필사는 나 자신과의 대화다. 타인의 언어를 빌려 내 안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필사를 하면서 우리는 잠시 멈춘다. 쉼 없이 달려가던 일상에서 벗어나, 펜과 종이 앞에서 고요히 앉아 문장과 마주한다. 그 짧은 순간이 쌓여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꾼다.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마음을 거쳐 삶 전체로 확장된다. 어쩌면 필사책이 주는 진짜 선물은 완성된 책이 아니라, 매일 책을 펼치고 펜을 드는 그 순간들의 축적일지도 모른다. 오늘 쓴 한 문장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그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를 경험하는 것. 그것이 필사가 주는 진짜 의미다. 책의 의미가 정겹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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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인두투스 : 입는 인간 - 고대 가죽옷부터 조선의 갓까지, 트렌드로 읽는 인문학 이야기
이다소미 지음 / 해뜰서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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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는 언제부터 옷을 입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성경의 창세기는 흥미로운 답을 제시한다. 선악과를 먹고 자신들의 벗은 몸을 깨달은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잎으로 치마를 만들었을 때, 신은 그들을 위해 직접 가죽옷을 지어 입혔다는 이야기다. 이 신화적 서사는 옷의 두 가지 근원적 동기를 암시한다. 첫째는 부끄러움이다. 벗은 몸에 대한 수치심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특별한 감정이다. 둘째는 보호다. 무화과잎보다 튼튼한 가죽옷은 에덴동산 밖의 가혹한 환경으로부터 연약한 인체를 지켜줄 수 있었다. 부끄러움과 보호, 이 두 가지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옷을 입는 이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옷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도구 중 하나였다. 날카로운 발톱도, 두꺼운 털가죽도, 강력한 근력도 없는 인간이 혹독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취약점을 도구로 보완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모피는 그러한 도구 중 가장 오래되고 실용적인 결과물이었다. 사냥에 성공해 동물을 얻는다는 것은 동시에 식량과 의복을 확보한다는 의미였고, 이를 통해 인류는 비로소 번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옷은 오래지 않아 생존의 도구라는 본래 목적을 넘어섰다. 사회가 발전하고 계급이 형성되면서, 옷은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변모했다. 모피가 그 대표적인 예다. 한때 추위로부터 몸을 지키던 실용적 재료였던 모피는, 구하기 어렵고 귀하다는 이유로 지배계층의 전유물이 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표범 가죽을 어깨에 걸쳤을 때, 그것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신의 대리자로서의 신성함을 보여주는 표식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교황과 추기경이 순백의 어민 모피로 만든 망토를 두른 것은 고귀함과 순결함의 상징이었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왕과 최상위 귀족만 어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제한했다. 조선 시대에도 검은 담비 가죽인 초피는 너무나 귀해서 왕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귀중한 선물이었고, 명나라 사신이 공물로 요구할 정도였다. 이처럼 모피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며 발전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모피를 차지할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다수는 모피를 걸친 이를 절대 권력자로 우러러보았다. 때로는 경외의 대상이었고, 때로는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모피만큼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자극하는 소재가 또 있을까.

인류 복식사에서 또 하나의 획기적인 순간은 바지의 등장이었다. 몸에 천을 두르는 형태의 옷을 입던 인류에게, 한 다리씩 넣어 입는 바지의 발명은 진정한 혁명이었다. 최초로 바지를 만든 것은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에서 활동한 유목민족 스키타이인들로 추정된다. 왜 그들이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인생의 대부분을 말 위에서 보내는 유목민에게는 보온성과 활동성이 뛰어난 옷이 절실했다. 치마나 튜닉 같은 일체형 복식으로는 빠른 이동과 격한 활동에 한계가 있었다. 바지는 양 다리와 엉덩이를 정확하게 감싸 보호할 수 있었고, 유목 전사에게 기동성과 신체 보호를 동시에 제공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실용적인 발명이 처음에는 '야만적'인 것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바지를 북방 이민족의 복식이라 생각하며 토가와 튜닉을 고수했다. 중국 역시 바지를 입은 유목민족을 야만인으로 칭하며 거부했다. 하지만 결국 실용성은 편견을 이겼다. 로마에서 가장 먼저 바지를 착용하기 시작한 것은 군인들이었고, 중국의 조나라 무령왕은 북방식 바지를 군사 복장으로 채택해 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바지의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옷의 형태는 환경과 필요에 의해 진화하며, 진정으로 유용한 것은 문화적 편견을 넘어 결국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권력자들에게 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자신의 위엄과 권위를 과시하는 무기였다. 영국의 헨리 8세는 그 극단적인 예다. 키 190센티미터의 장신에 체중 100킬로그램이 넘는 그는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고, 그의 복식은 그러한 자신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초상화 속 헨리 8세는 다리를 벌리고 당당하게 서 있다. 어깨에는 과장되게 부풀린 패딩이 들어가 있고,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더블릿을 입었으며, 허리에는 황금 단도를 찼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과장된 크기의 코드피스다. 원래 생식기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보호대는 점차 남성성과 생식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변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짐이 곧 국가다"라고 선언한 그는 발레를 사랑했고, 오랜 수련으로 단련된 다리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위해 반짝이는 스타킹을 즐겨 신었다. 작은 체구를 감추기 위해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었고 풍성한 가발을 썼다. 그는 궁정의 복장 규정을 엄격하게 세웠고, 자신이 허락한 이들만 특정 색깔의 외투를 입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화려한 옷 뒤에는 백성들의 고통이 숨어 있었다. 루이 14세가 왕권을 강화하고 영토를 넓히는 동안, 국민들은 과중한 세금에 시달려야 했다. 사후 74년 만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그의 후손이 단두대에서 처형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본질을 채우지 못한 아름다움은 덧없다.

'호모 인두투스(Homo Indutus)', 즉 옷 입는 인간. 이 개념은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다. 옷은 인간의 필요와 욕망의 집약체이며, 개인과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적 상징이다. 우리는 추위를 막기 위해 옷을 입지만, 동시에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소속감을 표현하기 위해, 자유를 선언하기 위해 옷을 입는다. 에덴동산에서 신이 지어준 가죽옷부터 스키타이인의 바지, 중세 왕들의 모피 망토, 헨리 8세의 코드피스, 루이 14세의 스타킹, 현대의 미니스커트에 이르기까지, 옷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형태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다. 옷은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말해준다. 서민에게 옷은 생존의 도구였고, 권력자에게는 지위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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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 높이는 종목 선택법 - 사야 할 주식, 피해야 할 주식
효라클(김성효) 지음 / 황금부엉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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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주식투자에서 가장 흔한 착각은 대박 종목을 찾아내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믿는 것이다. 투자 커뮤니티는 온통 '다음 테슬라, '한국의 엔비디아'를 찾는 이야기로 넘쳐난다. 하지만 실제로 수익률을 갉아먹는 것은 잘못된 선택 한두 개다. 열심히 공부해서 10%씩 수익을 낸 다섯 개의 종목보다, 한순간의 착각으로 매수한 한 종목의 -50% 손실이 계좌를 더 크게 무너뜨린다. 이것이 바로 투자에서 '지키는 것'이 '버는 것'보다 중요한 이유다. 워런 버핏의 투자 원칙 1번이 절대 손실을 보지 마라"이고, 2번이 "1번을 절대 잊지 마라"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손실을 피하는 것 자체가 수익이다. 특히 한국 주식시장처럼 변동성이 크고, 테마와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효라클이 제시하는 '10계명'은 결국 손실을 부르는 구조적 함정을 미리 파악하자는 것이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 총수 리스크, 정치 테마, 실적 발표 전 과열, 노조 갈등 등은 모두 반복적으로 주가를 무너뜨려온 패턴들이다. 이 패턴들을 알고 있다면, 적어도 예측 가능한 손실은 피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수익률은 시장 평균을 웃돌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들은 종종 "이번엔 다르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장은 놀라울 정도로 반복적이다. 같은 실수가 다른 이름으로, 다른 시기에, 다른 종목에서 되풀이된다. 역사를 아는 투자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수익률의 차이를 만든다.


한국 주식시장은 독특하다. 선진국 시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감정적이고 이슈 중심적이다. 미국 시장이 기업의 실적과 미래 현금흐름에 집중한다면, 한국 시장은 '이야기'에 집중한다. 정부 정책 발표 하나, 유명인의 언급 하나에 특정 섹터 전체가 들썩인다. 이런 시장 구조는 양날의 검이다. 단기적으로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함정이 된다. 코스닥 시장이 대표적이다. 나스닥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같은 혁신 기업들이 실제로 성장하며 지수를 끌어올렸다. 반면 코스닥은 테마주들이 번갈아가며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며 지수만 유지한다. 개별 종목을 보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자리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AI 관련주', '바이오 임상, '정부 정책 수혜주' 같은 키워드는 단기간 폭발적 관심을 받지만, 실제 실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투자자들은 이야기에 매혹되어 매수하고, 실망스러운 실적에 뒤늦게 매도한다. 이 과정에서 돈은 일찍 들어간 소수에게서 늦게 들어온 다수에게로 이동한다. 효라클이 강조하는 것은 이런 착시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뉴스에 나온다고, 커뮤니티에서 화제라고, 유튜브에서 추천한다고 무작정 따라가서는 안 된다. 특히 코스닥 시장에서 장기투자를 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게임이다. PER은 높지만 실제 이익은 없거나 미미 한 기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이 시장의 특성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단타와 장타를 혼동하지 말고, 테마주와 실적주를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광의 정점에서는 조심하고, 침묵의 바닥에서는 용기를 내야 한다.


주식시장에는 역설이 있다. "좋은 실적이 발표되면 주가가 떨어진다." 처음 투자를 시작한 사람들은 이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실적이 좋으면 당연히 주가도 올라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시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주가는 '미래의 기대'를 반영한다. 좋은 실적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면, 그 기대를 먹고 주가는 미리 오른다. 실적 발표 전 몇 주, 심지어 몇 달 전부터 주가는 상승한다. 그리고 실제로 좋은 실적이 발표되는 순간, '기대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그러면 더 이상 오를 이유가 없다. 이것이 바로 '재료 소멸'이다. 셀트리온 사례가 전형적이다. 램시마의 유럽 판매 호조, 트루 시마 허가, 코스피 이전 상장 등 온갖 긍정적 재료가 쏟아졌고, 주가는 30만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그 모든 재료가 실현된 뒤, 주가는 오히려 하락했다. 왜? 더 이상 새로운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대형주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중소형주, 테마주에서는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계약 체결, 정부 과제 선정, 신제품 출시' 같은 뉴스가 나오면 주가는 급등한다. 하지만 그 뉴스가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투자자들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종목으로 옮겨간다. 따라서 실적 발표 직전에 매수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미 기대는 주가에 반영되어 있고,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 급락하고, 기대를 충족해도 '재료 소멸'로 하락할 수 있다. 오히려 실적 발표 직후, 주가가 조정받을 때가 진짜 매수 타이밍일 수 있다. 그때는 기대가 아니라 실제 숫자를 보고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별 기업의 실적이나 기술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구조적 리스크다.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구조적 취약점이 있으면 언젠가 그것이 주가의 발목을 잡는다. 첫째, 중국 리스크다. 중국은 더 이상 '짝퉁'을 만드는 나라가 아니다. 정부 주도로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산업을 육성하고, 물량 공세로 가격을 무너뜨린다. 태양광, 배터리,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등 여러 산업에서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밀려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언젠가 가격 경쟁에서 패배할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것이다. 둘째, 총수 리스크다. 한국의 재벌 구조에서 총수는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다. 총수가 구속되면 기업의 의사결정이 마비되고, 출소하면 주가가 반등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과 기록이 있는 총수가 이끄는 기업은 언제든 또다시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법과 원칙보다 개인의 판단이 우선시되는 구조 자체가 위험하다. 셋째, 정치 테마 리스크다. 정권과 가까운 기업은 호황을 누리지만, 정권이 바뀌거나 스캔들이 터지면 급락한다. 박근혜 정권 때의 최순실 관련주들, 윤석열 정권의 김건희 관련 의혹 기업들이 겪은 주가 폭락은 정치 리스크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준다. 정치는 예측 불가능하고, 감정적이며, 빠르게 변한다. 그런 변수에 의존하는 투자는 도박에 가깝다. 넷째, 노조 리스크다. 강성 노조는 파업과 협상 결렬로 기업 운영을 마비시킬 수 있다. 현대차, 대한항공 같은 기업들이 수년간 노조 문 제로 주가 상승에 제약을 받았다. 노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노사간 소통이 단절되고 갈등이 구조화된 기업이 문제다. 이 모든 리스크는 기업의 본질적 가치와는 별개로 주가를 흔든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실적이 좋아도, 이런 구조적 취약점 이 있다면 장기투자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다.


투자는 확률 게임이다. 100% 확실한 종목은 없다. 하지만 확률을 높일 수는 있다. 그 방법은 불리한 게임을 피하는 것이다. 모 아니면 도 종목은 불리한 게임이다. 바이오 임상, 게임 신작, 신제품 출시 등은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쪽박이다. 확률은 50대 50이 아니다. 대부분 실패한다. 성공 확률이 10%인데 성공하면 10배 오른다는 기대로 투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작년에 많이 오른 종목도 불리하다. 이미 기대가 충분히 반영되었고, 신선함이 사라졌다. 한국 시장은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작년의 스타는 올해의 평범이 된다. 에코프로가 그랬고, 수많은 테마주들이 그랬다. 사업 다각화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 부문이 잘돼도 다른 부문이 발목을 잡는다. 물적분할은 주주 가치를 희석시킨다. 집중된 기업이 더 명확하고 예측 가능하다.

결국 효라클이 말하는 '10계명'은 확률을 높이는 원칙이다. 이 원칙들을 지킨다고 100% 수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예측 가능한 손실은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손실을 피하는 사람이 결국 수익을 낸다.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한 번의 대박이 아니라 꾸준한 수익이다. 화려한 성공담보다 조용한 복리의 힘이 더 강하다. 그리고 그 복리는 손실을 최소화할 때 극대화된다. 효라클의 접근법은 화려하지 않다. 대박 종목을 찾아주지도 않는다. 대신 무너질 종목을 피하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수익률을 높이는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법이다. 시장의 소음 속에서 침착함을 유지하고, 착시 속에서 본질을 보며, 열광 속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는 투자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살아남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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