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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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옷, 누가 입겠지."

옷장을 정리하며 우리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조금 작아진 청바지, 유행이 지난 니트, 한 번도 입지 않은 셔츠를 비닐봉지에 담아 아파트 단지 한쪽에 놓인 의류 수거함으로 향한다. 초록색 철제 함에 옷을 밀어 넣는 순간, 우리의 책임은 거기서 끝난다. 혹은 끝났다고 믿는다. 한국은 연간 30만 톤의 중고의류를 수출하는 세계 4위 수출국이다. 그런데 공식 통계상 우리나라에서 수거되는 폐의류는 연간 10만 톤에 불과하다. 이 기묘한 불균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거함에 넣은 옷보다 더 많은 옷이 국경을 넘어간다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이 옷들을 모으고, 분류하고, 선적하여 먼 나라로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취재진이 추적기를 옷에 달기로 결심한 것은 바로 이 불투명함 때문이었다. 슬로베니아의 탐사보도 언론이 플라스틱병과 전자제품에 추적기를 부착해 쓰레기의 여정을 따라간 사례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작동하는 적절한 추적 장비를 찾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위성 GPS는 너무 크거나 비쌌고, 저렴한 기기는 국경을 넘으면 작동하지 않았다. 해답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졌다.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태그였다. 이 작은 장치는 GPS 없이도 주변 120미터 내 갤럭시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교신해 위치를 알려준다. 동남아시아에서 갤럭시 점유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활용 가능한 방법이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스마트태그 98개와 GPS 추적기 55개, 총 153개의 장치를 확보했다.

다음 과제는 옷을 구하는 일이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배우 김석훈과 박진희, 방송인 줄리안, 크라잉넛의 한경록, 그리고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저자 이소연이 기꺼이 자신의 옷을 내놓았다. 기자들의 옷과 신발, 한 단체가 버리려던 의류까지 더해져 153벌의 실험 대상이 모였다. 가장 까다로운 작업은 추적기를 옷에 부착하는 일이었다. 접착제는 천과 신발 재질에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선택한 방법은 바느질이었다. 올따개로 소매의 올을 뜯어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추적기를 넣은 뒤 다시 꿰매는 방식이다. 무더운 여름날, 30시간이 넘는 작업 끝에 모든 옷에 추적기를 달았다. 미싱 기술을 가진 취재진의 배우자까지 동원된 대역사였다.

2024년 8월, 전국 각지의 의류 수거함에 추적기 달린 옷 153벌을 투입했다. 도심과 시골,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안배했다. 이제 남은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수출업체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옷이 국외에 도착하는 데 최소 한 달 반 이상 걸린다고 했다. 과연 이 작은 장치들이 먼 이국땅에서 신호를 보내올까? 4개월 후,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53벌 중 47벌(30.7%)이 국외에서 발견되었다. 김석훈이 기부한 검은색 바지는 말레이시아 조호르주의 파시르 구당 항구 컨테이너 창고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서울 마포구에서 출발해 4,500km를 이동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아동용 운동화였다. 한국에서 17,340km 떨어진 볼리비아 파타카마야, 해발 3,800m 고산지대의 작은 마을 공터에서 발견되었다. 옷들이 가장 많이 도착한 곳은 말레이시아(11벌)와 인도(11벌)였다. 말레이시아로 간 옷 중 8개는 항구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수출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로 간 헌 옷의 90%는 주변국으로 재수출된다. 가장 많이 가는 곳은 중고의류 수입을 규제하는 인도네시아다. 말레이시아를 경유하는 것이 규제를 우회하는 방법인 것이다. 인도로 간 11벌 중 9벌은 '헌 옷의 수도'라 불리는 파니파트시로 향했다. 이 도시는 세계에서 하루 250톤의 옷이 유입되어 재활용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필리핀으로 간 옷들은 지도상 좌표조차 불분명한 시골이나 창고에서 신호를 보냈다. 타이로 간 신발과 바지는 캄보디아 국경의 롱끌르아 시장에서, 페루로 간 베레모는 볼리비아 국경 근처 산골 마을로 이동했다. 흥미로운 점은 옷들이 도착한 국가 대부분이 중고의류 수입을 금지하거나 제한한다는 사실이다. 인도네시아는 2015년부터, 필리핀은 1960년대부터 헌 옷 수입을 금지했다. 페루와 볼리비아도 수입을 제한한다. 그럼에도 한국의 옷들은 편법과 불법을 통해 이 규제를 뚫고 들어가고 있었다. 선진국의 중고의류가 개발도상국으로 흘러가는 전 지구적 흐름과 정확히 일치하는 패턴이었다.

타이 아라냐쁘라시의 쓰레기 매립지. 옷과 신발, 생활 폐기물이 오랫동안 뒤섞여 쌓인 쓰레기 산이다. 땅을 빈틈없이 메운 구더기와 하늘을 가득 메운 까마귀 떼, 수도 없이 날아다니는 파리. 이곳에서 한국에서 보낸 신발을 찾던 중, 한 어린아이와 조우했다. 매립지를 관리하는 노동자의 자녀로 보이는 이 아이는 서너 살쯤 되어 보였다. 외국인이 신기한지 호기심 섞인 눈망울로 바라보더니 이쪽으로 걸어왔다. 바닥에 구더기가 가득한 터라 까치발을 들고 조심스레 걷던 나와 달리, 아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발보다 큰 신발을 신어 종종 신발이 벗겨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땅을 디디며 걸음을 이어갔다. 혹여 구더기를 맨발로 밟을까 마음을 졸였지만, 정작 아이는 덤덤했다. 이 아이에게 쓰레기 매립지는 익숙한 공간이었다.

나는 아이를 향한 시선을 쉬이 거두지 못했다. 아이의 눈망울에는 알록달록한 자연이 아니라 구더기와 파리가 가득 메운 공간이, 거친 들개와 까마귀 떼가, 하늘로 치솟은 쓰레기 산이 어렸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아이에게 '세상'은 '쓰레기 산'이 전부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국에서 3,500km 떨어진 이곳. 내가 평소에 입고 신다가 쉽게 버린 의류와 신발이 이 쓰레기 산을 더 높이 쌓고 있었다. 파니파트 표백 공장의 네 아이들, 타이 매립지의 이 아이. 어른이 된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가?

우리는 옷을 너무 쉽게 산다. 그리고 너무 쉽게 버린다. '재활용되겠지' '누군가 입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현실이 아니었다. 153개의 추적기가 보여준 진실은 명확했다. 우리가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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