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소한 갈등
민현기 지음 / Book Insight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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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갈등을 싫어한다. 불편하고, 피곤하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것. 그러나 돌이켜보면 갈등 없는 관계란 실은 관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런 마찰 없이 매끄럽게만 흘러가는 만남은 진짜 만남이라기보다 예의상 주고받는 인사에 가깝다. 진심이 오가는 곳엔 언제나 어긋남이 있고, 그 어긋남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간다. 갈등을 바람에 비유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불어오는 것이다. 어떤 바람은 부드럽게 등을 밀어주지만, 어떤 바람은 거세게 흔들어댄다. 중요한 것은 바람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돛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없앨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끊임없이 실패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관리할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그것을 다룰 여지가 생긴다. 생각해보면 갈등은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말투 하나, 표정 하나, 무심코 던진 한마디. 그 자체로는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켜켜이 쌓여 어느새 거대한 벽이 된다. 누군가는 이를 과장이라 할지 모르지만, 관계 속에서 작은 상처들이 모여 큰 균열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문제는 그 균열이 서서히 진행된다는 점이다. 오늘 당장 관계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물감이 번지듯 조금씩 스며들다가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갈등 앞에서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우리의 뇌는 위협을 감지하면 생존 모드로 전환되고, 그 순간 논리와 이해는 뒷전이 된다. 상대의 말보다 그 말이 내게 어떻게 들렸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그 감정에 휩싸여 우리는 방어하고 공격한다. 하지만 감정은 파도와 같아서, 아무리 높이 솟아올라도 결국엔 잠잠해진다. 문제는 우리가 그 파도를 계속 일으킨다는 것이다. 똑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그때 했어야 할 말을 되새기며 감정을 재생산한다. 그렇게 90초면 충분히 가라앉을 감정을 몇 시간, 며칠, 때로는 몇 년씩 붙들고 산다. 감정을 없앨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것이다. 다만 그 감정이 나를 지배하게 두지 않는 연습은 할 수 있다. 숨을 고르고, 잠시 멈추고,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이름을 붙여보는 것. 그 작은 거리두기만으로도 감정의 포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속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착각한다. 늦게 오는 친구를 보며 성의 없다고 판단하고, 말을 아끼는 동료를 보며 비협조적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그 행동 뒤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맥락이 있다. 친구에게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수 있고, 동료는 과거의 상처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일 수 있다. 갈등을 제대로 보려면 렌즈를 바꿔야 한다. 표면에 드러난 현상이 아니라 그 안의 맥락을, 행동이 아니라 욕구를 봐야 한다.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닌지, 그 사람이 정말 몰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이런 질문들이 우리를 판단에서 이해로 이끈다. 존중이란 결국 '다시 보는 것'이다. 한 번 보고 결론 내리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살피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것이야말로 갈등을 관계 회복의 기회로 바꾸는 열쇠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고. 하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하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해야 한다.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고 참으면 배려처럼 보이지만, 실은 회피에 가깝다. 상대가 알아주길 기대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다. 그렇게 쌓인 감정은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터져나온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상대는 당황한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라고. 갈등을 줄이려면 먼저 말해야 한다. 내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놓는 것, 그것이 상대의 진심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된다. 물론 어떻게 말하느냐도 중요하다. 판단하듯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궁금해서 묻는 것,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전하는 것. 이런 작은 차이가 대화를 공격이 아닌 소통으로 만든다.

갈등을 한자로 쓰면 칡 갈(葛)에 등나무 등(藤)이다. 두 덩굴이 서로 엉켜있는 모습. 이 표현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갈등은 뿌리부터 다른 두 나무의 전쟁이 아니라, 함께 자라다 보니 어느새 엉켜버린 덩굴이다.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하나씩 풀어가면 결국 각자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엉킨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없는 척하거나 외면한다고 풀리지 않는다. 그것이 불편하더라도 마주 보고, 어디서부터 엉켰는지 살피고, 천천히 풀어가야 한다. 때로는 함께 풀어야 하고, 때로는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다. 정답은 없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 것, 그것이 관계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갈등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신호이자,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다.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자. 대신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우자. 덩굴은 아무리 엉켜도, 풀고자 하면 풀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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