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인두투스 : 입는 인간 - 고대 가죽옷부터 조선의 갓까지, 트렌드로 읽는 인문학 이야기
이다소미 지음 / 해뜰서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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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는 언제부터 옷을 입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성경의 창세기는 흥미로운 답을 제시한다. 선악과를 먹고 자신들의 벗은 몸을 깨달은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잎으로 치마를 만들었을 때, 신은 그들을 위해 직접 가죽옷을 지어 입혔다는 이야기다. 이 신화적 서사는 옷의 두 가지 근원적 동기를 암시한다. 첫째는 부끄러움이다. 벗은 몸에 대한 수치심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특별한 감정이다. 둘째는 보호다. 무화과잎보다 튼튼한 가죽옷은 에덴동산 밖의 가혹한 환경으로부터 연약한 인체를 지켜줄 수 있었다. 부끄러움과 보호, 이 두 가지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옷을 입는 이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옷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도구 중 하나였다. 날카로운 발톱도, 두꺼운 털가죽도, 강력한 근력도 없는 인간이 혹독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취약점을 도구로 보완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모피는 그러한 도구 중 가장 오래되고 실용적인 결과물이었다. 사냥에 성공해 동물을 얻는다는 것은 동시에 식량과 의복을 확보한다는 의미였고, 이를 통해 인류는 비로소 번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옷은 오래지 않아 생존의 도구라는 본래 목적을 넘어섰다. 사회가 발전하고 계급이 형성되면서, 옷은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변모했다. 모피가 그 대표적인 예다. 한때 추위로부터 몸을 지키던 실용적 재료였던 모피는, 구하기 어렵고 귀하다는 이유로 지배계층의 전유물이 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표범 가죽을 어깨에 걸쳤을 때, 그것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신의 대리자로서의 신성함을 보여주는 표식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교황과 추기경이 순백의 어민 모피로 만든 망토를 두른 것은 고귀함과 순결함의 상징이었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왕과 최상위 귀족만 어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제한했다. 조선 시대에도 검은 담비 가죽인 초피는 너무나 귀해서 왕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귀중한 선물이었고, 명나라 사신이 공물로 요구할 정도였다. 이처럼 모피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며 발전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모피를 차지할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다수는 모피를 걸친 이를 절대 권력자로 우러러보았다. 때로는 경외의 대상이었고, 때로는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모피만큼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자극하는 소재가 또 있을까.

인류 복식사에서 또 하나의 획기적인 순간은 바지의 등장이었다. 몸에 천을 두르는 형태의 옷을 입던 인류에게, 한 다리씩 넣어 입는 바지의 발명은 진정한 혁명이었다. 최초로 바지를 만든 것은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에서 활동한 유목민족 스키타이인들로 추정된다. 왜 그들이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인생의 대부분을 말 위에서 보내는 유목민에게는 보온성과 활동성이 뛰어난 옷이 절실했다. 치마나 튜닉 같은 일체형 복식으로는 빠른 이동과 격한 활동에 한계가 있었다. 바지는 양 다리와 엉덩이를 정확하게 감싸 보호할 수 있었고, 유목 전사에게 기동성과 신체 보호를 동시에 제공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실용적인 발명이 처음에는 '야만적'인 것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바지를 북방 이민족의 복식이라 생각하며 토가와 튜닉을 고수했다. 중국 역시 바지를 입은 유목민족을 야만인으로 칭하며 거부했다. 하지만 결국 실용성은 편견을 이겼다. 로마에서 가장 먼저 바지를 착용하기 시작한 것은 군인들이었고, 중국의 조나라 무령왕은 북방식 바지를 군사 복장으로 채택해 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바지의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옷의 형태는 환경과 필요에 의해 진화하며, 진정으로 유용한 것은 문화적 편견을 넘어 결국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권력자들에게 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자신의 위엄과 권위를 과시하는 무기였다. 영국의 헨리 8세는 그 극단적인 예다. 키 190센티미터의 장신에 체중 100킬로그램이 넘는 그는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고, 그의 복식은 그러한 자신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초상화 속 헨리 8세는 다리를 벌리고 당당하게 서 있다. 어깨에는 과장되게 부풀린 패딩이 들어가 있고,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더블릿을 입었으며, 허리에는 황금 단도를 찼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과장된 크기의 코드피스다. 원래 생식기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보호대는 점차 남성성과 생식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변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짐이 곧 국가다"라고 선언한 그는 발레를 사랑했고, 오랜 수련으로 단련된 다리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위해 반짝이는 스타킹을 즐겨 신었다. 작은 체구를 감추기 위해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었고 풍성한 가발을 썼다. 그는 궁정의 복장 규정을 엄격하게 세웠고, 자신이 허락한 이들만 특정 색깔의 외투를 입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화려한 옷 뒤에는 백성들의 고통이 숨어 있었다. 루이 14세가 왕권을 강화하고 영토를 넓히는 동안, 국민들은 과중한 세금에 시달려야 했다. 사후 74년 만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그의 후손이 단두대에서 처형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본질을 채우지 못한 아름다움은 덧없다.

'호모 인두투스(Homo Indutus)', 즉 옷 입는 인간. 이 개념은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다. 옷은 인간의 필요와 욕망의 집약체이며, 개인과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적 상징이다. 우리는 추위를 막기 위해 옷을 입지만, 동시에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소속감을 표현하기 위해, 자유를 선언하기 위해 옷을 입는다. 에덴동산에서 신이 지어준 가죽옷부터 스키타이인의 바지, 중세 왕들의 모피 망토, 헨리 8세의 코드피스, 루이 14세의 스타킹, 현대의 미니스커트에 이르기까지, 옷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형태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다. 옷은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말해준다. 서민에게 옷은 생존의 도구였고, 권력자에게는 지위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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