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어인 문장의 힘 - 하루 10분 필사, 당신의 미래가 바뀐다
케이크 팀 지음 / 케이크 / 202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필사라는 행위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낡은 수첩에 또박또박 글씨를 옮겨 적던 모습이다. 책을 보시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반드시 손수 베껴 쓰셨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당시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복사기도 있고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으면 되는데 왜 굳이 시간을 들여 옮겨 적으시나 싶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나 역시 펜을 들고 타인의 문장을 따라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필사는 언어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유독 필사책이라는 장르가 큰 인기를 끌었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다양한 형태의 필사 전 책들이 자리를 차지했고, SNS에는 예쁜 글씨로 옮겨 쓴 문장들이 줄을 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았던 책들은 대부분 사철제본 방식으로 만들어진 리커버 에디션이었다. 사철제본이란, 책의 각 장을 실로 꿰매어 묶는 전통적인 제본 방식을 말한다. 이 방식으로 만들어진 책은 180도로 완전히 펼쳐지기 때문에 필사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책장 사이의 골이 깊지 않아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고, 펜을 움직이는 동선이 자연스럽다. 리커버 에디션이란 기존에 출간되었던 책을 새로운 디자인과 구성으로 재출간한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표지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내지 구성이나 종이 질감, 여백의 배치까지 세심하게 다시 설계한다. 특히 필사책의 경우, 손글씨를 쓰기 좋은 용지와 적절한 줄 간격, 그리고 필사 공간의 배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리커버 과정에서 이런 요소들이 면밀히 고려된다. 원문과 번역, 그리고 내가 직접 쓰는 공간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 읽는 행위와 쓰는 행위가 하나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책의 구성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인 패턴이 보인다. 먼저 유명 인물이나 작가의 명언이 제시되고, 원문이 영어라면 함께 수록된다. 그리고 나서 직접 그 문장을 따라 쓸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펼쳐진다. 여기에 더해, 해당 문장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성할 수 있는 '나의 말' 영역까지 포함되어 있다. 스스로가 문장의 의미를 내면화하고 자기 삶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도록 유도한다.

필사의 힘은 반복에서 나온다. 같은 문장을 매일 아침 펜으로 옮겨 적다 보면, 처음에는 그저 예쁜 말처럼 느껴졌던 구절이 어느 순간 내 안으로 스며든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다"라는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평범한 자기계발서의 클리셰처럼 들렸다. 하지만 열흘, 스무날 연속으로 그 문장을 손으로 써 내려가다 보니 달라졌다. 손끝에서 시작된 진동이 팔을 타고 가슴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문장이 단순히 눈으로 받아들여지는 정보가 아니라, 몸의 일부가 되는 경험이었다. 필사책이 제공하는 또 하나의 가치는 일상 속 정박지 역할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수많은 정보를 소비하지만,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은 부족하다. 아침마다 10분씩 책을 펼치고 문장을 쓰는 시간은, 그 자체로 하루를 정리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의식이 된다. 사실 필사라는 행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책을 보급하는 유일한 방법은 손으로 베껴 쓰는 것이었다. 수도원의 필경사들은 평생을 바쳐 성경을 필사했고, 동양에서도 경전과 서적을 옮겨 적는 일은 수양의 한 과정으로 여겨졌다. 디지털 시대에 다시 필사가 주목받는 이유는 역설적이다. 우리가 정보 과잉의 시대를 살면서 오히려 느림과 집중의 가치를 재발견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캡처하고 저장하는 것은 쉽지만, 그 문장이 내 안에 남지 않는다. 반면 손으로 직접 쓴 문장은 기억 속에 각인된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감동받고 다짐하지만, 실제로 삶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필사책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제공한다. 하루 10분, 한 문장을 쓰는 것. 이 작은 행동이 쌓여 습관이 되고, 습관이 삶의 태도를 바꾼다. "나는 미루지 않는다. 지금 한다"는 문장을 매일 아침 쓰다 보면, 실제로 미루던 일들을 처리하게 된다. 문장이 선언이 되고, 선언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철제본으로 만들어진 필사책을 손에 쥐고 있으면, 책 자체가 주는 물성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실로 꿰맨 부분이 보이는데, 그 정교한 수작업의 흔적이 책에 대한 애정을 더한다. 무선제본이나 떡제본처럼 접착제로 붙인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풀이 떨어져 페이지가 분리되지만, 사철제본은 내구성이 뛰어나다. 오랜 시간 사용해도 튼튼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평생 곁에 두고 반복해서 펼칠 수 있다. 필사책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기록물이다.

필사는 나 자신과의 대화다. 타인의 언어를 빌려 내 안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필사를 하면서 우리는 잠시 멈춘다. 쉼 없이 달려가던 일상에서 벗어나, 펜과 종이 앞에서 고요히 앉아 문장과 마주한다. 그 짧은 순간이 쌓여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꾼다.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마음을 거쳐 삶 전체로 확장된다. 어쩌면 필사책이 주는 진짜 선물은 완성된 책이 아니라, 매일 책을 펼치고 펜을 드는 그 순간들의 축적일지도 모른다. 오늘 쓴 한 문장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그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를 경험하는 것. 그것이 필사가 주는 진짜 의미다. 책의 의미가 정겹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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