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부의 본질 현대지성 클래식 73
크세노폰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안다고 생각한다. 아테네 광장에서 청년들을 현혹했다는 죄목으로 독배를 마신 철학자, "너 자신을 알라"는 금언을 남긴 현자. 그러나 크세노폰이 기록한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아는 그 초월적 사상가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세 차례 전쟁터에 나간 중장보병이었고, 가정을 경영하는 방법을 논했으며, 올리브와 포도 농사의 수확 시기를 정확히 알고 있던 실천가였다. 플라톤이 이데아의 세계로 소크라테스를 끌어올렸다면, 크세노폰은 그를 땅 위에 단단히 세워두었 다. <소크라테스 부의 본질>은 그래서 독특하다. 책에는 영혼의 불멸이나 진리의 탐구 같은 거창한 주제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가산을 늘리는 법, 아내와 역할을 분담하는 법, 관리인을 근면하게 만드는 법, 황폐한 땅을 사서 가치를 높이는 법이 나온다. 형이상학이 아니라 형이하학, 사유가 아니라 경영,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기원전 362년에 쓰였다는 사실이다. 인류 최초의 경영학 교과서라 불릴 만하다. '오이코노미코스'라는 원제는 '집(오이코스)'과 ‘관리(노모스)'의 결합이다. 오늘날 경제학(Economics)의 어원이 된 이 단어는, 당시에는 가정의 모든 관리 활동을 포괄 하는 개념이었다. 재산 관리, 노예 관리, 가족 구성원의 역할 분담, 농업 경영, 심지어 도덕적 실천까지 포함했다. 동양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닮아 있다. 개인의 수양에서 출발해 가정을 바로 세우고, 그것이 국가 경영의 토대가 된다는 사고 방식 말이다.


책은 소크라테스와 크리토불로스의 대화를 이야기 한다. 크리토로스는 큰 재산도 있지만 늘 돈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가진 것이 거의 없지만 스스로를 부유하다고 말한다. 이 역설적 대화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재산'의 정의 를 새롭게 세운다. 그에 따르면 재산이란 '어떤 사람의 소유물 전체'가 아니다. 정확히는 그 사람이 사용할 줄 아는 것 만이 재산이다. 피리를 연주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피리는 재산이 아니다. 말을 다룰 줄 모르는 사람에게 말은 짐일 뿐이다. 심지어 적까지도, 활용할 줄 안다면 재산이 될 수 있다. 이 논리는 가혹하면서도 명료하다. 소유는 능력 없이 무의미하다. 이 정의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날카롭게 꽂힌다. 우리는 투자 정보를 수집하고, 자산을 불리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정작 그 자산을 '어떻게 배치하고, 언제 써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은 부족하다. 부동산을 여러 채 가지고 있어도 불안하고, 주식 계좌에 큰 수익이 났어도 허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라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대는 그것을 지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책에 등장하는 이스코마코스는 이 책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아테네에서 '아름답고 좋은 사람(칼로카가토스)'으로 불리는 모범적 가장이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가정 경영의 비법을 묻는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질서입니다:" 이 스코마코스는 열다섯 살에 시집온 아내에게 화장법이나 요리가 아니라 '질서'를 가르쳤다. 집 안의 모든 물건에는 제자리에 가 있어야 하고, 모든 역할에는 담당자가 있어야 하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합창단이 제각각 노래하면 소음이지만, 질서 있게 화음을 이루면 음악이 된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내를 동침의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로 대했다. 함께 자녀를 교육하고, 재산을 지키며, 노년을 준비하는 파트너. 이것이 공동의 이익이자, 가정 경영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대화 속에는 고대 그리스의 가부장적 시각이 묻어 있다. "아내가 대관절 무엇을 알고 있었겠습니까" 같은 표현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역할 분담과 상호 존중에 기반한 경영 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흥미로운 대목은 화장과 외모에 관한 대화다. 짙은 화장을 하고 높은 굽의 신발을 신은 아내에게 이스코마코스는 꾸짖지 않는다. 대신 질문한다. "당신은 나를 속이려 하는가, 아니면 함께 진실하게 살려 하는가?" 그리고 땀 흘려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며 말한다. "건강한 몸과 성실한 노동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화장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거울 치료'다. 상대를 변화시 키려면 먼저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농장 경영에 관한 이야기다. 현대 독자에게는 다소 낯선 주제일 수 있지만, 여기에 이 책의 정수가 담겨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농사를 지어본 적 없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스코마코스와의 대화를 통해 깨닫는다. 자신이 몰랐다고 생각한 것을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이것이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의 핵심이다. 질문을 통해 상대 안에 잠재된 앎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스코마코스는 말한다. "잘 가꿔진 땅은 사지 마십시오." 역설적이지만 이유는 명확하다. 이미 완성 된 땅을 사면 그저 유지하는 수준에 머문다. 하지만 버려진 땅, 잡초만 무성한 헐값의 땅을 사서 가꾸면 가치는 몇 배로 뛴다. 물론 이것은 농사를 사랑하고, 땀 흘릴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는 또한 강조한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 기술은 핑계를 댈 여지가 있다. 시장이 나빠서, 운이 없어서, 경쟁자가 강해서. 하지만 농사는 다르다. 씨를 뿌리고 가꾼 만큼 정확히 수확한다. 방치된 땅은 주인의 게으름을 적나라하게 증언한다. 이것은 비즈니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장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성실히 준비하고 실행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관리인의 자질에 관한 대화도 인상적이다. 이스코마코스는 근면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다. 그러나 근면함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인은 관대해야 하고, 공정해야 하며, 신상필벌을 명확히 해야 한다.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훌륭한 일꾼이 가장 낙담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자기 일을 다 해내고도, 게으름뱅이와 똑같은 대우를 받을 때입니다." 이 한 문장은 조직 경영의 본질을 꿰뚫는다.


책에는 페르시아 왕의 일화가 등장한다. 왕이 좋은 말을 빨리 살찌우고 싶어 전문가에게 물었다. 전문가는 단 한단어로 답했다. "주인의 눈." 이 말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유능한 관리인을 두어도 주인의 눈이 닿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러나 '주인의 눈'이란 감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심이고, 이해이며, 책임이다. 내가 책임지는 영역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관찰하며, 개입하는 태도. 오늘날 많은 경영자들 이 데이터와 보고서에 의존하지만, 정작 현장의 온도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크라테스는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가산을, 사업을, 삶을 정말 보고 있습니까?" 또한 이스코마코스는 ' 다스리는 능력 '에 대해 논한다. 진정 강력 한 지휘관은 가장 힘센 자도, 창을 잘 던지는 자도 아니다. 병사들이 " 불 속이라도 저 사람을 따르겠다 "는 마음을 먹게 만드는 사람, 그가 진짜 강력한 지휘관이다. 이것은 가정 경영에도, 사업 경영에도 적용된다. 진정한 리더십은 위계나 권위가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이스코마코스는 스스로를 이렇게 해명한다. "나는 아무도 부당하게 대우하지 않고, 내 능력이 닿는 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건넵니다." 이것이 그가 존경받는 이유다. 소크라테스는 이 대화를 통해 깨닫는다. 다스리는 능력은 단번에 터득할 수 없으며, 체계적 교육과 좋은 성품, 그리고 '신적인 탁월함'이 필요하다고. 여기서 신적 탁월 함이란 초월적 능력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뜻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큰 수확은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을 체험했다는 점이다. 그는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질문을 던지고, 상대의 답을 경청하며, 함께 진리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상대는 스스로 깨닫는다. 자신이 몰랐다고 생각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가능함이다. 존중의 태도다. 상대를 가르침의 대상이 아니라 대화의 파트너로 대한다. 심지어 이스코마코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질문을 던진다. 위계가 뒤바뀌는 순간이다. 이것이 진정한 평등이다. 지식의 양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상대를 존중하며 대화하는가, 대부분의 대화는 설득이거나 설명이다. 나의 의견을 관철시키거나, 나의 지식을 전달하는 데 급급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보여준다. 진정한 대화는 상대 안에서 답을 끌어내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배운다는 것이다. 2,400년 전 소크라테스가 던진 질문은 오늘날 더욱 절실하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지만 판단의 기준은 희미하다. 투자 정보는 넘쳐나지만, 내 삶을 지휘하는 감각은 약하다. 재산은 늘어나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 다. 소크라테스는 단언한다. 질서 없는 풍요는 가난보다 위험하며, 관리되지 않은 재산은 결국 주인을 지배하게 된다고.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가진 것을 얼마나 질서 있게 다룰 수 있는가'다. 이것이 부의 본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되받아치는 기술 - 무례한 말로 선 넘는 상대에게 보내는 통쾌한 스톱 사인!, 개정판
이오타 다쓰나리 지음, 서수지 옮김, 주노 그림 /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며칠 전, 회사 복도에서 한 선배와 마주쳤다. 그는 내 옷차림을 훑어보더니 "요즘 너무 편하게 입고 다니는 거 아니야? 좀 더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냐?"라고 말했다.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하루 종일 그 말이 맴돌았다. '내가 그렇게 이상하게 보였나? 아니, 애초에 저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한 거지?' 분노와 자책이 뒤섞였다. 비슷한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 친구가 내 외모를 놀렸을 때, 대학 때 선배가 내 전공 선택을 비웃었을 때, 가족 모임에서 친척이 내 연애사를 공개적으로 물었을 때. 그때마다 나는 말문이 막혔고, 뒤늦게야 '그때 이렇게 말할 걸'이라는 후회만 쌓여갔다. 그 후회들은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 가끔씩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되받아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하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일상을 보내다가 갑자기 날아온 무례한 말은 우리의 사고 회로를 순간적으로 멈춰버린다. 그리고 '내가 예민한 걸까?', '혹시 내가 정말 잘못한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또 다른 이유는 관계의 파탄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 상사나 오랜 친구, 가족처럼 계속 마주쳐야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맞섰다가 더 큰 문제가 되면 어쩌지?', '분위기 망치는 사 람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입을 막는다. 결국 참는 것이 더 쉬운 선택처럼 느껴지고, 우리는 그 순간을 넘긴다. 하지만 그렇게 넘긴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응어리가 되고, 어느 순간 폭발하거나 스스로 를 갉아먹는 독이 된다. 나는 그런 감정들을 너무 오래 품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되받아친다는 것은 상대를 공격하거나 복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지키는 행위다. 내 감정과 존엄성을 보호하고, 상대에게 '이 선은 넘으면 안 된다'는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작은 실천을 시작했다. 후배가 농담이 라며 내 외모를 지적했을 때, 예전 같았으면 어색하게 웃고 넘겼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런 말은 농담이어도 기분 나쁘거든. 다음부턴 하지 말아줘."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후배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사과했고, 그 이후로 비슷한 말은 하지 않 았다. 놀라운 건 그 한마디를 하고 나서 느낀 해방감이었다. 가슴속에 쌓여 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 나는 내 감정을 표현해도 되는구나. 불편함을 말해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구나'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모든 상황에서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상대와의 관계, 맥락, 그리고 내 감정 상태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책에서 여러가지 상황에서의 대처법을 정말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책을 읽으며 이런 기술들을 알게 된 후에도, 실제로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권위 있는 사람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부장님이 회의 중에 내 의견을 무시하며 "경험도 없는 사람이 뭘 안다고"라고 말했을 때,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되받아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직 내 위계와 평판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가로막았다. 또 다른 어려움은 타이밍이었다. 무례한 말을 듣는 순간에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다가,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적절한 대응이 떠오르곤 했다. 그때 가서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자니 어색하고, 그렇다고 그냥 넘기자니 억울했다. 가장 힘든 것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 무례함이었다. 친한 친구가 습관적으로 나를 낮춰 말하거나, 가족이 내 선택을 존중하지 않을 때, 관계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이 정도는 참아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다. 작은 상황부터 시작했다. 카페에서 잘못 나온 주문을 그냥 받던 습관을 버리고, “죄송한데, 제가 주문한 건 이게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친구가 약속 시간을 어겼을 때, "괜찮아"라고만 하지 않고 "다음엔 미리 연락해줘. 기다리는 게 힘들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떨렸다. 목소리도 떨렸고, 말하고 나서 '내가 너무 심한 건 아닐까?' 하는 자책도 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말을 받아들였 다. 오히려 내가 명확하게 의사를 표현하자 상대도 편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서로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깨달음은, 되받아치는 것이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건강한 경계를 세우는 것 이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내 불편함을 참고 쌓아두는 것보다, 그때그때 표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나은 관계 를 만들었다.


물론 여전히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특히 악의가 없이 무례한 사람들을 마주할 때가 그렇다. 그들은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나는 네 친구니까 이 정도 말할 수 있지", "농담인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여?"라며 오히 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려 한다. 이럴 때는 더욱 명확하고 단호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그 말이 불편해. 농담이어도 듣고 싶지 않아."라고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한 번에 바뀌지 않더라도, 계속 내 경계를 표현하다 보면 상대도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만약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관계를 유지할 가치가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또 힘든 것은 조직 문화나 사회적 분위기와 싸워야 할 때다. "원래 후배가 참아야지", "여자가 너무 따지는 것 같아", 분위기 파악 좀 해"라는 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압력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은 때로 외롭고 지친 일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조금씩이지만, 내 삶에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내 감정을 더 존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예민한 건가?' 하며 내 감정을 의심했다면, 이제는 '내가 불편하다면 그것이 정당한 이유다'라고 믿게 되었다. 내 감정을 신뢰하게 되니, 다른 사람의 평가에 덜 흔들리게 되었다. 또 다른 변화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무례한 말을 듣고도 참았다가, 집에 돌아와 혼자 속앓이하며 에너지를 소진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리에서 바로 표현하고 정리 하니, 불필요하게 감정을 끌고 가지 않게 되었다. 밤에 잠들기 전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며 괴로워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조금 더 당당해졌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것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무례함에 내 하루를 빼앗기지 않게 되었다.


되받아치는 기술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고, 때로는 실수하기도 한다. 너무 감정적으 로 대응해서 후회한 적도 있고, 반대로 너무 약하게 대응해서 아쉬웠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성장이라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시도하는 것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를 잃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무례한 말들과 마주칠 것이다. 세상에는 선을 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 것이고, 때로는 그들로 인해 상처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내가 침묵할 필 요는 없다는 것을. 내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되받아치는 기술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내 경계를 존중하며, 나 자신의 가장 든든한 편이 되어주는 것. 그 여정을 나는 계속해서 걸어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5천만 원으로 두 번째 월급 받는다 - 평생 월 300만 원 버는 상가투자 핵심 노하우 50
홍성일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두 번째 월급'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매혹적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문장이다.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 외에 또 다른 수입원이 있다는 것, 그것도 내가 일하지 않아도 들어오는 돈이 있다는 것.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주식은 변동성이 크고, 코인은 더욱 예측 불가능하며, 예금 이자는 물가상승률조차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답은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명확하게 말한다. 상가투자가 그 답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는 결코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경고한다. 상가투자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가볍게 접근해서도 안 된다고. 균형잡힌 시선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가투자 앞에서 주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큰돈이 필요할 것 같다, '잘못 샀다가 월세도 못 받으면 어쩌지', '나 같은 초보가 할 수 있을까. 이런 두려움은 정당하다. 하지만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반전을 던진다.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고. 시장이 침체되었다는 말이 나올 때가 저평가된 물건을 찾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5천만 원'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돈이겠지만,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결코 작지 않은 목돈이다. 그러나 동시에 접근 불가능한 금액도 아니다. 몇 년간 꾸준히 저축하고, 퇴직금이나 목돈을 모으면 만들 수 있는 현실적인 액수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수십억을 가진 부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5천만 원을 가지고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신도시 분양 상가의 1층이 평당 7천만 원을 넘을 때, 3~4층을 노려 30% 수준의 가격에 매입하는 전략을 펼쳤다. 실제로 평당 590만 원에 매입해 매입 순간 3억 원 이상의 수익을 확보한 사례는 운이 아니라 철저한 분석과 전략의 결과였다.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돈이 많아야 투자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적은 돈으로도 똑똑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중요한 건 금액이 아니라 전략과 안목이라는 것.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단계적 성장'의 개념은 바로 여기서 빛을 발한다.

상가투자에는 크게 세 가지 길이 있다는 저자의 구분은 매우 유용하다. 수익형, 차익형, 사업형. 각각의 길은 서로 다른 목적과 전략을 요구한다. 많은 초보 투자자들이 이 구분조차 모른 채 막연히 '월세 받는 상가'만을 떠올린다. 나 역시 그랬다. 상가투자라고 하면 당연히 월세를 받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임대수익과 시세차익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을 권한다. 월세만 받다가 파는 것이 아니라, 상가의 가치 자체를 높여가며 투자하는 방식이다. 업종 변경, 리모델링, 용도변경을 통해 상가를 '키우는' 개념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투자가 아닐까.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고소득자의 적자 투자 전략이 일반 투자자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SNS나 유튜브를 보면 종종 '강남 상가 투자로 대박'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냉정하게 지적한다. 강남 상가가 거래되는 이유는 순수 수익이 아니라 상징성에 있다고. 실제 수익률을 따지면 오히려 손해인 경우가 많지만, 절세나 자산 보전의 목적으로 접근하는 고소득자들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일반 투자자가 이런 전략을 따라하면 어떻게 될까? 월세를 올릴 수 없는 구조에서 이자 부담만 커지고, 결국 팔려고 해도 팔 수 없는 덫에 갇히게 된다. 이런 현실적인 경고야말로 이 책의 진가다.


저자가 20년간 하루 4만 보를 걸으며 깨달은 핵심은 바로 ' 동선 '이다. 같은 지하철역이라도 11번 출구와 2번 출구의 생명력이 다르다. 지도에서는 가까워 보여도 실제로 걸어보면 완전히 다른 상권일 수 있다. 사람의 흐름 위에 상권이 존재 한다는, 너무나 기본적이지만 가장 많이 무시되는 원칙이다. 이것은 책상 앞에서, 컴퓨터 화면만 보고는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다.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체감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현장주의'는 바 로 이 때문이다. 전봇대에 붙은 '상가 급매' 전단지를 보고 혹하는 순간, 저자는 잠깐 멈추라고 말한다. 정말 좋은 물건이라 면 왜 그것이 내 눈에 쉽게 띄었을까? 진짜 괜찮은 물건이라면 이미 중개사무소의 단골 투자자들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이 한 문장이 얼마나 많은 실패를 예방해줄 수 있을까.

신도시 상가와 구도심 상가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신도시는 '계획된 미래'를 읽는 투자다. 아파트 세대 수, 학교 위치, 도로 동선, 상가 배치가 모두 공개되어 있다. 분석이 상대적으로 쉽고 명확하다. 안정적인 월세형 자산을 원한다면 신도시가 답이다. 반면 구도심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시장이다. 낡은 건물이 한 줄의 기획, 한 명의 좋은 임차인으로 명소가 되는 마법이 일어나는 곳. 임대수의과 매매차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고수의 투자처다. 실제로 대박 상가투자 사례 대부분은 구도심에서 탄생했다.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들을 보면 이 차이가 명확해진다. 신도시에서는 3층 병의원 상가를 저가에 선점해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고, 구도심에서는 문화와 감성이 스며든 거리의 부활을 읽어내며 가치 상승을 노린다. 하나의 전략으로 모든 상가를 다룰 수 없다는 것, 각각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인구 감소를 상권의 위기로만 본다. 특히 지방 소도시의 경우 '소멸도시'라는 단어에 주눅이 든다. 하지만 저자는 일본의 사례를 통해 전혀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인구 감소를 경험했다. 하지만 관광이라는 반전 카드로 지역을 살려냈다.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오히려 아날로그 감성의 거리로 몰린다는 역설, 익선동, 을지로, 문래동, 전주한옥마을, 경주가 부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상권은 '놀거리'가 아니라 '이야기와 분위기'를 품을 때 살아난다. 과거에는 종로나 명동이 상가의 로망이었지만, 지금은 홍대와 성수가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 유동인구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콘텐츠, 콘셉트, 감성의 싸움이다. 투자자는 이제 '어디가 중심인가'만 볼 것이 아니라 '어디가 더 재미있어지고 있는가'를 분석해야 한다. 즐거움을 담을 수 없다면 그 상권은 곧 잊힌다. 이 통찰은 인구 감소 시대에 어떤 상가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라면 위험을 감수하기 어렵다. 실패 확률이 낮고, 수익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며, 급격한 가격 하락 가능성이 적은 상가.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바로 '상가주택'이다. 엄밀히 말하면 상가라기보다 주택의 성격에 가깝다. 투자보다 생존을 우선하는 사람에게 상가 주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해답이 된다. 1층에서 임대수익을 내고, 위층에서 직접 거주하거나 추가 임대를 할 수 있다. 주택 담보대출을 활용할 수 있어 금리 부담도 상대적으로 낮다. 이는 특히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이나 안정적 현금흐름이 필요 한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견고하다. 대박은 아니지만 쪽박도 아니다. 때로는 이런 중용의 전 략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와닿은 것은 '지금이 기회'라는 메시지다. 많은 사람들이 시장이 좋을 때는 비싸다고 망설이고, 시장이 나쁠 때는 위험하다고 물러선다. 결국 언제 해야 하는가? 저자는 명확하게 답한다. 바로 지금이라고. 침체기라고 여겨지는 지금이 오히려 저평가된 물건을 찾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감정평가액 6억 원짜리 신도시 1층 상가가 6천만 원에 낙찰되는 사례도 있다. 이런 기회는 아직도 곳곳에 있다. 단지 공부와 준비가 부족해서 기회를 놓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큰돈이 아니라 공부다. 타이밍이 아니라 준비다. 운이 아니라 안목이다. 저자가 20년간 현장을 누비며 쌓은 경험과 통찰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읽고 배우고 실천에 옮기면 된다. 작은 눈덩이가 굴러가며 점점 커지는 스노우볼 이펙트처럼, 투자도 반복과 축적을 통해 속도를 붙인다. 구분상가에서 출발해 꼬마 빌딩으로, 다시 중형 건물로 도약하는 흐름 속에서 자산은 단단해지고 투자자는 성장한다. 한 번에 건물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투자자가 되는 것. 이것이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월급으로 1억 만들기 - 월급 모으기·관리·투자까지 한 권으로 끝내는 평생 재테크 공식
한희재(재리) 지음 / 시원북스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금융문맹"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내 통장을 들여다보면 왜 돈이 남지 않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 그랬다. 매달 월급이 들어오고, 나름대로 아껴 쓴다고 생각했지만, 월말이 되면 어김없이 잔고는 바닥을 보였다. 돈을 버는 능력은 있지만, 모으고 지키고 불리는 능력은 없었던 것이다. <월급으로 1억 만들기>를 읽으며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재테크는 거창한 투자 기법이나 대단한 재능이 아니라 '올바른 금융 습관'에서 시작된 다는 점이다. 작가는 시급 5,000원에서 출발해 자산 10억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비결은 특별한 투자 수완이 아니라 꾸준한 기록과 실천이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기-쓰기-모으기-벌기-불리기"라는 5단계 로드맵을 제시한다. 이 단순해 보이는 구조가 사실은 가장 견고한 재테크의 기본 틀이라는 것을 책은 증명한다. 책을 읽으며, 내가 지금까지 ’알기' 단계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돈이 어디서 새는지, 어떤 구조로 흐르는지 정확히 알지 못 한 채 막연히 저축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실천하기로 한 것은 '자산 건강검진'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자산 건강검진은 총 7단계로 구성된다. 통장과 카드 전수 조사, 자본 정리, 부채 기록, 수입 파악, 고정지출•변동지출 점검, 연말정산 내역 확인까지.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내가 얼마나 무심하게 돈을 다뤄왔는지 뼈아프게 느껴진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통장과 카드 전수 조사'였다. 나는 쓰지도 않는 통장을 몇 개나 방치해두고 있었고, 연회비만 나가는 카드도 서너 개 있었다. 이런 작은 누수들이 모여 한 해 수십만 원을 새게 만들고 있었다. 작가는 "2개의 카드와 4개의 통장"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체크카드 1장, 신용카드 1장, 그리고 수의•고정비•생활비•비상금 통장. 이 단순한 구조만으로도 돈의 흐름이 명확해지고, 관리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나는 당장 오늘부터 불필요한 통장을 정리하고, 카드를 2장으로 줄이기로 했다. 그리고 매달 월급이 들어오면 자동이체로 각 통장에 돈을 분배하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월급이 '스쳐 지나가는' 구조에서 '남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신용점수 관리다. 책에서는 신용점수를 "부자가 되는 첫걸음"이라고 표현한다. 대출 이자를 줄이고, 한도를 높이며, 나아가 내집 마련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신용점수를 한 번도 확인해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마이데이터 앱을 통해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체크카드 사용을 늘리며, 신용카드 사용률은 30% 이하로 유지하는 습관을 들이려 한다.

재테크라고 하면 으레 '절약'과 '인내'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작가는 돈을 쓰는 일에도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기념일 예산과 효도 예산까지 미리 세워두라고 조언한다. 이는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쓰면서도 후회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기 위함이다. 특히 '기념일 통장'과 '효도 협의서'라는 개념이 신선했다. 가족이나 연인과 의 특별한 날을 위해 미리 예산을 정해두고, 그 안에서 의미 있게 소비하는 것. 이렇게 하면 감정적인 소비로 인한 죄책감도 줄고, 오히려 계획적인 소비가 관계까지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부모님 생신과 명절, 내 생일과 기념일을 미리 정리해두고, 각각에 얼마를 쓸지 예산을 정해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 돈은 매달 조금씩 '기념일 통장'에 모아둘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갑작스러운 지출로 인해 저축이 무너지는 일도 없고, 소비 자체가 더 의미 있게 느껴질 것 같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금 모으기'와 '주식 모으기' 전략이다. 생일 선물로 케이크 대신 금 한 돈을, 기념일 꽃다 발 대신 ETF 한 주를 사는 것. 처음에는 작은 실천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작은 자산들이 인플레이션을 이기고 불어난다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하다고 느꼈다. 당장 다음 달부터 가족들 생일에 금을 선물 하고, 나 자신에게도 매달 소액으로 ETF를 사 모으기로 했다. 1년, 3년, 5년이 지나면 이 작은 습관이 얼마나 큰 자산으로 자라날지 기대가 된다. 또한 ISA 계좌와 연금저축펀드 같은 절세 상품도 적극 활용하려 한다. 작가는 ISA를 3년 목돈 만들기에 딱 좋다"고 표현하며, 9.9% 분리과세 혜택까지 설명해준다. 나는 지금껏 이런 상품을 어렵게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왜 진작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작가는 "절약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부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부업을 시작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높이는 부업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블로그, 재능 기부, 온라인 강의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역량과 커리어까지 함께 성장하는 일 말이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블로그를 시작해 꾸준히 기록을 남기고, 언젠가는 전자책이나 강의로까지 확장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기 용돈벌이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나를 성장시키는 '두 번째 수입 원'을 만드는 것. 이것이 진짜 부업의 의미라는 것을 배웠다. 투자 부분에서는 ETF 중심의 장기 투자 전략이 가장 와닿았 다. 작가는 개별 종목 단타가 아니라, 미국 대표 지수 ETF 몇 개로 구성하는 기본 포트폴리오를 제안한다. 월 10만~15만 원으로 시작하는 소액 투자 루틴,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오래 가져가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평범한 직장인이 안전하게 자산을 불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나니, 1억이라는 숫자가 더 이상 막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매달 월급에서 조금씩, 구조를 바꾸고 습관을 들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목표라는 확신이 생겼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투자 기법이 아니라, 꾸준한 기록과 실천이다. 나는 오늘부터 자산 건강검진을 시작하고, 월급 가계부를 작성하며,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꿔나갈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6-01-20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억 만들기, 내 젊은 시절의 추억이 소환되기도 합니다.
 
형태의 문화사 - 사물의 생김새로 읽는 인간과 문명 이야기
서경욱 지음 / 한길사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침대 모서리에 발을 내딛고, 문고리를 잡아 돌리고, 계단을 내려가 식탁 앞에 앉는다. 이 모든 행위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나는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왜 문고리는 하필 이 크기일까. 왜 계단의 높이는 이 정도일까. 왜 나는 식탁 앞에서 자연스럽게 이 자세로 앉게 될까. <형태의 문화사>를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세계에 맞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나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을.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라는 종의 평균적 신체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나는 조금씩, 매일,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손바닥을 펼쳐본다. 다섯 손가락이 모이는 이 작은 공간이 세상의 크기를 정했다. 야구공은 왜 지금의 크기일까.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인간의 손이 세밀하게 조작할 수 있는 최대 크기가 바로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문고리의 지름도, 컵의 손잡이도, 심지어 스마트폰의 가로 길이까지. 모든 것이 손의 크기라는 생물학적 한계 안에서 결정되었다. 동전이 둥근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주머니 속에서 걸리지 않기 위해서다. 지폐가 네모난 이유는? 접고, 쌓고, 세기 위해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이 있지만, 더 정확하게는 형태가 몸을 따른다. 인간의 손과 발, 눈과 귀, 피부의 감각이 세계의 형태를 규정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거리를 걷다가 간판의 높이를 보면 인간의 평균 시선 높이가 떠오르고, 카페의 의자에 앉으면 무릎 관절의 각도가 느껴진다. 문명이란 결국 몸의 복제본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역방향의 흐름이다. 우리가 형태를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형태가 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현관 문화를 생각해보자. 낮게 구획된 현관 공간은 단순히 신발을 벗는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안'과 '밖'을 심리적으로 구분하는 경계선이며, 청결에 대한 문화적 집착을 공간화한 결과다. 현관이라는 구조가 먼저 있었고, 그 구조 속에서 우리는 깨끗함과 더러움을 구분하는 감각을 체화했다. 온돌 문화도 마찬가지다. 바닥이 뜨거워지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앉게 되었고, 앉는 생활방식은 다시 가구의 높이를, 식사 방식을, 심지어 몸의 유연성까지 바꿨다. 구조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다시 정체성을 만든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설계된 공간의 구조가 나를 이렇게 살도록 유도한 것일까.

서양의 건물에 들어가면 조명이 어둡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것이 단순히 미적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눈동자 색깔의 차이 때문이었다. 밝은 색 눈동자를 가진 서양인들은 더 많은 빛을 흡수할 수 있어서, 낮은 조도에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조명 설계는 생리학적 차이를 반영한 결과였다. 쇼츠나 릴스 같은 짧은 영상이 세로 화면인 이유도 비슷하다. 양안시 영역, 즉 양쪽 눈이 동시에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영역은 가로보다 세로로 더 길다. 세로 영상은 유행이 아니라 인간의 시각 구조에 최적화된 형태였던 것이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우리가 편하다고 느끼는 것들 대부분이 사실은 우리 몸의 구조에 맞춰져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묻게 된다. 그렇다면 그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평균 키보다 작거나 큰 사람, 다른 시각 구조를 가진 사람, 다른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계에서 계속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가.

가장 소름 끼쳤던 부분은 개방형 사무실에 관한 대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개방형 사무실을 민주적이고 소통이 활발한 이상적 공간으로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의 시선도 피할 수 없는, 완벽한 감시 구조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전체를 조망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 형태는 중립적이지 않다. 형태 안에는 권력관계가 새겨져 있다. 누가 편하고 누가 불편한지, 누가 보고 누가 보이는지, 누가 중심이고 누가 주변인지. 공간의 설계는 곧 권력의 설계다. 지금 우리는 AI가 형태를 자동 생성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알고리즘은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해서 '최적의' 형태를 제안한다. 하지만 그 최적이란 무엇인가. 누구의 몸을 기준으로 한 최적인가? 평균값은 효율적이다. 하지만 평균값으로 설계된 세계는 평균에서 벗어난 모든 사람을 자동으로 배제한다. 알고리즘이 학습한 데이터 속에 어떤 몸들이 포함되어 있고, 어떤 몸들이 누락되어 있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형태는 더 정교해지고 더 편리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편리함은 누구의 편리함인가. 이 형태는 누구의 몸을 상상하며 만들어졌는가.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결국 자유란 구조를 의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나를 둘러싼 형태들이 나를 어떻게 길들이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첫걸음이다. 습관을 바꾸고 싶다면,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환경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책상의 배치를, 방의 구조를, 동선을 바꿔야 한다. 변화는 결심이 아니라 형태의 변경에서 시작된다. 오늘 저녁, 집에 돌아가 문고리를 잡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설 것이다. 이 손잡이의 크기가, 이 문의 높이가, 이 공간의 구조가 나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생각하면서. 그리고 물을 것이다.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구조가 허락한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 형태를 의심하는 것. 그것이 문명을 보는 눈이고, 나 자신을 되찾는 시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