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받아치는 기술 - 무례한 말로 선 넘는 상대에게 보내는 통쾌한 스톱 사인!, 개정판
이오타 다쓰나리 지음, 서수지 옮김, 주노 그림 /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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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며칠 전, 회사 복도에서 한 선배와 마주쳤다. 그는 내 옷차림을 훑어보더니 "요즘 너무 편하게 입고 다니는 거 아니야? 좀 더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냐?"라고 말했다.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하루 종일 그 말이 맴돌았다. '내가 그렇게 이상하게 보였나? 아니, 애초에 저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한 거지?' 분노와 자책이 뒤섞였다. 비슷한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 친구가 내 외모를 놀렸을 때, 대학 때 선배가 내 전공 선택을 비웃었을 때, 가족 모임에서 친척이 내 연애사를 공개적으로 물었을 때. 그때마다 나는 말문이 막혔고, 뒤늦게야 '그때 이렇게 말할 걸'이라는 후회만 쌓여갔다. 그 후회들은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 가끔씩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되받아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하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일상을 보내다가 갑자기 날아온 무례한 말은 우리의 사고 회로를 순간적으로 멈춰버린다. 그리고 '내가 예민한 걸까?', '혹시 내가 정말 잘못한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또 다른 이유는 관계의 파탄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 상사나 오랜 친구, 가족처럼 계속 마주쳐야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맞섰다가 더 큰 문제가 되면 어쩌지?', '분위기 망치는 사 람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입을 막는다. 결국 참는 것이 더 쉬운 선택처럼 느껴지고, 우리는 그 순간을 넘긴다. 하지만 그렇게 넘긴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응어리가 되고, 어느 순간 폭발하거나 스스로 를 갉아먹는 독이 된다. 나는 그런 감정들을 너무 오래 품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되받아친다는 것은 상대를 공격하거나 복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지키는 행위다. 내 감정과 존엄성을 보호하고, 상대에게 '이 선은 넘으면 안 된다'는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작은 실천을 시작했다. 후배가 농담이 라며 내 외모를 지적했을 때, 예전 같았으면 어색하게 웃고 넘겼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런 말은 농담이어도 기분 나쁘거든. 다음부턴 하지 말아줘."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후배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사과했고, 그 이후로 비슷한 말은 하지 않 았다. 놀라운 건 그 한마디를 하고 나서 느낀 해방감이었다. 가슴속에 쌓여 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 나는 내 감정을 표현해도 되는구나. 불편함을 말해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구나'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모든 상황에서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상대와의 관계, 맥락, 그리고 내 감정 상태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책에서 여러가지 상황에서의 대처법을 정말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책을 읽으며 이런 기술들을 알게 된 후에도, 실제로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권위 있는 사람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부장님이 회의 중에 내 의견을 무시하며 "경험도 없는 사람이 뭘 안다고"라고 말했을 때,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되받아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직 내 위계와 평판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가로막았다. 또 다른 어려움은 타이밍이었다. 무례한 말을 듣는 순간에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다가,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적절한 대응이 떠오르곤 했다. 그때 가서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자니 어색하고, 그렇다고 그냥 넘기자니 억울했다. 가장 힘든 것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 무례함이었다. 친한 친구가 습관적으로 나를 낮춰 말하거나, 가족이 내 선택을 존중하지 않을 때, 관계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이 정도는 참아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다. 작은 상황부터 시작했다. 카페에서 잘못 나온 주문을 그냥 받던 습관을 버리고, “죄송한데, 제가 주문한 건 이게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친구가 약속 시간을 어겼을 때, "괜찮아"라고만 하지 않고 "다음엔 미리 연락해줘. 기다리는 게 힘들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떨렸다. 목소리도 떨렸고, 말하고 나서 '내가 너무 심한 건 아닐까?' 하는 자책도 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말을 받아들였 다. 오히려 내가 명확하게 의사를 표현하자 상대도 편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서로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깨달음은, 되받아치는 것이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건강한 경계를 세우는 것 이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내 불편함을 참고 쌓아두는 것보다, 그때그때 표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나은 관계 를 만들었다.


물론 여전히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특히 악의가 없이 무례한 사람들을 마주할 때가 그렇다. 그들은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나는 네 친구니까 이 정도 말할 수 있지", "농담인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여?"라며 오히 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려 한다. 이럴 때는 더욱 명확하고 단호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그 말이 불편해. 농담이어도 듣고 싶지 않아."라고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한 번에 바뀌지 않더라도, 계속 내 경계를 표현하다 보면 상대도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만약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관계를 유지할 가치가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또 힘든 것은 조직 문화나 사회적 분위기와 싸워야 할 때다. "원래 후배가 참아야지", "여자가 너무 따지는 것 같아", 분위기 파악 좀 해"라는 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압력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은 때로 외롭고 지친 일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조금씩이지만, 내 삶에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내 감정을 더 존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예민한 건가?' 하며 내 감정을 의심했다면, 이제는 '내가 불편하다면 그것이 정당한 이유다'라고 믿게 되었다. 내 감정을 신뢰하게 되니, 다른 사람의 평가에 덜 흔들리게 되었다. 또 다른 변화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무례한 말을 듣고도 참았다가, 집에 돌아와 혼자 속앓이하며 에너지를 소진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리에서 바로 표현하고 정리 하니, 불필요하게 감정을 끌고 가지 않게 되었다. 밤에 잠들기 전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며 괴로워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조금 더 당당해졌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것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무례함에 내 하루를 빼앗기지 않게 되었다.


되받아치는 기술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고, 때로는 실수하기도 한다. 너무 감정적으 로 대응해서 후회한 적도 있고, 반대로 너무 약하게 대응해서 아쉬웠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성장이라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시도하는 것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를 잃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무례한 말들과 마주칠 것이다. 세상에는 선을 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 것이고, 때로는 그들로 인해 상처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내가 침묵할 필 요는 없다는 것을. 내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되받아치는 기술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내 경계를 존중하며, 나 자신의 가장 든든한 편이 되어주는 것. 그 여정을 나는 계속해서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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