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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부의 본질 ㅣ 현대지성 클래식 73
크세노폰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안다고 생각한다. 아테네 광장에서 청년들을 현혹했다는 죄목으로 독배를 마신 철학자, "너 자신을 알라"는 금언을 남긴 현자. 그러나 크세노폰이 기록한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아는 그 초월적 사상가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세 차례 전쟁터에 나간 중장보병이었고, 가정을 경영하는 방법을 논했으며, 올리브와 포도 농사의 수확 시기를 정확히 알고 있던 실천가였다. 플라톤이 이데아의 세계로 소크라테스를 끌어올렸다면, 크세노폰은 그를 땅 위에 단단히 세워두었 다. <소크라테스 부의 본질>은 그래서 독특하다. 책에는 영혼의 불멸이나 진리의 탐구 같은 거창한 주제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가산을 늘리는 법, 아내와 역할을 분담하는 법, 관리인을 근면하게 만드는 법, 황폐한 땅을 사서 가치를 높이는 법이 나온다. 형이상학이 아니라 형이하학, 사유가 아니라 경영,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기원전 362년에 쓰였다는 사실이다. 인류 최초의 경영학 교과서라 불릴 만하다. '오이코노미코스'라는 원제는 '집(오이코스)'과 ‘관리(노모스)'의 결합이다. 오늘날 경제학(Economics)의 어원이 된 이 단어는, 당시에는 가정의 모든 관리 활동을 포괄 하는 개념이었다. 재산 관리, 노예 관리, 가족 구성원의 역할 분담, 농업 경영, 심지어 도덕적 실천까지 포함했다. 동양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닮아 있다. 개인의 수양에서 출발해 가정을 바로 세우고, 그것이 국가 경영의 토대가 된다는 사고 방식 말이다.
책은 소크라테스와 크리토불로스의 대화를 이야기 한다. 크리토로스는 큰 재산도 있지만 늘 돈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가진 것이 거의 없지만 스스로를 부유하다고 말한다. 이 역설적 대화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재산'의 정의 를 새롭게 세운다. 그에 따르면 재산이란 '어떤 사람의 소유물 전체'가 아니다. 정확히는 그 사람이 사용할 줄 아는 것 만이 재산이다. 피리를 연주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피리는 재산이 아니다. 말을 다룰 줄 모르는 사람에게 말은 짐일 뿐이다. 심지어 적까지도, 활용할 줄 안다면 재산이 될 수 있다. 이 논리는 가혹하면서도 명료하다. 소유는 능력 없이 무의미하다. 이 정의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날카롭게 꽂힌다. 우리는 투자 정보를 수집하고, 자산을 불리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정작 그 자산을 '어떻게 배치하고, 언제 써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은 부족하다. 부동산을 여러 채 가지고 있어도 불안하고, 주식 계좌에 큰 수익이 났어도 허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라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대는 그것을 지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책에 등장하는 이스코마코스는 이 책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아테네에서 '아름답고 좋은 사람(칼로카가토스)'으로 불리는 모범적 가장이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가정 경영의 비법을 묻는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질서입니다:" 이 스코마코스는 열다섯 살에 시집온 아내에게 화장법이나 요리가 아니라 '질서'를 가르쳤다. 집 안의 모든 물건에는 제자리에 가 있어야 하고, 모든 역할에는 담당자가 있어야 하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합창단이 제각각 노래하면 소음이지만, 질서 있게 화음을 이루면 음악이 된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내를 동침의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로 대했다. 함께 자녀를 교육하고, 재산을 지키며, 노년을 준비하는 파트너. 이것이 공동의 이익이자, 가정 경영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대화 속에는 고대 그리스의 가부장적 시각이 묻어 있다. "아내가 대관절 무엇을 알고 있었겠습니까" 같은 표현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역할 분담과 상호 존중에 기반한 경영 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흥미로운 대목은 화장과 외모에 관한 대화다. 짙은 화장을 하고 높은 굽의 신발을 신은 아내에게 이스코마코스는 꾸짖지 않는다. 대신 질문한다. "당신은 나를 속이려 하는가, 아니면 함께 진실하게 살려 하는가?" 그리고 땀 흘려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며 말한다. "건강한 몸과 성실한 노동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화장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거울 치료'다. 상대를 변화시 키려면 먼저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농장 경영에 관한 이야기다. 현대 독자에게는 다소 낯선 주제일 수 있지만, 여기에 이 책의 정수가 담겨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농사를 지어본 적 없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스코마코스와의 대화를 통해 깨닫는다. 자신이 몰랐다고 생각한 것을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이것이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의 핵심이다. 질문을 통해 상대 안에 잠재된 앎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스코마코스는 말한다. "잘 가꿔진 땅은 사지 마십시오." 역설적이지만 이유는 명확하다. 이미 완성 된 땅을 사면 그저 유지하는 수준에 머문다. 하지만 버려진 땅, 잡초만 무성한 헐값의 땅을 사서 가꾸면 가치는 몇 배로 뛴다. 물론 이것은 농사를 사랑하고, 땀 흘릴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는 또한 강조한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 기술은 핑계를 댈 여지가 있다. 시장이 나빠서, 운이 없어서, 경쟁자가 강해서. 하지만 농사는 다르다. 씨를 뿌리고 가꾼 만큼 정확히 수확한다. 방치된 땅은 주인의 게으름을 적나라하게 증언한다. 이것은 비즈니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장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성실히 준비하고 실행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관리인의 자질에 관한 대화도 인상적이다. 이스코마코스는 근면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다. 그러나 근면함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인은 관대해야 하고, 공정해야 하며, 신상필벌을 명확히 해야 한다.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훌륭한 일꾼이 가장 낙담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자기 일을 다 해내고도, 게으름뱅이와 똑같은 대우를 받을 때입니다." 이 한 문장은 조직 경영의 본질을 꿰뚫는다.
책에는 페르시아 왕의 일화가 등장한다. 왕이 좋은 말을 빨리 살찌우고 싶어 전문가에게 물었다. 전문가는 단 한단어로 답했다. "주인의 눈." 이 말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유능한 관리인을 두어도 주인의 눈이 닿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러나 '주인의 눈'이란 감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심이고, 이해이며, 책임이다. 내가 책임지는 영역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관찰하며, 개입하는 태도. 오늘날 많은 경영자들 이 데이터와 보고서에 의존하지만, 정작 현장의 온도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크라테스는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가산을, 사업을, 삶을 정말 보고 있습니까?" 또한 이스코마코스는 ' 다스리는 능력 '에 대해 논한다. 진정 강력 한 지휘관은 가장 힘센 자도, 창을 잘 던지는 자도 아니다. 병사들이 " 불 속이라도 저 사람을 따르겠다 "는 마음을 먹게 만드는 사람, 그가 진짜 강력한 지휘관이다. 이것은 가정 경영에도, 사업 경영에도 적용된다. 진정한 리더십은 위계나 권위가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이스코마코스는 스스로를 이렇게 해명한다. "나는 아무도 부당하게 대우하지 않고, 내 능력이 닿는 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건넵니다." 이것이 그가 존경받는 이유다. 소크라테스는 이 대화를 통해 깨닫는다. 다스리는 능력은 단번에 터득할 수 없으며, 체계적 교육과 좋은 성품, 그리고 '신적인 탁월함'이 필요하다고. 여기서 신적 탁월 함이란 초월적 능력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뜻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큰 수확은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을 체험했다는 점이다. 그는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질문을 던지고, 상대의 답을 경청하며, 함께 진리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상대는 스스로 깨닫는다. 자신이 몰랐다고 생각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가능함이다. 존중의 태도다. 상대를 가르침의 대상이 아니라 대화의 파트너로 대한다. 심지어 이스코마코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질문을 던진다. 위계가 뒤바뀌는 순간이다. 이것이 진정한 평등이다. 지식의 양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상대를 존중하며 대화하는가, 대부분의 대화는 설득이거나 설명이다. 나의 의견을 관철시키거나, 나의 지식을 전달하는 데 급급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보여준다. 진정한 대화는 상대 안에서 답을 끌어내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배운다는 것이다. 2,400년 전 소크라테스가 던진 질문은 오늘날 더욱 절실하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지만 판단의 기준은 희미하다. 투자 정보는 넘쳐나지만, 내 삶을 지휘하는 감각은 약하다. 재산은 늘어나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 다. 소크라테스는 단언한다. 질서 없는 풍요는 가난보다 위험하며, 관리되지 않은 재산은 결국 주인을 지배하게 된다고.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가진 것을 얼마나 질서 있게 다룰 수 있는가'다. 이것이 부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