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여행 - 개정판 모든 요일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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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과연 여행과 일상의 경계는 무엇인가? " 였다. 우리는 흔히 여행을 일상의 탈출구로 여긴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 그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이분법적 사고에 균열을 낸다. 작가는 여행지에서도 쌀을 씻고,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한다. 여행지의 슈퍼마켓을 돌아다니며 장을 보고, 동네 카페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평범한 순간들 속에서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일상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만약 여행지에서의 평범한 일상이 특별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일상 또한 여행처럼 특별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가 망원동을 '고향'이라고 부르게 된 과정이 이를 증명한다. 태어난 곳도 아닌 그곳을 고향이라 부를 수 있었던 건, 그곳의 골목을 여행하듯 걸었기 때문이다. 그곳의 카페를, 식당을, 사람들을 여행 자의 시선으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느림'이다. 느리게 주문을 받는 식당, 느리게 음식이 나오는 카페, 헤매고 길을 잃는 시간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느림은 참을 수 없는 비효율이다. "빨리빨리"가 몸에 배어 있는 우리는 여행지에서조차 그 속도를 유지하려 한다. 최대한 많은 곳을 가보고,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SNS에 올릴 만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작가는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라는 것이다. 이는 비단 여행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 또한 쉼 없이 달려가야 하는 평일로만 채워져 있지 않은가? 생산적이어야 하고, 유용해야 하고,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우리는 '무용한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파리의 카페에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느낀 해방감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얼마나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슈퍼에고에서 벗어나는 순간, 비로소 '지금 여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나른함 속에서, 무료함 속에서,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 속에서 오히려 삶의 본질적인 것들이 드러난다.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은 불편함이다. 우리는 여행을 완벽하게 계획하려 한다. 맛집 리스트를 만들고, 동선을 최적화하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여행의 진짜 이야기는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에 시작된다. 버스를 놓치고, 예약한 식당이 문을 닫았고, 비가 내려 계획했던 일정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들. 바로 그 순간들이 우리를 여행자로 만든다. 작가가 안개 낀 톨레도에서 깨달은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최선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완벽한 날씨, 완벽한 일정, 완벽한 경험을 기대하는 대신, 지금 주어진 이 순간 속에서 좋은 부분을 찾아내려 애쓰는 것. 그것이 여행을 풍요롭게 만드는 비결이다. 이는 우리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는 자주 좌절한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그 불편함을 여행에서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떨까? "오늘은 일요일이다"라고 선언하며 조급함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은 한결 가벼워질 것 이다.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기록'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쓴다. 여행지에서도, 일상에서도. 그리고 그 기록들이 모여 삶이 된다. 단순히 어디를 갔고 무엇을 샀는지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을, 생각을, 의미를 기록한다. 불행을 쓰면 그것이 수첩 속에 갇히고, 행복을 쓰면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된다고 말하는 작가의 고백은 기록의 치유적 힘을 보여준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는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가슴 뛰었던 순간도, 아 팠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그러나 기록은 그 순간들을 붙잡는다. 더 나아가 기록은 그 순간을 재해석하게 만든다. 막연히 좋았던 순간이 왜 좋았는지, 불편했던 순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돌아보게 된다. 작가가 "나는 이런 걸 좋아 하는 사람이구나"를 여행을 통해 배웠다고 말할 때, 그것은 여행을 다녀온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이다. 기록하고, 돌아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작업이다. 나는 무엇을 좋아 하는 사람인가? 무엇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일상을 기록 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일상을 여행처럼 사랑하고자 한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설렘과 호기심, 관대함과 여유를 일상에도 가져오고 싶다. 매일 아침 기지개를 켜며 ”오늘이 다시 오지 않을 한 때"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루는 달라질 것이다.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만이 아니다. 익숙한 동네를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것, 자주 가던 카페에서 새로운 메뉴를 시도하는 것, 늘 지나치던 골목을 천천히 걸어보는 것. 이 모든 것이 여행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불편함을 받아 들이는 것, 느림을 허락하는 것, 무용한 시간을 견디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기록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다짐해 본. 내 일상의 고향을 사랑하겠다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여행하듯 바라보겠다고, 희망을 고집하겠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이 다시 오지 않을 한 때임을 기억하며 이 순간을 살아가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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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말을 잘하게 됩니다 - 일이 술술 잘 풀리는 말하기 스킬
박수연 지음 / 현익출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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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합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타고났다고, 나는 원래 말주변이 없다고, 성격이 내성적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박수연 변호사의 이야기는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아나운서에서 변호사까지, 말이 곧 경쟁력인 분야를 종횡무진 누빈 그녀조차 스스로를 '코맹맹이 염소'라고 표현했습니다. 중요한 건 시작점이 아니라 훈련의 방향과 지속성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말하기 능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유튜브, 팟캐스트, 각종 SNS를 통해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 1인 미디어가 일상화되면서 말은 개인 브랜드를 구축하는 핵심 도구가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발표, 면접, 협상처럼 말 한마디가 결과를 좌우하는 순간들이 넘쳐납니다. 같은 내용을 다루더라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고, 그 평가는 곧 커리어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말을 잘하게 될 수 있을까요? 화려한 수사나 위트 있는 농담이 정답일까요? 저자는 명확하게 선을 긋습니다. 진짜 말 잘하는 사람은 상황에 맞게 핵심을 전달하고, 질문의 의도를 파악해 논리적으로 응답하며, 무엇보다 신뢰를 주는 말투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친구들과 나누는 편안한 대화와 회의실에서 요구되는 발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평소 수다스럽고 사교적인 사람도 프레젠테이션 앞에서는 얼어붙습니다. 반대로 조용하고 과묵한 사람이 중요한 순간 한 마디로 회의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합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말의 구조'입니다. 일상 대화는 자유롭고 감정적이며 맥락 의존적입니다. 하지만 업무 환경에서의 말하기는 명확한 목적, 제한된 시간, 평가하는 청중이라는 세 가지 조건 아래 이루어 집니다. 여기서는 감정보다 논리가, 장황함보다 간결함이, 모호함보다 명확함이 우선시됩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OBC 구조는 이러한 업무 말하기의 기본 뼈대입니다. Opening(시작)에서 청중의 관심을 끌고, Body(본론)에서 핵심 내용을 전달하며, Closing(마무리)에서 행동을 촉구하거나 메시지를 각인시킵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구조가 발표를 횡설수설에서 설득력 있는 커뮤니케이션으로 바꿔놓습니다. '3단 키워드 프레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정리가 안 되는 사람, 질문을 받으면 두서없이 대답하는 사람에게 이 방법은 구명조끼와 같습니다. 핵심 키워드 세 개를 먼저 정하고, 그 주위로 내용을 배치하면 말은 자연스럽게 구조를 갖추게 됩니다. 듣는 사람도 따라가기 쉽고, 말하는 사람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같은 팀, 같은 연차, 비슷한 업무를 하는데도 유독 주목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특별히 더 똑똑하거나 화려한 말재주를 가진 건 아닙니다. 차이를 만드는 건 '말의 디테일'입니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를 다듬는 데는 5초도 걸리지 않지만, 그 작은 차이가 능력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미숙함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그냥... ", "뭐..." 같은 말버릇은 무심코 내뱉는 것처럼 보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불확실함과 자신감 부족으로 전달됩니다. 반대로 "제 판단에는", 자료에 따르면"처럼 근거를 제시하는 표현은 같은 내용도 더 무게감 있게 만듭니다. 말의 무게감은 권위나 직급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이런 작은 습관들의 축적에서 비롯됩니다. 속도와 호흡도 중요합니다. 긴장하면 말이 빨라지고, 빨라진 말은 불안 함을 더 증폭시킵니다. 문장 사이에 1~2초의 여백을 두는 것만으로도 말은 훨씬 안정적으로 들립니다. 침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적절한 침묵은 청중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다음 문장을 정리할 여유를 줍니다. 목소리 자체도 훈련의 영역입니다. 좋은 목소리는 '예쁜 소리'가 아니라 안정된 호흡, 명료한 발음, 듣는 이를 사로잡는 울림을 갖춘 소리입니다. 근육과 호흡, 공명이라는 세 가지 축을 꾸준히 훈련하면 누구나 또렷하고 신뢰감 있는 목소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루 10분, 아나운서처럼 발성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됩니다.

커리어에서 가장 오래 남는 브랜딩은 '말'입니다. 학력, 경력, 자격증은 이력서에 명시되지만, 말하기 능력은 면접과 발표, 협상의 순간마다 실시간으로 평가됩니다. 그리고 그 평가는 사람에 대한 전체적인상을 형성합니다. 말을 잘한다는 건 나의 강점과 매력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상대가 원하는 답을 명확히 전달하며,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말투를 갖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하기 이력서'입니다. 한번 익혀두면 진득하게 오래도록 써먹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커리어 무기입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말하기는 분명한 원리와 구조가 있는 기술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체계적으로 훈련하면 누구나 개선할 수 있습니다. 긴장으로 목소리가 떨린다면 호흡과 발성을 연습하고, 내용이 산만하다면 키워드 프레임을 활용하며, 말투가 거슬린다면 불필요한 습관을 제거하면 됩니다. 중요한 건 시작입니다. 비싼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타고난 재능이 없어도, 매일 10분씩 의식적으로 연습하면 변화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말 때문에 손해 보는 삶에서, 말로 기회를 잡는 삶으로. 그 변화의 시작점은 바로 '오늘부터' 시작하는 작은 훈련입니다.

말하기 능력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디지털 시대, AI가 많은 일을 대체하는 지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결국 '관계와 소통'입니다. 기계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지만, 신뢰를 쌓고 사람을 움직이는 건 여전히 인간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말'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계약을 성사시키고, 면접을 합격으로 이끌며, 갈등을 해결하고, 팀을 하나로 모읍니다. 반대로 말 한마디가 관계를 망가뜨리고, 기회를 날리며, 신뢰를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나비효과처럼 작은 말의 습관이 커리어 전체를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시작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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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천재 고려 - 최강대국에 맞선 작은 나라의 생존 전략
이익주 지음 / 김영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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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역사를 읽다 보면 때때로 놀라운 역설과 마주하게 됩니다. 중국 대륙에서는 송, 요, 금, 원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왕조의 교체가 있었습니다. 각 왕조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동아시아를 지배했지만, 그 어떤 왕조도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격동의 세월 속에서 한반도의 고려는 5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냈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고려가 가진 외교적 통찰의 결과였습니다. 고려의 외교 전략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가장 먼저 질문한 것은 누가 더 강한가"가 아니라 "이 체제는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장의 군사력보다 중요한 것은 그 힘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는지, 그 구조가 얼마나 안정적인지였습니다. 송나라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력적인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고려는 송이 군사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류는 유지하되, 모든 것을 거기에 걸지는 않았습니다. 요나 금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위협적이지만 적으로만 규정하지 않고, 관리해야 할 변수로 바라봤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려 외교의 핵심이었습니다. 지금 강한 자가 아니라, 오래 남을 구조를 읽어내는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종종 "명확한 선택"을 요구받습니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흑이냐 백이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고려의 외교를 보면, 그들은 오히려 명확한 편을 들지 않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송과 금이 대립할 때도, 고려는 어느 한쪽과 결정적인 군사 동맹을 맺지 않았습니다. 사신은 보내되, 되돌릴 수 없는 약속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우유 부단함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는 상황을 끝까지 지켜보며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고도의 전 략이었습니다. 고려는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왕조는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고려는 이 땅에서 계속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귀주대첩 이후의 행보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고려는 거란군을 궤멸시키는 대승을 거뒀습니다.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일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려는 그 이듬해 거란에 사신을 보내 다시 조공 관계를 청했습니다. 감정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입니다. 하지만 고려는 계산했습니다. 전쟁의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안 정이었고, 승전의 기쁨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의 평화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체면이 아닌 존속을 선택한 외교였습니 다. 지금의 자존심보다 다음 세대의 국가를 우선시한 결정이었습니다.

서희의 담판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학교에서는 "말을 잘해서 영토를 얻었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 것은 서희 담판의 본질을 놓친 설명입니다. 서희가 보여준 것은 언변이 아니라 국제 질서의 구조를 읽어내는 능력이었습니다. 서희는 거란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거란의 진짜 목표는 고려 정복이 아니라 송나라 견제였습니다. 서희는 이 지점을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고려는 고구려의 계승국이다"라는 선언은 역사적 주장만이 아니 었습니다. 거란이 구축하려는 국제 질서 안에서 고려의 위치를 재설정하는 전략적 발언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서희는 국경 문제의 원인을 제3의 변수인 여진으로 돌렸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적이 아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당신이 원하는 질서 안정에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구조를 명확히 만든 뒤, 협상은 자연스럽게 고려에 게 유리하게 흘러갔습니다. 강동 6주는 말로 얻은 땅이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의 필요를 정확히 읽고, 그 안에서 고려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제시한 결과였습니다. 협상의 본질은 설득이 아니라 구조의 재배치라는 것을 서희는 보여줬습니다.


고려 외교를 이야기할 때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아마도 원나라 시기일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시기를 고려 외교의 실패로 규정합니다. 실제로 굴욕적인 사건들이 많았고, 국가 자율성도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몽골제국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초강대국이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제국 앞에서 고려만큼 버틴 나라가 얼마나 될까요? 30년 항쟁 끝에 고려는 결국 몽골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지만, 완전히 병합되지는 않았 습니다. 왕조를 유지했고, 언어와 문화를 지켰으며, 제도적 정체성을 보존했습니다. 충렬왕의 친조 외교는 이런 맥락에서 재평가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쿠빌라이와의 협상에서 원칙을 세웠습니다. 형식적 복속은 받아들이되, 내정 간섭은 최소화하는 선을 그었습니다. 몽골 공주와의 혼인도 굴욕이 아니라 왕권 보호의 전략으로 활용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친원 세력의 횡포, 기황후 일족의 전횡, 국가 질서의 혼란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외교 전략 자체의 실패라기보다, 국내 정치 역학의 실패로 봐야 합니다. 외교는 성공했지만, 그 성과를 국내적으로 관리하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고려 외교가 진짜 실패한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고려 말 친명반원 노선을 성급하게 선택했을 때였습니다. 원이 쇠퇴하고 명이 부상하는 과도기, 고려는 너무 빨리 명나라 편에 섰습니다. 중립을 포기하고 명확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결과는? 명은 오히려 고려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려는 대항할 수단이 없었습니다. 원과의 관계를 너무 일찍 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약소국 외교의 정석입니다. 그런데 왜 고려는 이 원칙을 버렸을까요? 그 배경에는 신진 사대부의 명분론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실리보다 명분을 우선시했습니다. "오랑캐 원나라를 버리고 중화 명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이념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외교적으로는 재앙이었습니다. 명분에 갇힌 외교는 현실을 읽지 못합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게 됩니다. 고려가 수백 년 동안 유지해온 실리 외교의 전통이 무너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강대국 사이에 서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구조화되었고, 국제 질서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택을 요구받습니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동맹이냐 균형이냐. 이럴 때 고려의 외교 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계산하고 있는가? 당장의 군사력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체제의 지속 가능성을 보고 있는가? 명확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굴복하고 있는가, 아니면 상황을 끝까지 지켜보며 리스 크를 관리하고 있는가? 고려 외교의 교훈은 간단합니다. 힘의 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구조의 논리를 읽어라. 감정적 반응보다 전략적 사고를 우선하라. 체면보다 존속을 선택하라. 명분에 갇히지 말고, 실리를 챙겨라. 물론 오늘날의 상황은 천 년 전과 다릅니다. 국제법의 발달, 민주주의 체제, 실시간 정보 유통 등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강대국은 여전히 힘의 논리로 움직이고, 약소국은 여전히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에 게는 고려라는 선례가 있다는 것입니다. 500년을 버텨낸 나라, 명분보다 실리를 택하고, 감정보다 전략을 우선시하며, 지금의 자존심보다 다음 세대의 미래를 선택한 나라의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 외교를 공부하다 보면 하나의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약소국의 품격은 강함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품격은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에 있고, 감정을 절제하는 이성에 있으며,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에 있습니다. 서희가 거란 앞에서 보여준 것은 힘이 아니라 지혜였습니다. 귀주대첩 이후 다시 사신을 보낸 것은 굴욕이 아니라 성숙함이었습니다. 충렬왕이 몽골과 협상하며 지킨 선은 자존심이 아니라 실질적 자율성이었습니다. 반대로 고려 말 명분에 사로잡혀 성급하게 선택했을 때, 고려는 품격을 잃었습니다. 현실을 읽지 못하고, 감정에 휘둘리며, 미래를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강함이 아니라 현명함, 목소리가 아니라 안목, 선택이 아니라 균형. 고려가 500년을 버틴 비결은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현명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과거를 외우는 일이 아닙니다. 과거의 선택을 통해 오늘의 기준을 세우는 일입니다. 고려의 외교는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으로 판단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고려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을 제대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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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불행사회
홍선기 지음 / 모티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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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6년 새벽, 우리는 이미 도착한 미래 앞에 서 있다. 일본이 40년에 걸쳐 천천히 무너졌다면, 한국은 그 속도를 두 배로 압축하고 있다. 1989년 일본의 출산율 1.57이 충격이었다면, 2024년 한국의 0.75는 재앙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우리가 그 숫자를 보면서도 "아직은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그 안일함이다. <최소불행사회>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왜 이미 펼쳐진 답안지를 보고도 같은 오답을 반복하는가? 일본의 프리터는 한국의 긱워커가 되었 고, 무연사회는 초솔로사회로 변주되었을 뿐, 본질은 동일하다. 마치 같은 악보를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것처럼, 우리는 일본이라는 거울 속에서 우리 자신을 목격하고 있다.

책이 추적하는 일본의 몰락 과정은 세 개의 파도로 요약된다. 첫 번째 파도는 경제 금융 시스템의 붕괴였다. 버블이 터지고 땅값이 폭락하면서 중산층의 자산이 증발했다. 두 번째 파도는 고용 시스템의 붕괴였다. 정규직 일자리는 사라지고 비정규직이 표준이 되었다. 세 번째 파도는 공공 시스템, 즉 국가에 대한 신뢰의 붕괴였다. 연금은 사라졌고, 안전망은 구멍 투성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 세 파도 사이에서 '잃어버린 세대'가 탄생했다. 취업 빙하기를 겪은 청년들은 중년이 되어서도 비정규직으로 남았고, 결혼과 출산을 포기했으며, 노후 준비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이들은 시스템에 배신당했지만, 그 배신을 자신의 무능으로 내면화했다. 사회는 이들에게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고, 이들은 침묵했다. 한국의 MZ세대 역시 같은 서사를 반복하고 있다. 취업난, 주거비 폭등, 연금 고갈에 대한 불안. 차이가 있다면 한국은 이 모든 과정이 더 빠르고, 더 극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30년에 걸쳐 천천히 가라앉았다면, 한국은 15년 만에 같은 깊이로 침 몰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9가지 금기된 해법은 불편하다. 폐교를 시니어 대학 타운으로 전환하자는 제안, 부동산 자산가에게 고령화 기금을 징수하자는 제안, 최저임금 차등제를 도입하자는 제안, 심지어 투표권 면허제까지. 이 모든 제안은 누군가의 표를 잃게 만들 것이고, 누군가의 기득권을 건드릴 것이며, 누군가의 분노를 살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들은 반드시 던져져야 한다. 정치는 인기 투표가 아니라 미래 설계여야 한다. 포퓰리즘과 책임 있는 정책의 차이는, 바로 지금 당장 불편한 질문을 던질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일본이 실패한 이유는 경제 위기 자체가 아니라, 그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구조 개혁을 계속 미뤘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같은 함정에 빠져 있다. 연금 개혁은 선거 때마 다 미뤄지고, 부동산 정책은 표심에 따라 요동치며, 저출산 대책은 예산만 쏟아붓고 효과는 미미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행복한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제는 목표를 바꿔야 할 때다. 행복을 극대화하는 사회가 아니라, 불행을 최소화하는 사회로.

"최소불행사회"라는 개념은 냉소적으로 들릴 수 있다. 행복을 추구하는 대신 불행을 줄이는 것이 목표라니, 얼마나 비관적인가. 그러나 이것은 냉소가 아니라 현실주의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누구도 극단적인 불행에 빠지지 않게 만들 수는 있다. 무연고 사망, 간병 파산, 고독사, 청년 고립-이런 최악의 불행들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다.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방치된 불행이 어떻게 사회 전체를 잠식하는가 하는 점이다. 은둔형 외톨이가 100만 명을 넘어서고, 하류 노인이 표준이 되고, 무연사회가 당연시되는 순간, 그 사회는 이미 회복 불가능한 지점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불행은 전염되기 때문이다. 고립된 청년은 중년이 되어도 고립되고, 간병에 지친 가족은 무너지며, 그 무너짐은 다음 세대로 대물림된다. 한국은 아직 늦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손 쓸 수 있는 마지막 시간대에 있다. 일본이 40년간 보여준 실패 사례는 우리에게 일종의 '시뮬레이션' 결과다. 우리는 그 시뮬레이션을 보고도 같은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

시스템 개혁은 시간이 걸린다. 법이 바뀌고, 제도가 정착되고, 문화가 변화하기까지는 최소 10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개인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저자가 제시하는 11가지 생존 매뉴얼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1인 바비큐 레스토랑, 덕질 병원, 시니어 라이프스타일 잡지, 24시 무인 헬스장 등 모든 아이디어는 창업 아이템만이 아니다. 이것은 변화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 적응 전략 ' 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고, 돌봄 수요가 폭증하고, 세대 간 단절이 심화되는 사회에서, 어떻게 틈새를 발견하고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이 매뉴얼들이 모두 '관계'와 '연대'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1인 바비큐는 고립된 개인을 위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안전하게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이다. 시니어 잡지는 소외된 노년층에게 정보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존재를 가시화한다 즉, 생존 매뉴얼은 각자도생이 아니라 '연대적 생존'을 지향한다.

일본은 거울이다. 그 거울은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준다. 그러나 거울은 운명이 아니다. 우리는 그 거울을 보고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라는 행위 자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기로에 서 있다. 출 산율 0.75, 청년 실업, 노인 빈곤, 돌봄 위기-모든 지표가 경고등을 켜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아직은 괜찮아", “일본처럼 되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이 안일함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이다. 저자는 희망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더 나빠지지 않을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의 가치는 '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 질문 '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행복을 추구하다 불행으로 추락하는 사회인가, 아니면 불행을 최소화하며 존엄을 지키는 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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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을 바꾸는 왼손 필사 - 익숙한 손을 바꾸면, 마음의 잠금이 풀린다
서선행.이은정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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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빨라졌을까. 손가락 하나로 메시지를 보내고, 몇 번의 클릭으로 하루 일과를 정리하며,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최적화한다. 오른손은 익숙한 궤도를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고, 우리의 뇌는 그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모든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정말 행복해졌을까? 아니면 단지 바빠졌을 뿐일까? 왼손 필사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서툰 손으로 글자를 쓴다는 것은, 마치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 과 같다. 비효율적이고, 느리고, 때로는 답답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 우리가 잊고 있던 무언가가 숨어 있다. 그것은 과정을 음미하는 여유이며, 현재 순간에 온전히 머무는 집중이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기 수용의 메시지다.

처음 왼손으로 펜을 쥐었을 때의 어색함을 떠올려본다. 펜은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미끄러지고, 획은 흔들리며, 글자는 어린아이의 것처럼 삐뚤삐뚤하다. 오른손으로는 무심코 쓸 수 있던 단순한 자음 하나조차 왼손에게는 도전이 된다. '7'자의 수직선 하나를 긋는 데도 온 신경이 손끝에 모인다. 종이 위에서 펜이 지나가는 감촉, 잉크가 번지는 속도, 손목의 미세한 떨림까지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 낯선 감각이야말로 왼손 필사의 핵심이다. 익숙함은 우리를 자동 모드로 만들 지만, 낯섦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한다. 왼손으로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다. 동시에 여러 생각을 하거나 다른 일을 처리할 여유가 없다. 오직 지금, 이 한 회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평소 머릿속을 어지럽히 던 수많은 잡념들이 조용히 물러난다. 복잡했던 고민, 해결되지 않는 문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잠시 멈춘다. 오직 펜과 종이, 그리고 천천히 형태를 갖춰가는 글자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세계가 펼쳐진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완벽을 요구한다. 일은 효율적으로, 결과는 훌륭하게, 모든 것은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고, 느림은 무능으로 치부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왼손 필사는 정반대의 철학을 제안한다. 엉성해도 괜찮고, 느려도 좋고, 실수해도 된다는 것이다. 왼손으로 쓴 글씨는 애 초에 아름다울 수 없다. 오른손으로 쓴 글씨와 비교하면 형편없고, SNS에 올릴 만큼 예쁘지도 않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왼손 필사의 치유력이다. 우리는 결과물의 완성도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삐뚤빼뚤한 글자를 보며 자책하는 대신, '이 정도면 됐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리고 그 작은 자기 수용이 일상의 다른 영역으로 퍼져나간다.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 부족한 점이 있는 내 삶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게 된다. 또한 왼손 필사는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친다.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손을 참고 견디는 과정에서 우리는 감정 조절 능력을 키운다. 답답함과 짜증이 올라오지만 그 것을 억누르는 대신 관찰한다. '아, 지금 내가 조급해지고 있구나, '완벽주의가 발동하고 있네' 하고 알아차린다. 이런 메타인지적 태도는 일상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화가 날 때 즉각 반응하는 대신 한 템포 쉬어가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명상이라고 하면 흔히 고요히 앉아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런 전통적인 명상은 오히려 어렵다. 생각을 비우려 할수록 더 많은 잡념이 떠오르고, 가만히 있으려 할수록 몸이 근질거린다. 그런 사람 들에게 왼손 필사는 훌륭한 대안이 된다. 손을 움직이며 감각에 집중하는 '동적 명상'인 셈이다. 필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음챙김 상태에 들어간다. 펜이 종이에 닿는 압력, 잉크가 번지는 속도, 손목과 팔의 움직임, 글자가 완성되 어 가는 시각적 변화까지 모든 감각이 현재 순간에 고정된다.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걱정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의 경험에 온전히 머문다. 이것이 바로 명상의 본질이다. 특히 왼손이라는 낯선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집중도는 더욱 높아진다. 오른손으로 쓸 때는 무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들도 왼손으로는 의식적으로 조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뇌의 새로운 영역이 활성화되고, 고정된 사고 회로에 신선한 자극이 가해진다. 반복적인 일상에 지친 뇌에게 왼손 필사는 마치 여행과 같은 경험이다. 익숙한 풍경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우리가 느끼는 그 생동감과 활력이 손끝에서 피어난다.

왼손 필사의 또 다른 매력은 문장을 진정으로 음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빠르게 읽어 내려갈 때는 스쳐 지나가던 문장들 이, 한 글자 한 글자 왼손으로 옮겨 쓸 때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헤밍웨이의 간결한 문체가 지닌 힘, 한용운의 시어가 품은 깊은 슬픔과 희망, 루미의 시가 전하는 영적인 울림이 손끝을 통해 온몸으로 스며든다. 글을 읽는 것과 쓰는 것 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읽을 때는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쓸 때는 그 정보가 내 안을 통과하며 재해석된다. 특히 왼손이라는 서툰 매개체를 거치면 그 과정은 더욱 느려지고 깊어진다.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위로의 문장도 왼손으로 천천히 쓰다 보면 글자 이상의 무게를 갖는다. 각 글자가 형성되는 동안 그 의미가 마음속 깊이 새겨 지고, 어느새 그 문장은 남의 말이 아닌 나 자신의 다짐이 된다.

왼손 필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얼마나 예쁜 글씨를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얼마나 현재에 머물렀는가, 얼마나 나 자신과 대화했는가가 중요하다. 완성된 페이지를 채우는 것도 의미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느낀 평온함, 마주한 나 자신의 모습, 발견한 내면의 소리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의도적으로 느려지는 시간이 아닐까.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일부러 속도를 늦추고 불편함을 선택하는 용기. 왼손 필사는 그런 작은 실천이다. 큰 결심이나 거창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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