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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을 바꾸는 왼손 필사 - 익숙한 손을 바꾸면, 마음의 잠금이 풀린다
서선행.이은정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빨라졌을까. 손가락 하나로 메시지를 보내고, 몇 번의 클릭으로 하루 일과를 정리하며,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최적화한다. 오른손은 익숙한 궤도를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고, 우리의 뇌는 그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모든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정말 행복해졌을까? 아니면 단지 바빠졌을 뿐일까? 왼손 필사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서툰 손으로 글자를 쓴다는 것은, 마치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 과 같다. 비효율적이고, 느리고, 때로는 답답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 우리가 잊고 있던 무언가가 숨어 있다. 그것은 과정을 음미하는 여유이며, 현재 순간에 온전히 머무는 집중이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기 수용의 메시지다.
처음 왼손으로 펜을 쥐었을 때의 어색함을 떠올려본다. 펜은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미끄러지고, 획은 흔들리며, 글자는 어린아이의 것처럼 삐뚤삐뚤하다. 오른손으로는 무심코 쓸 수 있던 단순한 자음 하나조차 왼손에게는 도전이 된다. '7'자의 수직선 하나를 긋는 데도 온 신경이 손끝에 모인다. 종이 위에서 펜이 지나가는 감촉, 잉크가 번지는 속도, 손목의 미세한 떨림까지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 낯선 감각이야말로 왼손 필사의 핵심이다. 익숙함은 우리를 자동 모드로 만들 지만, 낯섦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한다. 왼손으로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다. 동시에 여러 생각을 하거나 다른 일을 처리할 여유가 없다. 오직 지금, 이 한 회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평소 머릿속을 어지럽히 던 수많은 잡념들이 조용히 물러난다. 복잡했던 고민, 해결되지 않는 문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잠시 멈춘다. 오직 펜과 종이, 그리고 천천히 형태를 갖춰가는 글자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세계가 펼쳐진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완벽을 요구한다. 일은 효율적으로, 결과는 훌륭하게, 모든 것은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고, 느림은 무능으로 치부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왼손 필사는 정반대의 철학을 제안한다. 엉성해도 괜찮고, 느려도 좋고, 실수해도 된다는 것이다. 왼손으로 쓴 글씨는 애 초에 아름다울 수 없다. 오른손으로 쓴 글씨와 비교하면 형편없고, SNS에 올릴 만큼 예쁘지도 않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왼손 필사의 치유력이다. 우리는 결과물의 완성도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삐뚤빼뚤한 글자를 보며 자책하는 대신, '이 정도면 됐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리고 그 작은 자기 수용이 일상의 다른 영역으로 퍼져나간다.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 부족한 점이 있는 내 삶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게 된다. 또한 왼손 필사는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친다.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손을 참고 견디는 과정에서 우리는 감정 조절 능력을 키운다. 답답함과 짜증이 올라오지만 그 것을 억누르는 대신 관찰한다. '아, 지금 내가 조급해지고 있구나, '완벽주의가 발동하고 있네' 하고 알아차린다. 이런 메타인지적 태도는 일상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화가 날 때 즉각 반응하는 대신 한 템포 쉬어가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명상이라고 하면 흔히 고요히 앉아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런 전통적인 명상은 오히려 어렵다. 생각을 비우려 할수록 더 많은 잡념이 떠오르고, 가만히 있으려 할수록 몸이 근질거린다. 그런 사람 들에게 왼손 필사는 훌륭한 대안이 된다. 손을 움직이며 감각에 집중하는 '동적 명상'인 셈이다. 필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음챙김 상태에 들어간다. 펜이 종이에 닿는 압력, 잉크가 번지는 속도, 손목과 팔의 움직임, 글자가 완성되 어 가는 시각적 변화까지 모든 감각이 현재 순간에 고정된다.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걱정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의 경험에 온전히 머문다. 이것이 바로 명상의 본질이다. 특히 왼손이라는 낯선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집중도는 더욱 높아진다. 오른손으로 쓸 때는 무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들도 왼손으로는 의식적으로 조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뇌의 새로운 영역이 활성화되고, 고정된 사고 회로에 신선한 자극이 가해진다. 반복적인 일상에 지친 뇌에게 왼손 필사는 마치 여행과 같은 경험이다. 익숙한 풍경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우리가 느끼는 그 생동감과 활력이 손끝에서 피어난다.
왼손 필사의 또 다른 매력은 문장을 진정으로 음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빠르게 읽어 내려갈 때는 스쳐 지나가던 문장들 이, 한 글자 한 글자 왼손으로 옮겨 쓸 때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헤밍웨이의 간결한 문체가 지닌 힘, 한용운의 시어가 품은 깊은 슬픔과 희망, 루미의 시가 전하는 영적인 울림이 손끝을 통해 온몸으로 스며든다. 글을 읽는 것과 쓰는 것 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읽을 때는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쓸 때는 그 정보가 내 안을 통과하며 재해석된다. 특히 왼손이라는 서툰 매개체를 거치면 그 과정은 더욱 느려지고 깊어진다.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위로의 문장도 왼손으로 천천히 쓰다 보면 글자 이상의 무게를 갖는다. 각 글자가 형성되는 동안 그 의미가 마음속 깊이 새겨 지고, 어느새 그 문장은 남의 말이 아닌 나 자신의 다짐이 된다.
왼손 필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얼마나 예쁜 글씨를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얼마나 현재에 머물렀는가, 얼마나 나 자신과 대화했는가가 중요하다. 완성된 페이지를 채우는 것도 의미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느낀 평온함, 마주한 나 자신의 모습, 발견한 내면의 소리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의도적으로 느려지는 시간이 아닐까.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일부러 속도를 늦추고 불편함을 선택하는 용기. 왼손 필사는 그런 작은 실천이다. 큰 결심이나 거창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