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외교를 이야기할 때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아마도 원나라 시기일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시기를 고려 외교의 실패로 규정합니다. 실제로 굴욕적인 사건들이 많았고, 국가 자율성도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몽골제국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초강대국이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제국 앞에서 고려만큼 버틴 나라가 얼마나 될까요? 30년 항쟁 끝에 고려는 결국 몽골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지만, 완전히 병합되지는 않았 습니다. 왕조를 유지했고, 언어와 문화를 지켰으며, 제도적 정체성을 보존했습니다. 충렬왕의 친조 외교는 이런 맥락에서 재평가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쿠빌라이와의 협상에서 원칙을 세웠습니다. 형식적 복속은 받아들이되, 내정 간섭은 최소화하는 선을 그었습니다. 몽골 공주와의 혼인도 굴욕이 아니라 왕권 보호의 전략으로 활용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친원 세력의 횡포, 기황후 일족의 전횡, 국가 질서의 혼란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외교 전략 자체의 실패라기보다, 국내 정치 역학의 실패로 봐야 합니다. 외교는 성공했지만, 그 성과를 국내적으로 관리하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고려 외교가 진짜 실패한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고려 말 친명반원 노선을 성급하게 선택했을 때였습니다. 원이 쇠퇴하고 명이 부상하는 과도기, 고려는 너무 빨리 명나라 편에 섰습니다. 중립을 포기하고 명확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결과는? 명은 오히려 고려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려는 대항할 수단이 없었습니다. 원과의 관계를 너무 일찍 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약소국 외교의 정석입니다. 그런데 왜 고려는 이 원칙을 버렸을까요? 그 배경에는 신진 사대부의 명분론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실리보다 명분을 우선시했습니다. "오랑캐 원나라를 버리고 중화 명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이념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외교적으로는 재앙이었습니다. 명분에 갇힌 외교는 현실을 읽지 못합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게 됩니다. 고려가 수백 년 동안 유지해온 실리 외교의 전통이 무너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