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여행 - 개정판 모든 요일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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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과연 여행과 일상의 경계는 무엇인가? " 였다. 우리는 흔히 여행을 일상의 탈출구로 여긴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 그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이분법적 사고에 균열을 낸다. 작가는 여행지에서도 쌀을 씻고,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한다. 여행지의 슈퍼마켓을 돌아다니며 장을 보고, 동네 카페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평범한 순간들 속에서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일상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만약 여행지에서의 평범한 일상이 특별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일상 또한 여행처럼 특별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가 망원동을 '고향'이라고 부르게 된 과정이 이를 증명한다. 태어난 곳도 아닌 그곳을 고향이라 부를 수 있었던 건, 그곳의 골목을 여행하듯 걸었기 때문이다. 그곳의 카페를, 식당을, 사람들을 여행 자의 시선으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느림'이다. 느리게 주문을 받는 식당, 느리게 음식이 나오는 카페, 헤매고 길을 잃는 시간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느림은 참을 수 없는 비효율이다. "빨리빨리"가 몸에 배어 있는 우리는 여행지에서조차 그 속도를 유지하려 한다. 최대한 많은 곳을 가보고,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SNS에 올릴 만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작가는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라는 것이다. 이는 비단 여행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 또한 쉼 없이 달려가야 하는 평일로만 채워져 있지 않은가? 생산적이어야 하고, 유용해야 하고,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우리는 '무용한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파리의 카페에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느낀 해방감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얼마나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슈퍼에고에서 벗어나는 순간, 비로소 '지금 여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나른함 속에서, 무료함 속에서,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 속에서 오히려 삶의 본질적인 것들이 드러난다.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은 불편함이다. 우리는 여행을 완벽하게 계획하려 한다. 맛집 리스트를 만들고, 동선을 최적화하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여행의 진짜 이야기는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에 시작된다. 버스를 놓치고, 예약한 식당이 문을 닫았고, 비가 내려 계획했던 일정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들. 바로 그 순간들이 우리를 여행자로 만든다. 작가가 안개 낀 톨레도에서 깨달은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최선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완벽한 날씨, 완벽한 일정, 완벽한 경험을 기대하는 대신, 지금 주어진 이 순간 속에서 좋은 부분을 찾아내려 애쓰는 것. 그것이 여행을 풍요롭게 만드는 비결이다. 이는 우리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는 자주 좌절한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그 불편함을 여행에서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떨까? "오늘은 일요일이다"라고 선언하며 조급함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은 한결 가벼워질 것 이다.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기록'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쓴다. 여행지에서도, 일상에서도. 그리고 그 기록들이 모여 삶이 된다. 단순히 어디를 갔고 무엇을 샀는지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을, 생각을, 의미를 기록한다. 불행을 쓰면 그것이 수첩 속에 갇히고, 행복을 쓰면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된다고 말하는 작가의 고백은 기록의 치유적 힘을 보여준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는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가슴 뛰었던 순간도, 아 팠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그러나 기록은 그 순간들을 붙잡는다. 더 나아가 기록은 그 순간을 재해석하게 만든다. 막연히 좋았던 순간이 왜 좋았는지, 불편했던 순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돌아보게 된다. 작가가 "나는 이런 걸 좋아 하는 사람이구나"를 여행을 통해 배웠다고 말할 때, 그것은 여행을 다녀온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이다. 기록하고, 돌아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작업이다. 나는 무엇을 좋아 하는 사람인가? 무엇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일상을 기록 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일상을 여행처럼 사랑하고자 한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설렘과 호기심, 관대함과 여유를 일상에도 가져오고 싶다. 매일 아침 기지개를 켜며 ”오늘이 다시 오지 않을 한 때"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루는 달라질 것이다.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만이 아니다. 익숙한 동네를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것, 자주 가던 카페에서 새로운 메뉴를 시도하는 것, 늘 지나치던 골목을 천천히 걸어보는 것. 이 모든 것이 여행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불편함을 받아 들이는 것, 느림을 허락하는 것, 무용한 시간을 견디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기록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다짐해 본. 내 일상의 고향을 사랑하겠다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여행하듯 바라보겠다고, 희망을 고집하겠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이 다시 오지 않을 한 때임을 기억하며 이 순간을 살아가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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