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소불행사회
홍선기 지음 / 모티브 / 2026년 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6년 새벽, 우리는 이미 도착한 미래 앞에 서 있다. 일본이 40년에 걸쳐 천천히 무너졌다면, 한국은 그 속도를 두 배로 압축하고 있다. 1989년 일본의 출산율 1.57이 충격이었다면, 2024년 한국의 0.75는 재앙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우리가 그 숫자를 보면서도 "아직은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그 안일함이다. <최소불행사회>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왜 이미 펼쳐진 답안지를 보고도 같은 오답을 반복하는가? 일본의 프리터는 한국의 긱워커가 되었 고, 무연사회는 초솔로사회로 변주되었을 뿐, 본질은 동일하다. 마치 같은 악보를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것처럼, 우리는 일본이라는 거울 속에서 우리 자신을 목격하고 있다.
책이 추적하는 일본의 몰락 과정은 세 개의 파도로 요약된다. 첫 번째 파도는 경제 금융 시스템의 붕괴였다. 버블이 터지고 땅값이 폭락하면서 중산층의 자산이 증발했다. 두 번째 파도는 고용 시스템의 붕괴였다. 정규직 일자리는 사라지고 비정규직이 표준이 되었다. 세 번째 파도는 공공 시스템, 즉 국가에 대한 신뢰의 붕괴였다. 연금은 사라졌고, 안전망은 구멍 투성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 세 파도 사이에서 '잃어버린 세대'가 탄생했다. 취업 빙하기를 겪은 청년들은 중년이 되어서도 비정규직으로 남았고, 결혼과 출산을 포기했으며, 노후 준비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이들은 시스템에 배신당했지만, 그 배신을 자신의 무능으로 내면화했다. 사회는 이들에게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고, 이들은 침묵했다. 한국의 MZ세대 역시 같은 서사를 반복하고 있다. 취업난, 주거비 폭등, 연금 고갈에 대한 불안. 차이가 있다면 한국은 이 모든 과정이 더 빠르고, 더 극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30년에 걸쳐 천천히 가라앉았다면, 한국은 15년 만에 같은 깊이로 침 몰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9가지 금기된 해법은 불편하다. 폐교를 시니어 대학 타운으로 전환하자는 제안, 부동산 자산가에게 고령화 기금을 징수하자는 제안, 최저임금 차등제를 도입하자는 제안, 심지어 투표권 면허제까지. 이 모든 제안은 누군가의 표를 잃게 만들 것이고, 누군가의 기득권을 건드릴 것이며, 누군가의 분노를 살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들은 반드시 던져져야 한다. 정치는 인기 투표가 아니라 미래 설계여야 한다. 포퓰리즘과 책임 있는 정책의 차이는, 바로 지금 당장 불편한 질문을 던질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일본이 실패한 이유는 경제 위기 자체가 아니라, 그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구조 개혁을 계속 미뤘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같은 함정에 빠져 있다. 연금 개혁은 선거 때마 다 미뤄지고, 부동산 정책은 표심에 따라 요동치며, 저출산 대책은 예산만 쏟아붓고 효과는 미미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행복한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제는 목표를 바꿔야 할 때다. 행복을 극대화하는 사회가 아니라, 불행을 최소화하는 사회로.
"최소불행사회"라는 개념은 냉소적으로 들릴 수 있다. 행복을 추구하는 대신 불행을 줄이는 것이 목표라니, 얼마나 비관적인가. 그러나 이것은 냉소가 아니라 현실주의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누구도 극단적인 불행에 빠지지 않게 만들 수는 있다. 무연고 사망, 간병 파산, 고독사, 청년 고립-이런 최악의 불행들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다.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방치된 불행이 어떻게 사회 전체를 잠식하는가 하는 점이다. 은둔형 외톨이가 100만 명을 넘어서고, 하류 노인이 표준이 되고, 무연사회가 당연시되는 순간, 그 사회는 이미 회복 불가능한 지점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불행은 전염되기 때문이다. 고립된 청년은 중년이 되어도 고립되고, 간병에 지친 가족은 무너지며, 그 무너짐은 다음 세대로 대물림된다. 한국은 아직 늦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손 쓸 수 있는 마지막 시간대에 있다. 일본이 40년간 보여준 실패 사례는 우리에게 일종의 '시뮬레이션' 결과다. 우리는 그 시뮬레이션을 보고도 같은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
시스템 개혁은 시간이 걸린다. 법이 바뀌고, 제도가 정착되고, 문화가 변화하기까지는 최소 10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개인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저자가 제시하는 11가지 생존 매뉴얼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1인 바비큐 레스토랑, 덕질 병원, 시니어 라이프스타일 잡지, 24시 무인 헬스장 등 모든 아이디어는 창업 아이템만이 아니다. 이것은 변화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 적응 전략 ' 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고, 돌봄 수요가 폭증하고, 세대 간 단절이 심화되는 사회에서, 어떻게 틈새를 발견하고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이 매뉴얼들이 모두 '관계'와 '연대'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1인 바비큐는 고립된 개인을 위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안전하게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이다. 시니어 잡지는 소외된 노년층에게 정보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존재를 가시화한다 즉, 생존 매뉴얼은 각자도생이 아니라 '연대적 생존'을 지향한다.
일본은 거울이다. 그 거울은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준다. 그러나 거울은 운명이 아니다. 우리는 그 거울을 보고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라는 행위 자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기로에 서 있다. 출 산율 0.75, 청년 실업, 노인 빈곤, 돌봄 위기-모든 지표가 경고등을 켜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아직은 괜찮아", “일본처럼 되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이 안일함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이다. 저자는 희망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더 나빠지지 않을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의 가치는 '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 질문 '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행복을 추구하다 불행으로 추락하는 사회인가, 아니면 불행을 최소화하며 존엄을 지키는 사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