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안과 트랙터 막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68
비네테 슈뢰더 지음, 엄혜숙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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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네테 슈뢰더의 그림은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이다. 친숙한 듯하지만 낯설고, 괴이한 듯하지만 매혹적이다. 역동적인 장면을 담고 있지만 정지 화면의 느낌이 강하고,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안개에 싸인 듯 음울한 기조가 흐른다. 하고 싶은 말은 넘치고 제대로 정의내리기는 어려워 쩔쩔매는 모습에서 눈치 챘겠지만 나는 이 작가를 무척 좋아한다. 역시나 좋아하는 작가 미하엘 엔데의 글에 그림을 그린 『보름달의 전설』, 그림형제의 이야기에 그림을 입힌 『개구리 왕자』, 남편 페니 니클이 글을 쓰고 비네테 슈뢰더가 그림을 그린 『악어야, 악어야』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세계를 보여준 비네테 슈뢰더의 팬이 되었다. 『플로리안과 트랙터 막스』는 글과 그림 작업을 비네테 슈뢰더 혼자 해낸 그림책이다. 『보름달의 전설』은 미하엘 엔데의 환상적인 글에 찰떡궁합처럼 잘 어울리는 일러스트가 글의 맛을 오히려 배가시켰고, 『개구리 왕자』는 비네테 슈뢰더의 일러스트를 따를 책이 없고, 『악어야, 악어야』는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뽑힌 적이 있을 정도로 비네테 슈뢰더의 일러스트는 워낙 환상적이다. 그런데 『플로리안과 트랙터 막스』를 보니 이야기를 구성해가는 솜씨도 좋아서 앞으로도 글과 그림을 병행해서 작업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늙은 얼룩말 플로리안이 쟁기를 끌고 농부 클라아스 클라아센이 쟁기를 밀면서 밭을 갈지만 이 둘은 노쇠해서 하루 종일 밭의 절반도 채 갈기 힘들다. 하지만 내일이면 젊고 힘이 좋은 트랙터 막스가 오기로 되어있었다. 플로리안은 트랙터 막스와 좋은 친구가 되는 꿈까지 꾸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에 도착한 트랙터 막스는 농장 식구들의 반가움도 외면한 채 오자마자 밭으로 향하더니 하루 종일 일만 한다. 플로리안은 우리에서 하루 종일 트랙터 막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자신의 농장 일을 대신해 줄 노동력으로서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교류할 수 있는 친구를 기다렸던 플로리안에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트랙터 막스는 시커먼 벤진 연기만 확 내뿜어버리곤 창고 구석으로 가버린다. 플로리안이 다가가 인사를 건네 보지만 벽 쪽으로 싹 돌아서기까지 하면서 상대조차 하려하지 않는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면서 플로리안은 마음을 다쳐서 시무룩해하고, 농부 클라아스 클라아센은 그런 플로리안이 안쓰러워 위로하지만 트랙터 막스는 계절이 몇 번 바뀔 때까지도 여전히 마음을 열지 않는다.


겨울이 지나 봄이 왔지만 비가 계속 내려 땅이 진창이다. 워커홀릭 트랙터 막스는 밭을 갈러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나서 잠깐 비가 그친 새를 놓치고 않고 밭으로 나간다. 질척거리는 땅은 트랙터 막스를 곤경에 빠트리게 되고 막스의 희미한 구조신호를 들은 플로리안과 농부 클라아스를 비롯한 농장 식구들은 트랙터 막스를 구하러 총출동한다. 플로리안의 도움으로 진창에서 빠져나온 트랙터 막스가 플로리안과 단짝친구가 되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젊고 의기양양한 트랙터 막스에게 늙고 볼품없는 말 플로리안과 왕왕 짖어대는 개 레오와 고양이 미와 파이프 담배로 소일거리나 하는 늙은 농부가 시답잖게 보였을 것이다. 막스 자신이 곤경에 처할 일도 그래서 그들의 손을 빌릴 일도 없을 거라고 단정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위험한 상황에서 이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오게 되니 그동안 융화를 거부했던 도도함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세상엔 댓가 없이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터무니없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이 있고, 사회악이라 불릴 만큼 민폐만 끼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 공짜로 주어지는 것도 싫고 내 것은 물질적인 것이든 하다못해 겉치레 인사조차 남에게 주는 것도 싫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에 벽을 쌓아두고 일체의 교류나 간섭을 피하는 사람들 말이다.

 

벽을 허물고 스스로의 고립무원에서 빠져나와 적당한 소란스러움과 적당한 번잡함 속에서 얼마나 따스하고 행복한지 비네테 슈뢰더의 그림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계절과 상관없이 꽃이나 열매나 이파리 없이 앙상했던 나무가 플로리안과 막스의 화해 이후로 물이 오르고 꽃이 피고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고 분위기도 화사해진다. 한해가 지나도록 막스 때문에 서러웠던 플로리안은 마음의 상처가 컸을 텐데도 너그럽게 막스의 수줍은 사과를 받아준다. 젊은이의 치기 어린 행동을 현명하고 연륜 있는 어르신이 받아주는 것처럼 늙은 말 플로리안과 트랙터 막스의 우정은 신구세대의 조화로 받아들여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순전히 “엄마, 플로리안은 구식이고 막스는 신식이에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서 얻은 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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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쌈知 (쌈지 시리즈) 8
쿤 더 포르터르 외 지음, 김근 옮김 / 주니어중앙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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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고 아이와 첫 도서관 나들이... 여느 때처럼 아이는 서가에서 책을 골라 자리 잡고 앉아서 책을 읽고 나는 준비해간 목록의 책을 찾아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방학이라 도서관은 서가 옆 책 읽는 공간도 빈자리 하나 없을 만큼 아이들로 만원이었다. 아이 옆에는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이 앉아서 문제풀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책을 찾고 고르는 틈틈이 아이의 동태를 살피는데 웬일인지 아이는 꼼짝 않고 처음 꺼내서 읽은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보통의 경우는 손에 잡히는 대로 혹은 제목에 끌려서 읽다가 흥미가 없으면 곧 다른 책을 꺼내서 읽는데 꽤 흥미로운 책을 읽고 있는 모양이었다. 책을 다 골라놓고 청소년 도서나 어린이 도서관 한쪽에 마련된 일반도서들도 다 훑어보고 아이 옆에 슬그머니 다가갔는데도 책에 푹 빠져 읽고 있었다. 부모라면 이런 모습 지켜보고 있으면 안 먹어도 배부른 심정을 잘 알 터이다. 슬쩍 책을 훔쳐보니 무슨 건축설계도면이나 조감도 같은 그림이 잔뜩 들어있는 요상한(?) 책이었다.


다 읽고도 빌려다 읽고 나서도 구입까지 하고 싶다는 이 책은 내게 입력된 정보가 없는 책이었다. 커다란 판형에 앞서 말한 대로 건축 설계도면 같은 그림의 이 책은 주니어 중앙에서 출판한 ‘쌈지시리즈’ 중 한권인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이다. 이 책은 네덜란드 그림책이다. 제목 그대로 도시의 생성과 혁신적인 공간 창조의 과정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설명한 책이다. 예스의 도서 분류에는 초등 1,2학년 사회/문화/시사 학습란에 포함되어 있다. 평소 읽던 어린이 문학과 자연과학 도서가 아닌 책에 아이가 새롭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 신기해서 아이가 읽은 뒤에 읽어보니 도시의 여러 기능이라든지 도시의 생성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하는 과정을 이야기를 통해서 알기 쉽게 잘 만들어졌다.


아기돼지 삼형제를 답습하는 동화 속 모든 부모님은 자식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꿈을 펼칠 곳을 찾아서 떠나라는 명목으로 자식들을 내쫓는다.(나도 이런 거 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삼형제 에르윈, 스펜, 피터의 나무꾼 아버지도 아들들이 열여덟 살이 되자 하나씩 집밖으로 내몬다. 집이었던 와글와글 숲을 떠나 한참을 걸어 넓은 평야에 도착한 에르윈은 왠지 무엇에 끌린 듯 평야에 오롯이 존재했던 부추 옆에 집을 짓고 살기로 한다. 에르윈이 보금자리를 만들고 있는 중에도 에르윈의 아름다운 부추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고 부추의 얘기는 약간의 과장과 너스레가 더해져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부추’는 특화된 자원이나 관광 상품 같은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에르윈의 집 주변으로 부추를 상품화한 각종 건물들이 들어서고 도시는 매일 매일이 부추 축제와 같다. 아무 것도 없었던 곳에서 수많은 집과 공장과 가게들이 들어선 도시가 만들어진 것이다.


둘째 스펜도 어김없이 열여덟 살에 독립을 한다. 스펜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스펜의 도시는 이야기 속 ‘불량배’로 그려진 외부의 침입과 위험으로부터 도시인들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내는데 중점을 뒀다. 와글와글 숲을 벗어나 우연히 만나게 된 열세명의 ‘불량배’ 때문에 불안하고 겁에 질린 사람들에게 안전한 도시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스펜의 안전한 도시는 높은 성벽 안으로 사람들을 모으게 되고 불량배들의 고도의 침입 작전을 모두 물리친 이후로는 성벽마저도 필요 없는 안전한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스펜의 도시는 평화로웠다. 

       

막내 피터는 그동안 두 형들의 도시에 대한 소식을 듣고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를 했다. 형들의 도시는 집이 많고 조용한 곳이 없음에 착안해서 조용히 쉴 수 있는 휴양도시를 만들 계획이었다. 형들처럼 우연히 혹은 필요에 의해서 자연스레 도시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막내 피터의 도시는 처음으로 세밀하고 정교한 설계도가 등장한 철저한 계획도시다. 집은 서로의 집을 비교해서 싸우는 일이 없도록 똑같은 크기로 만들어져야 하고, 집 주변에는 신선한 공기와 여가를 위한 자연 공간이 있고, 공장은 도로 옆에 자리 잡아 공장 화물차가 주거지로 들어오지 않도록 배려했고, 학교와 교회는 도시의 소음과 멀리 떨어져서 배치하고 모든 가게들은 한곳에 모아 쇼핑하기 편하게 만든 완벽한 도시다. 하지만 집의 색과 구조를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때맞춰 공장지역의 옥수수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한다. 사고 후 도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피터는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틀 속에 도시를 가두기보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살기 좋은 도시가 가장 이상적인 도시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질까?』가 초등 사회교과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지 모르겠지만 도시의 생성과 기능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쌈지 시리즈’ 전체를 훑어보니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꽤 있다. 가장 최근에 출간된 인권 동화책 『S.O.S. 위기의 아이들』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지금까지 출간된 9권의 책 중 3권이 품절 상태라 아쉽다. 갈수록 비대해져 가는 학습만화에 떠밀려서 괜찮은 책들이 심각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속히 품절 상태가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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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와 소름마법사 2
발터 뫼르스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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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뫼르스의 ‘차모니아 환상문학 시리즈’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차모니아의 작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쓰고 발터 뫼르스가 차모니아어에서 번역하고 삽화를 그린 작품들이다. 작품이 발표된 순서대로 꼽자면 『푸른 곰 선장의 13과 1/2 인생』,『엔젤과 크레테』,『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꿈꾸는 책들의 도시』다. 차모니아라는 상상의 대륙에서 펼쳐지는 작가적 상상력의 끝을 가늠하기조차 힘든 환상적인 모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발터 뫼르스의 팬이라면 능청스럽고 세세하게 지도까지 첨부해서 소개하고 있는 차모니아는 온갖 기이한 존재들과 고도의 지적  두뇌와 마법과 연금술이 혼합된 익숙한 공간이다. 나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통해서 차모니아 문학을 처음 접했고 순서를 완벽하게 거꾸로 이 시리즈들을 읽었고 결국 시리즈의 종착역인 『에코와 소름 마법사』에 이르렀다. 허겁지겁 홀린 듯 읽었던 4편의 차모니아 시리즈와 『에코와 소름 마법사』사이에는 2,3년 정도의 공백이 있다. 오랜만에 읽은 차모니아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 긴장감도 떨어지고 상상력 지수도 한껏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느낌이 강하다. 아무래도 『꿈꾸는 책들의 도시』로 정점을 찍고 『에코와 소름마법사』는 아쉬워하는 팬들의 여흥을 달래주는 조용한 마무리처럼 느껴진다.


늑대와 노루의 유전자를 가진 뿔 달린 강아지처럼 생겼으나 거인과의 싸움에서도 용맹스런 ‘루모’, 스물일곱 개의 삶을 산다는 ‘푸른 곰’처럼 ‘에코’는 모든 동물들의 언어를 알고 있는 고양이처럼 생긴 ‘코양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에코의 능력은 차모니아의 모든 언어들을 앍고 있으며 모든 생명체와의 대화가 가능하고 점차적으로 밝혀지지만 한번 듣거나 본 것들은 완벽하게 기억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예술분야에도 능하다. 더군다나 에코는 슬레트바야라는 도시의 마지막 남은 코양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며 거리를 전전하던 에코 앞에 나타난 소름마법사 아이스핀은 환상적인 요리로 배부르게 먹게 해줄 테니 한 달 뒤 소름보름날 에코의 몸에서 기름을 짜내는 거래를 하자고 제안한다. 소름마법사는 차모니아의 희귀한 생명체들의 몸을 푹푹 끓여서 기름 덩어리를 추출해서 수집하고 있었는데 시야에 들어온 도시의 마지막 남은 코양이를 눈독들일 수밖에... 거리에서 굶어죽거나 들개들의 공격에 죽든지 한 달 동안 진귀한 음식들 배불리 먹고 죽든지 매한가지라고 생각한 에코는 당장의 배고픔에 소름마법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우선의 화려한 음식들에 현혹되어 자신의 처지를 잊고 있던 에코에게 음침하고 비밀스런 소름마법사의 저택 지붕에 살고 있는 수리부엉이 피요도르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며 위기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모색할 것을 당부한다. 은밀한 비밀들까지 터놓는 사이가 됐으니 죽이기까지 하겠냐며 안이한 생각을 하기도 하고 동정심이나 사랑의 감정에 호소해 보려고도 했지만 결국 소름마법사와 대치관계인 소름마녀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공동작전을 펼치게 된다. 소름마법사의 저택은 연금술의 집합체다. 소름마녀는 감정이 배제된 소름마법사의 ‘연금술’에 자신의 ‘소름술’로 대항하려 한다.    


과거 비극적인 사랑으로 인해 광기에 사로잡힌 소름마법사 아이스핀은 생과 사의 주재자가 되려는 과대망상에 빠져 연금술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그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날이면 코스 요리를 장만해 식탁가득 차려놓지만 주인 없는 식사는 수년째 그대로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다. 그 장소를 에코에게 보여주는 소름마법사는 잠깐의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역시 사랑만큼 위대한 것이 없는 걸까? 오로지 사랑에 인생 전부를 저당 잡히고, 비극적 사랑에 인생을 송두리째 광기로 몰아넣고, 도시전체를 절망과 질병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비열한 악당을 흠모하게 만드는 사랑. 세상사의 근간을 이루는 최고의 연금술이며 소름술이 바로 사랑임을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차모니아 시리즈의 지독한 악역들, 예를 들면『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스마이크’나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의 구리용병 대장 ‘짹깍짹깍 대장’의 비열함과 악랄함에 비하면 역시 소름마법사는 이름만큼 소름끼칠 정도는 아니다. 이파리 늑대, 개암나무 마녀, 황금 데몬, 백설 과부처럼 차모니아의 악랄하고 비열한 존재들이 총집합해서 혼란과 공포를 담은 쿠테타를 일으키는 장면마저도 덤덤하다. 발터 뫼르스의 환상문학에 내성이 생긴 탓일까.


발터 뫼르스의 ‘차모니아 시리즈’는 열성팬들에게 정교하게 얽혀있고 중첩되어 있는 인물들을 찾아내는 재미를 빼놓지 않는다. 발터 뫼르스가 능청스럽게 이 모든 저작의 장본인이라 소개하는 차모니아 공룡작가 미텐메츠도 전설의 대장장이(‘푸른 곰 선장의 13과 1/2인생’), 풋내기 작가(‘꿈꾸는 책들의 도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엔젤과 크레테’)로 등장한다. ‘루모’나 ‘스마이크’를 비롯해서 이파리 늑대, 숲거미 마녀등의 차모니아의 괴이한 생명체들 또한 작품들을 넘나들며 출현한다. 발터 뫼르스가 상상력으로 구현한 기이하고 독특한 환상의 세계 ‘차모니아’는 아직 탐험해보지 못한 지역의 못 다한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비밀스런 안개 뒤로 숨겠다고 한다. 스물일곱 개의 삶을 갖고 있지만 절반인 13과 1/2의 삶 이야기만 하고 나머지는 침묵하겠다고 했던 『푸른 곰 선장의 13과 1/2인생』의 서문이 기억난다. 나머지 절반의 삶은 푸른 곰의 비밀로 남겨둬야 매력적이고 신비롭지 않겠냐는 작가의 말처럼 이제 아쉬움을 뒤로한 채 환상적인 모험으로 안내하던 ‘차모니아’와 작별해야 한다. 공룡작가 미텐메츠의 차모니아 시리즈를 벗어난 발터 뫼르스가 보여줄 다음 세상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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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와 소름마법사 1
발터 뫼르스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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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뫼르스의 ‘차모니아 환상문학 시리즈’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차모니아의 작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쓰고 발터 뫼르스가 차모니아어에서 번역하고 삽화를 그린 작품들이다. 작품이 발표된 순서대로 꼽자면 『푸른 곰 선장의 13과 1/2 인생』,『엔젤과 크레테』,『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꿈꾸는 책들의 도시』다. 차모니아라는 상상의 대륙에서 펼쳐지는 작가적 상상력의 끝을 가늠하기조차 힘든 환상적인 모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발터 뫼르스의 팬이라면 능청스럽고 세세하게 지도까지 첨부해서 소개하고 있는 차모니아는 온갖 기이한 존재들과 고도의 지적  두뇌와 마법과 연금술이 혼합된 익숙한 공간이다. 나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통해서 차모니아 문학을 처음 접했고 순서를 완벽하게 거꾸로 이 시리즈들을 읽었고 결국 시리즈의 종착역인 『에코와 소름 마법사』에 이르렀다. 허겁지겁 홀린 듯 읽었던 4편의 차모니아 시리즈와 『에코와 소름 마법사』사이에는 2,3년 정도의 공백이 있다. 오랜만에 읽은 차모니아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 긴장감도 떨어지고 상상력 지수도 한껏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느낌이 강하다. 아무래도 『꿈꾸는 책들의 도시』로 정점을 찍고 『에코와 소름마법사』는 아쉬워하는 팬들의 여흥을 달래주는 조용한 마무리처럼 느껴진다.


늑대와 노루의 유전자를 가진 뿔 달린 강아지처럼 생겼으나 거인과의 싸움에서도 용맹스런 ‘루모’, 스물일곱 개의 삶을 산다는 ‘푸른 곰’처럼 ‘에코’는 모든 동물들의 언어를 알고 있는 고양이처럼 생긴 ‘코양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에코의 능력은 차모니아의 모든 언어들을 앍고 있으며 모든 생명체와의 대화가 가능하고 점차적으로 밝혀지지만 한번 듣거나 본 것들은 완벽하게 기억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예술분야에도 능하다. 더군다나 에코는 슬레트바야라는 도시의 마지막 남은 코양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며 거리를 전전하던 에코 앞에 나타난 소름마법사 아이스핀은 환상적인 요리로 배부르게 먹게 해줄 테니 한 달 뒤 소름보름날 에코의 몸에서 기름을 짜내는 거래를 하자고 제안한다. 소름마법사는 차모니아의 희귀한 생명체들의 몸을 푹푹 끓여서 기름 덩어리를 추출해서 수집하고 있었는데 시야에 들어온 도시의 마지막 남은 코양이를 눈독들일 수밖에... 거리에서 굶어죽거나 들개들의 공격에 죽든지 한 달 동안 진귀한 음식들 배불리 먹고 죽든지 매한가지라고 생각한 에코는 당장의 배고픔에 소름마법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우선의 화려한 음식들에 현혹되어 자신의 처지를 잊고 있던 에코에게 음침하고 비밀스런 소름마법사의 저택 지붕에 살고 있는 수리부엉이 피요도르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며 위기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모색할 것을 당부한다. 은밀한 비밀들까지 터놓는 사이가 됐으니 죽이기까지 하겠냐며 안이한 생각을 하기도 하고 동정심이나 사랑의 감정에 호소해 보려고도 했지만 결국 소름마법사와 대치관계인 소름마녀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공동작전을 펼치게 된다. 소름마법사의 저택은 연금술의 집합체다. 소름마녀는 감정이 배제된 소름마법사의 ‘연금술’에 자신의 ‘소름술’로 대항하려 한다.    


과거 비극적인 사랑으로 인해 광기에 사로잡힌 소름마법사 아이스핀은 생과 사의 주재자가 되려는 과대망상에 빠져 연금술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그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날이면 코스 요리를 장만해 식탁가득 차려놓지만 주인 없는 식사는 수년째 그대로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다. 그 장소를 에코에게 보여주는 소름마법사는 잠깐의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역시 사랑만큼 위대한 것이 없는 걸까? 오로지 사랑에 인생 전부를 저당 잡히고, 비극적 사랑에 인생을 송두리째 광기로 몰아넣고, 도시전체를 절망과 질병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비열한 악당을 흠모하게 만드는 사랑. 세상사의 근간을 이루는 최고의 연금술이며 소름술이 바로 사랑임을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차모니아 시리즈의 지독한 악역들, 예를 들면『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스마이크’나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의 구리용병 대장 ‘짹깍짹깍 대장’의 비열함과 악랄함에 비하면 역시 소름마법사는 이름만큼 소름끼칠 정도는 아니다. 이파리 늑대, 개암나무 마녀, 황금 데몬, 백설 과부처럼 차모니아의 악랄하고 비열한 존재들이 총집합해서 혼란과 공포를 담은 쿠테타를 일으키는 장면마저도 덤덤하다. 발터 뫼르스의 환상문학에 내성이 생긴 탓일까.


발터 뫼르스의 ‘차모니아 시리즈’는 열성팬들에게 정교하게 얽혀있고 중첩되어 있는 인물들을 찾아내는 재미를 빼놓지 않는다. 발터 뫼르스가 능청스럽게 이 모든 저작의 장본인이라 소개하는 차모니아 공룡작가 미텐메츠도 전설의 대장장이(‘푸른 곰 선장의 13과 1/2인생’), 풋내기 작가(‘꿈꾸는 책들의 도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엔젤과 크레테’)로 등장한다. ‘루모’나 ‘스마이크’를 비롯해서 이파리 늑대, 숲거미 마녀등의 차모니아의 괴이한 생명체들 또한 작품들을 넘나들며 출현한다. 발터 뫼르스가 상상력으로 구현한 기이하고 독특한 환상의 세계 ‘차모니아’는 아직 탐험해보지 못한 지역의 못 다한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비밀스런 안개 뒤로 숨겠다고 한다. 스물일곱 개의 삶을 갖고 있지만 절반인 13과 1/2의 삶 이야기만 하고 나머지는 침묵하겠다고 했던 『푸른 곰 선장의 13과 1/2인생』의 서문이 기억난다. 나머지 절반의 삶은 푸른 곰의 비밀로 남겨둬야 매력적이고 신비롭지 않겠냐는 작가의 말처럼 이제 아쉬움을 뒤로한 채 환상적인 모험으로 안내하던 ‘차모니아’와 작별해야 한다. 공룡작가 미텐메츠의 차모니아 시리즈를 벗어난 발터 뫼르스가 보여줄 다음 세상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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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방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49
유리 슐레비츠 글, 그림 | 강무홍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 작가의 경우 보통 자신만의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그림만 봐도 자연스레 작가를 떠올릴 수 있는 스타일을 기본으로 해서 작품마다 약간의 변주를 하는 것이 보통인데 유리 슐레비츠는 자신의 작품들을 시기적으로 단절시켜서 확실한 변화를 보여준다. 유리 슐레비츠의 작품군(群)을 살펴보면 소재면에서나 화풍에서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분위기가 보인다. 『새벽』이나 『비오는 날』은 간결하고 함축적인 시적 언어로 여백을 채운 잔잔한 풍경화를 보는 듯하고,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황금 거위』『보물』은 옛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거나 동화적 상상력이 가득한 세계를 보여준다. 『비밀의 방』은 여느 작품들과 차별화된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탈무드 분위기의 지혜나 동양적인 정서가 강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도 그렇지만 ‘아교나 달걀노른자 따위로 안료를 녹인 불투명한 그림물감’ 템페라를 이용한 그림은 불투명한 원색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황량함 속에 화려함을 더한다. 폴란드에서 유태인 부모사이에 태어나 폴란드 침공을 피해 프랑스로, 이스라엘로, 그리고 미국에 정착하기까지의 녹록치 않은 삶의 잔영들이 작품들 속에  비친다.  


무기와 마실 물을 완벽하게 꾸려 뒤따르는 신하들을 대동하고 자신만의 햇빛가리개를 하고 낙타등위에 올라앉은 임금님이 사막을 지나고 있다. 작은 짐 보퉁이와 나무 지팡이에 의지해 샌들을 신고 허름한 옷차림의 머리칼은 허옇고 수염은 검은 노인을 만나 그 이유를 묻는다.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임금님은 자신의 얼굴을 아흔아홉 번 보기 전에 아무에게도 그 얘길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궁전으로 돌아가 우두머리 대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약삭빠른 우두머리 대신은 임금님의 행선지를 알아내 사막의 그 노인을 찾아내 대답을 들으려 한다. 협박하고 금화 천 냥으로 달래기도 하는데 노인은 뜻밖에도 동정 아흔아홉 냥과 그 대답을 바꿔준다. 임금님의 명을 어긴 노인은 임금님께 불려가고 임금님의 얼굴이 찍힌 동전을 보고 나서 대답해준 것이니 명을 어긴 게 아님을 얘기한다. 노인은 영리함으로 임금님에게서 그리고 우두머리 대신에게서 목숨을 구한 셈이다. 임금님은 노인에게 나라의 중요한 일을 맡기고 일마다 노인의 조언을 구하고 후한 상도 내린다.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움을 느끼던 우두머리 대신은 노인이 임금님의 보물창고에서 금을 훔쳐 집에 숨겨뒀다는 모함을 한다. 임금님과 신하들이 노인의 집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문이 잠겨있는 비밀의 방을 발견한다. 훔친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 기대한 비밀의 방은 텅 비어있다. 구석에 앉을 수 있는 자리와 옹이가 툭툭 불거진 노인의 오래된 나무 지팡이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날마다 이 방에 와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소인이, 언젠가 사막에서 폐하와 만났던 흰  머리에 검은 수염을 지닌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를.”

 

오롯이 삼라만상과 교류하고 묵언수행을 통해 자신의 정신 수양에만 힘을 쏟던 사막의 현자로 살아가던 이전의 삶과 임금님의 총애를 받으며 무소불위의 위치에서 부와 명예를 누리는 현재의 삶 사이에서 고뇌한 흔적이 엿보인다. 비밀의 방은 하루 종일 마음속에 스멀거리는 물욕과 명예욕과 세상 온갖 유혹에 젖은 마음을 씻어내고 초심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방편이 되어준 것이다. 텅 빈 방에 들어가 무거운 욕심들 내려놓고 가뿐하게 문을 나서면 또 하루를 지탱할 힘을 얻는 곳, 누구나의 마음속엔 이런 비밀의 방이 하나쯤 있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유혹에 미혹되지 않고 욕심이 지나쳐 넘쳐흐름을 경계할 수 있는 보루와도 같은 자신만의 신성한 영역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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