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와 소름마법사 2
발터 뫼르스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발터 뫼르스의 ‘차모니아 환상문학 시리즈’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차모니아의 작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쓰고 발터 뫼르스가 차모니아어에서 번역하고 삽화를 그린 작품들이다. 작품이 발표된 순서대로 꼽자면 『푸른 곰 선장의 13과 1/2 인생』,『엔젤과 크레테』,『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꿈꾸는 책들의 도시』다. 차모니아라는 상상의 대륙에서 펼쳐지는 작가적 상상력의 끝을 가늠하기조차 힘든 환상적인 모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발터 뫼르스의 팬이라면 능청스럽고 세세하게 지도까지 첨부해서 소개하고 있는 차모니아는 온갖 기이한 존재들과 고도의 지적  두뇌와 마법과 연금술이 혼합된 익숙한 공간이다. 나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통해서 차모니아 문학을 처음 접했고 순서를 완벽하게 거꾸로 이 시리즈들을 읽었고 결국 시리즈의 종착역인 『에코와 소름 마법사』에 이르렀다. 허겁지겁 홀린 듯 읽었던 4편의 차모니아 시리즈와 『에코와 소름 마법사』사이에는 2,3년 정도의 공백이 있다. 오랜만에 읽은 차모니아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 긴장감도 떨어지고 상상력 지수도 한껏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느낌이 강하다. 아무래도 『꿈꾸는 책들의 도시』로 정점을 찍고 『에코와 소름마법사』는 아쉬워하는 팬들의 여흥을 달래주는 조용한 마무리처럼 느껴진다.


늑대와 노루의 유전자를 가진 뿔 달린 강아지처럼 생겼으나 거인과의 싸움에서도 용맹스런 ‘루모’, 스물일곱 개의 삶을 산다는 ‘푸른 곰’처럼 ‘에코’는 모든 동물들의 언어를 알고 있는 고양이처럼 생긴 ‘코양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에코의 능력은 차모니아의 모든 언어들을 앍고 있으며 모든 생명체와의 대화가 가능하고 점차적으로 밝혀지지만 한번 듣거나 본 것들은 완벽하게 기억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예술분야에도 능하다. 더군다나 에코는 슬레트바야라는 도시의 마지막 남은 코양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며 거리를 전전하던 에코 앞에 나타난 소름마법사 아이스핀은 환상적인 요리로 배부르게 먹게 해줄 테니 한 달 뒤 소름보름날 에코의 몸에서 기름을 짜내는 거래를 하자고 제안한다. 소름마법사는 차모니아의 희귀한 생명체들의 몸을 푹푹 끓여서 기름 덩어리를 추출해서 수집하고 있었는데 시야에 들어온 도시의 마지막 남은 코양이를 눈독들일 수밖에... 거리에서 굶어죽거나 들개들의 공격에 죽든지 한 달 동안 진귀한 음식들 배불리 먹고 죽든지 매한가지라고 생각한 에코는 당장의 배고픔에 소름마법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우선의 화려한 음식들에 현혹되어 자신의 처지를 잊고 있던 에코에게 음침하고 비밀스런 소름마법사의 저택 지붕에 살고 있는 수리부엉이 피요도르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며 위기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모색할 것을 당부한다. 은밀한 비밀들까지 터놓는 사이가 됐으니 죽이기까지 하겠냐며 안이한 생각을 하기도 하고 동정심이나 사랑의 감정에 호소해 보려고도 했지만 결국 소름마법사와 대치관계인 소름마녀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공동작전을 펼치게 된다. 소름마법사의 저택은 연금술의 집합체다. 소름마녀는 감정이 배제된 소름마법사의 ‘연금술’에 자신의 ‘소름술’로 대항하려 한다.    


과거 비극적인 사랑으로 인해 광기에 사로잡힌 소름마법사 아이스핀은 생과 사의 주재자가 되려는 과대망상에 빠져 연금술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그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날이면 코스 요리를 장만해 식탁가득 차려놓지만 주인 없는 식사는 수년째 그대로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다. 그 장소를 에코에게 보여주는 소름마법사는 잠깐의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역시 사랑만큼 위대한 것이 없는 걸까? 오로지 사랑에 인생 전부를 저당 잡히고, 비극적 사랑에 인생을 송두리째 광기로 몰아넣고, 도시전체를 절망과 질병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비열한 악당을 흠모하게 만드는 사랑. 세상사의 근간을 이루는 최고의 연금술이며 소름술이 바로 사랑임을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차모니아 시리즈의 지독한 악역들, 예를 들면『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스마이크’나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의 구리용병 대장 ‘짹깍짹깍 대장’의 비열함과 악랄함에 비하면 역시 소름마법사는 이름만큼 소름끼칠 정도는 아니다. 이파리 늑대, 개암나무 마녀, 황금 데몬, 백설 과부처럼 차모니아의 악랄하고 비열한 존재들이 총집합해서 혼란과 공포를 담은 쿠테타를 일으키는 장면마저도 덤덤하다. 발터 뫼르스의 환상문학에 내성이 생긴 탓일까.


발터 뫼르스의 ‘차모니아 시리즈’는 열성팬들에게 정교하게 얽혀있고 중첩되어 있는 인물들을 찾아내는 재미를 빼놓지 않는다. 발터 뫼르스가 능청스럽게 이 모든 저작의 장본인이라 소개하는 차모니아 공룡작가 미텐메츠도 전설의 대장장이(‘푸른 곰 선장의 13과 1/2인생’), 풋내기 작가(‘꿈꾸는 책들의 도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엔젤과 크레테’)로 등장한다. ‘루모’나 ‘스마이크’를 비롯해서 이파리 늑대, 숲거미 마녀등의 차모니아의 괴이한 생명체들 또한 작품들을 넘나들며 출현한다. 발터 뫼르스가 상상력으로 구현한 기이하고 독특한 환상의 세계 ‘차모니아’는 아직 탐험해보지 못한 지역의 못 다한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비밀스런 안개 뒤로 숨겠다고 한다. 스물일곱 개의 삶을 갖고 있지만 절반인 13과 1/2의 삶 이야기만 하고 나머지는 침묵하겠다고 했던 『푸른 곰 선장의 13과 1/2인생』의 서문이 기억난다. 나머지 절반의 삶은 푸른 곰의 비밀로 남겨둬야 매력적이고 신비롭지 않겠냐는 작가의 말처럼 이제 아쉬움을 뒤로한 채 환상적인 모험으로 안내하던 ‘차모니아’와 작별해야 한다. 공룡작가 미텐메츠의 차모니아 시리즈를 벗어난 발터 뫼르스가 보여줄 다음 세상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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