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
샤오루 궈 지음, 변용란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부모의 성화로 단기 어학연수의 길을 나선 스물넷의 중국인 아가씨 Z(좡 샤오 차오라는 이름의 알파벹 첫글자)는 생면부지의 낯선땅 영국에서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이 가득하다.
  영어 못하고, 집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영국은 Z에게는 시련이자 도전인 것이다.  
  처음 택시를 타던날 Properly(올바르게)라는 단어를 알지 못하여 곤혹을 치른다.   그렇지만 이것은 작은 시작일 뿐이다.   항상 [콘사이스 중영 사전]을 들고 다니며 모르는 단어를 찾고 기록한다.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처음 영어를 공부할때가 떠올랐다.   선생님은 새로 배우는 단어는 반드시 외워서 숙지하고 모르는 단어나, 배웠는데 잊어버린 단어가 나오면 항상 사전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사전을 찾는 버릇을 들이고 사전과 함께 하면 영어공부를 잘하게 된다고.   그렇지만 언제나 며칠을 가지 못했고, 시험때마다 힘들게 머리 싸매고 공부하지 않으면 만족스런 점수를 받을 수 없었다.   꾸준히 열심히 하면 못 할게 없다는 평범하고 확실한 진리는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로 몰고 가는거 같다.   주인공 Z도 그랬을테지만, 그녀는 심야극장에서 우연히 '당신'으로 명명되는 영국남자를 만나게 되고 오해로 시작된 동거로 인해 그녀의 인생은 생의 최대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Z보다 스무살이나 많은 남자로 인해 성에 눈을 뜨고 나이만 먹은 소녀에서 비로소 여자가 된다.   Z는 이 영국남자와의 동거생활로 인생을 배우면서 영어공부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외국어 공부에 있어서 친구나 연인을 사귀는것 보다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 없다고 하는데, Z는 우연한 만남으로 연인을 가지게 된것이다.   사람을 사귀는데 있어서 수단으로 이용하는건 지양해야할 일이지만, 진심어린 우정으로, 사랑하는 연인으로 사귀면서 내가 익히고자 하는 외국어를 함께 익힌다면 그보다 좋은 인간관계가 또 있을까 싶다.   중반까지 읽어가면서  어눌하고 지극히 초보적인 단어 배열에 불과하던 문법 꽝인 Z의 영어가 점차  영어실력이 놀랍게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책에서는 Z만 그녀의 연인으로부터 영어를 익히고, 그는 Z의 모국어인 중국어를 알려고 하지 않는 모습에 서로의 관계가 지속되지 않을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사랑한다면 서로에 대해 깊이 아는것 못지않게 서로의 사상과 문화를 공유해야하지 않을까...
  두사람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서로간의 문화의 차이를 맞딱뜨릴때마다 조금씩 충돌한다.   그들에게는 남녀차이, 나이차이 못지않게 동양과 서양이라는 크나큰 문화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남자의 권유로 혼자 유럽대륙을 여행하면서 낯선 남자들과의 관계에서는 Z에게 많이 실망했다.   정조관념의 부재를 탓하는건 아니다.   도무지 철이 없다고 해야하는건지,개념이 없다고 해야하는 건지, 어떻게 육체적인 욕망만으로 사랑없이 함부로 관계를 가지는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본능과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동물과 하등 다를바 없다고 본다.
  이책을 읽으면서 너무도 당혹스러웠던건 Z가 섹스쇼를 관람하는 거하며, 그 상황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묘사한 부분이었다.   삼류 애정소설에나 나올법한 묘사를 눈깜짝하지 않고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한건 Z가 퇴폐적인 여자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영국 가디언지가 '...은근히 성가시면서도 매력적이다'라고 평가했는데, 아마도 이때문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고 보면 나또한 보수적이고 남녀에 대한 입장차이가 내면에 짙게 깔려있나 보다.   Z가 아마 남자였다면 과연 어땠을까?   아마도 같은 행동에 대해서 판이한 평가를 했을것이다.   남자들은 의례히 그러려니 했을지도...
  도시생활을 혐오하던 남자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행복을 찾고, Z는 중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길을 간다.  
  다 읽고도 뭔가가 남은듯 개운하지 못하다.  Z의 행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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