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티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블랙티] 이책은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좀 더 얘기해 주기를 바랬는데 결말이 어정쩡하게 나버리고 다음 이야기를 마지못해 읽어나가면서, 감질나서 짜증나던 마음도 잠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 작가의 글을 처음 접하는 첫 이야기 <블랙티>가 보여준 충격은 아직도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전차를 타고 하루에 두바퀴에서 여섯바퀴나 돌면서 승객들이 두고 내린 가방을 훔쳐 그 돈으로 생활을 한다.   어느날 선물꾸러미들과 블랙티라는 귀한 장미꽃다발을 든 여인이 전철을 탄다.   고의적으로 꽃다발을 두고 내리고, 주인공은 아무도 모를거라는 판단하에 슬며시 들고 내린다.  따라나오며 그녀를 부르는 한 남자... 그가 바로 그 꽃다발을 선물했던 남자였다.   이처럼 우연은 가끔 필연과 맞딱드리게 되면서 인생이 심심하지 않게 되는거같다.   그렇지만 이책을 읽고 있는 나는 이 상황만큼은 아니 이런 행위엔 아예 물들고 싶지 않다... 다소 밋밋한 인생이 될지라도... 
  ’경찰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도둑의 어깨에 올려놓은 경찰의 손바닥이 뜨거웠다.’- P27 -
  주인공의 심정이 전해져 오는듯 내어깨에도 뜨거운 기운을 느꼈다.

 

  네번째 이야기 <마마 돈 크라이>에서는 엄마가 연예인에 빠져서 딸의 통장까지 훔쳐 공연을 보러 다니는 내용이다.   ’욘사마’로 떠받들며 배용준을 보기위해 우리나라에도 몇차례나 찾아오는 일본 아줌마들이 오버랩되었다.   나도 좋아하지만 그렇듯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그냥 좋아하는 감정만 가지고, TV나 잡지를 통해 보면 반가울 뿐이다.   딱 그만큼인것이다.   어이없고 상식이하의 이해되지 않는 설정에 적잖이 당황하며 글을 읽는 동안 애처로움이 느껴졌다.  상실감과 허전함,외로움 등등...  연예인에게 집착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도 딸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점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엄마라면 말이다.

 

  다섯번째 이야기 <소녀취미>의 이야기도 읽는내내 내 주먹이 울었다.   뭣하러 이런남자랑 사는거야?하며 주인공을 책망하며... 마지막에 심하게 맞았을거라는 추측이 나를 몹시 힘들게 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가 잘못된건지, 소녀세계에 갖혀 사는 여자가 더 문제 인지 선뜻 결론내리기가 힘들었지만, 여하튼 폭력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여덟번째 <닭대가리>편에서는 너무나 한심하지만 착한 주인공이 건망증의 극치를 보여준다.
주인공 만큼은 아니지만 나또한 한 건망증하기에 뜨끔하며 읽었다.   비디오가게 아저씨의 몰상식한 대우에 분통이 났는데, 동거하는 동생까지 몰아부치니 내마음이 다 서러워졌다.  거기다 애인에게조차 결별통보를 받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평판이 좋지 않다.   비망록을 만들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건망증을 극복해야겠다는 절실함이 들었다.

 

  이외에도 모두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다시말하면 한편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솔직히 이책을 처음 받아볼 때는 표지의 그림을 보고 그닥 재밌을거 같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실연의 상처가 배어나오는 모습에서 약간의 따분함과 진부함을 예상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소설인지, 인간극장인지... 
  나,내주위, 내이웃이  행하는 일상의 올바르지 못한 단면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들추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내면에서 갈구하며 슬그머니 자리해 양심을 콕콕 찌르던 느낌을 소설로, 그것도 일본작가의 글로 마주하는게 놀라우며 살짝 겸연쩍었다.
  하긴 나는, 그리고 우리이웃은 신이 아니니까...


  누구나 사람이면 욕심과 이기적인 안락함을 꿈꾸며 양심에 조금이든 많이든 미안해 할 일들을 하면서 살아간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기 때문에 가볍든, 중하든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개연성을 지각하며,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덫에만 걸리지 않고 일생을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던차에 이 책을 읽으니 신선한 충격을 맛볼 수 밖에.
  이책의 이야기들은 이웃나라 일본의 인물들과 배경,환경속에서도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 있어서 문화적인 이질감이 거의 들지 않았고,공감이 간다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인간의 내면에는 천사와 사탄이 공존한다고들 말한다.
  순간순간 누구의 세력에 힘을 실어 주느냐에 따라 천사도 사탄도 될 수 있을것이다.
  길이 아닌곳을 가게 될지라도 원칙을 바로세우고  나 자신부터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배려를 실행한다면 사람들과 잘 어울어져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다.
  아울러 이 작가의 다른책들에게도 애정의 눈길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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