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보내고
권현옥 지음 / 쌤앤파커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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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모와 자식은 어떤 관계일까. 항상 자식 걱정이 앞서고 뭐든지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그런 부모의 마음은 몰라본 채 부모의 가슴에 시퍼런 멍을 수차례 새기는 자식. 그들의 엇갈리는 듯 하면서도 절대로 끊이지 않는, 아이러니컬하면서도 심상한 자연스러움의 인연을 어떻게, 그들의 인연에 비하면 한없이 부끄러운 내 입술로 달싹일 수 있을까?


부끄러웠다. 한없이 부끄러웠다. 책을 통해 군대간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수학여행 갈 적마다 새로운 분위기에 취해들어 가족 생각 한번 아니한 나의 불찰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이 책이 내게 이렇게 큰 부끄러움을 안겨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아들을 보내고>는 따뜻한 그리움과 냉철한 양심의 창을 동시에 겸비한 부드럽게 굽이치는 강물의 깊은 수심과도 같았던 것이다.


<아들을 보내고>는 참 편안한 작품이다. 문학적 어려움이라거나 답답한 암시, 꾸민 듯한 가식성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솔직담백한 한 어미의 속풀이다. 특히나 절제하지 않는 면이 마음에 들었는데, 군대간 아들을 향해 연신 ‘보고 싶다’를 마음속에 새겨두는 저자의 모습에 이름 모를 찡한 감동이 밀려왔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 저자는 지금도 저자가 아닌 한 자식의 어미로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항상 내일의 날씨는 어떨지 노심초사하며, 아들의 군용화가 젖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기예보와 군영방송 사이를 우왕좌왕하며.


때로는 애절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그것이 군에 아들을 보낸 어미의 기나긴 세월을 견디는 방법이었다. 보고 싶다, 부모의 솔직한 애절의 한마디. 내 걱정은 마라, 자식 걱정 덜어주려는 부모의 속 깊은 담담의 또 한마디. 어쩔 때는 진실하고 싶은, 또 어쩔 때는 넓은 아량이고 싶은 한 부모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찌나 마음 아프던지. 책 속의 모자를 내가 다 끈끈하게 이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 역할을 해주기엔 그 둘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공간적 거리가 말이다. 항상 서로를 생각하는 두 사람의 심적 거리는 아마도 제로(0)일 터이니.


얼마 전에 누나는 제주도로 4박 5일 수학여행을 다녀왔었다. 그때 엄마는 4박 5일 내내 허전해했다. “뭔가 떨어져 나간 듯한 기분이 들어.” 내내 이 말만 하고,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는 말을 거듭했다. 겨우 닷새 동안인데. 한달도 아니고 보름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닌, 고작 닷새 동안 뿐인데 엄마는 왜 그토록 허전해했을까. 부모의 마음은 그런가보다. 항상 옆에 두어야 직성이 풀리는가보다. 고작 닷새도 힘든데, 2년의 세월은 어떻게 견뎌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의 마음이란 어쩌면 허전에 허전을 거듭하는, 그리움의 극한을 견뎌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들을 떠나보낸 그리움에 사무친 지은이는 국가를 원망하기도 한다. 왜 남북이 갈라져서 이런 고통을 내게 안겨주느냐고. 나 또한 이러한 면에서는 국가가 원망스럽다. 통일 통일한 적이 언젯적 얘긴데 여태껏 이 상태로 남아있는 건지 이해가 안감과 동시에 아쉬움이 낱낱이 흩어져 보다 큰 안타까움으로 한데 뒤엉킨다. 대한민국의 아들 둔 어머니들을 위해서라도 남북문제의 해결은 시급한 것이다. 한반도 허리에 완강한 철벽이 아니라 자유스런 비둘기의 모습이 만연하기를 꿈꿔본다.


나는 이 책의 마무리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한풀이가 아닌 꿋꿋한 의지의 모습을 보이고 끝이 났기 때문이다. ‘보고 싶다’가 아닌 ‘아들의 제대는 이제 570일 남았습니다’로 장식되는 마지막 장에 내 가슴이 어찌나 뭉클해지던지. 마지막 그 말에는 꿋꿋한 의지와 희망찬 미래에 대한 예찬이 담겨있었다. 570일 후 제대할 아들의 모습을 고대하며 저자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육군 장병 어머니들에게 외치고 싶다. 힘내세요! 좀만 더 기다리시면 늠름한 아들이 짠~하고 나타날거에요. 그때까지만 외로움을 이겨내세요. 꼭 해내시리라 믿어요. 왜냐고요? 당신은 자식을 둔 굳센 ‘어머니’이니까요.


그리고 내가 군대에 갈 날이 다가오면 엄마에게 ‘엄마, 나도 보고 싶어.’가 아니라 ‘엄마, 걱정 붙들어 매세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엄마의 걱정 어린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늠름한 아들이, 어른스럽고 믿음직스런 아들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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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떠도는 집 라크라이트
필립 리브 지음, 송경아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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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널 처음 봤을 때의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꼭 해리포터를 다시 만난 느낌이었거든. 6권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가 출간됨과 동시에 후딱 읽어버리고 이름 모를 공허감에 빠져 푸드득거리던 나로서는, 나를 또 다른 환상세계로 인도해줄 너와 같은 녀석이 필요했던 것이 분명해. 너의 첫인상이라고 하자면, 정말이지 판타지적인 판타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 은백색 제목에 여덟 방향의 별무늬, 그리고 네가 큰 의미를 부여한 거미 문양이 너를 장식하고 있었지. 특히나 각 모서리 부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던, 하나의 표식처럼 보이는 은백색 거미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어. 처음에는 웬 거미야? 하고 거치적거려 했는데 너를 읽고 나니 표지에 왜 거미가 그려졌는지 이유를 알겠더라고. 너의 말에 따르자면 거미가 ‘최초의 존재들’이라지 아마? 그것만 빼면 난 정말 네가 맘에 들어. 왜 그것만 빼느냐고? 난 거미가 싫거든. 거미가 아무리 제일 높은 조상님이라 할지라도 난 절대로 거미에게 절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 손을 휘휘 저어 멀리 쫓아버릴 지도 모르지. 아니, 모르지가 아니라 확실해.


네 머리에 붕 떠있는 새치머리(첫 페이지)를 막상 보았을 땐 적잖이 어려움이 있었어. 소설은 허구의 세계, 즉 상상으로 만들어진 세계라고 하잖아. 그래서 난 소설을 읽을 때 항상 상상을 하고 내 머릿속에 책장 하나하나의 단상들을 떠올려봐. 그런데 너의 새치머리를 보는 순간 좀 아득하더라고. 앙증맞고 신선하고, 위로 쭉쭉 뻗친, 그래서 신선한 너의 새치머리였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동떨어진 배경 때문에 상상하는데 꽤 애를 먹었어. 그래도 내가 누구야. 상상마루가 아니겠어? 그래서 상상하고, 너의 이미지들을 내 머릿속으로 끄집어들였지.


말 그대로 우주를 떠도는 집인 라크라이트를 먼저 상상해. 아니지, 광활한 우주를 상상하는 게 더 먼저지. 집을 상상한 후에는 주인공인 아트와 머클의 얼굴을 떠올려봐. 표지에 이미 그림이 나와 있어 선입견이 살포시 심어졌지만, 내 나름대로의 아트와 머클을 상상하는데 성공했지. 머클이라고 할 것 같으면 부산스러운 아이, 영국 신사들을 찬양하는 새침데기. 그리고 아트는 그런 누나를 둔 멋진 소년! 꼭 해리 같다니까! 그리고 그들의 아빠, 지적인 연구원의 이미지를 떠올려. 참 멋진 아빠야. 그리고 주변 사물들과 생물체들을 떠올리지. 하인 역할을 수행하는 로봇들과 중력 생성 장치, 멈비 어류형 변종, 그리고 둥둥 돼지들까지. 둥둥 돼지들의 모습은 참 귀여웠어. 풍선처럼 부풀어있는 몸뚱이에 기막힌 추진 에너지란! 기막힌 추진 에너지, 그건 바로 방귀였지. 뽕- 뽕- 방귀를 뀌어대며 라크라이트를 가로지르는 둥둥 돼지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감돌았어. 아유, 귀여운 것들!!


내가 상상하기 가장 어려웠던 건 바로 아트와 머클의 어머니야. 상상하는 것 자체는 쉬웠지. 하지만 그 상상이 맞는지, 아트와 머클과 그녀의 남편에게 썩 어울릴만한 상상인지, 그녀의 가족들이 맘에 들어 할지 몰랐단 말이야. 이미 가족들 곁을 떠나버린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란, 그녀가 즐겨 기르던 ‘노래하는 꽃들’ 의 노래를 듣는 것만큼이나 몽환적이고,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어. 그래서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많이 요구되었고, 마침내 최종적으로 상상한 그녀의 모습은 정말 만족스러웠지. 청아한 분위기에 우아한 발걸음, 그리고 무언가에 몰두하는 그 정열의 눈빛. 내가 상상한 그녀의 모습을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에게 달려가서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어. 그러면 그들이 얼마나 기뻐할까? 내 상상의 한 조각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지. 당신네들의 어머니를 재회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그녀에 대해 더 말해보자면 꼭 해리의 어머니 같았어. 자식의 마음속에 한 조각 추억을, 또는 아련한 느낌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어머니의 모습이 꼭 닮아있었어. 그러고 보니 판타지라는, 어찌 보면 현실과 무관하면서도 동떨어진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가족’이 등장하는 것 같아. 만약 가족이, 인정이 없다면 판타지소설은 한낱 허구덩어리에 불과하겠지. 하지만 사람 사는 맛이 있기에 판타지소설이 그나마 현실성을 가지고 사람들의 손길을 차지하는 게 아니겠어? 판타지도 결국엔 사람 사는 얘기라는 것이 맘에 드는데, 이것도 가족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더욱 사람 사는 맛이 풀풀 나는 거겠지. 현실과 비현실이 가장 멋들어지게 뒤섞인 것이야말로 바로 판타지소설이 아닐까싶어.


학교에서 너를 읽고 있는데 같은 반 친구 녀석이 말하기를, 자기는 판타지소설이 싫다고 하네? 예전에는 적잖이 재밌고 즐거웠는데, 자꾸 읽다보니까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싫다고 말하더라고. 그러고는 나한테 왜 판타지소설을 읽느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대답했지. 내가 왜 판타지소설을 보느냐고? 그건 바로 일상생활 속에서 찾기 힘든 한 줄기 빛을 보기 위해서라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세상 속에서, 항상 긴장하고 살아야 하는, 너무도 ‘현실적인’ 세상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기 위해서라고. 날개 달린 듯 자유로운 상상과 어린아이의 너스레처럼 즐거운 환상을 만끽하여 ‘철에 찌든’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었지. 환상을 믿지 않는 건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행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라크라이트야. 너의 깜찍한 새치머리부터 시작해서 텁텁한 발 밑창(마지막 페이지)까지 훑어봤던 그 시간은 내게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었어. 철없는 시절의 나로 다시 돌아가 이것저것 머릿속으로 의뭉스러운 상상을 깔짝대는 것처럼 매우 들뜨고 기분 좋은 느낌을 선사해주었어. 항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너의 모습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부디 건강하렴. 상하지 않고, 접히지 않고, 먼지 쌓이지 말고(내가 그렇게 해줄게.) 항상 내 곁에 머물러 주길 바라. 그럼 안녕. 아니, 다음에 또 봐. 반드시 다음에 또 보자고... 영원한 헤어짐의 인사가 아니라 다음에 또 보자는 작별 인사를 해주고 싶구나. 그럼 다음에 또 봐! 그 때도 내 상상에 환상을 더해줘!


- 라크라이트, 너의 어느 한 독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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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
야콥 하인 지음, 배수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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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내 곁에서 요지부동 망부석처럼 마냥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실 것만 같은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내 곁을 떠난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며, 그 이후로 낭떠러지 같이 한 없는 슬픔과 크디큰 공허감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지금 이 순간에도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그 순간이 갑작스레 나를 찾아온다면, 그 고통의 이별을 어떤 방법으로 대처해야 할까? - 이러한 자문들의 해답을 모르는 나로서는 이 책이 일종의 '예행연습'이 되었다. 물론 말이 예행연습이지, 실제로 그 슬픔에 직면하지 않는 한 그때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테지만.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이전, 동독의 한 가정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유대인의 피를 이어받아 암에 걸린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며 가슴 아파하는 아들. 그 둘에게 초점을 맞춘 이 소설은 폭발보다 '절제'함으로써 독자들의 감성을 십분 불러일으킨다. <그리운 메이 아줌마>와 <그 해 겨울엔 눈이 내렸네>와 같은 작품들처럼 말이다.

   암세포의 공격에도 아랑곳 않고 좋은 결과를 예찬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이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굳은 의지 때문인지 아들의 노파심을 덜어주기 위함인지는 아직까지도 분명히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그 모습은 아름답기 짝이 없다.

    어머니의 증세가 호전되었을 땐 두 모자가 '서커스'라는 마을로 놀러가기도 하고 함께 요리하기도 하는데, 그런 소소한 일상들이 죽음을 앞둔 어머니에게는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되었을 것이리라.

    중간중간에 유대인한 관한 내용이 간간이 들어가 있었는데, '유대인 학살'로만 유대인들을 기억하고 치부해버리는 사람들과 '유대인 총회'를 열어 그들만의 모임을 갖는 유대인 쪽 사람들의 모습이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염연히 전통과 뿌리가 있는 유대인들을 최종해결(유대인 학살을 일컬음)에만 연결되어 있는 한낱 외줄처럼 여기다니...... 여러 모로 유대인들이 살아가기에 열악한 세상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궁극적인 테마는 '죽음'이지만, 그 외에도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존재한다. 모자가 나란히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러 간다든지 성탄을 맞아 만든 빵이 형편 없어 몽땅 버렸다든지 하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죽음'이라는 테마와 썩 잘 어우러진다. 알고보면 죽음도 일상의 한 부분이 아니던가.

    끝내 임종을 맞이한 어머니를 아들을 쉽사리 인정하지 못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면 언젠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올 것만 같은 속절없는 희망때문에... 그러한 기다림은 깊은 허망함을 불러온다. 잡고 있던 손을 놓친 것과 같은.

    멋부리지 않는 간결한 필체로 쓰여진 이 작품은, 문학담당 저널리스트 프랑크 카일 베렌스의 말처럼 '특별한 장소'에 따로 갖다 놓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지금은 마땅한 장소가 없어 보류해두지만, 나중에 꼭 '특별한 장소'에 옮겨 놓으리라.

    저녁을 먹은 뒤 양치도 하지 않고 마지막부분을 읽은 후, 보내드려야 할 사람은 담담히 잘 보내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다려서는 안된다. 기다리느라 그 분을 부담스럽게 하지 말아야하며, 그곳에서 편히 쉬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그렇게 하면 그 분은 그곳에서 영원히 천상의 안식을 누리며 이승에 남겨놓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다릴 것이다.

    걱정은 붙들어 매도 좋다. <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모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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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나
이상일 지음 / 스타북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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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에 떡하니 꽂혀있던 우편물. 그 우편물 속에는 <린나>가 들어있었다. 책 표지를 찬찬히 훑어보기도 전에 강아지 한 마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왠지 쌩뚱맞은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고, 무슨 내용일지 적잖이 궁금했다. 어렸을 적부터 나와 강아지와의 인연이 계속 되어 왔기 때문인지,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론, 그 인연이 그리 좋지 만은 않은 인연이지만 말이다.

미국에서 살다가 우리나라에 돌아온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몸 뿐만 아니라 '린나'라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온다. 그리고 린나를 비롯한 여러 강아지들과 같이 살면서 그들을 지켜보고, 때때로 그들의 행동을 통해 삶의 소중한 교훈을 얻는다.

이를 테면, 린나가 평지를 걸을 때는 세차게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며 뛰는데 반해, 오르막길에서는 영 맥을 못 추는 듯 하면서 이따금 쉬는 모습에서 저자는 인생의 오르막길, 그러니까 자신의 삶의 발전을 향한 도약에는 일시적인 멈춤과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린나가 어린 티를 벗어버리고 조숙한 숙녀가 되었을 때, 자신의 삶에 있어서 사춘기는 어떠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소중한 시기를 나는 어떻게 지내왔는가하는 회상에 잠겨들기도 한다. 또, 린나를 통해 늙어감의 진정한 의미와 애정을 물씬 느끼는 행복을 맞이하기도 한다.

강아지를 소재로 삼은 에세이는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강아지하면 떠오르는 단상들은 그지없이 촐랑촐랑대고 가벼우며 천진난만한, 세상 속을 시꺼멓게 모르는 순진무구한 단상들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에서 삶의 진리와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세상의 아름다움, 세상이 실존하고 있다는 것 자체의 아름다움을 누리고 있는 것이니 그러한 것들을 깨닫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행복이 아닐까 싶다. 돈을 버는 일도 행복해지기 위해서이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맛보는 것도, 신나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복의 가치는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지만, 그 대단함과는 예외로 행복은 우리 주변에 있는 듯 하다. 소소한 자연과 웃음, 생기 넘치는 부르짖음,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귀여운 발걸음. 이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정작 우리 자신은 그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런 세세하고 자잘한 것들이 사실은 행복의 일부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터득한 것은 일상 속에 숨어있는 행복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달리는 그 순간이 행복한 순간일테고,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과 마음의 빈 구석이 어떠한 감정으로 풍만하게 차오를때, 나로 말하자면 <린나>를 읽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해주는 이 시간이 바로 행복한 순간인 것이다. 이러한 행복을 찾아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단지 그 순간을 마음껏, 사실적으로 느끼는 것 뿐이다. 천사가 되려다 짐승이 된다는 말도 있듯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그런 행복은 잠시 제쳐두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도취되는 것이다. 그런 소소한 행복을 수 차례 느끼다보면, 어느새 차곡차곡 쌓인 소소한 행복의 조각들이 우직한 행복의 조각품으로 탄생하게 될 것이다.

린나....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하잘 것 없는 한 마리의 강아지로 여겨질 테지만, 이 책을 읽고 경험한 나에게 있어 린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나의 한 마리 애견이다.

나의 기억 세포들이 전멸하는 그 날까지,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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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메이슨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비밀 결사체
폴 제퍼스 지음, 이상원 옮김 / 황소자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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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에 봤을 때, 은희경의 <비밀과 거짓말>이 떠올랐다. 비밀스러운 일에는 언제나 거짓말이 뒤따르게 마련이지... 나 같은 경우에도 항상 그래왔다. 뭔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면, 그 비밀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지어내고 그 거짓말로 나만의 비밀을 포장하고 지켰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사방에 탄로 나기도 했고, 여지껏 지켜 온 비밀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프리메이슨이라는 조직이 과연 거짓말을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여지껏 속 시원히 밝혀진 바가 없는 프리메이슨이기에 거짓말이 뒤따를 수 밖에 없었을 텐데도 이 책에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자신들의 정체와 의무, 사명을 꼭꼭 숨겨 놓았을 뿐, 거짓말을 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조직이 어느 정도 마음에 든 건 사실이다. 더구나 그 유명한 벤저민 프랭클린과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까지 프리메이슨의 회원이었다니 놀랄 노자였다.

책을 읽는 내내 뭔가 좀 답답한 마음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프리메이슨이라는 조직에서 정확하게 추구하는게 무엇이고, 어떤 일들을 해왔고, 왜 그런 비밀결사체를 조직하고, 왜 비밀로 간직해 두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단지 오래 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하거나 추론해 볼 뿐. 그래서 더 잘 읽힌 것 같다. 추리소설도 범인을 알고 나면 시시해 지듯, 이 책도 알고 보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해저가 떠올랐다. 해저 깊숙한 곳에서 해초들이 백방으로 얼기설기 엉켜있는 모습과 해저 속의 자잘한 단상들이 내 머리 속에서 상상력에 근거하여 펼쳐졌다. 이런 상상을 하는데 책 표지도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무언가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짙은 초록색 배경과 그 사이사이에 이어져 있는 어두운 검은색의 행렬... 거미줄같이 세세하게 묶여있으면서도 어찌보면 불안불안한 듯이 보이는, 꼭 해저 속의 해초같이 보이는 그것들... 그렇다. 프리메이슨은 마치 깊숙한 해저와도 같다.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아니 거의 없는 해저 속에서 그들은 살랑살랑거리는 해초들처럼 그렇게,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고 발전해가고 있다.

이 책에는 작은 따옴표가 어찌나 많이 쓰였는지, 도무지 그 수를 알 길이 없었다. 그만큼 저자가 프리메이슨에 관한 서적을 이것저것 탐독하고, 여러가지 정보를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하고 연구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런지 작은 따옴표 안에 갇혀있는 글자들이 내게 신뢰성 짙게 다가왔다. 작은 따옴표를 열고 닫고, 그 다음에 '~라고 썼다, ~라고 전해진다' 등의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문장들이, 학교 걸상에 앉아 교과서를 단정히 펴 놓고 그 위에 손을 올리고서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 대상, 선생님의 이미지를 떠올리게도 했다. 뭔가를 열심히 설명해주고 가르쳐주는,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학술을 알려주는 선생님의 역할을 이 책은 훌륭히 수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중간에 아둔한 무신론자나 종교를 거부하는 자유로운 사람들은 프리메이슨이 될 자격이 없다고 나오는데, (물론 허용하는 기간도 있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약간 실망했다. 종교가 있든 없든, 다 똑같은 사람이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진해 나갈 수 있는 인격체들인데 말이다. 또한 나 역시 무신론자쪽에 가까운, 무교에 해당하니... 좀 아쉽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그들의 조직에 끼어들어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엿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물론 그럴 기회는 없겠지만.

이 책은 끝이 있다. 하지만 프리메이슨은 끝이 없을 것이다. [프리메이슨의 미래]를 마지막 장으로 끝나듯이, 프리메이슨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비밀결사체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될 비밀결사체가 될 것이다. 그들의 미래가 밝을 지 깜깜할 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비밀의 해저 속에서 생기 넘치는 물고기들처럼 더욱 발전을 이룩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그 발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구에 의해, 어디서 집결되었는지 모르는 미지의 장소에서...

내 비밀스런 서평에 약간 실망할 지도 모른다.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일일이 타이핑 할 수가 없다. 프리메이슨의 기원과 비밀, 일대 사건들을 일일이, 아니 핵심만 짚어 낸다고 해도 날밤을 새우게 될 것이다. 서평을 시리즈로 쓸 것도 아니고 난 그렇게 못한다. 책 자체가 비밀스러워서 그런지 나의 글 또한 비밀스러운 것 같다. 당부할 것은 프리메이슨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인터넷 창에 프..리..메..이..슨... 독수리 타법으로 꾸역꾸역 키보드판을 두드리지 말고, 이 책을 사서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읽어라.

그 누가 단돈 15,000원에 남의 비밀을 캐낼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거대한 비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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