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
야콥 하인 지음, 배수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언제나 내 곁에서 요지부동 망부석처럼 마냥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실 것만 같은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내 곁을 떠난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며, 그 이후로 낭떠러지 같이 한 없는 슬픔과 크디큰 공허감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지금 이 순간에도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그 순간이 갑작스레 나를 찾아온다면, 그 고통의 이별을 어떤 방법으로 대처해야 할까? - 이러한 자문들의 해답을 모르는 나로서는 이 책이 일종의 '예행연습'이 되었다. 물론 말이 예행연습이지, 실제로 그 슬픔에 직면하지 않는 한 그때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테지만.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이전, 동독의 한 가정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유대인의 피를 이어받아 암에 걸린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며 가슴 아파하는 아들. 그 둘에게 초점을 맞춘 이 소설은 폭발보다 '절제'함으로써 독자들의 감성을 십분 불러일으킨다. <그리운 메이 아줌마>와 <그 해 겨울엔 눈이 내렸네>와 같은 작품들처럼 말이다.

   암세포의 공격에도 아랑곳 않고 좋은 결과를 예찬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이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굳은 의지 때문인지 아들의 노파심을 덜어주기 위함인지는 아직까지도 분명히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그 모습은 아름답기 짝이 없다.

    어머니의 증세가 호전되었을 땐 두 모자가 '서커스'라는 마을로 놀러가기도 하고 함께 요리하기도 하는데, 그런 소소한 일상들이 죽음을 앞둔 어머니에게는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되었을 것이리라.

    중간중간에 유대인한 관한 내용이 간간이 들어가 있었는데, '유대인 학살'로만 유대인들을 기억하고 치부해버리는 사람들과 '유대인 총회'를 열어 그들만의 모임을 갖는 유대인 쪽 사람들의 모습이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염연히 전통과 뿌리가 있는 유대인들을 최종해결(유대인 학살을 일컬음)에만 연결되어 있는 한낱 외줄처럼 여기다니...... 여러 모로 유대인들이 살아가기에 열악한 세상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궁극적인 테마는 '죽음'이지만, 그 외에도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존재한다. 모자가 나란히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러 간다든지 성탄을 맞아 만든 빵이 형편 없어 몽땅 버렸다든지 하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죽음'이라는 테마와 썩 잘 어우러진다. 알고보면 죽음도 일상의 한 부분이 아니던가.

    끝내 임종을 맞이한 어머니를 아들을 쉽사리 인정하지 못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면 언젠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올 것만 같은 속절없는 희망때문에... 그러한 기다림은 깊은 허망함을 불러온다. 잡고 있던 손을 놓친 것과 같은.

    멋부리지 않는 간결한 필체로 쓰여진 이 작품은, 문학담당 저널리스트 프랑크 카일 베렌스의 말처럼 '특별한 장소'에 따로 갖다 놓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지금은 마땅한 장소가 없어 보류해두지만, 나중에 꼭 '특별한 장소'에 옮겨 놓으리라.

    저녁을 먹은 뒤 양치도 하지 않고 마지막부분을 읽은 후, 보내드려야 할 사람은 담담히 잘 보내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다려서는 안된다. 기다리느라 그 분을 부담스럽게 하지 말아야하며, 그곳에서 편히 쉬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그렇게 하면 그 분은 그곳에서 영원히 천상의 안식을 누리며 이승에 남겨놓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다릴 것이다.

    걱정은 붙들어 매도 좋다. <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모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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