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나
이상일 지음 / 스타북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우편함에 떡하니 꽂혀있던 우편물. 그 우편물 속에는 <린나>가 들어있었다. 책 표지를 찬찬히 훑어보기도 전에 강아지 한 마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왠지 쌩뚱맞은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고, 무슨 내용일지 적잖이 궁금했다. 어렸을 적부터 나와 강아지와의 인연이 계속 되어 왔기 때문인지,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론, 그 인연이 그리 좋지 만은 않은 인연이지만 말이다.

미국에서 살다가 우리나라에 돌아온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몸 뿐만 아니라 '린나'라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온다. 그리고 린나를 비롯한 여러 강아지들과 같이 살면서 그들을 지켜보고, 때때로 그들의 행동을 통해 삶의 소중한 교훈을 얻는다.

이를 테면, 린나가 평지를 걸을 때는 세차게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며 뛰는데 반해, 오르막길에서는 영 맥을 못 추는 듯 하면서 이따금 쉬는 모습에서 저자는 인생의 오르막길, 그러니까 자신의 삶의 발전을 향한 도약에는 일시적인 멈춤과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린나가 어린 티를 벗어버리고 조숙한 숙녀가 되었을 때, 자신의 삶에 있어서 사춘기는 어떠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소중한 시기를 나는 어떻게 지내왔는가하는 회상에 잠겨들기도 한다. 또, 린나를 통해 늙어감의 진정한 의미와 애정을 물씬 느끼는 행복을 맞이하기도 한다.

강아지를 소재로 삼은 에세이는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강아지하면 떠오르는 단상들은 그지없이 촐랑촐랑대고 가벼우며 천진난만한, 세상 속을 시꺼멓게 모르는 순진무구한 단상들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에서 삶의 진리와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세상의 아름다움, 세상이 실존하고 있다는 것 자체의 아름다움을 누리고 있는 것이니 그러한 것들을 깨닫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행복이 아닐까 싶다. 돈을 버는 일도 행복해지기 위해서이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맛보는 것도, 신나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복의 가치는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지만, 그 대단함과는 예외로 행복은 우리 주변에 있는 듯 하다. 소소한 자연과 웃음, 생기 넘치는 부르짖음,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귀여운 발걸음. 이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정작 우리 자신은 그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런 세세하고 자잘한 것들이 사실은 행복의 일부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터득한 것은 일상 속에 숨어있는 행복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달리는 그 순간이 행복한 순간일테고,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과 마음의 빈 구석이 어떠한 감정으로 풍만하게 차오를때, 나로 말하자면 <린나>를 읽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해주는 이 시간이 바로 행복한 순간인 것이다. 이러한 행복을 찾아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단지 그 순간을 마음껏, 사실적으로 느끼는 것 뿐이다. 천사가 되려다 짐승이 된다는 말도 있듯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그런 행복은 잠시 제쳐두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도취되는 것이다. 그런 소소한 행복을 수 차례 느끼다보면, 어느새 차곡차곡 쌓인 소소한 행복의 조각들이 우직한 행복의 조각품으로 탄생하게 될 것이다.

린나....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하잘 것 없는 한 마리의 강아지로 여겨질 테지만, 이 책을 읽고 경험한 나에게 있어 린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나의 한 마리 애견이다.

나의 기억 세포들이 전멸하는 그 날까지, 영원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