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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 - 신화 속에서 찾은 24가지 사랑 이야기
최복현 지음 / 이른아침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하늘 위 구름은 유유자적이 제자리를 맴돌며 빙글빙글 거리는 자태에서 부드러움을 한껏 풍기고, 그 주위로 아롱이 퍼져있는 은은하면서도 짙은 색채의 정열적인 하늘 곳곳에서는 분홍빛 축포가 터진다. 팡파르 소리를 내며 터지는 축포의 대상을 향해 세상의 눈은 집중되고, 그 중심에는 미소의 연속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들의 미소의 근원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미소에서 비롯되며, 상대방을 한껏 담아낸 눈동자가 물기에 촉촉이 젖어 빛을 발한다. 아, 그 빛의 이름은 사랑이던가. 모든 자연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중력보다도 더 강력한 끌림의 결정체, 세상 곳곳에서 그 방대한 빛을 발산하며 만물 속에서 움튼다.
만물 속에서, 전천후에 능통하면서, 그리고 신화 속에서도 그 빛이 비추어진다는 사실. 알고 있었는가? 시공을 초월하는 사랑의 존재에 감탄하며 이 책 <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를 펼쳐들었다. 저자의 사인에 잠시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목차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목차가 나오기 이전에 수많은 그림이 실려 있었다. 바로 신화 속의 사랑에 대한 그림이었는데, 그 밑에는 여러 신들 간의 사랑에 대해 간단한 소개 글이 적혀있었다. 책을 읽어보기도 전에 나를 신들의 사랑에 흠뻑 취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이 녀석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잠든 에로스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프시케의 모습은 어찌 보면 애처롭기도 하고, 비밀스런 인연으로 어떻게 사랑을 해왔을까 하는 의구심이 읾과 동시에 내 마음 속까지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그 다음으로 눈에 띈 그림은 힐라스를 유혹하는 강의 님프들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소위 ‘훈남’으로 칭송받을 만큼 잘생기고 다부진 청년 힐라스의 사방으로 매혹적으로 생긴 강의 님프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는 그림이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는 예측하기 힘들었지만, 그 유혹적인 자태에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했다. 저 정도로 매혹적이라면 위험하지는 않을지 걱정도 살짝 들면서 힐라스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게 되는 이 마음이 책장 넘기는 손에 가속도를 붙였다.
누가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동세를 잘 표현한 그림을 보며 사랑의 역동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때로는 숨죽여, 어떤 때는 조마조마해하며, 또 어느 때는 도취되며 사랑의 당사자들보다도 더 그들의 사랑을 향유할 수 있었는데, 사랑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여러 가지의 모습과 분위기가 배어나온다는 것이 다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현대적인 사랑과 신화적인 사랑의 비슷한 점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내 생각으로는 사랑이라는 자체의 순수성에는 지금도 예전도 변화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손을 부여잡고 있는 두 인물 속의 사랑은 사랑, 그 자체인 것이다.
그림으로 눈요기를 채운 뒤, 본격적으로 신화 속의 사랑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목차(드디어 찾았다!)를 펼쳐들자 내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신들의 이름이 난무했고, 그 각양각색의 제목에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들의 사랑은 정말이지 다양했는데, 이 책만 읽어봐도 사랑의 온갖 종류를 죄다 습득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풍성한 이야깃거리에 기쁨의 전율이 흘렀다. 이를테면 우리들의 머나먼 선조들을 통해 사랑을 학습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 1교시 종이 울린다. 쉬는 시간이 벌써 끝났어. 자, 1교시 수업은 과연 무얼까?
독자가 독자에게 전하는 순전히 내 멋대로 사랑 수업
제 1교시, 비운의 사랑. 인간들의 동경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신들이 사랑에 실패했다고? 0.1T 망치 타격을 입은 듯 충격적이고도 의외의 면모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아폴론이 있는데, 상사병이 걸릴 지경에까지 가도록 그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독단적으로 듣는 수업이라 그런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져 상상해보았다. ‘뭐? 아폴론이 차였다고? 정말 희한한 일이네. 그렇게 위대하신 신께서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니 말이야. 딱하기도 하지.’ ― 어지간히 애처로워야 말이다. 그렇게 쫓아다녔건만 돌아오는 건 매정함과 도피뿐이었다지. 사랑은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현실적인 현실 말이다. 사랑의 현실에 부닥치지 않을 존재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정말? 아폴론이? 그거 참 잘 되었군. 신이라고 거들먹거리며 잘난체하더니 말이야.’ ― 이 쪽의 반응은 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반응이다. 고소해 죽겠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정말로 이런 감정을 신에게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사랑의 벽 앞에 멈추어 서고 만 아폴론의 모습을 보니 보통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리 위에서 능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하는 신들도 어쩔 수 없는 사랑의 매개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그 누구에게도 가산점을 주지 않는 법이다.
제 2교시, 운명적 사랑. 우리들은 우리네 삶에서 종종 ‘운명’이란 단어를 접하곤 한다. 인간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을 운명이라고 하는데, 초인간적인 힘의 주동자가 신이라고 믿어온 우리들의 생각은 잘못 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초인간적인 힘은 신들이 과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힘을 받는 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운명에 얽힌 신의 모습은 그들 또한 운명의 덫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에서 그 덫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신들도 비껴 갈 수 없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었다. 또한 운명의 기로 사이에는 우연이 실존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우연이 운명으로 변하여 가는 과정, 그게 사랑 아닐까? 운명이 아니라면, 또 우연이 아니라면 사랑은 존재할 수 없거니와 그러므로 사랑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 불멸의 이름으로 항시 대기 중입니다!
제 3교시, 잘못된 사랑. KBS 인기코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보면 불륜의 관계가 숱하게 출현한다. 배우자를 두고도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똥배짱 정신과 살인적인 나눔 정신이라니. 불미스러운 일이건만, 놀랍게도 신화 속에서도 불륜의 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누가 뭐래도 최고의 바람둥이 제우스다. 요정 이오와 사랑에 빠져 헤라의 바가지는 바가지대로 듣고, 이오가 헤라의 노여움을 사게 만든 일등 공신 제우스. 이 책에서만 제우스는 세 번이나 등장하는데, 그의 사랑의 논리를 짐작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사랑은 나눔의 정신이다’ ― 뭐 이런 논리를 내세우며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나고 다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절대적으로 잘못 됐다는 게 문제다. 신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마땅한데 바람을 피우다니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결국엔 제우스도 사랑 앞에선 어떤 존재보다도 평범해진다는 사실이 확실해진 셈이다. 신들도 절제할 수 없는 사랑의 방대함은 도대체 어디가 끝이란 말인가? 사랑의 요정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랑 가루를 뿌려대는 건지 뭔지 세상 곳곳에서 사랑이 피어나고 있는데, 존재의 이유가 사랑일 지도 모른다. 사랑에 기대여 고립된 현실을 만끽하는 순간의 자유스러움이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제 4교시, 자습 시간.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서 그 책의 내용을 죄다 알아버리려 하는 심보를 가진 사람은 없겠지? 그래서 자습 시간을 마련했다. 물론 의미상 자습일 뿐,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온전히 자기 혼자서 고뇌에 빠지라는 소리가 아니다. 내 서평에서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학구열을 불태우는 독자들은 훌륭한 독자들인 것이다. <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를 읽으며 참고할 서적으로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딱인 것 같다. 몇몇 가지 이야기는 거의 그대로 실려 있기도 하며, 사랑 뿐 아니라 신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자습 시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 두고 보자고! 물론, 더 똑똑한 독자들이라면 <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를 직접 읽어보는 센스를 발휘하겠지?
끝으로 사랑에 대한 총체적인 정의를 내려보고자 한다. 우선 사랑의 범위는 넓지도 좁지도, 그렇다고 한정되어 있지도 않다. 사랑의 범위는 없다. 범위란 효력이 가해지는 부분을 말하는 것인데, 사랑의 효력은 어느 곳에서든 통하기 때문이다. 신에게나 인간에게나 자연에게나 한낱 미물에게나 사랑의 빛이 스며들고 그 찬란함을 내뿜는다. 그리고 사랑의 역할, 사랑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실’ 이라고도 할 수 있고 ‘현실 속에서의 도피’ 라고도 할 수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게 사랑이라면, 지극히 반현실적인 것도 사랑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벽을 실감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 구름 위를 거닐 듯 몽환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사랑의 이중성에 충격이 아닌, 자연스러움으로 적응을 해나간다면 그 양면을 동시에 체험하는 다채로운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신과 인간의 사랑. 내가 생각하는 신과 인간의 관계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똑바른 평행의 모습이다. 사랑이 그 둘의 무게를 적절히 저울질하여 같은 높이에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도 결국엔 사랑 앞에서 인간과 동격화 되었듯이, 그 둘의 관계는 우월과 열등의 관계가 아닌 평등의 관계일 것이다. ― 신과 인간, 두 존재 모두가 결국엔 사랑의 종속물에 불과할 뿐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