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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평점 :
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한적함을 더해주는 늦은 밤. 새벽 2시였다. 평소 같으면 곯아 떨어지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나는 그때 뭘 하고 있었지? 누워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누워서 책을 봤다. 오른쪽 얼굴과 베개의 천이 맞닿아 포근한 상태에서 모로 누워, 책 뒷표지를 이불 바닥에 눕히고 오른손으로 책을 감쌌다. <오늘의 거짓말>이었다.
정이현, 그녀의 도시적 감수성은 여전하다. 현대인들의 현실적인 일상을 소설의 허구를 통해 재현했다고 말할 수 있는 정이현의 단편소설들은 굉장히 사실적인데, <오늘의 거짓말>에서 역시 소설이 일상으로 느껴지는 뉘앙스가 풀풀 날콩처럼 비릿하다. 한 마디로 리얼하다고 해야하나? 그렇다. 날콩의 비릿함과도 같이 찌릿, 신경을 자극하는 약간의 도발과 마치 소설이 아닌 듯 가상을 뒤엎는 리얼함. 화면에 담긴 정물을 보는 것처럼 똑바르면서도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처럼 그로테스크하기도 한 그녀의 소설은, 정곡을 찌르지는 못해도 숨은 심연을 지그시 가리키는 면모를 보인다.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트렌디한 여성의 삶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와 달리 여성의 트렌드보단 개인적 낭만의 갈구와 현실의 순응, 결여된 삶에 대한 만족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결핍은 삶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적응으로 전락하고, 낭만을 품 속에 꿈꾸며 살면서도 쉽사리 자신의 인생을 향해 굿바이! 외치지 못하는 주인공들은 영락없는 체제귀속형 인물이다. 여태까지 먹어 온 아이스크림 맛에 길들여져 다른 종류의 아이스크림은 입에 대지도 못하는, 새 아이스크림 맛이 궁금하기도 하고 직접 아이스크림 표면 위로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싶기도 하면서 미지의 맛이 두려워 늘 먹던 아이스크림만 끊임없이 찾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이 과연 낭만의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 수 있을 지는 결과가 불 보듯 뻔하다. 「어금니」에서 아말감의 빈자리는 결국 채워지지 않듯, 「타인의 고독」에서 이혼한 부부가 뺑소니를 내고 서로 묵인하듯, 「오늘의 거짓말」에서 주인공은 결국 '당신'에게 편지를 부치지 않듯, 현실을 직시함에 따라 그 시선의 상은 결국에 막다른 골목길처럼 지날 수 없는 것이다. 꿈은 꾸지만 그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는 이들, 즉 치열한 세상 속에서 일찍이 '주제 파악' 잘 한 현대인들의 이야기. 낭만의 아이스크림 대신 이대로 아이스크림을 선택한 자들의 건조한 현실극. 이것이 바로 낭만이 거짓말로 그 의미가 변질된 현대사회 속의 <오늘의 거짓말>이다.
「빛의 제국」을 보면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모아놓은 학교가 등장한다. 학교 측은 자신들이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선도하며 학생들 또한 만족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실상이 사회 속의 진실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한 학생의 의문의 죽음이 대변하고 있다. 학교 졸업 후 잘 나가는 사람과 학교 재학 중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사람. 같은 절차를 거쳤는데 결과는 어찌 이리도 다른지. '빛의 제국'의 빛이 반대편에 새까만 그림자를 드리우기라도 한 것일까. 「빛의 제국」은 추리적인 전개 방식의 스릴감과 함께 부조리한 현실의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한 소설이다. 여기서 저자의 역할은 잔잔한 세상 속에 숨어있는 발칙함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귀여운 인형 속에 감춰진 진상을 마치 인형뽑기하듯 착착 낚아올리는 진실의 강태공처럼. 때로는 위악적인 인간으로 여겨진다 하더라도.
박완서는 정이현이 발칙할 정도로 위악적인 여자인 줄 알았다고 한다. <오늘의 거짓말>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사실 정이현이 <오늘의 거짓말>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 이를테면 「낭만적 사랑과 사회」같은 경우에 정말이지 '발칙하다'는 생각이 들 지도 모른다. 우리가 항상 겪고 있는 일상 속의 발칙함의 발견이기에 더욱이 발칙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오늘의 거짓말>에서는 그뿐만아니라 깊이있는 시선과 조금이나마 따뜻함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한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비롯하여 개인의 내면을 살포시 뒤적거린 정이현은, 더이상 발칙 그 자체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시선을 확연히 가지게 된 것이다.
헌데, 그녀의 책을 다시 구매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행여 도서실에 그녀의 책이 보이면 빌려 읽을 수는 있겠지만, 자금을 탈탈 털어 소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녀의 책이 책장에 꽂힐 때 차지하는 자리는 다른 아름다운 책을 위해 남겨두고 싶다. 적어도 책만큼은, 소설만큼은, 희망을 보여야하지 않을까. 이 책에 물들어 버릴라, 그것만큼은 마뜩찮다. 소설을 통하여 바라보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맥 빠져버리기는 싫은 것이다.
파헤쳐 흐트려 놓았으면 그에 따라 덮어놓을 재간도 있어야하는 법이거늘, 과연 정이현이 앞으로 지금껏 들춰내 보인 것들을 잘 덮을 줄 아는 작가의 면모를 당당히 내보일 수 있을지 그것이 최대의 관심사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