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아프게 한다 2
김정일 지음 / 두리미디어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정열의 빨강과 냉정의 파랑을 섞으면 따스함과 시원함이 반반으로 얼룩진 보랏빛이 탄생한다. 보라색이 주는 느낌은 얼핏 따스하고 깊고 어디까지나 은은하게만 비쳐진다. 하지만 보라색이 정말로 빨강과 파랑의 합작품이라면, 따스함과 깊음과 은은함의 이면에 분명히 이원적인 인상이 강렬히 존재하지 않을까한다. 죽음의 반대편에 에로스가 부상하고 어둠의 저편에 빛이 도사리듯, 그리고 사랑이 아픔을 주듯이 말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아프게 한다> 역시 보랏빛을 띠고 있다. 물론 보랏빛을 밝히는 것은 사랑일 것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사랑이 결코 사랑으로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별의 고통과 불안의 고통이 뒤따른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 하면 빨간빛으로 불타오르는 불꽃이나 연분홍빛 하트 문양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리고 온 세상에는,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는 영혼들이 즐비하며 사랑의 어려움에 개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고민과 사랑의 어려움, 그리고 사랑 뒤편에서 혀를 날름거리며 대기하고 있는 고통의 얼굴을 조명하는 조명기구가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따져보자면 에세이에 속하는 이 책이, 나는 나름대로 재밌었다. 단순히 사랑, 사랑, 지겹도록 사랑, 사랑,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랑의 모습들과 속성들을 보여주었던 터라 술술 넘어갔다. 우선, 에세이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곳곳에 나오는 소설형식의 문단이 흥미를 더해주었다. 마치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재연’하는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실제적인 사례라고 여기게 되어 공감 가는 부분도 있었다. 남자친구 문제로 고민을 하는 여자의 상담 사례를 소설로 풀어놓거나, 남학생이 자신의 연애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여 독자들의 ‘아~ 그렇구나!’하는 탄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저자가 결국에 말하려고 하는 것은 사랑을 잘하는 방법, 사랑을 소중히 여기고 잘 간직하자는 것이다. 책 속을 보면 여러 연인들이 피치 못할 의견 차이로 인해 다툼을 벌이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마치 상담자처럼 그들을 향해 좋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사랑의 행복감과 늘 붙어 다니는 사랑으로 인한 고통은 결국엔 우리네 인간들 스스로가 겪어야하는 것이고, 그것을 비로소 견뎌낸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작보다 끝이 아름다워야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 외에 주목된 점을 보태보자면 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 가지는 좋은 주목거리고, 다른 한 가지는 눈살 찌푸려지는 주목거리다. 우선, 저자는 아마도 영화광이었나 보다. 사랑의 관계에 대해서 서술하면서 끊임없이 영화 얘기를 놓지 않는다. 사랑은 스크린처럼 멈추는 것 없이 파르륵 스쳐지나 가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는데, 저자의 영화 이야기는 흥미를 돋우는 역할로서는 아주 훌륭했다. 그에 반해 눈살 찌푸려지는 부분이 있었다면 과도하게 선정적이라고 할까, 과격한 묘사다. 책 곳곳에 ‘죽이고 싶을 만큼’이라는 정도의 묘사가 나오는데, 아무리 큰 정도라고 할지라도 죽이고 싶을 만큼이라니!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죽이고 싶을 만큼이란다. 이 표현을 읽으면서 간혹 가다 깜짝 놀라곤 했다. 죽을 만큼도 아니고 죽이고 싶을 만큼……. 언어를 구하는 데 보다 유순한 단어를 택했으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랑을 추구한다. 추구를 넘어 갈구하기도 하고, 사랑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고 곤혹스럽다. 하지만 사랑이 있다고 전부 다 편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사랑을 조금이나마 경계해야 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은 필연적인 것이지만, 그렇다고 자연적인 것은 아니다. 사랑을 본능으로만 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서로 조절하고 아끼고, 가두려고 하지 말고 집어 삼키려 하지 말고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사랑에서의 필연도, 우연도 결국에는 우리 인간이 결정해야할 문제다. 그 보랏빛이 따스함을 전해줄지 고통을 안겨 줄지는 오직 당사자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 양면적인 보랏빛을 어떤 각도로 비추어 보느냐에 따라서, 사랑은 정열을 불태울 수도 있고 차갑게 식어버릴 수도 있다. 부디 사랑을 만들어 갈 때에는, 빨간색 물감과 파란색 물감의 비율을 적당히 유지할 것을 경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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