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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1
제임스 패터슨 엮음, 이숙자 옮김 / 북앳북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죽이고 죽임당하고 살려고 아등바등 발버둥 치고 쫓기고 추격하고 목격하고 발각되고 몸부림치고 긴박해지며 스릴러 소설만의 특징은 다른 소설의 종류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가슴이 먹먹했다가도 금세 고속도로 개통되듯 흥분의 도가니가 마음 줄기를 타고 전속력을 향해 두걱두걱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내가 지금 스릴러를 읽고 있는 중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말 그대로 스릴이 있는 스릴러를 읽는 느낌은 뭐랄까, 핏방울 떨어지는 과도 사이로 찍어 내려간 과일의 단면을 보는 것과 같다.
책 제목이 군더더기 없이 <스릴러>다. 취침 전 한두 시간씩 읽었는데 불면증 걸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밤이 지나도록 읽은 적도 있다. 이 책은 국제스릴러작가협회에서 펴낸 걸작선으로, 세계의 내로라하는 스릴러작가들의 단편소설들을 모아 담았다. 30편에 다다르는 짤막한 추리소설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침범 없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아무런 침범 없이 각자의 뚜렷한 스릴러의 길을 가면서도 30편의 작품들은 서로의 스릴을 촘촘히 메워주고 있다. 공포적인 스릴과 긴박한 스릴, 절박한 스릴 등 다채로운 스릴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며 이 책은 스릴의 촉수를 더듬어 집합하는 거대생명체처럼 웅장하다. 전율에 몸서리치며 꿈틀대는 거대생명체는 스릴러이고, 그 거대생명체를 키운 장본인은 스릴러작가들이라고 해야 맞겠지? 먹이로 뭘 줬는지 그렇게 커버렸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현재에 국한되지 않는 스릴러를 맛보여 준다는 것에 있다. 1960년대에 탄생한 작품도 있고 최근 들어 발표된 작품들도 있어 여러 시대를 넘나들며 그 시대에 쓰인 다양한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스릴의 이름 하에 펼쳐지는 이야기이지만, 그 방식과 소재는 너무도 천차만별이고 작가의 필력과 묘사 등등 거의 모든 요소가 엇갈리는 작품도 있었다. 금방 읽혀버리는 단편소설들의 집합인지라 스릴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졌다는 감이 없지 않지만, 30편의 짤막한 긴장감으로 기나긴 긴장감을 충족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전쟁 중에 연인을 잃은 슬픔으로 끝맺을 때도 있어 스릴 이외의 다른 감정 역시 탄탄하게 뒷받침을 해주고 있는데, 그리하여 스릴러가 ‘순전히 스릴’이 아닌 ‘복합적인 스릴’로서 다방적인 예술 행위로 남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가하면 변화무쌍한 주인공들을 만나며 내가 다 변화무쌍해졌다. 주인공은 나이고 그가 하는 행위는 내가 하는 행위가 되는 것처럼 실감나는 스릴러들을 읽으며, 내가 어쩔 땐 첩보가 되기도 하고 잔인한 악한이 되기도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은근한 쾌감을 느꼈다. 아멜리 노통브의 <배고픔의 자서전> 속의 아멜리가 금지된 초코바를 먹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비춰보며 쾌감을 느끼듯이, 그들이 하는 행위가 내 행위로 되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광적인 스릴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운전면허가 없거나 술 처마시고 운전하다 걸려 운전면허를 정지당했거나 취소당한 이들이라면,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릴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고 차라리 <스릴러>를 읽는 건 어떤가? 마음속 스릴 기류의 두둥실 비상 현상을 목격하며 도로 위를 질주할 때처럼 통쾌하고 짜릿한 맛을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것이 싫다면 <비올라 키스 에브리바디>의 비올라처럼 차 지붕 위에 올라가 바람을 가르며 여행해도 괜찮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이고, 뭐 그렇게 한다고 해도 비올라가 아닌 이상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니 차라리 <스릴러>를 읽는 게 날 듯하다.
작가들은 가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소설을 쓰는 즐거움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못된 짓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들 역시 현실에서 불가능한 못된 짓을 볼 수가 있다. 사건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단 말이다. 스릴러를 읽으며 그 속에 담긴 ‘못된 짓’을 즐기기 바란다. 물론 집 밖으로 나가서 그 짓을 저지르지는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