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와 보랏빛 구두 조약돌 문고 5
홍종의 지음, 이현주 그림 / 섬아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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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라는 명목이 다소 내 나이에 걸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래도 그 순수함과 향긋함의 향취에 젖어들어 읽게되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고의적인 행위다. 동화의 의미가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면, 그 의미의 다른 길을 해석해보면 어른들의 굳어버린 마음을 조금이라도 물컹하게 만들기 위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치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유치하니까 읽게 되는 동화의 매력으로 다시금 빠지는 기회가 되었다.

<소나무와 보랏빛 구두>는 교통사고를 당한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였는데, 부모의 다툼이라는 굴레 안에서 상처를 받는 어린 소녀의 심정을 바탕으로 보랏빛 구두와 소나무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교통사고가 날 당시에 자리 잡고 있던 소나무가 소녀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며, 소녀에게 보물로 간직되어 있는 보랏빛 구두를 지켜준 것도 소나무였다. 항상 그 자리에서 버팀목으로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소나무의 우직함과 굳건함에서 소녀가 용기를 얻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 동화는, 아픔과 갈등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급격한 해피엔드는 아니지만 그렇다해도 잘 옭아맨 실마리를 살살 풀어놓듯이 행복의 문을 살포시 열어놓는다. 동화가 희망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굉장히 오랜만에 접하는 동화라서 그런지 신선하기도 했지만, 다소 낯선 감이 없지 않았다. 길고 세세한 문장들을 읽다가 너무나 깨끗해서 의미가 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문장을 읽으니 마음이 진정이 가지 않았다. 동화와 멀어짐을 느끼는 것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던 동화를 이제는 어렵사리 혹은 무미건조하게 읽는 것은 아닌지 잠시 불안해졌다. 아이들과 동화를 공유할 수 없어질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쉬지 않고 그 단어와 문장을 따라가다보니 그 끄트머리에는 하얗고 고결한 이야기가 짜잔~ 하고 등장했다.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동화가 아닐런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일반소설을 읽다 읽는 동화라서 그런지 다소 미약한 서사와 이야기구조가 눈에 확 들어왔지만, 그래도 풋풋한 내음을 들이마시며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이었다. 소녀의 보랏빛 구두의 찬란한 보랏빛 섬광처럼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 순수의 섬광이 번뜩이는 그 순간, 나는 동화를 읽는 의미와 목적을 아로새길 것이다. 번뜩하는 순간이 조금만 조금만 더 길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인간, 현실형 인간들의 마음이 아닐까. 그런 인간형 마음의 도를 지나친 현실적 감각에서 탈피 혹은 도피하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끝으로, 소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새로 간직해본다. 어린애도 아니면서 시시껄렁하게 무슨 소망을 간직하냐고 할 지 모르지만, 소망이 필요하기에 소망을 간직하는 것이다. 더 이상 새로운 것도 없고 뭔가 가슴 설레는 일도 뜸해진 이 시점에서, 나는 어린아이다운 새삼스러운 소망을 빌어본다. 소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믿음직스런 버팀목이 되어주는 소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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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문화유산답사기 - 사진으로 읽는 제갈량史
제갈량편집팀 지음, 허유영 옮김, 왕평 사진 / 에버리치홀딩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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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나는 아직도 읽지 않은 터라 제갈량에 대해 알지 못한다. 물론 유비도 모르지만, 제갈량에 대해서 들은 것은 어디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잡학상식을 모은 것에 불과하다. 뛰어난 계략가였다든가 유비와 절친한 사이였다든가 하는 유언비어와도 같은 나의 잡학상식이 이 때만큼 부끄러움과 동시에 그것이 다른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여 채워진다는 충만감에 가득 찼던 적은 없다. 바로 <제갈량 문화유산답사기>다!




이 책은 제갈량의 생애 중 일부와 그의 손길이 닿았던 혹은 그와 관계가 깊은 문화유산을 함께 소개한 서적이다. 제갈량이 가지고 있던 개인재산이나 재미난 일화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거기에다가 문화유산까지 겸사겸사 눈요기를 할 수 있어서 지긋한 인문/사회서적의 고리타분함을 뛰어넘었다. 사진만 있는 것도 아니고 글만 있는 것도 아닌 적절한 배합의 중요성이 입증된 책이라 할 수 있겠고, 구성방식 또한 독자들로 하여금 질리지 않도록 잘 구성했다. 제갈량이라는 인물과 그 시대배경 그리고 그 시대에 현존하고 현재에도 현존하는 문화재들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일거양득이 아니라 적어도 일거삼득은 될 듯하다.




책을 읽으며 경탄했다. 제갈량이라는 인물의 위대함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유비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과의 친목에서도 큰 아량으로 드넓은 교류를 도모하였고, 그들과의 경선과 시합이나 장난에 있어서 재치 넘치는 면모를 보였다. 제갈량의 일대기를 읽은 듯한 느낌까지 들게 만드는 위력을 지닌 책이다. 그의 발자취와 그가 남긴 말과 그가 뿌리고 간 사상에 대해서까지 서술하고 있는데, 그 사상을 쫓아가다 보면 그 끄트머리에 놀랍도록 번뜩이는 지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흠잡을 데 없는 사실, 100% 사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문화유산을 구경, 아니 탐구한 것은 실로 유익하다 못해 배부른 자료였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언뜻 뇌리를 스친 것은 거의 모든 자료가 내가 처음 본 자료이기 때문일 것이다. 간접적인 경험으로 나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우물 밖 양서류 정도로 진급될 수 있으려나 하고 기대를 품기도 했지만 뭐, 그게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저 자료의 방대함과 그 역사에 따라 진취적인 앞걸음을 향해나갔다. 내 이목을 끌어당기는 마력이라도 지닌 듯 <제갈량 문화유산답사기>는 끝까지 내 손에서 달아나지 않았다.




책을 읽고 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한 번 읽어서는 뚜렷이 기억될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는 거듭 읽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여유로워지면 다시 읽을 계획이다. 다시, 다시, 또 다시, 다시 읽어도 제갈량 그의 현인다운 면모는 변치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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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국지는 굉장히 오래전에 읽은지라 지금은 내용을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시간날때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군요. 제갈량의 활약을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이 열망. 으~~ =.=^
제갈량이 숨결이 묻어나는 문화유산이 어떤 것인지 굉장히 궁금하네요.

상상마루 2007-08-28 16:37   좋아요 0 | URL
어서 삼국지를 읽어봐야겠습니다 ㅎㅎ
제갈량이라는 인물을 조금이라도 알고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텐데요 흑~~
 
토끼와 함께한 그해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박광자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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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 두말하면 잔소리인걸 난 왜 몰랐을까? 생선뼈가 추스르는 살덩이들이 우수수 밑창으로 풍덩풍덩 빠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왜 살코기를 한 점이라도 입에 물고 싶어 안달이었던 거지? 거두절미의 이론이 여기서도 통할 줄 알고 몸통을 노리려 했던 거야? 어림없는 소리! 거두절미가 아니라 몸통만 싹둑 잘라서 흐리멍덩한 대가리하고 말라비틀어진 꼬리만 남아있는 걸 끝을 보고야 알았던 거야? 대어라더니, 이건 무슨 송사리만도 못하잖아?




핀란드소설은 처음이었다. 평소에 깨끗하고 살기 좋은 나라로 휘바휘바거리며 알고 지내던 폴란드를 책으로 처음 접했다. <토끼와 함께한 그해>라는 책인데, 블랙유머의 대가라고 소개되어있는 아르토 파실린나의 작품이다. 사실 표지만 보고는 블랙유머를 떠올렸지만 그 내용을 보고 난 다음에는 마음이 새까매졌다. 이도저도 아닌 내용과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감흥이 마음을 새까맣게 만들었다. 설정 자체는 굉장히 좋았다. 현실에 찌들어 살던 바타넨이라는 남자는 어느 날 차 사고로 인해 토끼를 다치게 했고, 그 이후로 가족이건 일이건 뭐건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로지 토끼와 함께하는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좌충우돌이라면 좌충우돌이고 무미건조라면 무미건조한 여행의 일상들. 이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게 끝이라는 거다. 토끼와의 만남 이후 뭐 하나 진전되는 사건이 없다. 마치 발길 가는대로 아무렇게나 찍어댄 사진 같다. 컬러 사진이 아니라 흑백사진이고 표정도 동세도 긴장감도 제로인 종이쪼가리.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토끼 똥 같은 눈물이 또르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무미건조함과 진지함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고자 한다면 재치와 블랙유머의 합당한 비율로서 조합을 해야 하는 것인데 왜 이 작가는 조합이 아니라 짬뽕을 해놨는지 의문이다. 재치는 눈 씻고 찾아보려도 찾아볼 수가 없고, 블랙유머는 킬킬거리는 웃음이 아니라 흥미가 바닥나는 암흑의 세계를 창조한다. ‘여행’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도 그저 제자리에서 겸연쩍게 멀뚱거리고 있는 이 작가에게 무기사용법이라도 슬며시 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왜 총탄을 가지고도 발사를 안 하는지, 칼잡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칼을 뽑아들지 않는지, 그게 아니더라도 왜 그 무기를 과감하게 내팽개치고 주먹을 쓸 생각을 안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가운데 그는 시종일관 ‘여행’이라는 무기를 장식용으로 애용한다. 결코 긴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진지한 구석도 완연하지 않은 이 소설을 두고 과연 여행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까? 노자의 무위자연사상이라도 계승하려는 듯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꾀하려는 심산이 얼핏 보이기도 했는데 조화는 웬 조화? 그 둘을 철저히 분리하여 따로따로 고장 난 조립기구처럼 완벽하게 나누어 조명을 비추는 실력은 정녕 대가답다. 그러니까 이 소설이 가진 결핍을 종합해보면, 블랙유머라는 이름을 내걸고 유명무실 노릇을 하고 앉아있는 전혀 유쾌하지도 통쾌하지도 않은 미지근한 여행소설인데 또 여행소설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과의 분리성이 뚜렷한 짬뽕제조기라고 할까? 짬뽕의 맛은 가히, 가히, 아주 가히 경이롭다. 원더풀! 브라보! 엑설런트! 굿잡! 굿! 굿! 굿! 눈물나게 퍼펙트!!!




병 주고 약 주기 ― 그래도 단편적인 사건을 읽을 때만큼은 잠시나마 읽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 배치된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과 우스운 설정이 가끔, 아주 가끔 짬뽕에 후춧가루 몇 가루 뿌려줬다. 이것만 아니었으면 중도하차할 가능성이 99.9%에 다다랐을 것이다.




현실의 일탈 속에서 만끽하는 자유와 다채로운 여정을 담은 핀란드 소설 <토끼와 함께한 그해>. 거두절미의 역효과를 다분히 보여주는 선전을 했지만, 흐리멍덩한 대가리와 말라비틀어진 꼬리의 씁쓸한 맛으로 읽기에 적합한 것 같다. 살이 포동포동 올라있는 소설들과 비교할 수 없지만, 이 소설은 그런 소설들과는 달리 비약적인 독특함과 아이러니한 맛을 새롭게 탄생시켰다는 점에 의의를 둬야겠다. 하지만 이 소설과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현실의 일탈 속에서 만끽하는 자유’를 표현할 때에 있어서 보다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 자유를 외치다가 자신의 머리나 박고 꼴까닥해버린 <적의 화장법> 속의 주인공처럼 되기 싫다면 더 큰 매력을 발산하기를. 자유! 자유! 자유! 삼창의 외침이 종말을 남길지 수작을 남길지는 그대의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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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7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상마루님의 글을 접했으니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생각해보면서 재미를 찾아보도록 해야겠군요.^^ 두 눈 크게 뜨고 관찰하겠습니다. +.+
그런데 책들이 쌓여서 좀 나중에 읽을 것 같아요.ㅎㅎ

상상마루 2007-08-28 16:37   좋아요 0 | URL
토끼에게 넘 미안해요 이런 글 남기기가.....ㅠㅠ;;
짱돌이님은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

비로그인 2007-09-04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여기서 취향의 차이가?! 취향이라고 붙이기에는 미묘한...
전 이 책 나름 괜찮게 봤어요. ㅎㅎ 근데 상상마루님에게는 실망감을 줬군요. 제가 블랙유머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그쪽보다는 그냥 소소한 한 남자의 특이한 여행기 정도로만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상상마루 2007-09-04 16:00   좋아요 0 | URL
오우디드님이세요? ^^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가면 갈수록 별로였어요... 아직 이 작가 작품이 낯설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요 ㅎㅎ
 
스릴러 1
제임스 패터슨 엮음, 이숙자 옮김 / 북앳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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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죽임당하고 살려고 아등바등 발버둥 치고 쫓기고 추격하고 목격하고 발각되고 몸부림치고 긴박해지며 스릴러 소설만의 특징은 다른 소설의 종류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가슴이 먹먹했다가도 금세 고속도로 개통되듯 흥분의 도가니가 마음 줄기를 타고 전속력을 향해 두걱두걱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내가 지금 스릴러를 읽고 있는 중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말 그대로 스릴이 있는 스릴러를 읽는 느낌은 뭐랄까, 핏방울 떨어지는 과도 사이로 찍어 내려간 과일의 단면을 보는 것과 같다.




책 제목이 군더더기 없이 <스릴러>다. 취침 전 한두 시간씩 읽었는데 불면증 걸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밤이 지나도록 읽은 적도 있다. 이 책은 국제스릴러작가협회에서 펴낸 걸작선으로, 세계의 내로라하는 스릴러작가들의 단편소설들을 모아 담았다. 30편에 다다르는 짤막한 추리소설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침범 없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아무런 침범 없이 각자의 뚜렷한 스릴러의 길을 가면서도 30편의 작품들은 서로의 스릴을 촘촘히 메워주고 있다. 공포적인 스릴과 긴박한 스릴, 절박한 스릴 등 다채로운 스릴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며 이 책은 스릴의 촉수를 더듬어 집합하는 거대생명체처럼 웅장하다. 전율에 몸서리치며 꿈틀대는 거대생명체는 스릴러이고, 그 거대생명체를 키운 장본인은 스릴러작가들이라고 해야 맞겠지? 먹이로 뭘 줬는지 그렇게 커버렸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현재에 국한되지 않는 스릴러를 맛보여 준다는 것에 있다. 1960년대에 탄생한 작품도 있고 최근 들어 발표된 작품들도 있어 여러 시대를 넘나들며 그 시대에 쓰인 다양한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스릴의 이름 하에 펼쳐지는 이야기이지만, 그 방식과 소재는 너무도 천차만별이고 작가의 필력과 묘사 등등 거의 모든 요소가 엇갈리는 작품도 있었다. 금방 읽혀버리는 단편소설들의 집합인지라 스릴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졌다는 감이 없지 않지만, 30편의 짤막한 긴장감으로 기나긴 긴장감을 충족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전쟁 중에 연인을 잃은 슬픔으로 끝맺을 때도 있어 스릴 이외의 다른 감정 역시 탄탄하게 뒷받침을 해주고 있는데, 그리하여 스릴러가 ‘순전히 스릴’이 아닌 ‘복합적인 스릴’로서 다방적인 예술 행위로 남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가하면 변화무쌍한 주인공들을 만나며 내가 다 변화무쌍해졌다. 주인공은 나이고 그가 하는 행위는 내가 하는 행위가 되는 것처럼 실감나는 스릴러들을 읽으며, 내가 어쩔 땐 첩보가 되기도 하고 잔인한 악한이 되기도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은근한 쾌감을 느꼈다. 아멜리 노통브의 <배고픔의 자서전> 속의 아멜리가 금지된 초코바를 먹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비춰보며 쾌감을 느끼듯이, 그들이 하는 행위가 내 행위로 되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광적인 스릴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운전면허가 없거나 술 처마시고 운전하다 걸려 운전면허를 정지당했거나 취소당한 이들이라면,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릴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고 차라리 <스릴러>를 읽는 건 어떤가? 마음속 스릴 기류의 두둥실 비상 현상을 목격하며 도로 위를 질주할 때처럼 통쾌하고 짜릿한 맛을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것이 싫다면 <비올라 키스 에브리바디>의 비올라처럼 차 지붕 위에 올라가 바람을 가르며 여행해도 괜찮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이고, 뭐 그렇게 한다고 해도 비올라가 아닌 이상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니 차라리 <스릴러>를 읽는 게 날 듯하다. 




작가들은 가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소설을 쓰는 즐거움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못된 짓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들 역시 현실에서 불가능한 못된 짓을 볼 수가 있다. 사건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단 말이다. 스릴러를 읽으며 그 속에 담긴 ‘못된 짓’을 즐기기 바란다. 물론 집 밖으로 나가서 그 짓을 저지르지는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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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8-23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릴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고 차라리 <스릴러>를 읽는 건 어떤가?" 요 문장에 필이 확 땡겨서 꾸욱~ 추천합니다!

상상마루 2007-08-24 17:00   좋아요 0 | URL
^^;; 반은 진담이고 반은 회유인 문장에 필이 땡기셨다니 다행이어요 ㅎㅎ 직접적인 체험보다 간접적인 스릴이 훨씬 안정감 있는 건 사실이에요. 범죄자들을 가끔씩 보면 그들의 인식 속에 '스릴'의 개념이 '현실적인 못된 짓'으로 자리 잡아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결코 현실적이지 않은 '허구의 스릴'을 넘어서면 도가 지나친 거죠... 감사합니다!

책향기 2007-08-24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릴러에 담긴 "못된 짓" 즐기기! 저도 땡기는데요^^

상상마루 2007-08-24 17:00   좋아요 0 | URL
자인적 쾌감.... 인거죠.....ㅎㅎ
 
왼손에 노자 오른손에 공자 - 중국전통문화의 정수
창화 지음, 박양화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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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현자로 꼽히는 노자와 공자. 그들의 이론과 철학과 가르침은 세월이 흘러감에 상관없이 유유자적 시간을 타고 막힘없이 흘러가고 있다. 물결치는 지혜의 흐름은 우리들의 지혜와 마음을 갈고 닦게 만들고 있으며 시대를 초월한 그들의 가르침은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과연 노자와 공자가 주장한 사상은 무엇이었으며 그들의 삶은 어떠하였고 우리들은 그들로부터 무엇을 보양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하여 서술한 책이 바로 <왼손에 노자 오른손에 공자>이다. 왼손에는 노자의 사상을 오른손에는 공자의 사상을 받들고 두 현인의 흠잡을 데 없는 삶의 미학이 담긴 지혜를 살펴보자.




다소 철학성 짙은 내용이다. 노자와 공자의 삶이 아니라 그들의 사상과 가르침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읽기도 전에 식겁하게 되는 현상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럴 것이라 믿고 싶다. 「사기열전」을 읽기 전 엄습해온 일종의 난독증후군이 재발하는 거였지만 참는 자에게 복이 오나니 결코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사실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두 현인의 사상을 통하여 또 하나 취득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의 역사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시대사상과 그 퍼뜨림을 알아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학이 전해져온 시기와 도를 닦느라 세상과의 소통에 담을 쌓은 사람들이 파다한 시기 등 사상으로서 보는 중국의 역사는 거대하고도 유례 깊었다. 그 시대를 알려면 그 시대의 유행을 알아야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유행이란 사상의 유행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싶다.




배움의 자세보다는 받아들임의 고개 숙임이 앞서 요구될 것처럼 무수한 지혜 앞에서 어쩔 줄을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이 많은 가르침을 어디다가 방출해야하며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내 시야는 어떻게 시선을 끌어 잡아야 한단 말인가. 그들의 익숙한 사상에 낯선 손을 마주하고 목을 추켜세울 도리가 없었다. 직접 조우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할 관계도 없지만 사상이 이 모든 것을 단번에 잡아주어 진정 그 뜻을 새기게 된 것이었다. 역사 저 먼 언저리부터 내려오는 사상이 현대의 파릇한 역사의 사상에 맞물리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세월 속에 속절없지 아니한 두 현인의 사상에 큰 존의가 일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위자연’사상을 비롯하여 여러 사상들과 생활 속 여유와 지혜가 깃든 책이니만큼 분명 뜻 깊은 전래를 독자들에게 이루게 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 속에 담아낸 두 인물의 사상에 감탄하고 또 놀라고 또 존경하며 이렇다할 논제들을 제시하지 못하던 우리들의 편협함과 속 좁음의 반성을 다시금 새겨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노자든 공자든 결국 사람을 위한 사상을 내밀었듯 우리들은 그 사람을 위한 사상을 받들어 더욱 탄탄한 사람을 위한 사상을 내비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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