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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보랏빛 구두 ㅣ 조약돌 문고 5
홍종의 지음, 이현주 그림 / 섬아이 / 2007년 7월
평점 :
동화라는 명목이 다소 내 나이에 걸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래도 그 순수함과 향긋함의 향취에 젖어들어 읽게되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고의적인 행위다. 동화의 의미가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면, 그 의미의 다른 길을 해석해보면 어른들의 굳어버린 마음을 조금이라도 물컹하게 만들기 위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치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유치하니까 읽게 되는 동화의 매력으로 다시금 빠지는 기회가 되었다.
<소나무와 보랏빛 구두>는 교통사고를 당한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였는데, 부모의 다툼이라는 굴레 안에서 상처를 받는 어린 소녀의 심정을 바탕으로 보랏빛 구두와 소나무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교통사고가 날 당시에 자리 잡고 있던 소나무가 소녀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며, 소녀에게 보물로 간직되어 있는 보랏빛 구두를 지켜준 것도 소나무였다. 항상 그 자리에서 버팀목으로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소나무의 우직함과 굳건함에서 소녀가 용기를 얻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 동화는, 아픔과 갈등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급격한 해피엔드는 아니지만 그렇다해도 잘 옭아맨 실마리를 살살 풀어놓듯이 행복의 문을 살포시 열어놓는다. 동화가 희망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굉장히 오랜만에 접하는 동화라서 그런지 신선하기도 했지만, 다소 낯선 감이 없지 않았다. 길고 세세한 문장들을 읽다가 너무나 깨끗해서 의미가 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문장을 읽으니 마음이 진정이 가지 않았다. 동화와 멀어짐을 느끼는 것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던 동화를 이제는 어렵사리 혹은 무미건조하게 읽는 것은 아닌지 잠시 불안해졌다. 아이들과 동화를 공유할 수 없어질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쉬지 않고 그 단어와 문장을 따라가다보니 그 끄트머리에는 하얗고 고결한 이야기가 짜잔~ 하고 등장했다.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동화가 아닐런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일반소설을 읽다 읽는 동화라서 그런지 다소 미약한 서사와 이야기구조가 눈에 확 들어왔지만, 그래도 풋풋한 내음을 들이마시며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이었다. 소녀의 보랏빛 구두의 찬란한 보랏빛 섬광처럼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 순수의 섬광이 번뜩이는 그 순간, 나는 동화를 읽는 의미와 목적을 아로새길 것이다. 번뜩하는 순간이 조금만 조금만 더 길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인간, 현실형 인간들의 마음이 아닐까. 그런 인간형 마음의 도를 지나친 현실적 감각에서 탈피 혹은 도피하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끝으로, 소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새로 간직해본다. 어린애도 아니면서 시시껄렁하게 무슨 소망을 간직하냐고 할 지 모르지만, 소망이 필요하기에 소망을 간직하는 것이다. 더 이상 새로운 것도 없고 뭔가 가슴 설레는 일도 뜸해진 이 시점에서, 나는 어린아이다운 새삼스러운 소망을 빌어본다. 소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믿음직스런 버팀목이 되어주는 소나무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