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헤 1
미카 왈타리 지음, 이순희 옮김 / 동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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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만 봐도 ‘이집트’라는 나라가 대번에 번쩍하고 떠오르는 소설 <시누헤>를 접한 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경 내 삶에 필요한 이유라도 되는 것 마냥 나의 눈을 압도시켰다. 왠지 모르게 천사와 악마를 닮은 두 인물의 표지그림과 신비로운 타일과도 같은 테두리모양, 그리고 각종 상징들처럼 보이는 다채로운 그림들. 조합과 배합이 느껴지는 표지를 바라보며 이 책 속에 뭔가 나의 현재와는 다른 시공간이 펼쳐질 것 같다는 예감을 했다. 예감은 적중했다.






역사소설이라는 이름을 걸치고 있기는 한데, 과연 이 소설이 어떤 종류의 소설인지는 구별하기 불가능하다. 역사의 인물을 현재의 시점으로 서술했다는 점에서 ‘역사소설’, 이방인과 이방의 나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여행소설’, 이성과의 연애담을 담았다는 점에서 ‘연애소설’, 선과 악의 근본 의미와 혁명의 충돌을 걸고넘어지는 점에서 ‘철학소설’ ― 짬뽕을 해놔도 제대로 짬뽕을 해놓은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정말로 복합적인 맛의 국물을 들이키는 것과도 같았다. 후루룩, 하고 국물을 한 번 마실라치면 매콤함과 쌉쌀함, 달콤함, 시큼함까지 온갖 국물의 맛이 혀의 미각을 사방으로 마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국물의 맛은 기가 막혔다.






<시누헤>는 모세의 정식적인 스승이었다고 전해지는 아케나톤과 그를 섬긴 특별하다 할 것 없는 한편으로는 시시한 의사 시누헤가 벌이는 대서사로, 인류의 명제와 갖가지 역사를 통틀어 한 편의 이야기에 쏟아 붓고 있다. 사실 줄거리를 자잘하게 설명할 수도 있지만 설명한다면, 기밀을 누설하여 기밀누설죄로 아케나톤과 시누헤에게 잡혀가기라도 할 듯한 아릿함이 전해온다. 그래서 그 어렴풋한 느낌이나마 글으로 끼적이고 있는 것이다. 명제와 정리, 해답, 증명, 이렇다할 논리와 철학 그리고 역사의 복원을 시도하는 장렬한 팩션의 요소까지, <시누헤>가 각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시누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는 세상을 향하여 정문일침을 하기도, 본을 뜨기도 하며 여러 측면으로 읽는 맛을 살리고 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이집트의 배경에서부터 미진하게 존재하던 아리송한 역사까지 한꺼번에 머릿속에 담아버린 느낌이다. 역사소설이 쏟아지는 이 시기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역사소설을 쓰면서 단순히 그 소재를 현재로 끌어들이려고만 하지 말고, 그 소재를 그 당대에 천착하여 보다 실감나게 인용하여 읽는 맛의 깊이를 더해주었으면 한다. 역사소설을 쓰는 이들은 <시누헤>를 보며 조금이나마 참고를 할 수도 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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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펄 벅 지음, 서정태 옮김 / 길산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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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서문에서, 옮긴이는 펄 벅과 버지니아 울프를 비교함에 있어 펄 벅의 대우가 마뜩찮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른바 ‘의식소설’과 펄벅의 페미니스트적이고 그보다는 휴머니스트적인 소설에 대하여 문단에서는 버지니아 울프를 상전 모시듯 했고, 직접 행동으로 실천한 펄벅은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기도 한 것이,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의 소설기법 자체에 있어 큰 주목과 사랑을 받은 데 비하여 펄벅은 <대지>라는 유명한 작품을 가끔씩 읽어주는 독자가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과연 ‘문학적귀족주의’가 무엇을 의미하고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옮긴이는 자문하고 또 반문하고 있다.




<대지> 이후의 후기작 <만다라>에서도 그녀의 사실적 서사 기법은 여전하다. 뾰족한 주제의식과 그렇다할 독창성이 빛나는 것은 아니지만, 펄 벅의 소설에서의 가장 큰 매력은 누가 뭐래도 ‘삶으로 이어지는 대서사’이다. 펄 벅이 1970년대 들어 집필한 <만다라>는 인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국경전쟁과 인종 그리고 종교적 갈등의 상황과 함께 연인의 사랑이 담겨있다. 타지마할 궁전 앞에서 연인의 실루엣이 우아하게 달빛에 비치는가 하면, 그 와중에도 전쟁과 핍박이 달 건너편에 웅숭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 그리고 건너편의 갈등, 평화 그리고 건너편의 전쟁, 궁전 그리고 건너편의 황무지……. ‘펜은 총보다 강하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펄벅은 <만다라> 속의 상황을 그 시대의 현실에 최대한 가깝게 끌어들인다. 총은 파편을 남기지만 펄 벅의 소설은 과거의 상황을 남긴다는 점에서 펜은 총보다 강하다. 잉크는 탄환보다 빠르고 더 깊게 팔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이다.




<만다라>를 읽으며 의아했던 것은 펄 벅의 사실적인 묘사와 휴머니스트적인 소설 전개가 왜 그리도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보석이 찬란히 반짝거리는 순간이나 아름답게 어둠을 밝히는 야경 혹은 유연한 춤동작에서나 비롯될 법한 단어다. 하지만 내가 펄 벅의 소설에서 아름다움을 느낀 것은 아름다움의 의미가 단지 ‘특별한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기 이전에 그보다 더욱 자연스러운 ‘삶의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펄 벅은 ‘삶의 아름다움’을 일찍이 깨달은 듯하다. 펄 벅의 소설들은 매우 사실적이고 꾸밈이 없지만, 그 속에 담긴 진가에서 우리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삶의 아름다움을 조명한 펄 벅은 그에 마땅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충분히 있는 것이고 말이다.




펄 벅은 소설가다. 소설가이기 이전에 여성이다. 여성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사람이기 이전에 세상에 몸을 담근 하나의 생명체다. 생명체이기 이전에 만물의 씨종이다. 씨종이기 이전에 우주의 빛이 비추는 대상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기 이전에, 삶을 이루는 티끌로서 그녀는 삶의 터울을 메운다. 또 하나의 현실의 대상으로 여지없이 소설을 선택한 펄 벅. 그녀의 파란만장하고도 아름다운 생애와 휴머니스트적 감성은 현대의 우리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곳, 이 땅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 그 순간 펄 벅의 존재는 반짝거릴 것이다.




세인들에게 ‘대지’의 아름다움과 세상의 현실적 면모를 동시에 일깨워주는 펄 벅. 그녀의 소설이 한낱 역사로서 낡아지지 않고 점점 미래로 나아가 세상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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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가의 석양 - Always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한성례 옮김 / 대산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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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사는 동네의 뒷골목에 세월이 남기고간 뚜렷한 흔적은 우리들의 모습까지 변하게 만들었다. 좁다랗게 세워져 아이들의 놀이공간이었던 골목은 어느새 확장공사에 돌입하고, 곳곳에 공장과 신식아파트가 설립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세상이 변하는 것을 실감한다. 그렇게 우리는 세월의 변화에 물들어가고 있다. 모든 것이 추진과 개발의 세습에 물들어가는 가운데, 우리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며 아득바득 세상과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더운 여름날의 부채와 발의 선선함과 추운 겨울날에 옹기종기 붙어 잠을 지새우던 온정을, 우리들은 세상이 변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린 걸까?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이라는 책을 30여 쪽 읽고 난 뒤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이 책의 표지는 도쿄타워가 한가운데 우뚝 세워져있고 그 주변으로 불그스름한 석양이 둘러싸여있는 모습인데, 도쿄타워라는 건축물과 석양이라는 따스한 느낌의 소재가 서로 엉키는 것이 꼭 현대 속에 존재하는 인정처럼 다가왔다. 책 속의 내용 또한 석양처럼 따스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로 싸우기 일쑤인 인간들에게 화합하는 의지를 주고자 외계인의 지구별 침투 소문을 퍼뜨리는 아이들과 옛 기억을 회상하며 창작의 의지를 이어나가는 소설가, 또 다른 나의 모습에서 용기와 지혜를 발견하고 그런 나를 닮기로 결심한 한 아이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 모두가 나에게는 하나의 힘으로, 하늘 저편에 둥글게 자리한 붉게 물든 석양으로, 그리고 따뜻한 인정이 배어든 이웃들의 이야기로 작용했다. 이웃들의 현관문을 부여잡고 그들의 속사정을 귀띔하는 느낌이랄까?




문학의 이유가 뭔가를 제시하고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해야한다는 관념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자라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처럼 소소하지만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다룬 문학도 엄연한 문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학이란 뭔가를 굳이 표현하고 창조해내야 하는 세상의 중심에 자리한 매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세상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내게 순수한 문학의 의미를 상기하게 만들었고, 진정한 문학의 의미를 떠나서 ‘우리에게 친숙한’ 문학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삶에게의 실연과 고통이 있고 잊혀져가는 기억의 조각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이유는 없다. 우리들은 지금의 시간을 살고 그것에 맞추어 생활하고 있지만, 예전의 따스한 기억과 그것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희망의 열기가 있다. 예전에 마주하던 따뜻한 온정은 아직까지 당신의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다. 그 따스한 마음을, 도쿄타워처럼 빚어진 현대적 창조물의 건너편에 붉게 떠있는 석양과도 같이, 당신의 생활에 붉게 물들여보는 것은 어떨까? 지치고 힘들 때 그 석양이 당신의 마음 구석구석을 밝고 따뜻한 빛으로 감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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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경제 수첩 양철북 청소년 교양 1
크리스티아네 오퍼만.한대희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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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하지만 결코 쉽게 생각하면 큰코다치는 불가피한 개념의 존재. 생활이라는 명목 하에 숨어 지내다 언젠가 우리 곁으로 갑자기 찾아들어 강펀치를 툭, 하고 날리는 라운드 위의 복병. 머리를 싸매게 만드는 복잡한 그래프로 나타내지곤 하는 급격한 변화의 주체. ― 이것이 정녕 경제의 이름이던가? 적어도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의 경제는 이렇게 어려운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책 속의 경제는 그저 삶 속에 담겨 있는 하나의 생활일 뿐이다. 그런 경제가 내게는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쉬웠다!




<청소년 경제 수첩>이라는 책을 받아 들고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청소년’이라는 단어 하나만 보고 왠지 모르게 나에게 딱 어울릴 듯한 느낌. 그렇다, 나는 청소년이다. 청소년의 입장을 흔히 ‘주변인’이라고 지칭하곤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결코 내가 주변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삶과 더욱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건만 왜 내가 주변인이라는 거지? 이런 생각을 품으며 점점 삶과 세상과 경제에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평소에 우리들이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경제라는 해답으로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나와 가까이 존재했지만 만나거나 접할 수 없었던 경제관념을 이 책은 너무도 손쉽게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내가 그동안 궁금증은 품어왔지만 그냥 넘어갔던 것들에 대한 속 시원한 설명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나 의료제도와 사직절차에 대한 내용이 재미있었는데, 병에 걸렸을 때 받을 수 있는 혜택과 회사를 그만둘 때 거쳐야 하는 절차를 내 궁금증의 풍선 속에 ‘경제’라는 헬륨으로 공급해주었다. 무엇보다도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 그동안 내가 이렇게 답답한 상황이었다는 것에 대한 한심함! 지금이라도 알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의 한숨! 여러 가지 감정을 자극시키는 이 책은 청소년들의 필독서라 칭할 수 있을 만큼 그 효율성이 실로 대단하다. ‘세상이 보이는 지식’이라는 테마에 걸맞게, 경제를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을 기를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더더욱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앎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그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 의미가 아니라, 그 지식으로 세상의 곳곳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기른다는 의미를 종합하고 있는 것이리라.




평소에 애매모호하게만 여기던 경제라는 개념에 대한 실마리를 움켜쥘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실마리는 동아줄처럼 튼튼하고도 안전한 구실을 했고, 나는 더 깊은 실마리를 탐색하는 중이다. 경제를 통하여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더욱 깊게 기를 수 있는 그런 실마리를, 더 이상 주변인이 아니라 중심인이 되어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한 실마리를, 그렇게 튼튼하고도 안전한 실마리를 나는 찾아보련다. 물론, 최초의 실마리는 바로 <청소년 경제 수첩>으로 간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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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한권의 책에서 많은 정보를 얻으신것 같네요.^^ 이번에 움켜쥔 실마리들을 엮어서 아주아주 튼튼하고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동아줄을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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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업체를 운영하며 공갈과 협박을 일삼는 요코겐과 소위 조직 폭력배와 흡사한 야쿠자, 아버지를 증오하며 복수를 꿈꾸는 딸 크로체, 그리고 대기업에 다니면서 다른 삶을 꿈꾸는 미타까지, 어느 요소 하나 평범하지 않다. 그렇다고 엄숙하다거나 올바른 면모는 티끌도 없는 소설. 그야말로 까마득한 한밤중에나 일어날 법한 비열한 일들이 서슴없이 펼쳐지는 암흑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암담하다는 건 아니다.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일어날 법한 돈놀이를 오쿠다 히데오는 빠르고 경쾌하고 심지어 재미있게,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며 늘어놓는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면 무섭고 치가 떨릴 일을 소설을 통하여 보는 것의 재미란, 상상을 뛰어넘는 자인적 충동과 그 해소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오쿠다 히데오가 좋을 때가 종종 있다.




이번에 읽는 그는 <한밤중에 행진>이라는 소설을 내놓았다. 표지부터가 쩐의 전쟁 분위기를 풍김과 동시에 비열한 거리를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은 사기와 돈, 도박 등 쉽게 입에 담을 수 없는 그런 것들을 거침없는 문체로 통렬하게 담아내고 있다. 야쿠자의 도박판에서 일어나는 돈거래와 그 돈거래를 주목하며 갈취의 순간을 염원하는 이들의 일상 아닌 일상. 뭔가 께름칙하여 걸리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킬킬거리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슬그머니 미소를 머금는 웃음이 아니라, 기분 째지도록 킬킬거리며 웃을 수 있었다. 약간의 혐오와 꺼림이 존재했지만 그것은 사건의 재미에 비하면 별 문제도 아니다. ‘뒷거래’와 ‘급습’을 뉴스를 통해서만 보다가 소설로 읽는 느낌은 뭐랄까, 범접할 수 없는 공간에 범접한 것에 대한 속 시원한 유쾌함이라고 해야 하나? 자질구레함이 향긋함으로 상승하는 느낌, 바로 그거다!




심장 박동 수가 쿵쾅쿵쾅하며 최고조에 이른다. 들킬지도 모른다는 것과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것, 이 두 가지 상황에 대비한 심장 박동 수는 점점 방망이질 속도가 빨라지고 소리는 점차 증폭된다. 이처럼, 이 책은 스릴과 재미의 증폭이라는 최대 무기를 지니고 있다. 평범함을 넘어 안전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결핍된 상황을 조명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들은 나 자신이 못할 짓을 해주는 소설에게 큰 감동과 재미를 느낄 것이다. 일상에서의 탈피, 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출입금지구역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자유로움을 이 소설에서 발견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테마는 역시 ‘돈’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을 엄습해오는 그것. 얼굴 들라치면 어김없이 추격해오는 그것. 우리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무서운 그것. 그것이 바로 돈인 셈이다. 그런 무서운 돈을 오쿠다 히데오의 <한밤중에 행진>에서는 마치 작고 동그란 구슬처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아주 가지고 논다. 돈을 농락하는 것인지 우리들을 농락하는 것인지 이 세상을 농락하는 것인지 모를 소설은, 무서운 돈을 가벼운 깃털처럼 훅하고 불어대며 보란 듯이 사건을 전개한다. 세상만사를 미물처럼 보는 가벼운 시선이 다루는 억 만 톤의 소재가 아주, 아주, 기가 막히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에겐 일상과 다름없는 생활이 우리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탈피로 여겨진다. 과연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들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들은, 결국엔 ‘인생?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던지듯이 막나가는 재미를 선보인다. 우리가 오쿠다 히데오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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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3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마음에 드는 작가지요. 이번의 동그란 구슬처럼 이리 저리 굴리는 돈놀이도 꽤나 유쾌했었진요.^^ 기분째지는 웃음과 자유로움이 맘에 들었던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