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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벰버 로드
루 버니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0년 1월
평점 :
노벰버로드 (2019년 초판)
저자 - 루 버니
역자 - 박영인
출판사 - 네버모어
정가 - 15000원
페이지 - 436p
이토록 잔인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어라!
* 해밋 상 수상
* 매커비티 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
* 앤서니 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
* 배리 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
데자뷔인가?.....이 수상 목록을 분명 작년에도 쓴 것 같은데...하고 떠올리니 바로 '루 버니'의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을 읽고 남긴 서평에 그대로 썼던 수상 목록 아닌가!! 써내는 족족 영미 범죄문학상을 석권하는 이시대 최고로 핫하고 센세이셔널한 작가 '루 버니'의 따끈 따끈한 최신작이 출판사 '네버모어'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 [노벰버 로드]의 매커비티 수상 소식을 접한게 작년 말쯤이니 엄청나게 발빠른 국내 출간에 기쁨의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역시 영미 정통 스릴러 출판사로 자리매김한 '네버모어'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꾸벅~)
세계 각국을 막론하고 패션, 영화, TV 등등 각종 매체에서 뉴트로 열풍이 휩쓰는 이 와중에 스릴러 거장 '루 버니'도 전세계적 시류에 발맞춰 과거로 눈을 돌렸다. 그것도 1963년......11월 22일. 미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그때로 말이다.
1963년 11월 22일,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오스왈드가 쏜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첫 탄은 빗나가 길바닥을 맞췄고,
두 번째 총탄이 케네디의 목을 관통했고,
세 번째 총탄이 케네디의 머리를 관통해버렸다.
실시간으로 대통령의 죽음이 전파를 타고 미국 전역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다.
그리고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카를로스 조직단의 유능한 해결사로 일하던 멋쟁이 기드리는 남은 일생 모두를 걸게될 일생일대의 도박에 자신의 운명을 내 맡기게 된다. 기드리의 동료 조직원들의 의문의 실종들. 대통령 저격범 오스왈드의 사망. 그리고 서서히 좁혀오는 FBI의 수사망.....생존의 직감이 유달리 뛰어난 기드리는 즉시 도망친다. 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남부로....기회의 땅으로.....
한편, 알콜중독자 남편을 바라보며 두 딸아이를 키우던 주부 샬럿은 더이상 희망없는 찌들어버린 삶에 염증을 느낀다.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빌어먹을 남편에게 두 아이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샬럿은 여느날과 다름없이 술집을 찾아간 남편을 두고 어린 두 딸아이와 키우던 강아지를 차에 태워 그대로 도망친다. 자신을 짓누르던 남편으로부터...꿈을 포기하고 주부로 살았던 억압의 굴레로 부터....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남부로....기회의 땅으로....
자. 생존을 위해 조직을 피해 도주중인 범죄자와 두 꼬맹이에 개까지 태우고 대책없이 남편으로부터 도망중인 미모의 주부가 만났다. 다음에 무슨일이 벌어질지는.....ㅎㅎ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공감대와 호감.
생존을 위해 도주하는 남자와
안정을 위해 도주하는 여자의 만남.
이 기묘한 조합이 예기치 못한 케미스트리를 야기하면서 독자를 둘 사이 아슬아슬한 관계로 흠뻑 빠트린다. 머...여기까진 러브스토리....라고 할 수 있을까?....다만! 이 달달한 커플이 예상치 못한 이가 있었으니....기드리를 뒤쫓고 있는 카를로스 조직 최고의 킬러 바로네의 존재이다. 쫓고 쫓기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바로네의 존재야 말로 스릴러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킬러의 냉정함을 그대로 표방하고 심장이 쫄깃해지는 서스펜스를 유발한다.
사실 띠지 뒷면에 실린 추천사를 쓴 대작가 '스티븐 킹' 역시 케네디 암살사건을 소재로 한 타임워프 물 [11/22/63]을 썼을 정도로 미국인들의 기억속엔 케네디 암살사건이 잊지못할 비극적 사건으로 각인돼 있는 듯 하다. 저격범으로 잡힌 오스왈드의 어이없는 죽음. 그리고 케니디 암살을 지시한 미국 총기협회 혹은 갱단 심지어 일루미나티 까지 무성하게 피어오르는 각종 음모론들. 어찌보면 이 사건 만큼 장르 소설에 어울리는 사건은 없으리라 생각될 정도니, 저격사건의 뒷이야기를 다루는 이 작품이 얼마나 그들에게 흥미롭게 비춰졌는지는 앞서 나열한 범죄문학상이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움, 추억, 후회, 애달픈 사랑
작품 전반에 깔려있는 복고풍의 노스텔지어적 감성이 주효하게 먹혀들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는 작가의 전작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인데 이 아련한 그리움에 대한 감정이 복고를 만나 더욱 견고해지고 강력해졌다. 1963년을 살지 않았던 본인이 읽기에도 쉽게 그 당시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시각화된 배경설정과 묘사. 그리고 기드리, 샬럿, 바로네의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행동과 심리는 본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았다. 명절 틈틈이 작품을 읽었는데, 책을 놓고 있을때는 그들이 머리속 한구석에 숨어있다가 다시 책을 펴들면 숨어있던 그들이 어느새 눈앞에 나타나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랄까....지금이라면 속내가 빤히 보이는 그들의 행동과 언행들이 1960년대라는 배경에 젖어들면서 지금은 흉내낼 수 없는 가오(?) 혹은 세련된 멋으로 되살아나니 놀랍지 않은가....
단순히 과거를 찬양하는 레트로 였다면 이토록 열광적인 반응은 끌어내지 못했으리라. 복고에 시대의 새로움을 반영한 뉴트로였기에 이 같은 재미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 뉴트로의 요소가 샬럿의 존재이다. 남편에게 도망친 한없이 나약한 여성의 홀로서기. 기드리의 만남으로 격정적 사랑에 빠지고 그에게 기대기만 하는 여성으로 그려졌다면 작품의 평가는 상당히 갈렸을 것이다. 달콤한 사랑과 가족의 기로에서 당차고 주체적인 샬럿의 결단이 아름다운 사랑으로 여운을 남기며 영롱한 빛을 발한다.
사실 평단이 인정하는 작품성과 대중이 인정하는 재미를 모두 만족하는 작품을 만난다는게 그리 쉽진 않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작품성과 재미의 미묘한 균형을 정말로 적절히 맞춘 작품이다.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도 마찬가지지만 장르소설을, 그중에서도 이런 영미 스릴러를 선호한다면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