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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캐너 다클리 ㅣ 필립 K. 딕 걸작선 13
필립 K.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0년 1월
평점 :
스캐너다클리 (2020년 초판)_필립K.딕 걸작선 13
저자 - 필립 K 딕
역자 - 고호근
출판사 - 현대문학
정가 - 16000원
페이지 - 489p
나 자신은 이 소설속의 등장인물이 아니다.
나는 이 소설 자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나라도 이 소설 그 자체다.
필립 K. 딕 걸작선 12번으로 박스셋까지 나온 마당에 이 무슨 뜬금없는 출간인가 싶으면서도 내심 '필립 K 딕' 걸작선에 [스캐너 다클리]가 빠져버린 아쉬움을 느끼던터라 이렇게 게릴라성으로 출간됨에도 너무나 반갑고 진정한 걸작선의 완성이라 말하고 싶은 마음이다. 애초에 폴라북스에서 기획된 '필립 K 딕'걸작선에서 이 작품이 제외됐었는지, 이 작품만 계약에 난항을 겪었는지 여부는 출판사 관계자가 아닌 이상 알턱이 없으나 2013년 시리즈 12번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이후로 7년만의 열 세번째 시리즈 출간은 SF팬으로서나 '필립 K 딕'의 팬으로서나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누구 말마따나 이렇게 나와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랄까!!
흔히들 예상하는 기대 이상의 효과나 능력치 이상의 결과를 뽑아냈을때 약빨았다고들 표현하곤 한다. 그런데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이 작가 정말로 자신의 화려한 약빤 경력을 바탕으로 써낸 작품이 바로 이 [스캐너 다클리]이다. 어디까지나 가상의 세계를 상상력으로 구성하여 이야기하는 SF라는 소설속에서 마약을 통한 환각 묘사가 이토록 생생하고 리얼한건 작가 자신이 마약에 중독되었던 약쟁이의 경험을 십분 살려냈기 때문인 것이다. 여타 작품에서도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필립 딕' 특유의 정신분열적 이야기가 특징이지만 이 작품은 정말로 '약빤' 정신착란 SF가 펼쳐진다. 작가 '필립 딕'과 실제 마약으로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을 모델로 작품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통해 약에 찌들어 미래 없이 살아가던 1960년대 공동체 중독자들의 모습을 목도하게 만든다.
향정신성 마약 D물질이 개발, 확산되고 얼마안가 미국은 극심한 마약 중독으로 인한 여러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대두된다. 비밀경찰 프레드는 마약 D물질을 제조 공급하는 일당을 검거하기 위해 밥 아크터라는 약쟁이로 위장하여 약쟁이 소굴에 잠입한다. 일상생활은 밥 아크터로 생활하며 럭맨, 배리스, 찰리 프렉 등의 동료들과 함께 마약을 빨고 불법적 행위를 저지르고, 프레드는 스크램블 수트(다양한 사람들의 형상이 끊임없이 변형되는 옷으로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추는 수트)를 입어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짜 얼굴을 숨긴채 집안에 숨겨놓은 스캐너(감시장치)에 저장된 영상을 확인하면서 마약 공급책의 증거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이중생활을 하게 된다. 문제는 언더커버지만 진짜로 D물질에 중독되 버린 프레드의 뇌가 마약에 타버리면서 부터 하나, 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본인이 중학생 시절, 집 뒷산에만 가도 여기저기 버려진 검은 봉다리가 수두룩 했다. 그 검은 봉다리를 들춰보면 노란색 오공 본드가 가득 들어있었다. 뭘 붙이려고 담은게 아니라 봉다리를 쓰고 본드를 들이마시느라 사용된 봉다리 였던 것인데, 본인이 다녔던 학교가 불량 학교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동급생 중에도 그렇게 본드를 마셔대고, 부탄가스를 마시던 놈들도 적지 않았었다. -_-;;;; 머...본인도 중딩부터 어렵지 않게 음주를 했었으니 양아치들이야 더 심했겠지만....이 작품을 읽으니 술자리에서 그네들의 환각경험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본드를 마시고 그때 당시 한창 인기있던 스트리트 파이터 2 게임처럼 장풍 '아도겐'을 쏘니 정말로 손에서 장풍이 발사 되더라는 것. 웃긴건 같이 마신 다른놈도 그 장풍이 보여 한참을 두 놈들이 환각상태에서 게임 기술을 쏴댔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도입부에 나오는 제리를 보니 딱 그때 이야기가 떠올랐다. 강력한 마약 때문에 뇌가 타버린 제리는 온몸에 진딧물이 기어다니는 환각에 시달린다. 아무리 샤워를 해도 어디선가 나타나는 벌레 때문에 온몸에 살충제를 뿌려대는....하루는 이 벌레를 잡아 의사에게 보여주기 위해 유리병 속에 벌레를 잡아 넣는 와중에 그의 친구 찰리가 방문한다. 제리는 찰리에게 이야기한다. 이 벌레들 좀 같이 좀 잡아달라고....그리고 제리와 찰리는 몇 시간동안 병안에 벌레들을 잡아서 가득 채운다.
자. 이 병속의 벌레는 실존하는 것인가? 아니면 제리의 환각이 찰리에게 까지 전염된 것인가? 아니면 찰리가 그저 제리의 망상에 맞춰준 것인가?....어찌보면 이 도입부의 에피소드가 이 작품 전반에 걸친 의문을 이야기 하는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언더커버 프레드의 이중생활. D물질의 중독.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를 잇는 신경이 타버리고 프레드로서의 인격과 아크터로서의 인격이 개별 분열되는 골때리는 전개가 펼쳐진다. 자. 비밀경찰 프레드가 진짜 본 모습인가? 약쟁이 밥 아크터가 본 모습인가? 언더커버를 위한 연기인지 내재된 욕망의 발현인지....독자는 끊임없이 물음 갖게 되고 혼란, 혼동, 카오스에 빠트린다.
실제 중독자였던 작가의 생생한 환각 묘사, 무질서, 매춘, 폭력, 정신착란, 분열증, 강박증, 피해망상, 우울, 혼란 등등등 마약으로 피폐해져버린 한 인간의 정신과 세계를 극단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마약을 경험해본적 없는 본인에겐 텍스트로나마 뿅가는 경험을 시켜준 합법적 마약같은 작품이었다. '필립 딕'의 작품을 전부 읽진 못했지만 본인이 읽은 작품중 가장 정신없는 작품으로 꼽는다. 추가로 작품과 더불어 2006년에 나온 동명의 애니메이션 [스캐너 다클리] (무려 '키아누 리브스', '로버트 다우니 쥬니어', '위노나 라이더'라는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를 본다면 원작의 깊이와 텍스트로는 그리기 어려웠던 장면들을 영상으로 손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