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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
장세아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3년 3월
평점 :
런어웨이 (2023년 초판)
저자 - 장세아
출판사 - 아프로스미디어
정가 - 17000원
페이지 - 491p
지친 당신이여 떠나라!
아니, 데이트 폭력에 지친 당신이여 떠나라... 아니, 데이트 폭력에 지친 당신이여 재벌집 저택으로 떠나라. 인가?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이 살을 붙여 장편으로 출간됐다. 비밀 가득한 재벌집 저택에 당도한 비밀 가득한 한 여성의 재벌집 적응기. K 고딕 도메스틱 스릴러 [런어웨이]이다.
'인생을 리셋 할 수 있을까?' by 8page
정처 없이 기차에 몸을 실은 나는 우연히 아기를 앉은 애엄마와 합석한다. 심란하던 차에 또래 여성과 만난 나는 잠깐 애엄마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태어난지 3개월, 12월 12일 생이라는 아기는 통잠을 잘 정도로 순하단다. 어느정도 마음이 놓인 애엄마는 내게 아이를 맡기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단다. 그래. 잠깐동안 무슨 일이 생기겠어? 흔쾌히 조막만한 아기를 안아 들었다.
뭔가 잘못됐다!
금방 다녀온다던 애엄마는 흔적없이 사라졌다. 아기를 싸맨 포대기를 들춰보니 주소 하나가 달랑 적힌 쪽지가 들어있었다. 잠시 갈등했으나 차마 아기를 버릴 순 없었다. 아기를 안고 찾아간 곳은 생전 처음으로 본 거대한 대저택이었다. 아기를 들고 온 나를 본 사람들은 집나간 첫째의 며느리와 자식이라며 다짜고짜 나를 집안으로 끌고 들어가버렸다.
한 순간 본적도 없는 남자의 며느라가 되버린 나. 친엄마는 대체 왜 아기를 버리고 떠난 것인가. 아니, 당장 이 아기가 이 집안의 핏줄이긴 한 건가. 하지만.... 이 저택을 나와도 갈 곳이 없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며느리던, 아기엄마던 뭐라도 해야 한다!
눈 감고 3년, 귀 막고 3년, 입 막고 3년, 알아도 모른 척 모르면 모른 채 사는 것이 시집살이라던가. 그런의미에서 표지의 여성은 극한의 시집살이를 겪게되는 주인공의 모습과 딱 맞아 떨어진다. ㅎㅎㅎ
K고딕이라는 출판사의 설명이 붙어있지만 여전히 고딕의 정의가 뭔지 잘 모르겠다. 작품에서 그려지는 대저택과 의뭉스러운 가족들의 낯낯은 그동안 K드라마에서 봐오던 익숙한 장면과 설정들이기 때문이다. K드라마를 예로 들어서인지 모르지만 출생의 비밀, 가족의 내력, 비밀 가득한 구성원들 등등 막장 드라마스러운 비밀들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 벗겨지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중독적인 작품이다.
이 무리수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사뭇 궁금했는데, 사실 결말의 진실? 반전 보다 초반부 드러나는 우연에 가까운 나와 집나간 첫째의 반전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대저택이라지만 한정된 공간, 그리 많지 않은 인물들간의 심리적 갈등으로 이끌어가는 심리 스릴러로 약에 쩔은 화자의 어지러운 정신상태를 클리셰처럼 따라가지만 나름 막판의 전복으로 새로움을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이 점이 그동안 봐오던 여성 화자의 심리 스릴러들과 달라 좋았달까.
적지 않은 분량이나 익숙해서인지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출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중쇄를 찍고 순식간에 영상화 판권이 팔리는 것을 보면 한국형(K)이라는 수식이 충분히 붙을만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