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일기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책리뷰/소설] 겨울 일기 / 폴 오스터 / 송은주 / 열린책들

 

인생의 겨울에 서서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고 책소개를 안 읽고 책을 보는 버릇이 있어요. 그래선지 책을 고를 땐 주로 책제목과 책표지를 참고하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면 두 번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지르기도 해요. 물론 그 덕분에 책장엔 아직 읽지 않은 책이 까득 있긴 하지요. 이 책도 책소개를 미리 보지 않고 읽었어요. 한참 읽다 보니 '이거 혹시 일기장 아냐? 분명 장르는 소설이던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인칭 관찰자시점이기 때문에 한참을 일고 나서야 살짝 의심을 가졌거든요. 그런데 확신을 가진 건 소설속 '당신'이 이사다닌 곳을 한 곳 한 곳 모조리 소개하는 부분을 읽을 때였어요. 그냥 소설이라면 대충 어느 지역이라고 말했을 텐데 번지까지 상세하게 적어놨거든요. 그때서야 책소개를 읽어봤어요. 아,,, 앞으로는 책소개를 먼저 읽고 책을 읽어야 할까봐요. 소설의 경우는 책소개에 혹시라도 스포일러가 있을까 해서 일부러 안 봤거든요.




이 소설은, 아니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어 자신의 인생을 적은 저자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어요. 60여년의 삶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았거든요. 소설 형식이기 때문에 '당신'이라는 호칭을 붙여 2인칭으로 썼어요. 보통 청소년 시절을 사춘기라고 하잖아요. 청년 시절을 여름이라고 본다면 불혹이라는 40부터는 가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60부터는 겨울. 그래서 이 책 제목이 "겨울 일기"더라고요. 인생의 겨울에 쓰는 일기. 앗, 그런데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잖아요. 그럼 80부터는 다시 봄이 아닐까요? 그건 그렇고, 60이 넘은 기념(?)으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폴 오스터라는 작가에 대해서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장면들 보다도 특히나 죽음과 관련된 장면들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뭘까요? 저자의 나이를 생각해보니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저자의 흡연에 대한 부분에서 저는 뭔가 특별한 느낌도 들었어요. 제발 담배좀 끊으라는 말, 담배를 입에 댄다면 병들어 죽게 될 거라는 말을 들어요. 저자는 담배를 많이 피는 사람인가봐요. 그래서 저토록 담배를 끊으라는 말을 들은 게 아닐까요? 저자는 자신의 흡연에 대해 후회할까요, 후회하지 않을까요. 담배를 계속 핀다면 젊은 나이에 죽을 거라는 말을 들었지만 60넘게 살고 있으니 죽음은 피한듯요. 수많은 죽음을 지켜본 그는 심지어 바로 옆 소년이 벼락에 맞아 죽는 것도 봤어요. 그래서였을까요. 그는 죽음을 어쩌면 슬픔으로 보지 않는지도요.




이 소설의 특징은 '당신'이라는 대상에게 말하는 거잖아요. 왜 자신의 얘기를 마치 남 얘기 하듯 '당신'이라고 했을까요? 한참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영혼이 빠져나와 과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려고 그런 건 아닐까 하고요. 스크루지가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한 착각을 하는 것 같았거든요. 자신의 지난 시절을 마치 타인이 보듯 바라보며 잘 살았는지 잘못 산 건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만약 64살이 된다면, 나도 이런 멋진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몸이 말하듯 글을 쓰는 그런 때가 저도 오겠지요. 멈추지 않고 계속 쓴다면요.




당신의 흡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당신에게 제발 담배 좀 끊으라고, 영영 담배는 입도 대지 말라고, 그렇지 않으면 병들어 죽게 될 거라고 애원한다. 젋은 나이에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며, 그렇게 생각 없이 자신을 살해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며 죽을 거라고 한다. (137쪽)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울지 않았다. 조부모의 죽음 뒤에도, 당신이 가장 아꼈던 사촌이 서른여덟의 나이에 유방암으로 죽었을 때에도, 오랜 세월에 걸처 당신을 떠난 많은 친구들의 죽음을 겪을 때에도 그랬다. 열네 살 때 당신 바로 옆에 서 있던 소년이 벼락에 맞아 죽었을 때조차 울지 않았다. (141쪽)


글쓰기는 육체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몸의 음악이다. (241쪽)


#naha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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