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예찬 - 번역가의 삶과 매혹이 담긴 강의노트
이디스 그로스먼 지음, 공진호 옮김 / 현암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책리뷰/언어] 번역 예찬 / 이디스 그로스먼 / 공진호 / 현암사

 

번역가는 작가다

 



 

저는 문학을 읽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종교서적으로 독서를 시작한 저는 자기계발서로 넘어간 다음 경영, 마케팅, 영업 등을 읽다가 문학으로 넘어왔어요. 문학을 읽으며 가장 힘들었던 건 난해한 문장이었어요. 저는 제가 언어능력이 엉망이라 그런 거라 생각하고는 번역서를 읽지 않았어요. 국내 작가 중에서도 문장을 길게 쓰는 분들의 작품도 멀리했어요. 이렇게 편식을 하다가 민음사 《데미안》을 만났지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독서가 아니라 암호를 해석하는 고통을 겪었어요. 그때서야 직역과 의역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제가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번역이 이상해서 번역서를 못 읽었다는 것도요.

 



 

충실성을 직역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직역은 어설프고 도움이 되지 않는 개념으로, 번역과 원본의 관계를 심히 왜곡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합니다. (79쪽)

 

헤르만 헤세가 원래 글을 이렇게 쓰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거의 한 달을 웹검색을 했어요. <데미안> 다른 번역본도 하나하나 모두 살펴봤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문학은 직역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문학 번역은 언어를 변환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문학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번역가는 자국 언어에 뛰어난 사람이 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해요. 그 후로 저는 더욱 번역서를 기피했어요. 대부분의 번역가의 문장력이 형편없다고 판단했거든요. 물론 문장력이 좋은 번역가도 있지만 제가 모든 책을 읽어보고 글을 잘 쓰는 번역가를 찾기엔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그렇게 저는 번역 문학과 점점 더 멀어졌지요.

 



 

번역가의 경험에서 독특한 점은, 번역가는 원문에 마음의 귀를 기울여 원작가의 음성을 듣는 청자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번역문, 즉 제2의 원문을 들려주는 화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20쪽)

 

번역가는 문맥을 번역하는 것입니다. 번역가는 의미를 재현하기 위해 유추를 사용합니다. (84쪽)

 

언젠가 그레고리 라밧사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번역하고 있었을 때 유난히 둔한 인터뷰어로부터 그 소설을 번역할 정도로 스페인어를 잘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에 그는 진짜 관건은 그 탁월한 작품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 영어를 잘 아느냐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85쪽)

 

최근엔 제가 문학작품의 비중을 높여서 독서를 해요. 소설가가 꿈이기에 더욱더 소설 읽기에 집중해요. 그러다 보니 번역 문학도 많이 읽게 됐어요. 역시 번역에 문제가 생겼어요. 주어, 수식어의 위치가 엉망인 문장이 너무 많았거든요. 게다가 지난주에 읽은 책에선 '있다'가 한 페이지에 대략 20번은 나오더라고요. 한 문장에 1~2번씩 나오는 '있다' 때문에 도저히 독서에 집중이 되지 않았어요. 원작이 그런가 해서 그 번역가의 다른 책도 찾아보았지요. 역시 그 책에도 '있다'가 엄청 많더라고요. 이게 바로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번역을 한 결과에요. 한국어에 뛰어난 사람이 번역을 했더라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겠죠. 짜증이 잔뜩 나 있는 제게 이 책 《번역 예찬》이 나타났어요. 얼마나 반갑던지요. 이 책의 저자도 역시 저와 생각이 비슷했어요. 번역가는 작가라고 주장하더라고요. 언어를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문학을 창조하는 작가라는 것이에요. 번역은 창조에요.

 



 

저자는 이 책으로 미국의 번역 현실을 꼬집어요.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이 많아서 얼마만큼 국내에 적용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번역가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번역가들의 고뇌에 대해서는 조금 알 수 있었어요. 요즘은 세계문학 읽기가 마치 유행처럼 번지잖아요. 저는 물론 번역을 믿지 못해서 손도 대지 않지만요. 이런 시대에 번역이라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에요. 한 작가의 작품을 타 언어를 쓰는 사람도 접하도록 해주잖아요. 직역을 한 바람에 암호를 해석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 최악의 쓰레기 책 민음사 《데미안》 처럼만 하지 않는다면요. 저와 생각이 비슷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읽는 내내 통쾌했어요. 문학 번역을 직역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의 주장도 들어봤는데요, 저는 제 생각에는 변함 없어요. 문학은 의역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굳게 믿어요.

 

#nahabook


http://blog.naver.com/naha77/501897727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