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시간
파비오 볼로 지음, 윤병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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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리뷰/소설] 내가 원하는 시간 / 파비오 볼로 / 윤병언 / 소담출판사

 

사랑하는 나의 가족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참 파란만장하구나.'였어요.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요.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해보지 않은 아버지, 사랑했지만 떠난 여인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로렌초의 사랑이야기를 읽으며 아름답다거나 안타깝다거나 감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기 보다는 그냥 대단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그의 삶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멀리 돌았다는 이유일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저도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어요.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 많이 죄송했어요. 무능력해 보여도 최선을 다했던 제 아버지 처럼 소설속 주인공 로렌초의 아버지도 가난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로렌초는 너무 가난한 집에 태어났어요. 얼마나 가난했던지 학교 다니는 것보다 아버지의 바에서 일하는 걸 택했을 정도예요. 그런 그가 아버지를 원망하게 되는 일이 벌어져요. 늘 빚에 허덕이고 채무자에게 시달려도 일하는 게 즐거웠던 그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해요. 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만남을 반대해요. 학교도 다니지 않은 데다가 집이 너무 가난하다는 게 이유에요.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했기에 엄마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둘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사랑을 하지만 결국 그녀의 협밥게 헤어지고 말아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얼마나 아빠가 미웠을까요?

 

그의 다음 직업은 채심을 하는 거예요. 채심을 받다가 채심을 하려니 고통스러워요. 자신이 예전에 당했던 일들이 생각나며 자신이 이런 일을 하는 건 죄값을 받는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하루는 한 매우 가난한 집에 찾아가요. 그는 그곳에서 돈을 꼭 갚겠다는 채무자와 서류를 작성하다 말고 '당신의 채무는 사라졌습니다.'라고 말하고 집을 나와요. 그 후로 그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자신의 권한으로 채무를 모두 없애버리곤 해요. 이 일이 힘들었던 그는 카피라이터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져요. 그리고 대박을 치지요. 말 그대로 많은 돈을 벌어요. 하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는 전혀 좋아지지 않았지요.

 

 

 

세상에 안 되는 일이란 없어요. 그는 결국 아버지와 화해를 하겠지요? 직접적은 말은 아니지만 화분이라는 사물을 통해 둘의 사이가 가까워져요. 결국 아버지는 사랑한다는 말을 화분으로 대신 한 거였어요. 참 많이도 돌았어요. 가난이라는 환경 속에서 아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 까요. 저도 이제 곧 아빠가 될 사람이기에 조금은 이해가 됐어요. 성인이 된 아들은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저 또한 가난이라는 걸 물려준 아버지를 많이도 원망했거든요. 공부를 제법 잘 했음에도 누구나 다 가는 대학을 가난이라는 이유로 포기해야 했기에 늘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저도 어른이고 아버지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미움이 남아있지 않아요.

 

 

 

시간을 뒤로 되돌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얽매여 괴로워 하거나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결국 과거에 묶이는 거예요. 이런 사람에겐 과거와 현재만 있고 미래가 없어요. 미래가 없는 사람에겐 희망이 없다는 건 모두 알아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용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이 소설이 말하는 건 사랑과 용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사랑하기에 용서해야 한다는 걸 아버지와 그녀를 통해 말하고 있는지도요. 지난 설날엔 온가족이 모였어요.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둘러 앉아 밥을 먹었어요. 윳놀이도 하며 신 나게 놀았어요. 사랑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해요. 사랑한다면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세요. 늦기 전에요.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아버지라는 거인이 사링는 그렇게까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천천히 깨닫는다. 나는 그것을 아주 어렸을 때 깨달았다. (20쪽)

 

빌라도는 손을 씻으면서 예수의 피에 대해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하느님이 우리 가족에게도 똑같이 처신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59쪽)

 

훔친다는 건 창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일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나와 니콜라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도 훔쳐오고, 노래에서도 훔쳐오고, 기차 혹은 슈퍼마켓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엿들은 대화에서도 훔쳐온다.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뱀파이어처럼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로부터 피를 빨아들인다. 우연한 말 한마디, 문장 하나, 새로운 개념 하나라도 포착하게 되면 그게 바로 자신들이 원했던 것이라고 떠들어댄다. (72쪽)

 

보건위생부에서 나온 조사관이 바 안으로 들어와서는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1년 전에 우리한테 와서 그의 말대로 소소한 수리라는 걸 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 (중략) ... 그런데 이제 1년이 흐른 뒤에 똑같은 남자가 들어와서 하는 말이, 팔꿈치형 수도는 유행이 지났으니 페달형을 써야 하고 화장실도 터키식 변기로 반드시 바꿀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90쪽)

 

독서는 일종의 마약이 되어버렸다.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어떤 책들은 하룻밤 사이에 끝을 보기도 했다. 가끔은 책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읽는 속도를 늦추기까지 했다. 더 이상 넘어가고 싶지 않은 페이지들이 있었다. 이야기가 금방 끝났다는 것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120쪽)

 

"아 죄송한데요. 사모님, 오늘은 그거 안 사시는 게 나아요. 오늘은 그 부위가 너무 안 좋아서...... 아니 오늘은 사모님께 그거 도저히 못 드리겠어...... 오늘은 다른 부위 가져가세요." 그 순간 손님은 단골이 되어버린다. 믿음이 가는 사람이란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손님한테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하면서 방금 전에 안 좋다고 했던 부위를 파는 건 그 사람 마음이다. (164쪽)

 

책을 읽는다는 건 멋지고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똑같은 책을 다시 읽을 때는, 그 책은 거의 불가항력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168쪽)

 

사랑은 죽음과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언제 우리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178쪽)

 

우리의 의사소통은 인사가 전부였다. 그것도 말로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거칠고 꽉 마긴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184쪽)

 

"학교라는 건 대부분 똑똑한 사람들한테는 유용하지가 못해.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한테나 유용하지. 그리고 기억력이 좋다는 건 똑똑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게다가 공부든 대학이든 필요한 만큼만 하면 그걸로 족한 거야. 어쨌든 생각해봐." (190쪽)

 

우리 집에 화초를 정리하러 오셨던 그날은 아버지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을 한 날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아들로 선택한 날이었다. (277쪽)

 

#naha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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