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가 사는 곳 - 정인 소설집
정인 지음 / 문학수첩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약자들의 슬픈 이야기

이 책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자면, '인종적, 계급적, 성적 약자들의 비통한 삶의 이야기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외되고 버려진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나도 이 소설속 강자와 같은 나쁜놈은 아닌지, 약자와 같은 불쌍한놈은 아닌지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강하다고 해서 약자를 괴롭히는 것들을 보면 화가 치민다. 약자들의 편이 되어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어쩌면 나도 약자이기 때문에 그런 강자들의 행동에 화가 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외로우면 못산다

돈을 벌러 한국에 온 베트남 여자. 여자는 성적 문제로 가출을 한다. 가출하여 겨우 자리잡은 곳에서도 같은 성적 고통을 당한다. 같은 남자로써 부끄러웠다. 내가 만약 소설속 남자였다면, 난 여자에게 어떻게 했을까?

말이 통하지 않아 힘들었던 베트남 며느리를 보며 나도 그녀처럼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약해서 외로운 사람들. 약자이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외로움은 나의 외로움과 다를 것이 없었다. 외로움에 죽은 강아지와 나는 같은 처지가 아닐까? 난 갑자기 몰려온 외로움 때문에 기분이 다운되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는 정말 행복했을까? 울지 않고 이겨내면 좋은 날이 정말 오는걸까? 하지만 사람은 약하다. 약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고 그 외로움으로 인해 죽어간다. 주인을 기다리다 죽은 강아지 처럼.

 

모두가 가해자

결식아동이 얼마나 될까? 교회건물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가는데 결식아동들은 먹을게 없어서 굶는다. 요즘의 교회 건물들을 보면 바벨탑이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라는게 예수님의 명령인지, 교회건물을 크게 지으라는게 예수님의 명령인지 헷갈린다. 여기 이 이야기 [잔인한 골목] 속에서 결식아동과 죽어가는 할머니를 보며 나도 똑같은 가해자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매주 방영되는 리얼 프로그램중에 '복불복'이란 말이 있다. '나만 아니면 되'라는 말을 해대며 게임을 한다. 웃음을 주기 위해 그런다는건 이해가 되지만 진 사람의 모습은 정말 처참하다. 진 사람의 처참한 모습과 달리 이긴 사람은 행복해 한다. 이게 바로 '나만 아니면 되'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TV는 이 시대를 보여준다. 이 프로에서 나는 이 시대의 '나만 아니면 되'를 보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보았다.

바로 앞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도 태연히 밥을 먹고 웃고 떠든다.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굶어서 죽기 직전의 할머니에게 갈비탕을 사드리려고 찾아갔지만 식당 주인은 아이를 내쫓는다. 그런 불쌍한 아이를 사랑한건 같은 처지의 불쌍한 아줌마 뿐이었다. 같은 처지의 사람만이 아이의 불행을 감싸안아줬을 뿐, 행복한 사람들은 불행 사람에게 시선 하나 던지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였던 것이다. 오랜세월 부자의 명성을 지닌 가문에 이런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이웃이 굶으면 그건 내 책임이다.' 역시 이런 가문이 진짜 부자가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의 전재산을 팔아 가난한자에게 주고 평생 전도를 했고, 마지막 죽는날에도 전도하다 지하철에서 생을 마친 전도자가 생각난다. 그 동영상을 보며 그렇게도 많이 울었건만...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슬픈 현실, 나만 아니면 되

슬픈가? 책의 내용이 슬픈가? 슬퍼하면서도 속으론 '내가 아니라 다행이야', '나만 아니면 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이런 생각들이 이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만든게 아닌가 생각된다. 남을 욕할것 없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다. 내가 바로 식용으로 쓰기 위해 돼지를 키우는 사장이다. 오직 나의 이익을 위해 타자를 학대하는 그런 파렴치한이 바로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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