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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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읽어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

그동안 작가의 책은 나무와 파피용에서 멈춰 서 있었던 듯...

따끈 따끈한 책을 새로이 받았으니 촥촥촥...ㅎ

책은 두 권으로 이루어져있다. 그 첫번 째 권...

1막은 지상 낙원, 2막은 제 3의 눈으로 되어있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어느 날 쥐 떼가 모든 것을 장악한다.

고양이 바스테트 (암고양이)와 고양이 피타고라스 (수고양이) 그리고 바스테트의 집사 나탈리 (이들이 일단 주인공 트리오로 보인다)는 쥐 떼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센 강의 시테섬에 수백명의 인간 생존자와 고양이 수백마리와 함께 방어 진지를 구축한다.

쥐 떼는 시테섬으로의 직접 공격보다 포위하여 굶주리게 하는 전략을 들고나왔고, 이에 바스테트, 피타고라스, 나탈리는 열기구를 만들어 시테섬을 나가 도와줄 누군가를 찾으러 나간다.

그들은 오르세 대학에서 생존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오랜 만에 읽게된 작가의 소설은 고양이가 중심이다.

고양이 피타고라스는 인간의 실험실에서 과학 실험을 위해 정수리에 USB 연결 단자를 설치 수술한 고양이이다. 제3의 눈이라고 부르는 이 연결 단자를 통해 피타고라스는 인터넷에 접속해 인간의 지식을 습득하고, 고양이와 인간 나탈리 간의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도와준다. (제3의 눈과 스마트폰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피타고라스가 습득한 인간의 지식은 쥐 떼로부터 방어를 하는 데도 그리고 열기구를 만들어 도움을 구할 곳을 찾는 데 있어 도움이 되고 있다.

고양이 바스테트는 전형적인 고양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양이과 특유의 몸놀림으로 쥐와 새 등을 사냥하여 섭취하기도 하고, 집사인 나탈리에게 친밀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고양이들이 나온다. 고양이과 동물이지만 고양이는 아닌데 고양이와 함께 어울려있는 사자 한니발과 바스테트의 아들 안젤로, 대통령 궁에서 대통령의 반려묘였던 볼프강 등...

고양이들은 개들과 달리 독립성이 더 세다고 하나? 생존력이 좋다고 하나? 여튼 야생성을 금방 찾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주인공이 개가 아니라 고양이일까 싶기도 하다.

고양이 바스테트는 전형적인 고양이의 모습과 생활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점점 뭐랄까 인간화되어간다고 해야하려나 그런 기분이 든다.

어쩌면 고양이 피타고라스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옆에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영향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고양이가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행동하는 과정을 그려나가려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문명"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요부분이 2권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게 하는 부분이라 해야겠다.

그리고 소설의 구성은 고양이들의 이야기와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면서 소설 속의 내용을 보완 설명해주고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의 전형적인 구성 형태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구성이 거슬린다기 보다 무언가 채워주는 느낌? 뭐 그런 느낌이 들어서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작가 소설의 특징이라고 해야하겠다.

그나저나 1권의 끝부분에 고양이 바스테트는 실험실에서 자신도 피타고라스와 같이 제3의 눈을 갖고자 수술대에 오른다.

바스테트는 피타고라스가 부러웠을까? 인간의 지식을 습득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고양이가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이 인간이 고양이를 이해한다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 지 사실 궁금하긴 하다.

하지만...

이것도 문명의 일부일까? 문명화?

바스테트가 수술을 받으려할 때 인간 과학자가 말한다.

"원한다니까 해주긴 해주는데, 네가 나중에 자기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 둬야겠다" 라고...

프로메테우스가 '불'이라는 것을 인간에게 전달해준 것이 인간 문명화의 시작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불을 받은 것을 후회하고 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인간 과학자가 바스테트에게 받아두고 싶었던 그 약속의 의미는 무엇일까?

2권이 기대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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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자본주의의 배신 - 주주 최우선주의는 왜 모두에게 해로운가
린 스타우트 지음, 우희진 옮김 / 북돋움coop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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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주주 이익 우선주의가 경영 원칙의 최우선으로 거론되고 이에 맞춰 기업이 운영되었던 적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경영자가 GE의 잭 웰치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요즘 조금씩 이 주장은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 지 알려주는 책이 있어 읽어봤다.

책에 씌여진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정도가 될 것 같다.

저자는 주주우선주의의 대두는 "주인-대리인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이 "주인-대리인 이론"은 세가지 기본 전제를 갖는데 이와 같다.

1. 주주가 기업을 소유한다.

2. 주주는 기업의 잔여 청구권자이다.

3. 주주는 주인이고 이사회는 대리인이다.

저자는 이 세가지 기본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주주는 기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기업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채권자, 임직원, 협력 업체와 계약을 맺듯 주주와도 계약관계를 갖는다.

2. 주주는 단독 잔여 청구권자가 아니며, 일정부분 채권자도 부담하는데다 회사가 법적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모든 이익을 주주에게 몰아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3. 주주는 주식보유자이며, 주주로서 갖는 권한을 보유할 뿐 기업을 통제하는 것은 이사회다.

이와 같이 주주우선주의가 잘못되었음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저자는 몇몇 사례와 함께 경험적 자료를 바탕으로 주주우선주의가 주주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 주지도 않으며, 기업 성장에 특별히 차별화된 기여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주주우선주의는 이해관계자우선주의로 변화되어야 하며, 적어도 상호 협력을 통해 모든 사람들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이라고 하는 것은 일련의 조직 사회이다. 게다가 목적은 단순하다 하겠다.

바로 '돈'을 버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겠고, 그 무리를 움직이는 지휘자가 경영자, CEO라고 하겠다.

조직의 구성원인 임직원 (CEO를 제외하고...)은 인사 고과라는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꼭 그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일단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이 기준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우리는 정情이 많은 민족이니...ㅎ)

그런데 사실 CEO를 평가하는 방법과 기준이 모호한 부분이 없지 않다.

예전엔 경영 측면에서 하부 단위에까지 성과지표를 정량화하여 측정하고 집계한 적이 있었다. KPI key performance indicator였고, 이 지표를 개발하고 정량화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ESG environmental, social & governance 로 대체되는 분위기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것은 기업을 평가하는 것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CEO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드러내는 최종 지표는 매출액, 이익, 직원 숫자 성장률이 아니라, 기업의 주당 가치 성장률이 되어야 한다.

CEO 성과를 평가할 때 핵심은 절대 수익률이 아니라, 동종 업계 및 시장 전체와 비교한 상대 수익률이다. CEO 능력을 볼 때는 딱 세가지만 알면 된다. 첫째는 경영자 재임기간에 주주들이 올린 연평균 주가수익률, 둘째는 같은 기간 동종 업계 기업들의 주가수익률, 셋째는 대개 S&P500 으로 측정되는 주식시장 전체 수익률이다." (현금의 재발견, 윌리엄 손다이크, 마인드빌딩, 2019)

이와 같은 전제에 따른다면 이와 같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영자가 이익을 내어서 주주에게 투자가치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

기업에서 주주는 CEO를 교체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하다.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하면 될까??

그러다 보니 경영자가 주주를 위해 이익이 나는 일을 우선하게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으 아닐까?

잭 웰치도 GE를 주주를 위해 이익이 나는 회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정리하고 이익이 날 수 있는 사업은 인수 합병했었다.

단기 투자자와 장기 투자자 각각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것이 주주인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인지 차이가 있을 수 있겠다.

단기 투자자일수록 당장 주가가 오르는 것이 최선일 것이고, 장기 투자자의 생각에서는 아닐 수도 있겠다.

지금 주주우선주의가 잘못되었다고 폐기한 들 어떤 잇점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ESG라는 관점이 부상하고 있는 요즘에도 여전히 기업은 주주 이익을 대변해야 하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워렌 버핏아닌가... (물론 이 사람 생각과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이만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을까? 나름 생각이 깊은 사람일터인데...)

기업 유보금 등을 이야기하면서 주주 이익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소액 주주, 개미 투자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주주 우선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보인다.

특히나 배당 수익이 크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주가 상승이라는 것이 투자의 가장 큰 동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동산 투자에서도 임대 수익이 장기적 목적이기도 하겠지만 집값 상승이 가장 큰 매력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단기이익만 난다고 해서 장기이익도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경영자가 주주의 입맛을 맞추려고 단기이익에만 급급하여 미래를 위한 투자를 소홀히 하면 오히려 회사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주주가치 경영은 단기수익만을 위한 경영이 됐고 미래에 투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은 많은 주주들이 사실상 초단기 주 거래자인 현실에서 기인한 개념이다."라는 주장도 있으니 꼭 좋기만 한 주장은 아닐 수 있겠다. 어렵다... 머리 아프다...

여튼... 그렇다고보면... 너무 편리하게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지만...

주주 이익 우선주의와 이해관계자 이익 우선주의는 서로 조합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정 부분 주주 권리와 이익은 우선되어야 하겠고,

기업 성장의 열매를 함께 누린다는 점에서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익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다.

저자의 주장도 이런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주주는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가 상승과 배당 수익 등으로 이익을 보고, 기업이 파산하는 상황에서는 투자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상실한다.

그런데... 이해관계자 중 협력업체와 근로자는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보상을 받지만 (많고 적음, 만족 불만족, 상대적 소액... 뭐 이런 것까지 생각하지는 말자... ㅡ.ㅡ) 기업이 파산하는 과정에서는 가진 대부분의 것을 잃으며 그 여파가 크다. 왜? 상대적으로 다른 수입원이나 보유하고 있는 여유 자원이 적기 때문이다.

나 같아도 다니는 직장이 문을 닫으면 당장 생계에 곤란을 받으니 말이다.

게다가 주주는 일정 자본을 투자했지만 대부분의 근로자는 자신의 시간과 자원 (내 경우는 그냥 몸뚱아리... ㅠㅠ) 거의 모두를 내놓고 회사에 올인하는 데 주인이라고 해도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좀 편향적인 의견이려나... 그냥 생각이 이렇다는 거다.

이런 동화가 있다지...

첫째는 천리를 보는 망원경을, 둘째는 천리를 가는 말을, 셋째는 만병 통치 사과를 가진 삼형제 이야기...

누가 공주와 결혼해야 할까? 다 주어서 가진 것이 없어졌기 때문에 셋째라고 하는데...

그 셋째의 입장은 주식 보유자일까 이해관계자일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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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 번은 손자병법 -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화시키는 힘
우순링 지음, 이성희 옮김 / 이터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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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36계...

손자병법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아직도 없는 듯하다. 매번 이렇게 해설해주고 정리해준 책으로만 접해본 듯...

고전古傳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문으로 읽으라고 하던데...

아직 한자漢字에 대한 내공이 변변찮은 나는 그림의 떡이고 너무나 먼 당신이라고 해야겠다... ㅠ

손자병법의 한구절 한구절을 짚어가며 설명해주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손자병법의 원문보다 다른 책들의 인용이 더 많은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부분을 읽는 동안 기어올라왔다고 해야하려나...?

어떤 면에서는 전반적인 해설을 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손자병법을 처음 읽는 사람에게나 나처럼 원문 읽기에 대한 막연함이 있는 사람에게 조금 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앞부분은 소자의 성공 경로도 8단계이고, 뒷부분은 승리8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부분이 개괄적인 내용이라고 하면 뒷부분은 보다 상세한 내용이라고 해야할까?

먼저 손자가 이야기하는 성공 경로 8단계는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1단계 정의 : 무엇이 문제인가?

2단계 준비 :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3단계 비교 : 나는 이길 수 있을까?

4단계 장수선발 : 누가 싸울 것인가?

5단계 목표 : 어떤 방향을 정해야 하나?

6단계 실행 : 어떻게 싸울 것인가?

7단계 속임수 : 적을 약화시키는 방법은?

8단계 종묘에서의 승부수 계산 : 총체적인 평가

각 단계는 각 단계를 정의한 한 단어로부터 얼추 유추가 가능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조금 들여다 보기로 하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나에 대해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알고 파악하는 것이다. 내 문제는 무엇이고, 상대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이럴 때 딱이지 않은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ㅋ

그 다음은 알맞는 준비이고 그 다음이 비교해서 승산이 얼마나 있는 지 알아보라는 것이다. 흠... 앞의 것과 중복되지 않는가 싶다. 하지만 강조점이 다르다고 저자는 말한다. 좀 더 생각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어서 좋은 장수를 선발하고 전술전략적인 면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약간의 기만책을 강구하면서 말이지...

눈에 띄는 것은 '종묘에서의 승부수 계산'이라는 부분이겠다.

좀 더 진중하고 책임감 팍팍 느낄 수 있는 그런 장소 그런 자리에서 앞서의 모든 검토를 다시 한번 평가해보라는 말이란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판단보다는 내가 내려야 하는 판단의 무게감을 조상과 백성을 생각하면서 느껴보라는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문득 그 막중한 책임감으로 인해 오히려 주눅드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말이다. 이런 결정을 해야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주눅들기 보다는 엄중함을 더 느끼는 큰 그릇의 군주가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책의 뒷부분에서 이야기하는 승리8법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우선 허실虛實을 알아내는 세가지 방법으로 사전 정보 파악하기, 적 노출 시키기, 전장의 허실 파악하기다.

그리고 나의 충실함을 만드는 세가지 방법으로 형세 만들기, 기세 만들기, 무형의 주도권 잡기이다.

더하여 상대방의 허虛함을 만드는 두가지 방법으로 이해 관계, 형세 보여주기이다.

이렇게 세가지 항목에 대하여 총 8가지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앞서 보았던 성공 경로 8단계에서도 우선적으로 거론되었던 것이 "나와 상대방에 대한 파악"이다.

어쩌면 "께달음"이라는 말과 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문제도 일단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문제인지에 대하여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정보 파악이라는 것은 바로 그 의미와 같을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라는 말일게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승리8법이란 나를 과장하여 상대방이 겁먹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고, 나를 위장하여 나를 얕보게하고 자만에 빠지게 하는 방법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딱 한 단어로 "속이기"...

내가 강하면 속이고 자시고도 없지만 약하면 더 필요한 방법이겠고, 손자가 이야기하는 적을 이기는 가장 상책인 안싸우고 이기기를 위한 방법이 아닌가 말이다.

흠... 사기성이라...

손자병법이라는 싸움의 기술을 논하던 저자의 마지막 결론은 왠지 손자가 했음직 하지는 않다.

물론 손자도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승리할 수 있음을 만천하가 알게하여 나에게 싸움을 걸어오지 않게하고 이를 통해 전쟁이 없는 살기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강해야 하고, 적을 알아야 하고, 준비하고 단련해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 바탕에는 결국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깔려있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것을 하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손자가 "사랑하세요. 그러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평안해집니다."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인간성 회복과 사랑을 소리높여 외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ㅡ.ㅡ

저자가 손자병법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라고 하니... 손자와 대질이라고 해야하려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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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은 경제학 공부 - 쉽게 배워 바로 써먹는 경제적 사고 습관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3
김두얼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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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공부"

처음엔 정말 설마했다.

그런데 이건 진짜다...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웠던 수요과 공급 곡선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확장...ㅋ

누군가가 그랬다... (뭐 존 메이나드 케인즈라고는 구태여...ㅎ)

"(경제와 경영)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지성의 영향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고 믿지만, 항상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일 뿐이다." 라고...

그래서 경제학 개론은 항상 존재하고... 저 수요와 공급 그래프를 위시한 효율적 시장 가설과 한계 효용 등과 관련된 불라불라는 우리 주위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내 주변에 어느 분은 주식투자를 함에 있어서 그저 차트만을 보시고 한단다.

책을 보면 참으로 많은 이론과 주장이 난무하는 데도 결코 혹하거나 휘둘리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하지만 몇몇 주장들은 가만히 보면 그 가장 밑바닥의 사상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포트폴리오 투자가 어떻고 뭐 이런 것들부터 말이다.

우리가 살면서 한번은 경제학 공부 아니 경제학 개론을 읽어보아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뭐 아니면 말고... ㅡ.ㅡ

어떤 면에서 보면 수요-공급 곡선을 이해하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한 면이 있다.

수요 곡선을 올리고 내리고, 공급 곡선을 올리고 내리고 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지점이 가격이며, 그 만나는 지점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보면 그려지는 우상향 우하향 곡선의 자취가 생산과 재고에 대한 다른 표현이니 말이다.

딱 요기까지... ㅎ

사실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어렵다.

아니 그래프에 이런 저런 기호와 점선이 게다가 알파벳에 무언가가 덧붙여지는 것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괜히라도 복잡한 것같아 멀리하고픈 것 딱 이것 아닌가 말이다.

사실 자유경제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시장 만능의 사회가 된다면 더할 나위없이 이상적일 지도 모른다.

싸면 사고,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더 만들고, 더 만들기 위해 시설 투자를 하고, 늘어난 설비 운전을 위해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고용된 사람들은 임금을 받고, 돈이 있으니 물건을 사고...

이러면 얼마나 좋겠나 싶지만... 현실은 이런 고리의 어느 한 부분에서 조금만 삐끗해도 싫어라 하는 상황이 발생되니... ㅠㅠ

그래서 머리좋기로 따지면 내노라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에서도 모두가 만족하는 정책이나 대책, 방향이 정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쩔 땐 내가 경제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딘가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경제학 공부는 무슨...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심지어 부동산 투자를 어떻게 하고 경매가 어쩌니 공매가 어쩌니 주식 투자가 어쩌니 하는 이야기와 책에 대해서 많이 듣지만 다 딴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이유가 내가 그런 것을 하지 않고 있는 데다가 할 여력이 없어서 이다.

그러다가도 그래도 이 정도는... 하면서 또 다시 책을 보곤 하니... 나도 참...

그래도 어디선가 읽었는 지 들었는 지 그런 것 같다.

경제학 공부를 통해 무언가를 하고 이익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손해보고 마냥 떠밀려가듯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 경제학 공부라고...

적어도 투표를 할 때 관련된 공약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는 알아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ㅎㅎㅎ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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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1만 년 나이테에 켜켜이 새겨진 나무의 기쁨과 슬픔
발레리 트루에 지음, 조은영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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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면서 들은 느낌은 나무를 소재로 한 감성 가득한 에세이가 아닐까 싶었다.

개인적으로 꽃보다는 나무에 끌림이 많은 관계로 게다가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집사람을 생각하며 신청을 했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책은 좀 내 생각과는 다르다고 할까...

나무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 중심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에 대한 그동안의 노력과 애씀의 결과를 말하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

말하는 주체는 나무지만 나무의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라 사람의 노력이 중심인듯 한...

사실 TV 다큐멘터리 등에서 얼음 (빙하)의 시편을 기다린 대롱같은 것을 이용해서 채취해서 그 속에 퇴적된 여러가지들을 분석하여 기후 변화와 갖가지 지구적 활동을 분석하는 것을 보았다.

아주 커다란 그래서 그만큼 오래된 나무에도 비슷하게 샘픔 시편을 채취하는 과정을 거쳐 나이테를 확인하는 것도 보았다. 이 나무는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그런 작업을 통해 나무의 나이를 알고 나이테의 변화를 통해 기후를 알아내는 연구를 하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책에서와 같이 그런 연구들이 인간의 역사 활동에 대한 인과 관계까지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지에 대해서는 사실 처음 알게되는 것 같다.

나무의 나이테를 연구하는 것에 있어 기후 변화에 관심을 가진다면 혹독한 기후 조건을 가진 지역에서 해야 한다고 한다. 가뭄을 연구하려면 건조한 지역에서, 기온 변화를 연구하려면 추운 지역으로 가야한단다. 그만큼 그 조건이 나무의 성장을 제한하기 때문이란다.

나무를 연구하는 학문이니 당연히 아마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열대 우림이나 시베리아의 광활한 침엽수림과 같은 곳에서 해야하는 줄만 알았다. 나무가 많으니 말이다.

스코틀랜드에 폭우가 내리면 모로코에 가뭄이 드는 이유...

혹독한 소빙하기 덕분에 탄생한 프랑켄슈타인 박사...

나이테가 넓어지면 폭풍은 잦아들고 해적선은 날뛴다...

나무들이 여름 추위에 떨자 로마 제국은 무너졌다...

불에 탄 상처도 품고 품어서 나이테로 만들다...

왠지 나이테를 연구하는 책에서 언급할 만한 그런 주제가 아닌 듯 하다.

특히난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탄생은 해지면 자고 해뜨면 일어나는 시대를 산 인류가 겨울이 되면 밤 시간이 길어지고 실내 생활이 길어지다보니 임신율이 증가했다는 것과 동일한 발상으로 이야기되는 것을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이런 것까지 하는 입가의 미소를 감출 수 없음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닐 듯...

하지만 나이테 연구 (연륜연대학이라고 한다...)를 하는 사람들의 폭넓은 식견과 지식에 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음은 또한번 책을 뒤적거리게 만드는 이유랄까?

나이테에서 발견된 넓고 좁은 모스 부호를 보면서 과거 역사와 문화, 생활에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한 사람의 업적이 아니라 여러 사람, 그리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의 합작품이겠으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편견을 갖지 않고 다양하고도 넓게 볼 수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책 속에서 이스터 섬과 아이슬란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터 섬에 정착한 옛 사람들은 모아이 석상을 세우기 위해 섬의 나무를 벌목해서 밧줄을 만들고 카누와 뗏목을 만들었다고 생각된단다. 그 많은 900여개 이상의 커다란 모아이 석상을 세우고 난 후의 이스터 섬에는 단 한그루의 나무도 남아나지 않았고, 그 모습이 지금 보이는 풀밭과 덤불만의 풍경이란다.

아이슬란드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혹독한 기후를 견뎌내고자 처음 정착한 인간들은 나무를 땔감과 건축 재료 등으로 마구잡이 벌목해서 황폐해졌고, 21세기 들어 부단한 조림 사업에도 불구하고 섬에서의 숲이 차지하는 비율은 1%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무는 땔감이 되고 집이 되고 무기와 이동 수단이 되어주고도 모자라 식량을 생산하는 땅의 확보를 위해 무자비하게 잘려나갔다.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처럼...

그렇게 잘려나간 나무들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다 주고 싶은 마음이 들긴 했을까?

가끔 인간을 제외한 동식물에 대한 인간화 또는 인간의 시각에서의 접근은 요즘 좀 지나친 면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인간을 위해 희생한 (희생 맞을까? 그냥 힘없어 당한...) 동식물에 대해 연민과 동정보다는 우리가 가진 욕심을 바라보고 절제하고 내려놓는 것에 더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욕심의 범주는 위아래전후좌우 포함안되는 것이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나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준 책이라고 해야겠다.

아니 나무가 이런 이야기를 갖고 있으며 어떻게 들으면 되는구나 하는 것을 알려준 책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렇게 하나 하나 몰랐던 것을 알게되어가는 과정, 이것이 또 하나의 깨달음이 아닌가 싶다.

오늘 나무에 대한 깨달음의 하나를 얻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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