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게임 굿 럭
장강명 외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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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엔솔러지...

이번 책은 다섯 명의 작가가 게임이라는 주제로 단편을 쓴 모음집이다.

농구, 야구, 테니스, 축구와 바둑이라는 게임을 가지고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해연 작가의 <버저 비터>

전건우 작가의 <퍼펙트 해트트릭>

정명섭 작가의 <18.44>

조영주 작가의 <카이의 뜻대로>

장강명 작가의 <마인드 스포츠에 필요 없는 재능> 의 다섯 편이다.

<버저 비터>는 농구 경기의 승부 조작과 관련되어 입막음을 위해 다른 선수를 살해하는 사건을 다루었다.

<퍼펙트 해트트릭>은 한물간 선수의 광팬이 그를 북돋기 위해 폭탄을 설치해서 위협을 가한다는 이야기...

<18.44>는 과거의 사건으로 원한을 가진 선수가 다른 선수를 살해한다는 설정. 18.44는 마운드에서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

<카이의 뜻대로>는 제멋대로인 테니스 선수를 상대하는 매니저가 카이라는 AI를 이용하게 되지만 그것에 휘둘린다는...

<마인드 스포츠에 필요 없는 재능>은 혜성같이 나타난 소녀 기사의 뒷배경을 조사하는 에이전트의 이야기...

대충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어떤 소설에서는 불현듯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하나가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소설에서는 뒷배경을 조사하면서 접하게 되는 러시아 마피아와의 격투를 보면서 문득 어벤져스의 블랙위도우가 생각났다고 하면 너무 앞서간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 작가의 상상력과 그 필력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음은 부인할 수 없겠다.

<버저 비터>는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고...

<18.44>에서는 원한을 품은 사람의 집념이랄까... 그런 것이 읽혀서 좀 섬뜩했다.

각 소설에는 파워코퍼레이션이라는 매니지먼트 회사와 그 회사의 고충처리팀 이윤수 팀장이 연결 고리로서 이야기된다.

전직 국정원 요원 출신으로 소문이 나도는 이윤수 팀장에게선 다중적인 이미지가 느껴진다.

어느 직원은 비염을 앓고 있는 그의 킁킁거리는 소리가 너무 거슬려서 피하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그를 말하지만 들여다보면 그의 용의 주도함이랄까 뭐 그런 것을 느끼게 된다.

사건 마다에서 그는 알 수 없는 능력으로 감추어진 것들을 다 알고 있는 기분이 든다는 말이다.

틱틱거리면서도 직원을 챙겨주는 듯한 그의 언행에서 난 좀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데 그는 <공중그네>의 이라부다.

어수룩한 것 같지만 그리고 우연이랄까 재수랄까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은 이라부...

조금 삐딱한 듯 하면서도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적재 적소에 직원을 투입하는 이윤수 팀장으로 보였다고 해야겠다.

다섯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스포츠 세계에 어두운 단면을 봤다기 보다 그 세상도 사람의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더불어 매니지먼트라는 직업도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굿게임굿럭 #장강명 #정해연 #조영주 #전건우 #정명섭 #오리저널스 #매일책읽기 #독후감쓰기 #도서리뷰 #서평단

#한국소설 #단편소설 #엔솔러지 #스포츠 #승부조작 #원한과살인 #인공지능 #매니지먼트

#미스터리 #경쟁 #비밀 #욕망 #반전 #스포츠에이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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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게임 굿 럭
장강명 외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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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스포츠와 관련된 흥미진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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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
안형기 지음 / 좋은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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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안형기의 『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는 남북 분단이라는 한국적 현실을 배경으로 세계 금융 질서를 뒤흔드는 거대한 계획을 그려낸 작품이다.

설정만 놓고 보면 대담하고 통쾌하다.

강대국 중심으로 짜여 온 국제 질서 속에서 주변에 머물러야 했던 한국이 오히려 세계 금융의 흐름을 주도한다는 상상은, 한국 독자에게 묘한 해방감을 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현실을 정밀하게 복제하는 서사라기보다, 현실을 닮고 싶어 하는 상상에 가깝다.

제목에 등장하는 ‘데칼코마니’는 한쪽의 형상이 다른 쪽에 거의 동일하게 전이되는 기법이다.

하지만 소설과 현실은 완전히 같은 형상이 되기 어렵다.

현실의 세계 질서는 군사력, 경제력, 외교 네트워크, 국제 규범, 제도적 합의 등 복합적인 요소 위에서 작동한다.

단일한 의지나 소수 인물의 기획만으로 흔들리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촘촘하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현실과 완전히 겹쳐지는 데칼코마니라기보다, 데칼코마니를 꿈꾸는 이야기로 읽힌다.

현실의 구조를 하나의 축으로 압축해 상상 속에 옮겨 놓는 시도 말이다.

그 축이 바로 ‘돈’이다.

작가는 세계 질서를 떠받치는 기초를 자본으로 설정한다.

오늘날 국제 질서는 군사력이나 외교적 수사 이전에 금융 시스템과 자본 흐름 위에 놓여 있다.

외환 시장, 채권 시장, 파생상품, 주식 시장이 서로 얽히며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소설은 이 복잡한 구조를 과감히 단순화하고, 돈이라는 핵심 장치를 통해 기득권 질서를 흔들어 본다.

세계를 지탱하는 힘이 결국 화폐라면, 그 화폐를 움직이는 자가 질서를 건드릴 수 있다는 상상이다.

‘신들의 화폐’라는 제목은 이러한 설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자본은 보이지 않지만 결정적이며, 소수의 거대한 권력이 다루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초월적 힘처럼 보인다.

이 소설은 그 신의 영역을 인간, 더 구체적으로는 한국인 주체가 다루는 장면을 펼쳐 보인다.

이는 세계를 완전히 재편성했다는 선언이라기보다, 그렇게 흘러가 보기를 바라는 하나의 서사적 상상처럼 느껴진다.

실제 국제 금융은 각국의 감독 체계와 국제 공조 시스템 속에서 작동한다.

대규모 자금 이동은 여러 단계의 추적과 규제를 통과해야 하며, 국가 단위의 작전은 중앙은행과 재무 당국, 정보기관의 협력 없이는 지속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소설 속 전개는 현실의 정밀한 재현이라기보다 상징적 압축에 가깝다.

급등과 급락이라는 표현 뒤에 숨은 메커니즘이 조금 더 구체화되었다면 설득력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금융 교과서가 아니라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마지막에 꿈의 형식으로 정리된다.

이 결말은 어쩌면 이 거대한 계획이 현실의 데칼코마니가 아니라, 현실을 비추고 싶어 한 상상의 그림이었음을 보여준다.

『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는 세계 질서를 완전히 뒤엎는 혁명의 기록이라기보다, 세계 질서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 묻고, 그 힘을 손에 쥐어 보고 싶어 하는 상상을 펼쳐 보이는 작품으로 읽힌다.

현실과 정확히 겹쳐지지는 않지만, 겹쳐지기를 꿈꾸는 형상, 그 간극을 생각하게 만드는 점에서 이 소설은 흥미로운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의 제목을 다시 떠올려 보게 된다.

‘신들의 화폐’는 단순히 신이 사용하는 돈이라기보다, 오늘날 세계 질서를 움직이는 초월적 힘으로서의 자본을 가리키는 표현처럼 느껴진다.

자본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고, 국경을 넘어 흐르며, 때로는 정치와 군사보다 더 직접적으로 현실을 재편한다.

그런 점에서 화폐는 인간 사회에서 거의 신격화된 힘에 가깝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신과 같은 힘’을 인간, 그것도 한국적 맥락 위에 선 인물들이 다루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앞에 붙은 ‘데칼코마니’는 형식적 장치처럼 읽힌다.

현실 세계의 금융 질서와 소설 속에서 전개되는 금융 작전은 완전히 같은 형상은 아니지만, 서로를 비추는 그림처럼 겹쳐진다.

제목은 등식이라기보다 병렬에 가깝다.

세계를 지배하는 신과 같은 화폐,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현실과 환상의 대칭 구조.

『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라는 이름은 결국 현실과 닮고 싶어 하는 상상, 그러나 끝내 완전히 같아질 수는 없는 두 형상의 긴장을 함께 품고 있는 셈이다.

#데칼코마니신들의화폐 #안형기 #좋은땅 #매일책읽기 #독후감쓰기 #도서리뷰 #서평단

#한국소설 #장편소설 #금융 #꿈 #상상 #남북분단 #탐욕 #정치스러움 #트럼프가보인다 #자본 #물질만능 #돈이전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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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
키코 야네라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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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하며 산다.

오늘 점심 메뉴 같은 가벼운 결정부터, 투자의 방향이나 정치적 지지처럼 삶의 궤적을 바꾸는 무거운 결정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때 우리 뇌가 가장 먼저 꺼내 드는 도구는 ‘직관’이다.

수만 년의 진화 과정을 통해 축적된 이 본능적 감각은 빠르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직관과 객관>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신뢰해 마지않는 그 직관이,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인지적 함정’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저자는 직관이 유용한 도구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원시 시대, 수풀 속의 부스럭거림이 바람인지 호랑이인지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있었다면 인류는 진작 멸종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정보 생태계는 수풀 속 포식자보다 훨씬 교묘하고 복잡하다.

저자가 강조하듯, 오늘날의 정보는 단순히 많은 것을 넘어 ‘과잉’ 상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직관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향’에 취약해진다.

저자는 우리에게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라고 주문한다.

이는 단순히 차가운 이성을 갖추라는 도덕적 훈계가 아니다.

데이터와 근거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익히라는 실천적 권고다.

그는 직관이 주는 ‘확신’의 안락함에서 벗어나, 데이터가 말하는 ‘진실’의 불편함을 마주할 용기가 객관성의 시작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로 수학과 통계를 제시한다.

대중에게 수학은 흔히 골치 아픈 계산으로 여겨지지만, 저자에게 수학은 ‘세상의 노이즈를 제거하는 필터’다.

데이터와 근거를 평가하고 검증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통계적 사고는 필수적이다.

우리는 흔히 자극적인 사례 하나에 매몰되어 전체의 흐름을 놓치곤 한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극단적인 사건이 마치 세상의 일반적인 모습인 양 착각하는 ‘가용성 휴리스틱’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평균, 확률,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구분 등 통계적 개념을 일상에 들여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데이터는 그 자체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검증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이 되기 위해 데이터를 사용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데이터를 다루는 인간의 편향이 데이터에 투영될 때 오류는 더 정교하게 포장된다.

저자는 통계를 이용하면서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 즉 샘플링의 오류나 기저율 무시 등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특히 정보 과잉 시대에 우리가 겪는 ‘선택적 인지’는 객관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이다.

알고리즘이 짜준 맞춤형 정보에 갇혀 자신의 편견을 공고히 하는 현대인들에게, 저자는 끊임없이 ‘반증 가능성’을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정, 그리고 내 판단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가 오염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태도야말로 이 책이 말하는 진정한 객관성의 요체라고 해야겠다.

결국, 저자가 읽는이에게 강조하는 것은 기술적인 통계 지식보다는 ‘객관성을 대하는 태도’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더 깊게 편향될 위험에 처해 있다.

저자는 이를 타파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멈춰 서기: 직관적인 판단이 고개를 들 때, 잠시 멈춰 그 근거가 무엇인지 자문하라.

둘째, 근거의 질 따지기: 단순히 숫자가 있다고 해서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데이터의 출처와 수집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라.

셋째, 확률적으로 사고하기: 세상에 100%는 없다.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모든 가능성을 확률의 스펙트럼 위에 올려놓고 판단하라.

이 책 <직관과 객관>은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열어준다.

직관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엔진이지만, 객관은 우리가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브레이크다.

저자가 안내하는 수학과 통계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역설적으로 우리는 인간 인지 능력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단순히 '데이터가 최고다'라고 외치는 데이터 만능주의 서적이 아니다.

오히려 데이터 뒤에 숨은 인간의 욕망과 오류를 직시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지적인 겸손함'을 요구하는 책이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 우리가 가져야 할 최고의 무기는 화려한 분석 기술이 아니라, 언제든 내 판단을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유연하고도 객관적인 마음가짐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면 우리는 더 똑똑해졌다기보다, 덜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그 덜 확신하는 상태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객관성에 가장 가까운 지점일지도 모른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직관과 객관>은 판단을 날카롭게 만들기보다는, 판단 앞에서 스스로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라고 해야겠다.

#직관과객관 #키코야네라스 #이소영 #오픈도어북스 #매일책읽기 #독후감쓰기 #도서리뷰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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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 - 뼛속까지 정치적이면서도 가장 예술적인 문장들에 대해
조지 오웰 지음, 이종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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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조지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는 정치 비평서라기 보다는 한 작가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읽힌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단순해보인다.

나는 왜 쓰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곧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정치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가.

1장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글쓰기의 동기를 네 가지로 정리하지만, 읽는 우리는 곧 그것이 균형 잡힌 분류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리게 된다.

자기과시나 미적 열정, 역사적 충동 역시 중요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이다.

오웰에게 정치란 정당 활동이나 선거 구호가 아니라,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려는 모든 시도가 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작가는 이미 정치 안에 들어와 있다. 다만 그것을 자각하느냐, 외면하느냐의 차이만 남는다고 생각된다.

이 지점에서 오웰이 독립노동당 가입 경험을 언급하는 대목은 단순한 이력 소개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중립적인 관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글쓰기 이전에 이미 한쪽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 속 행동이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는 읽는 이에게도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정치적 글쓰기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위치와 시각에 대해서는 끝까지 말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회피가 아닐까 하는 질문 말이다.

4장 [정치적인 글쓰기]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정리한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오웰은 ‘정치적 글쓰기의 위험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정치적 글쓰기가 언제든 선전으로 타락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위험을 이유로 언어를 흐리게 만들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오웰이 반복해서 경고하는 것은 ‘거짓’보다 ‘모호함’이다.

정치적 언어가 병들 때, 그것은 대개 노골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의미를 비워낸 문장, 책임 주체를 지운 표현, 판단을 유예시키는 관용구의 나열 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 맥락에서 오웰이 제시한 글쓰기 규칙들, 그 중에서 특히 “뺄 수 있는 단어는 빼라”는 원칙은 단순한 문체론이 아니다.

이는 사고를 단순화하라는 주문이 아니라, 사고를 끝까지 밀어붙이라는 요구에 가깝다.

불필요한 단어를 제거한다는 것은 생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핑계와 회피를 제거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규칙은 저자의 또 다른 작품인 <1984>의 '신어(뉴스피크, Newspeak)'와는 정반대의 윤리와 사고를 지닌다.

신어가 사고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언어의 축소라면, 여기설 말하는 "뺄 수 있는 단어는 빼라"는 간결함은 사고와 주장을 책임 있게 만들기 위한 언어의 절제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결국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오웰이 정치적 글쓰기를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로 다룬다는 데 있다고 보인다.

그는 명료함을 미학으로 칭송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도덕적 선택으로 제시한다.

쉽게 쓰는 것은 독자를 배려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작가 스스로에게 변명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웰의 규칙들은 작가를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계속 불편하게 만든다.

<조지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를 1장과 4장을 중심으로 읽고 나면, 이 책은 하나의 주장으로 수렴된다.

정치에서 벗어난 글쓰기는 없으며, 정직함을 포기하지 않는 한 글쓰기는 언제나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오웰은 우리에게 정치적으로 쓰라고 설득하기보다 이미 정치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얼마나 비겁한지를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특정 이념의 옹호서라기 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하기 어려운 윤리적 질문을 남기는 그런 책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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