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마음 - 도시는 어떻게 시민을 환대할 수 있는가
김승수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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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전주라는 도시에 가본 적이 있을까?

일 때문에 주변 완주, 봉동읍까지는 다녀봤지만 사실 전주라는 도시 속으로 들어간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같다.

아직 난 우리나라에서 안가본 곳이 너무나도 많다는 이야기다. ㅡ.ㅡ

저자는 2014년부터 8년 간 전주 시장을 지낸 정치인이자 도시 혁신가라고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본다.

저자는 정치인과 도시혁신가라는 둘 중에서 어느 쪽을 자신의 본캐로 생각할까?

책은 저자가 전주 시장으로 취임해서 전주라는 도시를 정의하고, 그에 맞춰 도시의 한 부분을 바꾸어나간 과정과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의 도시, 전주

책이 삶이 되는 책의 도시, 전주

p336

언젠가 읽었던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때는 유현준 교수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잘모르면서 저자가 말하던 "거리 (골목)"에 눈이 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무엇'은 결국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 관계, 사회적 상호작용, 문화적 맥락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고, 도시의 생명력은 이런 비가시적인 것들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관계가 생기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욕망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과거와 연결된 공간을 존중해야 한다."

"도시는 ‘시간의 구조’도 고려해야 한다."

"건축가와 정책 입안자가 사람의 ‘생활’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더불어 건축과 도시 공간은 기능이 아니라, 관계와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이 그 책이 주는 메세지였다는 생각이다.

이번 책 <도시의 마음>은 저자가 유현준 교수의 생각을 현실에 그대로 실현시켜 놓은 과정이 아닌지 싶을 정도로 닮았다.

도시의 가치는 시민들의 평범한 삶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평범한 삶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균열 없는 일상이 응축되어 평범해지고, 그렇게 삶의 균형이 내재화될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다움'입니다. (...)

도시의 기본은 평범한 삶을 비범한 삶으로 도약시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상을 지켜서 평범에 이르게 하는 도시가 좋은 도시입니다.

p29-30

저자가 말하는 도시의 가치가 이러한데 현실의 도시는 '시민은 없고 고객만 남은' 휴먼 스케일의 도시에서 자본 스케일의 도시로 향해 가고 있다.

저자는 주장한다.

자본사회가 잉태한 경쟁과 승자 독식의 세계에서 이와 같은 것들을 중재하고 완화하며 어울어지도록 할 수 있는 도시 내 '공공장소'가 필요해졌다고 말이다.

그 '공공장소'를 만들어가는 일이 그의 앞에 주어졌다는 말이다.

도시는 '사람을 담는 그릇'이니, 사람이 사용할 그릇, 사람이 살아갈 도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는 사람들의 힘이 모여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방향의 설정이 필요하고, 이 방향의 좌표가 되어주는 것이 관점과 안목이며,

관점은 연대와 변화를, 안목은 깊이를 이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관점의 공유는 방향성에 대한, '왜'라는 질문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된다.

저자가 "책의 도시"를 만들어가기 위해 공을 들인 부분이다.

시장으로서의 저자가 생각한 '공공장소'는 도서관이었다.

저자의 재임기간동안 시작되고, 계획되고, 완결된 많은 도서관들을 책을 통해 보여준다.

그 도서관 하나 하나에 저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땀과 고민과 수고가 들어갔고, 그것들을 우리는 책을 통해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전주의 도서관들은 책을 통해 전달받는 것에서 멈추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기분이다.

시간을 내서 그 한 곳 한 곳을 둘러보며 그 마다 마다의 장소가 가진 풍경과 분위기와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읽고 있으면, 저자가 고민했을 '공공장소'라는 개념의 정의와 역할에 대한 생각은 한발 물러서게 된다.

그래도 공공장소가 적당한 성공을 뛰어넘어야 하는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사회적 설득'이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많은 숫자가 도시에 몰려산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도시는 도시로서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통해 존재의미를 살려야 하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경험적 확장을 이어가야 한다.

이런 도시의 확장은 결국 시민 삶의 확장이 될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거쳐 현재를 살고 미래를 살아갈 것이다.

도시 역시 미래에도 사람들의 삶의 현장으로서 존재하고 이어질 것이다.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 필요합니다." (p332) 라는 말을 저자는 인용해서 들려준다.

계속 변화, 발전해나가는 도시에는 어떤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 필요할까?

"변화된 공무원 집단"이 그 중 하나라고 저자가 말하는 듯 싶다.

나아가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란 새롭게 태어난 인간이 아니라 자각하는 인간" 이며, "관점과 안목이 내재화된 성실함을 가진 인간"이라고 말하며, "이 새로운 인간이 도시의 안정된 다른 힘" (p336) 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런 새로운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도시는 미래에도 도시가 사람들의 그릇이 되도록 지켜낼 것이고, 관계가 유지되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 갈 것임을 믿는다.

저자가 자랑하는 전주, 책의 도시 전주로 찾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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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과 마법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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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SF 판타지 소설이다.

이쪽 장르의 소설은 워낙에 서양쪽이 강세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냥 술술 읽힌다. 금방 읽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받자 마자 다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뭐랄까 흡입력이 있었다.

오늘... 재미있는 소설과 그 소설을 쓴 작가를 찾았다.


기병과 마법사...

혹자는 제목에서 칼을 든 남자 병사와 마법사 여자와의 로맨스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누군가는 검은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의기투합한 원 팀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둘 다 맞다.

시대적 배경은 마치 광활한 만주 벌판을 앞마당인 양 주름잡던 고조선과 고구려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시대다.

성군聖君이었다가 제 성격찾은 폭군暴君이 있어 아양을 떨거나 숨죽이고 살아가야 하는 나라가 있었다.

그런 왕의 조카인 영윤해는 야인野人들의 위협에 맞서 싸우는 변경 지방으로 유배아닌 유배를 떠난다.

변경의 슬룸고리에 도착한 윤해는 자신의 꿈에 나타나는 못알아듣는 말을 하는 여자와 소만큼 커다란 몸집의 곰개의 정체를 밝히려 그 벌판 어딘가에 위치한 거대한 장벽, 거문담을 찾아간다.

잠을 잔다는 것은, 꿈을 꾼다는 것이고, 꿈을 꾼다는 것은 윤해가 그 꿈이 자신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이제 윤해는 그 꿈 속에서 자신은 마법사이자 예언자이며,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파괴자가 나타날 그 때에 그 파괴자를 막아내야 할 사명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021년의 주기를 가지고 세상에 나타나는 파괴자는 윤해와 기병대장 다르나킨이 주변의 모든 병력을 모아 대비하고 있던 그 곳에 나타난다.

드디어 세상을 지키기 위한 기병과 마법사가 파괴자에게 맞선 싸움이 시작되었다.


소설을 읽어가는 중에 뜬금없다고 해야할 숫자가 나타난다.

"1021"

소설 속 천문을 연구하던 관리는 이것을 세상에 무언가가 나타나거나 발생할 주기라는 것을 파악했고, 그 정확한 시기를 윤해에게 알려준다.

1021...

작가는 이 숫자를 어떤 의도로 쓴 것일까?

소수, 정중한 수, 거울수, 회문수라는 관계까지는 어찌 어찌 억지로라도 찾아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ㅡ.,ㅡ;;

흠... 나는 모르겠다.

왠지 무언가 특별함이 있을 것같은데 하는 의심만 남았다. ㅡ.ㅡ

윤해는 파괴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그녀에게 특별히 주어져 있는 그 무언가를 마침내 발견하고 결국 파괴자를 물리친다.

윤해에게 주어진 그 특별함이란 자신 스스로가 다른 세상과 연결하는 문門이 되는 것.

그 문을 통해 윤해는 다른 세상으로부터 파괴자를 함께 물리칠 수 있는 협력자들을 불러들이게 된다.

그 협력자의 마지막 구성원은 미래의 윤해.

여기서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본다.

왜 미래의 윤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현재의 윤해가 있는 데 왜?

그리고 협력자의 누군가가 말한다.

꼭 이 순서대로 협력자들을, 다른 예언자들을 이 세상, 이 세계로 불러들여야 파괴자를 물리칠 수 있는 고리가 완성된다고.

그 순서를 밝혀낸 것이 대단하다고.

그 순서를 밝혀낸 자... 미래의 윤해...

그렇다면 1021년의 주기가 반복되면서 세상은 종말을 맞이했다는 말이다.

미래의 윤해가 이 파해법을 밝혀내기 전까지...

수 많은 평행 우주가 있어 그 세상들이 지금의 윤해가 불러들일 지금 이 시간, 어느 SF 소설에 나오듯 행성이 일렬로 정열하듯, 평행 우주가 서로 연결되어 이 문과 저 문을 통해 고리를 형성하는 예언자들이 오가게 되는 지금 이 시간까지...

파괴자와의 싸움은 처절하게 계속되었다는 말이다.

이제 파괴자는 거문담의 저 깊은 어딘가로 가두어져 버렸다.

이 시간 이후에는 1021년의 주기는 반복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다음 주기가 올 때까지 우리에게 1021년 이라는 시간이 다시 주어진 것일까?

여하튼 세상은 종말적 위험에서 벗어났다.

그렇다면 이제...

기병과 마법사는 로맨스를 시작할 수 있을까?

마로하는 윤해 바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뒤편으로 사라졌다. 문을 지나듯, 윤해가 문이 되어 마로하를 자기 세계로 보내주었다.

윤해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

그래도 윤해는 외롭지 않았다. 윤해에게는 이제 삶의 초원을 함께 살아갈 사람이 있었다. 혼자 버려진 윤해를 도와 날개가 되고 말이 되어준 사람.

p379~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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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거장 - 위대한 창의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데이비드 W. 갤런슨 지음, 이준호 외 옮김, 박성원 감수 / 글항아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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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생각해보고 싶은 질문은 나이에 따라 예술가들의 작품의 질이 어떻게 그리고 왜 다양해지는가다.

p10

저자는 서문에서 "창의적 예술가들의 생애주기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고 이 이론이 경험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 지, 그리고 분석 결과를 검토해보는 것"에 목적이 있음을 밝힌다.

더불어 창의성과 예술적 업적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저자는 예술가와 창작자들의 스타일을 연구하며, 천재성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구분은 '역사적인 예술가들의 작품과 경력을 분석하며, 창의성이 발현되는 방식에 따라' 나뉜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개념적 혁신가(Conceptual Innovators) – 급진적 창조자"이다.

이들은 대개 젊은 나이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예술적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작품 활동에서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처음부터 완벽하게 기획된 작품을 빠르게 완성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창작 방식이 직관적이며, 새로운 이론이나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집중하는 이런 부류의 예술가의 예는 파블로 피카소, T.S. 엘리엇, 랭보 등을 거론한다.

이와는 반대로 "실험적 혁신가(Experimental Innovators) – 점진적 창조자" 스타일이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장기간에 걸쳐 창작 기법과 스타일을 발전시키면서 점진적으로 완성도를 높이려고 고군분투하며, 즉흥적인 아이디어보다는 시행착오를 통해 작품을 다듬어 나가는 쪽이다.

이렇다 보니 인생 후반기에 최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되며, 폴 세잔, 마크 트웨인, 로버트 프로스트 등이 이에 속한다.

저자의 이론에 대한 검토와 분석, 증명 과정에서 저자는 정량적 분석을 활용한다.

  • 예술가들의 작품이 경매에서 거래된 가격

  • 특정 연령대에 발표된 주요 작품

  • 예술 비평에서 언급된 빈도

이런 데이터를 통해 창의성이 연령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를 연구한 결과라는 말이다.

서문에서 밝힌 저자의 생각 - 이론을 제시하고, 증명하는 -은 다양한 예술 부문 즉, 그림, 문학, 조각, 영화 등에 걸쳐 이야기되고 있으며, 그런 경향에 대해 '그건 아니지'와 같은 반론의 제기는 무의미해보인다.

다만 저자도 "돌연변이"편으로 따로 구분하여 거론하는 것처럼 개념적 혁신가의 유형으로 분류되지만 그의 대표작을 완성하고 발표하는 시기가 상대적으로 실험적 혁신가 유형과 유사한 인생 후반기에 위치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예외적인 사례로 인해 저자가 주장하는 두가지 유형에 대한 정의와 특성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보인다.

이와 같은 저자의 이론과 주장을 다시한번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 될 듯하다.

  • 창의성은 단순히 나이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며, 창작 방식에 따라 다른 패턴을 보인다.

  • 개념적 혁신가는 급진적으로 변화를 주도하며, 실험적 혁신가는 점진적으로 발전한다.

  •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문학, 영화 등 에서도 이 두 유형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 따라서 자기 자신이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를 이해하면 창작 활동을 더욱 효과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겠다.

이와 더불어 이론의 증명 과정에서 창의성에 대한 외부 영향 요인도 함께 알 수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창의성이 단순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과 시대적 흐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예를들어 시대적 요구와 문화적 영향을 생각할 수 있는 데, 이는 20세기 초반 산업화와 과학 발전은 피카소와 같은 개념적 혁신가들의 창조성을 촉진하는 환경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르네상스 시대에는 장인적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실험적 혁신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있었다고 보여 시대와 환경에 따라 주도적인 유형이 달라 보인다.

또한, 네트워크와 협업의 중요성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창의성은 고립된 상태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창작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강화되기도 한다는 것이고, 예를 들어, 인상파 화가들은 서로의 작품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더불어 통신과 사진의 발달은 도제식 교육 방법이 아주 중시되지 않는 개념적 혁신가 유형에게 있어 개념과 요점의 전달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부분이랄 수 있겠다.

창의성이 형성되려면 개방적인 사고방식과 협력적 환경이 중요하다고 할 때 세계화는 이런 흐름에 도움이 되었겠다.

책 제목이 "천재와 거장"이다.

Young geniuses and Old masters (원래는 Old masters and Young geniuses의 순서이지만 우리말 제목과 순서를 맞추면 이렇게 될 것이다.)

개념적 혁신가와 실험적 혁신가...

혁신은 그들의 예술 세계를 발전시키고 전성기로 이끌어준 동력이자 자체였는 지도 모른다.

어떤 유형이 나에게 맞을까?

이런 질문은 인생의 전성기가 언제쯤 올까? 라는 질문과 같은 지도 모른다.

결국 나를 알아야 하는 문제로 돌아가게 되는 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전성기를 맞이했나? 그것이 아니라면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내 전성기가 올까?

그것은 지금의 내가 창의적인 혁신을 위해 열일하고 있느냐에 달린 문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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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 번 당신만의 책을 써라 - 당신을 위한 고품격 책 쓰기 수업
우희경 지음 / 밀크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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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책을 쓴다는 것은 한편으로 생각할 때 정말 환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삶을 살아가면서 몇 명이나 자신의 책을 출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 극소수 중 내가 낀다는 것 자체가 왠지 뿌듯하지 않을까 싶다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나도 내 책을 출판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7회 차 수업을 통해 나만의 책을 출간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누구나 책 한 권 쓸 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나, 책을 쓰는 데 완벽한 때란 없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면 고루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자주 들을 수 있다는 말이고, 일견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막상 책을 쓴다는 것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어떤 주제를 가지고 쓰느냐는 문제는 내가 가진 쓸 만한 이야기가 무엇이냐는 말일 텐데 여기서 막힌다는 것은 방금 한 그 고루한 표현이 내게는 결코 고루하지 않으며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일게다.

여하튼 책을 쓰고자 마음먹은 다음 단계가 주제를 선정하는 기획 단계인데 정말 중요한 단계가 아닐 수 없다.

글을 쓰기 위해선 자료를 꼼꼼하게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단 가진 것이 많아야 풀어놓을 것이 많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일 테니 사례 수집은 중요한 일이겠다.

그런 면에서 예전에 정유정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에 오랜 시간을 쓴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이제 모아놓은 것을 풀어놓을 차례다.

초고를 쓰기 시작해서 마칠 때까지 끈기를 가지고 나름의 루틴을 만들어 지속해야 한다고 들려준다.

"초고는 엉덩이로 쓴다"라고 말하니 땀띠 나도록 앉아있어야 되리라.

초고를 퇴고하면 다음 단계는 출판사에 내가 쓴 원고를 가지고 어필하는 단계란다.

왜 썼는지, 내가 누구인지, 누구를 대상으로 썼고, 어떻게 홍보를 하면 좋을지 등등이 담긴 기획서를 잘 쓰는 것은 책을 출간하는 마지막 고비 같은 것이란다.

잘 포장해야 한다는 말이겠다.

글만 쓰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면 좀 맥이 빠지는 소리일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 출간 후 홍보도 책을 쓴 내 몫의 일부란다.

하긴 책이 잘 팔려야 나도 좋고 출판사도 좋고 그런 것이니 허투루 할 것이 절대 아닐 게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 권의 내 이름을 단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단다.


일곱 번째 수업은 책을 쓰고 난 후에 달라질 것들과 내게 생길 수 있을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쓰는 사람들은 어떤 목표와 목적이 있겠다.

자기만족만이라는 오로지 이 한 목표를 가지고 책을 쓰는 사람은 없을 터이니 말이다.

그래서 책을 한 권이라도 쓰면 "삶이 책이 되고, 책이 삶이 되는 기적"을 느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난 책을 쓰려고 할 때 무슨 목표와 목적을 가질 것인가...

책을 쓰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다. (지금은? 책을 읽고 난 후엔 잘 모르겠다로 바뀌었다.)

내가 쓴 책을 읽어줄 사람은 내 아이들이고, 난 내 아이들에게 아빠인 내가 이렇게 살았고, 이런 생각을 했으며, 이런 책을 읽었고, 이런 생활을 했다는 것을 들려주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런 주제를 가지고 책을 쓰면 사람들은 관심이 갈까?

아니 읽고 싶어 하기는 할까?

읽고 싶지 않다면 팔리지도 않을 터인데 정말 써도 되는 것일까?

물론 책을 쓴다는 것 자체는 누가 감히 내게 뭐라고 하겠나만 출간은 다른 문제다.

오로시 내 돈을 들려 출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쇄하고, 포장하고, 운반하고 하는 일련의 활동에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고, 이 사람들의 모든 활동들이 헛일이라면 그것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아닐까.

참 핑계도 많다 싶다.

용기 없어 못쓰겠고, 책을 읽고 나서도 아직까지도 갈피를 못 잡고 있어서 못쓰겠고, 쓴다 해도 돈이 없어 출판을 못하겠는 것이 다일 터인데 뭔 말이 이리도 길었을까.

저자는 내 속에 들어왔다가 나간 것처럼 이런 내 마음을 속속들이 파악하고서는 내게 속삭이고 있는 듯 싶다.

그래 다 알아... 네 마음 다 알아... 그러니까 한번 용기를 내봐...

그나저나...

감히 한번 물어보고 싶소.

여러분은 책 쓰고 싶소?

아니면 책 쓰고 싶어졌소?

이제는 책을 쓰시겠소?

정말 그러하시겠다면 내 진심으로 응원하리다...

진심으로 말씀드리오... 부럽소... 그 용기... 대단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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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사유 -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별한 여정
김은우.김광연 지음 / 북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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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대규모 자본이나 유통망에 의존하지 않고 책방 지기의 취향대로 꾸며진 작은 서점

주변에서 서점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내가 사는 동네에선 북카페 (책을 팔지않고 전시만 하기에 독립서점과 다르단다)도 찾기 어렵다.

그만큼 책방을 운영하고 유지한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그런 책방, 독립 서점 34곳을 저자는 소개해준다.

그리고, 방문한 독립서점의 분위기나 개성과 어우러지는 책을 소개하고 그 책에 대한 감상도 함께 들려준다.

왠지 부러웠다.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책방지기도 부러웠고, 그런 책방을 찾아다니며 느끼고 즐겼을 저자가 부러웠다.

하지만 가장 부러운 것은 책방지기들이 책에 둘러싸여 있다는 그 자체였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독립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에 대한 경제적 곤란을 내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것인지 새삼 떠올린다.

챙피하지만 현실이다. ㅠㅠ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여러 독립서점 중 알고 있었거나 찾아가본 적이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사실 내 스스로가 책방에서 책을 산다기보다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고, 책 서평 이벤트를 통해 책을 받아서 읽는 것에 치중하다보니 서점에 언제 가봤는 지도 사실 가물가물하다.

이런 상황이니 내 눈에 이런 아기자기한 작은 책방들이 눈에 띄는 것이 말이 안되는 것이었겠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한다고 말만 할 뿐, 생각의 제어를 받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만 의존하는 것에 불과하다. 생각한 결과가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각이 앞서야 한다.

p167-168

제주 '풀무질'이라는 독립서점에서는 환경과 자연과 관계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고 한다.

책방에서 본 실천의 흔적들을 통해서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의 기회를 갖게 된다며 말이다.

'나'라는 사람의 깊이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지 누리꾼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개인이 가지는 모든 재능의 깊이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그로인해 나에 대한 깊이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p244

충남 당진시 면천 읍내의 "오래된 미래"라는 독립서점을 찾은 저자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라는 책을 이 책방의 이미지와 연관시킨다.

보이지 않는 강요에 시달리며 현재를 살고 있지는 않는지, 책방의 2층에서 창문을 통해 과거와 미래의 모습이 교차되는 듯한 경험을 통해 살아온 과정 자체가 삶의 깊이라고 들려준다.

사실 책을 많이 '본 것'이지 '읽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읽은 책을 통해 타인에게 '난 이런 사람이야'하는 자기 과시에 불과한 것이었다.

p69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정영진 작가의 <정영진의 시대유감>이 있다.

이 책에서 읽고 듣고 본 것을 생각함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했었다.

난 얼마나 읽은 것을 내 것으로 소화했는 지 생각해 볼 일이다.

'책의 가치는 자신의 무지를 깨워줄 때 의미가 있다. 그 책들로 인해 겸허함을 배우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독립서점을 돌아보며 저자는 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가 이렇다고 들려주니 또 한번 고개 숙이게 된다.

책을 읽고나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여하튼...

난 독립서점이 아니라 주변 공공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입구 사진, 내부 사진을 찍고 그곳의 분위기에 맞는 책을 한 권씩 골라 읽고 서평을 남겨보기로...

과연 실천할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ㅠ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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