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씨앗 - 제인 구달의 꽃과 나무, 지구 식물 이야기
제인 구달 외 지음, 홍승효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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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인 구달이 들려주는 식물이야기.

제인 구달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교지에 글을 올릴 목적으로 그녀의 책 중 한 권을 빌려와 독후감을 썼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도 자연 과학에 대해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침팬지를 연구하는 그녀의 책이 눈에 쏙 들어와 그녀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 후로 제인 구달은 많은 저서를 냈지만 그녀의 책과 인연이 닿지 않다가 그녀가 처음으로 침팬지가 아닌 꽃과 나무를 비롯해 식물에 대한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해서 다시 그녀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전 세계에서 자연계를 보호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진행되는 노력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멸종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구조되어 또 다른 기회를 얻은 식물 종들, 멸종 위기 종들을 번식시키는 최선의 방법들에 대한 최첨단 연구를 수행하면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식물 세계의 경이를 소개하는 식물원. 자신들의 정원에 야생 동식물과 곤충들을 위한 안식처를 구축하며 자생 식물들을 키우는 사람들. 식물과 사무들, 초원과 숲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된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다는 사실, 이것들이 희망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식물에게 지고 있는 막대한 빚을 인정하고 그들 세계의 아름다움과 신비, 복잡성을 기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너무 늦기 전에 우리는 이 세계를 구해야 한다. - p.30

​침팬지 연구의 대가이지만 이 침팬지 연구도 식물 없이는 할 수 없다는 그녀는 연구를 하다가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 부터 그녀의 애견인 러스티와 함께 산책하면서 그 곳에 피어난 야생화를 가져다 그림을 그렸다. 제인 구달의 그림은 단순한 그림보다는 그녀가 얼마나 꽃과 나무에 대해 관찰하고 세밀하게 그것을 기록하며 지냈는지를 자세히 알려주는 대목이다.

어렸을 때부터 커가는 과정까지 그녀의 꽃과 나무를 비롯해 식물을 대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자세히 그려져 있다. 그것 뿐만 아니라 식물의 다양한 종류와 역사, 함께 공생해오던 동식물과의 화합이 어느새 사람들의 탐욕으로 하나둘씩 멸종되어 가는 사악함을 그녀는 이야기 하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최악의 지구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며 '희망의 씨앗'에 대해 그녀는 이야기 한다.

예전에는 불을 피우기 위해 나무를 땔깜으로 가져다 썼지만 요즘에는 불필요한 나뭇가지들이 산에 많이 떨어져 있다. 그러나 나무가 불필요하더라도 꽃과 나무에서 주는 좋은 기운을 마다한채 산을 밀어 버리고, 그곳에다 집을 짓거나 건물을 지어 산을 점점 더 황폐하게 만들어 점점 녹지는 줄어들고 검은 아스팔트와 시멘트의 건물만 오롯하게 서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를 거부했는지 제인 구달의 책을 보다보면 전세계적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동식물없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이제 우리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우리를 반성하고 다시 지구의 주인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객체로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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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시간 오늘의 젊은 작가 5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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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들.

박솔뫼 작가의 <도시의 시간>을 읽으면서 내가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 본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나는 '서울 토박이'라고 말하지만 서울은 왠지 '토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 도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는 '고향'은 없지만 서울을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면 포근한 안정감이 느껴지곤 한다. 언젠가부터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고 내려가는 '광장'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같은 특색이 드러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살지만 저마다의 색깔이 빛나는 곳.

서울의 이질적인 면을 깨닫게 된 것은 지방에서 살던 친척 오빠가 잠시 우리집으로 와서 대학을 다녔을 때였다. 아마도 내가 중학교를 다녔을 때였는데, 그때까지도 난 내가 살던 곳이 무척이나 익숙했고, 내가 사는 도시가 좋았다. 그러나 오빠의 입장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대학교를 입학하기 이전에는 잘 올라오지 않았던 서울에서 부모와 형제들 없이 생활해야 했을 어려움과 익숙하게 살았던 그 곳과 달리 도시의 이질적인 면이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함께 이야기하던 중 '서울은 참 차가운 도시다.'라는 오빠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엄마가 있고, 들어갈 집이 있는 나에게는 이 도시의 차가움과 흐린 빛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멀리 떨어져 있는 오빠에게는 도시의 시간이 삭막하고, 고독하며 사람들이 어디든지 많은 도시라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도시의 시간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은 나와 우미, 우나, 배정이 보냈던 10대 시절이 아닌 지금이다. 박솔뫼 작가가 느릿느릿 리듬의 속도를 내며 한창 순수했고, 발랄했고, 때론 감수성이 짙었던 시절에는 그 시간의 막막함을 몰랐던 것 같다. 어른이 된 후에 이 책을 읽으니 그들이 느꼈던 암흑과 그들이 함께 보냈던 제니 준 스미스의 음악이 위로가 되고, 꿈이 되었던 시절을 깨닫는다.

 

 나는 나에 대해 별생각이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정작 뭐가 되어 가는 것은 없었다. 뭐가 될 리가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다. 지금 같은 대학생이 직장인이 될 것이다. 그마저도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 것이다. 그 이후는 알 수 없다. 되는 것 없이 변하는 것 없이 완성되는 것도 나아지는 것도 없고 깨닫고 나아가는 것도 없다. 그것만 꼭 그렇게 될 것이다. - p.46 

박솔뫼 작가가 그리는 <도시의 시간>은 회색빛이다. 음울하고 차가운,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기대감이나 들뜬 기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을 그리고 있다. 몇 년전만 해도 우리는 대단한 미래를 그리곤 했다. 그리고 정말 시간이 지나면 달나라에 갈 것 처럼 더 발전되고, 안정감있는 사회를 생각했을지도. 그러나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글 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움과 무심함은 어쩌면 청춘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고민했을 흔적이자 동시에 회색빛 아래에서 사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나와 우나는 10대인데 중고생은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일 뿐이었다. 우리는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낀 채로 타는 냄새를 지나쳤다. 우나가 가져온 음악은 도서관 휴게실보다 한밤의 미분양 아파트와 더 어울렸다. 밤이라 조용한 곳을 돌아다니기가 긴장되었지만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잡은 채로 시멘트 덩어리 사이를 걸었다. 우나는 기타 하나가 중심이 되는 음악을 좋아했고 그 노래들은 모두 먼 곳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연기가 향해 가는 곳, 웃음소리가 떨어지는 곳, 그보다 먼 곳을 노래했다. 우리가 어두운 밤과 음악에 집중하는 사이 우우우 우우우 시멘트는 그렇게 노래했을지도 몰랐다. - p.55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네명의 청춘들의 이이야기는 시작과 끝도 없이 도시의 시간 속으로 스며드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난다. 그들이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저 책을 읽은 독자들이 스스로 그들의 삶을 유추 할 뿐이다. 박솔뫼 작가의 <도시의 시간>은 경장편에 속하는 짧은 소설이지만 호흡이 굉장히 느린 소설이다. 책 속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며 그들을 그리는 것 같지만 세밀하게 한글자 한글자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삶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의 흔적들이 엿보인다. 동시에 그들의 감정선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무엇하나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같으면서도 같지 않는 청춘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명확한 고조가 드러나면서도 진중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다소 그 호흡이 느려 무엇을 이야기하기에 이처럼 모호하고 단조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어느새 작가의 호흡 속들어가 까마득하게 기억나지 않았던 그 시간을 기억하며 어제도, 오늘도 이 도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날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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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누운 밤 창비세계문학 39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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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대가, 꼬르따사르의 환상문학을 접하다.

 

 중남미 문학의 대표 소설을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떠올리지만 처음으로 맛본 중남미 문학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 봉사대>(문학동네, 2009)였다. 영미문학이나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문학과 다른 매력이 온 몸을 휘감았고 책을 덮고 나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쓴 다른 작품들을 찾아가며 읽었다. 그 후 남미 문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는 물론이고 대가의 작품임에도 소개되지 않았던 볼라뇨의 문학도 속속 번역되고 있다. 이처럼 장편, 단편 할 것없이 다양한 작품이 번역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중남미 문학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드러누운 밤>은 창비 세계문학 서른 아홉번째의 책으로, 훌리오 꼬르따사르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번역되는 작품이다. 온라인에서 보는 것 보다 실제 표지가 더 예쁘다. 진한 갈색이 빈티지하게 칠해져 있고, 까슬까슬한 표지가 촉감이 좋아 책이 쉬이 읽힐 것만 같다. 아무튼 처음으로 접한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책은 생각만큼 쉬이 접할 수 있는 단편이 아니다. 단편소설의 대가이지만 그의 글쓰기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모호한 느낌과 어디서 이야기가 끝이 날지 모르는 불안감을 고조 시킨다. 15편의 단편 중 중편소설은 '추적자'가 유일하다. 유일한 이 중편 소설은 미국의 재즈 음악가 찰리 파커의 전기적 사실을 영감을 얻어 썼다고 한다. 14편의 단편은 짧고도 묵직하며, 그가 무엇을 드러내는지 알 길이 없다.

 

현실적이면서도 때로는 무엇 때문에 주인공들이 집을 점거 당하며 사는지 그는 소설을 통해 말하지 않는다. 점점 좁아지는 공간 아래서 펼쳐지는 이야기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식 사이에서 보여지는 불안감과 합당한 의식을 통해 우리는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글에 모호함을 느끼며 그의 문학에 젖어 간다.

 

훌리오 꼬르따사르는 위에 언급된 마르케스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와 함께 아메리카 소설 붐을 주도한 대가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많이 낯선 이유는 아직 그의 책들이 번역되지 않아 다른 이들과 달리 그의 명성을 알리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아르헨티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4살이 되던 해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정착하며 살았다.<현존>(1938)을 첫 시작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38살에 첫 환상문학 단편집인 <동물 우화집>을 펴내고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받아 유네스코 번역사로 일하며 평생을 보냈다. 그 후 만년에는 쿠바 혁명을 지지하며 적극적인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현재 그는 1984년에 사망하여 몽파르나스 묘역에 안치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단편 곳곳에는 아르헨티나의 정치적인 면면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의 중단편을 보고 뭐라고 평하기에는 그의 문학은 이전까지 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문제와 현실적인 문제가 부각되지 않으며 서술 조차도 언급되는 면이 없다.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처음으로 소개된 것처럼 이제부터라도 그의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차츰 이해하면 될 것이다. 우선, 14편의 단편과 1편의 중편 그리고 40페이지가 넘는 작품 해설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꼬르따사르의 문학을 접하면 될 것이다.

 

단편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았지만 헤밍웨이의 단편집을 보면 단편은 장편을 쓰기 위한 하나의 밑그림으로도 보여지기도 하고, 장편에서 쓸 수 없는 실험적인 글들을 과감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장편이 긴 호흡의 문장이라면, 단편은 짤막하면서 작가의 생각을 과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환상문학의 밑그림을 통해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그 짤막하고 생경한 모습을 다음 작품을 통해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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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과학도서 출판그룹 사이언스북스입니다. ^^


사이언스북스에서 제인 구달 신간, 희망의 씨앗』이 출간되었습니다.

얼마 전 방한으로 한국을 뜨겁게 한, '침팬치의 대모' 제인 구달의 신간으로

평소 제인 구달의 환경운동과 전작들을 읽어오신 분이나

자연과 생태계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희망의 씨앗』


우리는 꽃과 나무와 함께 희망을 심는다!



침팬지의 대모, 세계적인 환경 운동가 제인 구달이 만난 

지구 식물들의 꿈과 희망, 그리고 지혜의 메시지



‘침팬지들의 대모’로 널리 알려진 제인 구달(Jane Goodall)은 8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지구의 미래를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57년 전 아프리카에 찾아가 침팬지 연구를 시작했던 그녀는, 이제 전 세계의 동식물은 물론이고 그들과 공존하는 사회를 위해 행동하는 모든 사람들과 교감하는 환경 운동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녀는 그러한 경험들을 모아 인간과 자연이 함께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식생활을 제시했던 『희망의 밥상(Harvest for Hope)』, 여러 이유로 멸종 위기에 놓인 전 세계의 다양한 동물들과 그들을 보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은 『희망의 자연(Hope for Animals and Their World)』을 저술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가 출간한 『희망의 씨앗(Seeds of Hope)』은 제인 구달이 어린 시절에 성장했던 영국 본머스의 외할머니 댁 정원에서 시작해 9.11 테러의 현장이었던 세계 무역 센터까지 지구 곳곳에서 보고 들은 다양한 식물들의 경이로운 세계를 담았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지구의 여러 식물들이 우리 인간의 삶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책 속의 식물들은 아마존의 열대 우림들처럼 다양한 개발 사업이나, 세계 곳곳의 희귀종 난초들처럼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멸종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영국의 큐 왕립 식물원이나 제인 구달이 설립한 환경 보호 단체인 ‘뿌리와 새싹’이 보여 주듯이 인간과 지구가 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주역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단순한 보호와 애호의 대상으로서의 식물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사회 속에서 언제나 함께 살아 숨 쉬는 식물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세계적인 식물 연구가 마이클 폴란은 제인 구달이 동물들에게서 잠시 눈을 돌려 식물에 대한 책을 쓴 것은 “식물들에게 정말 좋은 소식”이라면서 그동안 동물에 비해 인간이 공감하기 어려웠던 식물의 세계를 소개할 제인 구달에 대한 큰 기대를 표하기도 했다.

제인 구달 박사는 이 책에서 우리와 뗄 수 없는 주식인 쌀과 간식인 초콜릿부터 특별한 선물로 전하는 난초들까지 다양한 식물들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소개하면서, 우리들 역시 그녀가 오래 전부터 몰입했던 식물의 흥미로운 세계에 빠져들도록 인도한다.



***



▶ 『희망의 씨앗』 서평단 모집 상세 내용



하나, 『희망의 씨앗』 서평단 모집 포스팅을 개인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 간단하고 성실하게 적어서 스크랩 링크와 함께 댓글로 올려주시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 2014년 12월 15일(월)부터 12월 21일(일)까지 입니다.


셋, 총 추첨인원 10명입니다. (최종 응모자 수에 따라 추첨인원이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넷, 서평단 발표일 2014년 12월 22일 월요일입니다.

서평단에 선정되신 분은 12월 25일까지 개인정보를 비밀댓글로 적어야합니다.

12월 25일 이후까지 확인이 안되면 선정이 자동취소됩니다.


다섯, 서평기간은 12월 26일(금)부터 1월 9일(금)까지 15일간입니다.


마지막, 첨된 서평단 분들은 서평기간인 15일간 알라딘 개인 계정으로 서평을 작성한 후, 『희망의 씨앗』 서평단 발표 포스팅 알라딘 개인 블로그 및 그 외 블로그나 외부 채널 등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셔야 최종 서평이 완료됩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서평 및 서평완료 댓글을 작성하지 않을 시,

다음 서평단 모집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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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누아르 - 범죄의 기원 무블 시리즈 1
김탁환.이원태 지음 / 민음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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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이 뒹구르는 욕망의 몸짓들!

​ 챙!챙!챙! 나를 위협하는 칼날이 사방에 오가는 가운데 살아남는 이는 약삭빠르게도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이 보다 자신의 윗사람을 위해 먼저 몸을 던지는 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오롯이 힘있는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처럼 누구하나 의지 할만한 사람이 없었던 소년이 세상의 흐름에 맞서 나가면서 나약한 소년이 아닌 한 남자, 나용주의 성장을 담은 이야기다.

 

나용주는 사당패에 들어가 각종 탈을 쓰며 춤을 추기도 하고 한가닥 줄에 매달려 줄놀음을 하는 광대이기도 하다. 그가 공연을 하지 않을 때에는 꼭두쇠 대인에게 검을 배우지만 절대 남들에게는 검을 휘두르지 말라고 스승은 조언하지만 몇몇의 양반가들의 횡포에 그는 자신의 검을 드러내고 만다. 그 후 그의 인생은 사당패에서 검계의 일원으로 들어가게 되고, 검계의 수장이 부린 간자가 되어 호암군의 일거수 일투족을 표악두에게 말하지만, 몸과 마음으로 호암군의 벗이 되어 그의 목숨을 해를 입히기 보다는 그의 목숨을 구해준다.

남자들의 치열한 몸싸움이 더해지지만 날카롭게 부딪히는 칼날보다 더 무서운 것은 권력이다. 임금을 보필한다는 재상들은 임금의 눈을 피해 자신의 권력을 더, 높고 굳건하게 다져가기를 원하며 검계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며 호위호식한다. 나라에서 금한 금주령을 깨고 술을 빚고, 그 술과 기생의 춤사위를 팔아 자신의 잇속을 채워나간다. 그 속에서 나용주와 호암군은 서로의 줄타기를 통해 우연과 행운,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지만 호기롭게 그 순간을 피해간다. ​

마음을 베는 데는 검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 p.17

 

선악과 승패를 연결하는 짓은 어리석다. 죽고 죽이는 싸움판에서 선악은 그럴듯한 외피이거나 덧없음을 견디는 농담이거나 살아남은 자를 위한 위로다 - p.232

 

사람들은 선인과 악인이 싸우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악인이 선을 이기면 무릎을 치며 안타까워하고 선인이 악인을 이기면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선인과 악인이 싸우는 경우는 천에 한둘뿐이다. 대부분인 악인과 악인이 싸운다. 이긴 악인은 덜 나쁜 놈이 되고 진 악인은 더 나쁜 놈이 된다. 차악과 극악의 대결을 선인과 악인의 대결로 간주하여 인기를 끄는 소설도 있지만, 그딴 헛소리를 정말 믿는 바보는 없다. 싸움꾼들은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결론을 마찬가지다. 이기는 쪽은 악이다. 악만이 이긴다. - p.280~281 

 

책을 읽기 전에는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이 예전에 M본부에서 했던 '다모'와 이명세 감독의 '형사'에서 보여줬던 화려한 액션이 가미된 소설과 비슷한 색깔을 갖고 있는 책이 아닐까 싶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이번에 S본부에서 종영했던 '비밀의 문'에서 보여줬던 그림과 흡사했다. 드라마에서는 왕과 신하의 권력이 줄다리기 하듯 팽팽한 신경전에 힘을 쏟았다면, 책은 나라에서는 결코 인정되지 않을 검계의 수장이 된 나용주와 그 권력의 정점이었던 갑론, 을론의 두 대감의 먹이사슬처럼 먹고 먹히는 이야기를 치열하게 그려냈다. 마초적이면서도 동시에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 눈에 그려질 듯한 인물들과 배경에 재미를 더하듯 엎치락 뒤치락 하는 이야기의 끝은 과연 어딜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이 책은 ​김탁환 작가와 이원태 기획자가 결합한 '원탁'의 첫 장편소설이다. 무블 시리즈의 시작점인 이 소설은 영화와 소설을 합한 조어로 영화 같은 소설, 소설같은 영화의 이야기를 지향하는 시리즈라고 하는데 글에 묻어져 나오는 활극의 이미지는 우리가 많이 봐왔던 남성적이고 강한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범죄의 기원이라고 할만큼 날것 그대로의 어둠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이전에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검계의 활약상이 많았던지라 그들의 어두움이 극히 두렵지는 않았지만 갑론, 을론, 호암군, 최만치등 굵직한 인물들을 통해 보여지던 권력에 대한 집념과 자신을 보호하고 나가는데 있어 우리 사회에서 뿌리 뽑아야 할 근원적인 철칙과 청렴, 강직함은 어느새 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선과 악의 기원이 시작된 그들의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고 자신을(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다 내보여서는 안된다는 ​표악두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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